‘Club Atlético San Lorenzo de Almagro(클럽 아틀레티코 산 로렌소 데 알마그로)’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한 클럽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클럽은 보카 주니어스, 리버 플레이트, 라싱 클럽, 인데펜디엔테와 함께 아르헨티나 5대 명문으로 손꼽히는 클럽이다. ‘La Gloriosa Butteler(영광의 부텔레르)’는 산 로렌소의 공식 인차이며, 내부적으로 ‘La Butteler(라 부텔레르)’라는 바라브라바 그룹이 존재한다.

‘La Gloriosa Butteler’는 과거 팀의 승리를 축하하던 장소인 ‘Plaza Enrique Santos Discépolo(엔리케 산토스 디세포로 광장)’에서 유래됐다. 이 광장은 클럽의 옛 경기장인 ‘El Gasómetro(엘 가소메트로)’에서 몇 블록 떨어진 ‘Azucena Butteler(아수세나 부텔레르)’ 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그 지역명을 따온 것이 지금의 ‘La Gloriosa Butteler’이다. 이 클럽의 별명은 ‘El Ciclón(엘 시클론)’이다. 시클론은 태풍 또는 폭풍을 의미하는 것으로, 산 로렌소의 강력하고 역동적인 경기 스타일을 나타낸다. 즉, ‘폭풍처럼 강력한 팀’이라는 뜻으로 종종 산 로렌소 팬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산 로렌소는 아르헨티나에서 네 번째로 많은 팬을 보유한 클럽으로 자주 언급된다. 1982년에 산 로렌소가 2부 리그에서 시즌을 치르는 동안 약 100만 장 이상의 티켓이 판매되었고 경기당 평균 25,000명 이상의 관중을 기록했다고 한다. 특히 티그레와의 경기에서는 약 75,000명의 운집하며 최다 관중 기록을 세웠었다. 산 로렌소의 인차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티켓 판매 측면에서 메가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를 쫓을 정도로 가장 활발하면서도 꾸준한 충성도를 보인다.
산 로렌소 1세대 바라브라바 La Barra de la Goma부터 현재 La Gloriosa Butteler까지 주요 활동
1927년, ‘La Barra de la Goma(고무 몽둥이 부대)’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경기장의 지붕이 있는 구역에 자리를 잡고 팀을 응원했으며, 오늘날 바라브라바 문화의 원형을 만든 그룹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꽤나 조직적인 그룹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데, 당시 보카 주니어스와 우라칸 팬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던 산 로렌소의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성되었으며, 경기장에서 상대 팬들과 충돌을 대비해 직접 ‘cachiporras de goma(고무 곤봉)’을 제작해 사용했다. 이들은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팬 집단이 아닌 조직적인 응원과 폭력성을 결합한 최초의 그룹이며, 현대 바라브라바 문화의 시초격이라고 평가받는다.

1958년, 산 로렌소 클럽은 골대 뒤편에 ‘Bodas de Oro(보다스 데 오르)’라 불리는 좌석 구역을 새롭게 조성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이곳은 자연스럽게 인차들이 모여 응원을 펼치는 곳이 되었다. 이들은 ‘La Banda de la Tribuna Chica(라 반다 데 라 트리부나 치카)’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다. 1970년대 들어서며 잡지 ‘El Gráfico(엘 그라피코)’는 ‘Cantos’라는 섹션을 신설하여 ‘Ciclón(시클론·산 로렌소의 별칭)’ 인차들의 응원가를 소개했다.
세월이 흘러 1988년, ‘La Gloriosa Butteler’의 첫 번째 배너가 경기장에 걸렸다. 이로써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의 공식 그룹명이 확립되었으며, 이 이름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1995년, 약 3만 명의 산 로렌소 팬들이 로사리오 원정 길에 올랐다. 2000년, 산 로렌소의 바르바라바는 클럽의 경영권이 스위스에 본사를 둔 ISL로 넘어가는 것을 저지했으며, 2006년에는 라싱 클럽과의 경기가 무관중 경기로 진행되는 것에 반대해 선수들이 경기장으로 출발하는 것을 저지하는 등 강한 결속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부에너스 아이레스 시의회에서 ‘Ley de la Reparación Histórica(역사적 보상법)’가 통과될 수 있도록 해 ‘El Gasómetro(엘 가소메트로)’가 있던 부지 일부를 ‘Plaza Lorenzo Massa(로렌소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산 로렌소 클럽에 반환될 수 있도록 했다. 2008년, 구단 창단 100주년을 맞이해 약 22,000명의 팬들이 모여 밤새 축하 행사를 가졌다. 2011년에는 ‘Av. La Plata(아베니다 라 플라타)’ 부지 반환 요구 시위에 42,000명이 참가해 ‘El Gasómetro(엘 가소메트로)’의 남은 부지를 되찾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2016년에는 라누스와의 프리메라 디비시온 결승전에서 약 34,000명의 팬들이 중립 구장 ‘Estadio Monumental(에스타디오 모누멘탈)’로 결집해 홈경기와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의 동맹 & 라이벌 관계
● 로사리오 센트랄과의 우정
산 로렌소의 바라브라바 ‘La Gloriosa Butteler’은 로사리오 센트랄의 바라브라바 ‘Los Guerreros’와 오랜 동맹 관계이 있다. 이들의 관계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당시 ‘Juan Domingo Perón(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세 번째 임기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팬 그룹들을 소집한 이후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수년 동안 이 우정은 유지되었으며, 경기장에서 서로의 상징물을 교환하고 함께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이 자주 연출되었다. 그러나 21세기 초반, 이 관계는 긴장 상태로 변했다. 그 긴장감은 1999년에 산 로렌소와 리버 플레이트 간의 경기에서 로사리오 센트랄 바라브라바들이 산 로렌소가 리버 플레이트를 돕기 위해 경기에 전력으로 임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면서 갈등이 심화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충돌은 더욱 격화되었고, 특히 산 로렌소가 로사리오에서 경기를 치를 때 더욱 긴장감이 밑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팬들은 여전히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배너나 깃발 등 상징물을 교환하는 전통을 지켰다. 결국 ‘Estadio Nuevo Gasómetro(누에보 가소메트로)’에서 열린 한 경기에서 두 바라브라바가 화해하면서 이 관계는 다시 정상화되었다. 심지어 두 구단의 공식 SNS에서도 양측 바라브라바의 우정을 공식화했다. 현재 이 우정은 다시 활력을 되찾았으며 최근 열린 경기에서 두 팀의 팬들이 함께 응원 행사를 진행했고, 로사리오 센트랄 바라브라바들이 산 로렌소의 홈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응원하는 모습들이 포착되고 있다.
● 우니온 데 산타페와의 우정
‘La Gloriosa Butteler’는 우니온 데 산타페의 바라브라바와도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이 관계는 산 로렌소의 오랜 라이벌 우라칸과 우니온 데 산타페의 최대 라이벌인 콜론 데 산타페 간의 역사적인 우정에 기반한다. 이 관계의 정확한 기원을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산 로렌소 & 우니온’ 각자의 라이벌인 ‘우라칸 & 콜론’의 동맹 관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관계 형성으로 추정된다. 2013년 토르네오 피날에서 산 로렌소는 우니온을 4:2로 격파하여 우니온의 강등을 확정 지었다. 경기 종료 후, 산 로렌소 인차들은 원정석에 있던 우니온 인차들과 팬들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박수를 보냈다. 이 같은 모습은 양측 간 위로와 격려, 인정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고, 이를 통해 두 팀의 바라브라바는 서로의 상징물을 교환하고, 홈구장에서 함께 응원을 펼치는 등 우호관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
● 크루제이루와의 우정 (브라질)
국제적인 차원에서, ‘La Gloriosa Butteler’는 브라질의 크루제이루 바라브라바와 굳건한 우정을 형성하고 있다. 이 관계는 크루제이루 바라브라바의 리더였던 ‘Davidson Bernardes(데이비슨 베르나르데스)’가 산 로렌소 클럽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그와 산 로렌소의 인연은 1998년 코파 메르코수르 준결승전이었다. 당시 원정을 떠난 베르나르데스는 처음으로 산 로렌소 경기장을 방문하였고, 비록 크루제이루가 탈락했지만 산 로렌소 팬들의 열정과 응원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아 이후 산 로렌소 팬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이 관계는 200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산 로렌소와 크루제이루가 같은 조에 속하면서 더욱 공고해졌다. 당시 크루제이루의 바라브라바는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 그룹 중 하나인 ‘Los de la Sur(로스 데 라 술)’ 그룹과 교류를 시작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팀 간의 경기는 일반적으로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원정 팬들과 경찰 간의 충돌이 잦은 만큼 이러한 우호적인 관계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크루제이루 팬들은 원정을 온 산 로렌소 팬들에게 따뜻한 환영을 보였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산 로렌소 팬들도 크루제이루의 팬들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했을 때 비슷한 환대를 제공하며 양측 간의 유대감을 더욱 강화했다.
● 우라칸과의 적대 관계
‘La Gloriosa Butteler’는 우라칸의 바라브라바인 ‘La Banda de la Quema(라 반다 데 라 퀘마)’와 라이벌 관계이다. 이 대립은 양 팀이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오랜 숙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두 팀 간의 경기는 종종 논란과 폭력적 충돌로 얼룩졌다. 이외에도 아르헨티나 축구의 5대 명문 클럽으로 불리는 팀들의 바라브라바와도 적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라이벌뿐만 아니라 여러 팀들과도 격렬한 대립을 이어오고 있다.

아래는 ‘La Gloriosa Butteler’와 적대 관계에 있는 주요 바라브라바 그룹들.
우라칸 : La Banda de la Quema
보카 주니어스 : La12
리버 플레이트 : Los Borrachos del Tablón
라싱 클럽 : La Guardia Imperial
인데펜디엔테 : La Barra del Rojo
벨레즈 사스필드 : La Pandilla de Liniers
뉴웰스 올드 보이즈 : Leprosos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 플라타 : Los Leales
콜론 데 산타페 : Los de Siempre
적대 관계에 있는 바라브라바와의 주요 사건

1990년, 봄보네라의 3층 스탠드에서 ‘La Gloriosa Butteler’와 ‘La12’는 투석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아래층에 있던 보카 주니어스의 연간 회원 ‘Saturnino Cabrera(사투르니노 카브레라)’가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경기 종료 후, La12는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몇몇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를 추격했다. 당시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의 리더였던 ‘El Poli(엘 폴리)’는 La12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았고, 경찰에게도 쫓기고 있었기 때문에 경기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보카 바라브라바는 경기장 밖에서 산 로렌소 팬들이 타고 온 4대의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는 곧 더 큰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 상황이었고 예상대로 양측 바라브라바, 팬들이 뒤엉켜 대규모 난투극을 벌여 추가 사망자와 부상자가 다수 나왔다.

1997년, 우라칸의 바라브라바 ‘La Banda de la Quema’가 ‘Nuevo Gasómetro(누에보 가소메트로)’ 경기장 정문이 위치한 ‘Fernández de la Cruz(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데 라 크루스)’ 대로를 따라 행진하면서 산 로렌소 팬들에게 접근했다. 당시 산 로렌소의 멤버들은 경기장 근처에서 아사도를 먹고 있었고, 이를 전해 듣자마자 무장을 한 채 맞서기 위해 이동했다. 결국 경기장 외곽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 우라칸 바라브라바가 산 로렌소 팬들을 몰아붙이는 상황에서 산 로렌소의 바라브라바는 총기를 사용해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우라칸 바라브라바 소속 ‘Ulises Fernández(울리세스 페르난데스)’가 사망했다.
같은 해, ‘La Gloriosa Butteler’ 소속 6명이 아르헨티나 마르 델 플라타의 ‘Punta Mogotes(푼타 모고테스)’ 해변을 방문했다. 이곳은 벨레즈 사스필드의 팬이자 당시 대통령 ‘Menem(메넴)’의 경호 책임자였던 ‘Armentano(아르멘타노)’가 소유한 장소였다. 해변에서 산 로렌소의 멤버들은 벨레즈 사스필드의 바라브라바 ‘ La Pandilla’의 멤버들과 마주쳤고, 이후 점점 더 많은 벨레즈 팬들이 몰려들어 양측 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의 나머지 멤버들은 근처 공터에서 축구를 하던 것을 멈추고 해변으로 이동했고, 결국 벨레즈의 또 다른 바라브라바 그룹 ‘El Fortín(엘 포르틴)’과 대면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칼을 비롯한 흉기가 동원되었으며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고, 23명이 체포됐다.
2002년, 산 로렌소의 바라브라바는 당시 우라칸의 바라브라바 그룹 ‘El Globo(엘 글로보)’를 찾기 위해 ‘Nueva Pompeya(누에바 폼페야)’로 향했으며 ‘Club Franja de Oro(클럽 프라하 데 오로)’ 근처에서 격렬한 충돌을 벌였다. 1년 후인 2003년에는 ‘La Gloriosa Butteler’ 멤버들이 ‘Boedo(보에도)’ 지역에서 우라칸의 바라브라바 멤버 ‘La José(라 호세)’와 마주쳤고, 즉시 그를 폭행했다.

2007년, 약 50명의 벨레즈 사스필드의 바라브라바 ‘La Pandilla(라 핀디야)’ 멤버들이 ‘José Amalfitani(호세 아말피타니)’ 경기장 남쪽 좌석 아래 통로를 지나갔다. 이들은 원정석과 남쪽 좌석을 구분하는 철망 근처까지 이동한 후, 철망을 흔들고 돌과 여러 물체를 산 로렌소 팬들에게 던지며 공격했다. 이에 산 로렌소 팬들도 철망을 부수려 하며 맞대응했지만 이후 경찰은 기마병 2명과 다수의 병력을 투입해 이들을 진압했다. 경찰 병력이 입장하면서 충돌은 더욱 격렬해졌고, 이 과정에서 산 로렌소의 한 팬이 갈비뼈 3개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으며 다수가 최루가스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1년 후인 2008년, 산 로렌소의 ‘Zona Norte(조나 노르테)’ 지역 팬들이 탄 버스가 벨레즈 경기장 근처에서 정차했고, 벨레즈 팬들과 충돌하게 된다. 이후 ‘Juan B. Justo(후안 B. 후스토)’ 거리에서 양측 간의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벨레즈의 인차였던 ‘Emanuel Álvarez(에마누엘 알바레스)’라는 젊은 청년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내고 만다. 같은 해, ‘La Gloriosa Butteler’는 ‘Plaza Butteler(부텔레르 광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우라칸 바라브라바 ‘La José C. Paz(라 호세 C. 파스)’와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우라칸 바라브라바 소속 ‘Rodrigo “Cafú” Silvera(로드리고 “카푸” 실베라)’가 총상을 입어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며칠 뒤 사망했다.
전 세계 축구 응원 문화를 선도하는 La Gloriosa Butteler
산 로렌소의 인차들은 아르헨티나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팬들이다. 이들의 창의적인 응원가 제작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 로렌소 인차들이 만든 응원가는 아르헨티나 축구판 전체로 퍼져나갔고, 일부는 다른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제3대륙으로도 널리 펴졌다.
가장 대표적인 응원가는 바로 푸에르토리코의 가수이자 전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Luis Fonsi(루이스 폰시)’의 ‘Despacito(데스파시토)’이다. 이는 산 로렌소 경기장에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유튜브를 통해 영상이 확산되면서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원곡자인 루이스 폰시 또한 산 로렌소 인차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산 로렌소 팬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Despacito의 멜로디를 응원가로 만들어 팀을 응원한 최초의 팬들입니다. 스포츠 팬이 되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제 노래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젠가 경기를 직접 보러 가고 싶습니다. 아주 멋져요 Vamos San Lorenzo!” – 루이스 폰시 –
이러한 국제적인 유행에 동조해 아시아 최초로 대한민국의 수원삼성 블루윙즈 서포터즈가 데스파시토를 응원가로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경기장에서 불리며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는 AS로마, 살레르리타나, 카레레세칼초 등 울트라스 문화의 근원지 이탈리아의 여러 팀과 전 유럽, 기타 대륙의 열정적인 축구 팬들로부터 응원가로 사용된다.
‘La Gloriosa Butteler’는 독창적인 응원가 제작 능력으로 유명하며, 과거부터 현재를 조명하는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경기장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만들고 동시에 상대팀을 조롱하며, 팀의 정신을 표현하는 강렬한 메시지를 담은 응원을 펼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창작 과정이 마치 ‘시인이 시를 쓰는 것과 같다’라고 하여, 이들은 ‘Los poetas del tablón(스탠드의 시인들)’이라고 불린다. 응원하는 팀에 상관없이, 아래와 같은 이유를 들어 다른 클럽의 팬들도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산 로렌소 인차들이 가장 창의적인 응원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에 동의한다.
● 최신 유행곡에 독창적인 가사를 붙이는 능력
● 상대팀 팬들의 조롱에 즉각적이고 기발한 응답을 하는 순발력
● 사회 및 정치적 사건과 인물을 축구와 연결하는 재치
● 단순하고 때로는 거친 가사 속에서도 팀 색깔에 대한 낭만과 충성심 표현
이 독특한 문화는 다른 이들이 검열하는 여러 요소들을 거침없이 사용한다. 술과 마약, 성적 일탈에 관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며, 상대 팀을 도발하기 위해 인종차별과 욕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떤 이들은 ‘저급한 예술’이라고 비난할 것이며, 어떤 사람들은 ‘솔직함’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이를 ‘범죄 행위’라고 비판할 수 있으며, 다른 이들은 ‘축구 문화의 일부’라고 여길 것이다. 정확한 것은 산 로렌소 인차들은 이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산 로렌소 응원가 : 과거와 현재까지 역사 요약
아주 오래전, 산 로렌소의 옛 경기장 ‘El Gasómetro(엘 가소메트로)’에서 응원 문화를 이끌던 그룹은 ‘La Barra de la Goma’이다. 이들은 산 로렌소의 경기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처음 시도한 그룹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1970년대 ‘Cacho(카초)’와 입 천장에 산 로렌소 엠블럼을 문신으로 새긴 ‘Milanesa(밀라네사)’라는 인물이 등장해 응원 문화를 이끌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산 로렌소 인차 문화의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Poli(폴리)’라는 인물이 등장했고, 이 시점 산 로렌소 인차 문화는 전반적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였다.
1981년, 또 다른 리더 ‘Madera(마데라)’가 등장한다. 그는 산 로렌소의 공식 인차 그룹명을 ‘La Gloriosa’로 결정했다. 당시 산 로렌소는 하부리그로 강등되었는데 이후에도 팬들은 변함없는 충성을 맹세하며 다양한 응원가 제작에 임했다. 대표적으로 “Ciclón, Ciclón, tan sólo es un año, te vamos a seguir, a donde quieras ir(시클론, 시클론, 단 1년일 뿐, 우리는 네가 어디를 가든 따라갈 거야)”이라는 가사의 응원가가 있다. 1982년, 2부 리그에 머무는 기간이 지속되었을 때 이들은 “Vamos mi San Lorenzo, y ponga huevo que tenemos que ganar…(가자, 나의 산 로렌소, 정신 차리고 이겨야 해…)”이라는 가사의 응원가를 만들었다.
가장 중독성이 강하고 인상적인 응원가는 ‘Marcha de Malvinas(말비나스 행진곡)’ 개사 버전, 그리고 “oooooh, es un sentimiento…(오~ 이건 내 감정이야)”이다. 오늘날 이 응원가들은 약간의 변화를 겪었고, 팬들은 티셔츠를 벗어 휘두르며 응원한다. 또한 아르헨티나 전역의 경기장에서 울려 퍼지며, 심지어 바다 건너 스페인의 여러 경기장에서도 불리고 있다. 아울러 ‘Los Abuelos de la Nada(아부엘로스 데 라 나다)’의 ‘Cosas Mías(코사 미아스)’를 개사하여 라이벌 우라칸을 조롱하는 노래 역시 유명하다.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는 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보카를 조롱하는 노래도 있는데, 1980년대, 보카 주니어스 La12는 “Somos la mitad más uno, somos el pueblo y el carnaval(우리는 국민의 반 이상이야, 우리가 진정한 아르헨티나 민족이고 축제이다)”라는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에 대해 산 로렌소는 “Se dicen la mitad más uno, son de Bolivia y Paraguay…(그들의 반 이상이 말하지, 볼리비아와 파라과이 출신이라고…)”라는 가사로 맞받아쳤다. 또한 “Pongan la reja para separar, mitad Bolivia, mitad Paraguay…(철장을 세워서 분리해라, 한쪽은 볼리비아, 다른 한쪽은 파라과이”, “Tomala vos, damela a mí, cantá un poquito aunque sea en guaraní.(조금이라도 과라니어로 노래해 봐)”와 같은 다소 인종차별적인 가사로 보카 바라브라바를 조롱했다.
산 로렌소 바라브라바의 핵심 멤버들은 “왜 산 로렌소 인차들은 응원가 창작에 강한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이건 축구 문화의 일부이다. 우리는 노래를 만들어서 응원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든다. 또한 노래를 창작하는 것을 하나의 직업처럼 생각한다. 노래는 폭력을 거부하고, 축구 문화(folclore·포클로레)를 즐기자는 뜻이다.”
한편, 프랑스 축구 클럽 릴OSC은 스페인어로 된 공식 계정을 통해 산 로렌소의 ‘La Gloriosa Butteler’에게 경의를 표했다. “우리가 동일한 팀 컬러를 사용하다는 것만큼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창의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산 로렌소 팬들의 열정과 독창성이 국경을 넘어 유럽 클럽인 릴과 같은 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이다.

‘La Gloriosa Butteler’의 하부조직으로 응원가 제작 및 기획을 수행하는 ‘Los Cuervos de Boedo’는 ‘Enrique Iglesias(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Bailando’ 멜로디를 기반으로 또 다른 응원가를 만들어 이 역시 큰 화제가 되었다. 이들은 약 70곡이 넘는 응원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 경기 트럼펫과 베이스 드럼을 이용해 팀을 응원한다.
그중, 미국 밴드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CCR(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Bad Moon Rising’이 있다. 이 노래는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Decime qué se siente(니 기분이 어떤지 말해봐)”라는 가사로 개사되어 불렸다. 이는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팬들이 브라질을 도발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전에 축구장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차 역시 산 로렌소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다수 팀들이 조롱과 도발의 의미로 이 노래를 불렀던 반면, 산 로렌소는 팀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보카 주니어스, 리버 플레이트 등 다양한 인차 그룹들이 이 응원가를 받아들여 약간의 변형/개사하여 사용하고 있다. 수원삼성에서는 FC서울을 조롱하는 안티콜인 “눕패가~ 大자로 깔아질 때~”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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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790523702
※ 최초 작성일 : 2025. 0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