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싱 클럽은 경기장 규모만큼이나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 구단은 8만 명 이상의 ‘연간회원(Socio)’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0년 아르헨티나 일간지 ‘라 나시오(La Nación)’에 따르면 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역의 중산층 팬층이 가장 두터운 것으로 조사됐다. 라싱 클럽은 스포츠를 넘어 어마어마한 문화적 파급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외 여러 유명인들이 이 팀을 응원하고 있고, 대규모 집단 연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1915년 8월 1일, 리버 플레이트 원정 경기를 3:0 대승으로 마친 라싱 클럽의 팬들은 라 보카에서 홈인 아베야네다까지 돌아가는 길에 “라 아카데미아, 라 아카데미아!(La Academia, La Academia!)”를 외쳤다. 그렇게 ‘라 아카데미아(La Academia)’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고, 이는 당시 라싱 클럽이 보여준 세련된 경기 스타일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수식어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메가 클럽들은 바라브라바의 규모도 남다르다.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라 과르디아 임페리알)’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 그룹이다. 황실 근위대는 ‘N.°1(Hinchada Número Uno)’를 비롯하여 1950년대 결성된 주요 바라브라바 그룹 모두가 연대한 거대한 인차 집단이다.
1990년대에는 황실 근위대 외에도 영국 밴드 롤링 스톤즈의 이름에서 따온 ‘Racing Stones(라싱 스톤즈)’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광역권의 95번 버스 노선에서 유래한 ‘La Barra del 95(라 바라 델 95)’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이후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했던 ‘Dock Sud(독 수드)’ 세력이 사실상 황실 근위대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전체 바라브라바 리딩 그룹이 된다. 이들은 라싱 클럽의 홈구장 ‘엘 실린드로(El Cilindro)’의 남쪽 스탠드를 중심으로 응원 활동을 펼친다.


당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광역권 서부 지역 그룹의 핵심 인물이었던 ‘다리오 카리아티(Darío Cariatti)’는 ‘La Guardia Imperial’과 ‘Racing Stones’의 로고 저작권을 공식 등록했고, 이후 구단의 공식 스토어인 ‘로카데미아(Locademia)’를 통해 자신들의 상품을 판매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더불어 이들은 관중석의 거의 반을 덮어버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통천을 보유하고 있는 팬들로도 유명하다.

한편, 라싱 클럽 바라브라바 내부 분위기는 최근 몇 년간 남쪽 스탠드의 주도권을 다룬 갈등과 잦은 충돌로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기존의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라 과르디아 임페리알)’를 장악했던 세력과 새로운 세력 ‘Los Pibes de Racing(라싱 청년단·로스 피베 데 라싱)’은 수년간 경쟁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러한 내부 분열은 클럽의 응원 문화와 지역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근위대에 필적한 충성심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는 1940년대 활동했던 아르헨티나 언론인 ‘루이스 마리아 알바몬테(Luis María Albamonte)’가 라싱의 인차들을 가리킨 데서 비롯됐다. 그는 라싱 클럽의 인차들이 보여준 충성심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 근위대에 비유하며, 끈질기고 열정적인 인차들로 묘사했다. 다만,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는 주로 195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했고,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라는 그룹명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것은 한참 뒤인 1983년이었다. 그 이전까지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는 ‘La Barra de Bandera(깃발 부대)’라고 불렸다.


1990년대 후반, 황실 근위대는 라싱 클럽을 응원하는 다른 일반 팬들과 함께 단결하여, 부에노스 아이레스 ‘빌라 델 파르케(Villa del Parque)’ 지역에 위치한 구단 본부가 법원 경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 나섰다. 또한 이들은 경기가 없는 날에도 홈구장 ‘엘 실린드로(El Cilindro)’에 대규모 인파를 모으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표적으로 1999년 3월 7일 대규모 집결이 있다. 전설적인 순간 중 하나는 토너먼트 대회 아페르투라 2001 시즌 최종전에서 경기장 2개 규모를 가득 채울 만큼 팬들을 결집한 사건이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가장 최근인 2024년에는 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전에서 라싱 클럽이 크루제이루를 상대로 승리했을 때 수천 명의 인차들이 원정 길에 올랐으며, 경기가 열린 파라과이 ‘아순시온(Asunción)’과 본국의 연고지인 ‘아베야네다(Avellaneda)’에서 동시에 축하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현재 황실 근위대는 2002년부터 이어진 바라브라바 내부 주도권을 다룬 경쟁으로 혼란한 상황이다. 기존 바라브라바들은 오랫동안 ‘독 수드(Dock Sod)’지역을 기반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파벌이다. 그 도전자는 바로 빈민가 ‘빌라 코리나(Villa Corina)’를 기반으로 한 ‘Los Pibes de Racing(라싱 청년단)’이다.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 주도권을 둘러싼 내부 분열, 주요 핵심 세력
1958년, 라싱 클럽의 첫 번째 바라브라바 그룹 ‘La Barra de Bandera’가 창설되었다. 주요 구성원은 ‘갈레고 티톨로(Gallego Títolo)’, ‘앙헬 자자 쿠파솔로(Ángel Zaza Cupasolo)’, ‘차카리타(Chacarita)’, ‘살바도르 “세보야” 벨루시(Salvador “Cebolla” Bellusci)’ 등으로, ‘라싱 메거진(Revista Racing)’으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세월이 흘러 1983년 10월 12일, 에스투디안테스와의 경기에서 ‘La Guardia Imperial’이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가 처음 등장하며 바라브라바의 공식 그룹명으로 정착되었다.
1980년대 무렵, 아르헨티나 바라브라바 그룹들은 ‘맨손 싸움’을 원칙으로 하는 ‘정통적인 방식의 충돌’을 유지했고 그 중심에 라싱 클럽의 ‘오라시오(Horacio “Cacho de Ciudadela”)’가 이 원칙을 주도했다. 1997년, 그룹원 수가 200명 이상으로 증가하며 조직이 급성장한다. 그 안에는 가족 단위 서브 그룹도 존재했는데, 대표적으로 ‘반다 데 로스 루소(Banda de los Rulos)’가 있다.
2002년, 지역 라이벌인 인데펜디엔테의 인차 ‘구스타보 리베로(Gustavo Rivero)’를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들이 살해한 사건이 발생됐다. 이 사건으로 당시 리더였던 ‘엑토르 하이메 에레디아(Héctor Jaime Heredia)’와 여러 조직원들이 체포되었고, 이를 계기로 황실 근위대 내부 분열이 발생하며 조직이 약화되었다.
● Dock Sud

2004년, ‘독 수드(Dock Sud)’ 파벌이 황실 근위대의 권력을 잡는다. 핵심 인물로는 ‘라울 “엘 우에보” 에스코바르(Raúl “El Huevo” Escobar)’, ‘넬슨 “엘 파라과요” 로페테귀(Nelson “El Paraguayo” Lopetegui)’, ‘넬슨 “엘 포요” 도메네(Nelson “El Pollo” Dómene)’이다. 이들은 노조 및 정치권(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과 연계하였으며, ‘독 수드(Dock Sud)’ 지역과 ‘산 마르틴 데 부르사코(San Martín de Burzaco)’의 바라브라바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2008년, 에스코바르와 도메네가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분열한다. 당시 도메네는 노조 및 타 바라브라바 조직의 지원을 받아 독립적인 파벌을 형성했다. 그리고 2016년 ‘빌라 코리나(Villa Corina)’ 파벌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공식 바라브라바 그룹이 소유한 깃발, 배너 등 응원 용품을 운반하던 차량을 급습하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시점 독 수드는 경기장 내 영향력을 유지하긴 했으나 당국의 강력한 조사 및 규제 조치로 압박을 받게 된다.
2017년에 들어서며 독 수드 파벌의 재편이 이루어진다. 핵심 인물이었던 에스코바르가 출입 금지 처분을 받게 되었고, 이후 ‘호세 레페토(José Repetto)’와 ‘파쿤도 레페토(Facundo Repetto)’라는 인물이 새로운 리더로 등장했다. 이들은 일부 그룹을 제거하며 규모를 200명으로 축소했다. 한편, 2019년 바라브라바의 리더였던 ‘엑토르 오테로(Héctor Otero)’가 한 언론인을 위협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일로 인해 몇몇 리더진들이 가택연금 처분을 받게 되어 조직이 더욱 약화되었다.
● Los Pibes de Racing

2021년 7월 24일, ‘라싱 청년단(Los Pibes de Racing)’이 공식 바라브라바 그룹을 장악한다. 이들은 과거 축출된 인차 그룹과 ‘빌라 코리나(Villa Corina)’ 파벌의 연합 세력으로, 정치적 지원을 등에 업고 독 수드 파벌과 내부 싸움을 지속했다. 하지만 라싱 청년단 내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전 리더였던 ‘레안드로 파레데스(Leandro Paredes)’가 데포르티보 칼리 팬들과 충돌로 구금된 상황에서 임시 리더직을 맡았던 ‘마티아스 “카라 데 파티” 알폰소(Matías “Cara de Paty” Alfonzo)’가 그가 석방되었음에도 권력을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3년 벨그라노와의 경기 전, 알폰소 파벌이 기존의 라싱 청년단 멤버들을 기습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경기장 내 다른 팬들의 반대로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그 상황이 틱톡을 통해 웹상에 공개되어 알폰소 세력은 많은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된다. 이후 당시 파레데스를 지지했던 ‘도메네(Dómene)’가 리더로 복귀했다. 2024년 현재 상황은 그렇게 총 3개의 세력이 황실 근위대 내부 권력 다툼에 참여하고 있다. 한 곳은 바로 기존의 ‘독 수드(Dock Sud)’, 또 하나는 알폰소의 세력인 ‘라 반다 데 마티(La Banda de Mati)’, 마지막으로 새롭게 등장한 ‘라 파밀리아 데 라싱(La Familia de Racing)’이다.
● Racing Stones


1990년 창설된 이 그룹은 비교적 폭력적 활동이 적은 조직이다. 초기 구성원들은 ‘롤링 가스(Rolingas)’, 즉 영국 록밴드 롤링 스톤즈의 팬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주로 홈구장 엘 실린드로에서 멀리 거주하는 팬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며, 그들의 경기 관람을 위한 이동을 지원하는 등 활동을 보였다. 90년대 당시 라싱 스톤즈는 경기 전 응원 행사와 팬 모임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 La Barra del 95

이 그룹은 1991년, 라싱 스톤즈에서 분리된 일부 구성원들이 조직한 그룹이다. 그룹명의 유래는 이들이 주로 홈구장 엘 실린드로에 갈 때 이용하던 교통수단인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95번 버스 노선’에서 따왔다. 이들은 1992년 수페르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전에서 7대의 버스를 팬들로 가득 채우는 대규모 원정 응원을 조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대규모 이동을 조직하는 데 있어 그룹 관리가 어려워졌고, 현재는 일부 구성원들이 개별적으로 경기장에서 모이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다.
과거 몇 가지 대표적인 폭력 전과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의 기원은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창기 이들은 라이벌 팀의 깃발과 상징물을 훔치는 행위로 악명을 떨쳤다. 1958년, 그들은 산 로렌소 경기장에서 소요 사태를 일으켰다는 혐의로 라싱 클럽이 홈구장에서의 경기 개최 자격을 상실하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1967년에는 우라칸 인차들이 사용했던 우산을 훔치기도 했는데, 그 일로 인해 우라칸과 라싱의 팬들은 난투극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라싱 클럽의 인차인 ‘엑토르 수토(Héctor Souto)’가 사망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와 보카 주니어스의 바라브라바 ‘La12(라 도세)’ 사이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1983년 8월, 라 봄보네라에서 두 팀 간의 경기가 이루어지던 중 양측 팬들 간의 심한 난투극이 벌어졌으며 그 과정에서 라싱 클럽의 인차였던 ‘로베르토 바실레(Roberto Basile)’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망했다. 이 일로 인해 양측은 서로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을 품게 되었고, 황실 근위대는 훗날 복수를 다짐하며 오늘날까지 보카 바라브라바와 수많은 싸움을 벌이고 있다.
1983년 12월, 라싱 클럽이 충격의 2부 리그 강등을 맞이했다. 이로 인해 경기장 내에서는 양측 팬과 경찰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오라시오 “카초 데 시우다델라” 발도(Horacio “Cacho de Ciudadela” Baldo)’라는 바라브라바 멤버가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이후 2부 리그에 머무르던 기간, 라싱 바라브라바는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라 플라타(Gimnasia y Esgrima La Plata)’의 바라브라바와 동맹을 맺었다. 이는 공통의 적인 라이벌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 플라타((Estudiantes de La Plata)’에 대한 적대감에 따른 결속이었다.
1985년 12월, 라싱 클럽이 드디어 1부 리그에 복귀했다. 하지만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보카의 바라브라바들이 라싱 클럽의 인차인 ‘다니엘 수토(Daniel Souto)’를 살해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바라브라바 간의 긴장이 더욱 격화되었다. 이후 1988년, 엘 실린드로에서 열린 보카와의 홈경기에서 다시 한번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라싱의 한 팬이 보카 주니어스의 골키퍼인 ‘카를로스 나바로 몬토야(Carlos Navarro Montoya)’를 향해 폭발물을 투척했다. 동시에 황실 근위대는 보카를 향하 도발적인 구호를 외쳤고, 이러한 소동으로 경기는 즉시 중단되었으며, 논란 끝에 보카 주니어스가 승점을 가져가게 되었다.
이후 황실 근위대는 La12와 자주 충돌하였으며 1990년, 몇몇 그룹원들이 보카의 인차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긴 했지만 이와 관련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황실 근위대는 오랫동안 La12와 대립해왔지만, 그들의 주요 라이벌은 역시나 지역 더비를 이루고 있는 인데펜디엔테의 바라브라바 그룹 ‘La Barra del Rojo(붉은 군단)’이다. 과거 양측은 일정한 상호 존중을 보이며 ‘맨손 싸움’이라는 암묵적 룰을 갖고서 대립했다. 하지만 1997년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로부터 ‘왈도 로드리게스(Waldo Rodriguez)’가 살해되면서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고 만다.
2002년, 인데펜디엔테의 과거 홈구장 ‘라 도블레 비세라(La Doble Visera)’에서 열린 ‘아베야네다 클라시코(Clásico de Avellaneda)’를 앞두고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경기장 내 관중들의 쉼터이자 바베큐파티 장소로 마련된 ‘킨초(Quincho)’에는 황실 근위대의 리더들이 모여있었다. 그런데 이들 모임을 향해 총격이 가해졌고, 이에 분노한 황실 근위대 바라브라바들은 인데펜디엔테 경기장 인근 코르데로 거리를 급습했고, 그 결과로 인데펜디엔테 인차였던 ‘구스타보 리베로(Gustavo Rivero)’가 치명적인 공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두 팀 간의 폭력 사태는 극도로 심화되었고, 오늘날 아베야네다 클라시코는 ‘고위험 경기’로 분류되고 있다.
라싱 바라브라바 내부 갈등의 중심인물들


‘La Guardia Imperial(황실 근위대)’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2명이 있다. ‘레안드로 파레데스(Leandro Paredes)’는 이전 황실 근위대의 리더로, 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여러 법적 문제로 인해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또 한 명인 ‘엔리케 룰렛(Enrique Rulet)’은 파레데스와 함께 그룹을 이끌었던 주요 인물이다. 이외에도 황실 근위대를 이끌고 있는 핵심 인물은 여러 명으로, 대부분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일부 멤버의 경우 출입 금지 조치로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Los Pibes de Racing(라싱 청년단)’에는 현재 3명의 인물이 경찰, 사법부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그중 ‘마르틴 라미레스(Martín Ramírez)’가 라싱 청년단의 리더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룹의 조직과 운영을 주도하며,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다음으로 그룹 내에서 두드러진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전략적 결정과 대외 활동을 담당하는 ‘마티아스 알폰소(Matías Alfonzo)’, 그룹의 핵심 멤버이자 주로 응원 활동과 조직 내 다양한 운영을 책임지는 ‘다리오 바르솔라(Darío Barzola)’가 있다.
2024년부터 현재까지 라싱 바라브라바 상황
최근에는 주요 리더들의 체포와 법적 문제로 인해 조직의 재편성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리더십 하에서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파벌 간의 긴장감이 존재하며, 이러한 상황은 클럽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라싱 클럽의 바라브라바는 내부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된 응원 문화를 재정립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으며, 이러한 변화의 결과는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번외 : 라싱 바라브라바와 우호 관계 or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외 클럽들
● 우호 관계
1. 힘나시아 이 에스그리마 라 플라타(Gimnasia y Esgrima La Plata)
라싱 클럽이 2부 리그로 강등되었을 때 맺어진 동맹이다. 그러나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의 리더인 ‘파블로 “베보테” 알바레스(Pablo “Bebote” Álvarez)’가 힘나시아의 조직에 개입하면서 관계가 깨졌다.
2. 알미란테 브라운(Almirante Brown)
라싱과 알미란테 양 팀의 바라브라바 리더들이 같은 동네에서 자라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3. 레알 라싱 클럽 데 산탄데르(Real Racing Club de Santander, 스페인)
팀명을 비롯하여 역사적인 상황(재정 위기 및 부침 등)이 유사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우호 관계이다.
4. 그레미우(Gremio, 브라질)
브라질 최초의 바라브라바 조직인 ‘제랄 두 그레미우(Geral de Grêmio)’와 강한 유대 관계를 유지 중이다.
5. 다누비오(Danubio FC, 우루과이)와 라싱 스톤즈(Racing Stones)
다누비오의 바라브라바 그룹 ‘다누 스톤즈(Danu Stones)’는 ‘라싱 스톤즈’와 친분 관계에 있다.
● 라이벌 관계
1. 인데펜디엔테(Independiente)
‘아베야네다 클라시코(Clásico de Avellaneda)’를 치르는 지역 앙숙이며, 인데펜디엔테의 바라브라바 그룹 ‘라 바라 델 로호(La Barra del Rojo·붉은 군단)’와 지속적인 충돌을 벌이고 있다.
2.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
보카의 바라브라바 그룹 La12와도 오랜 대립 관계에 있다. 이들의 관계는 1983년, 라싱의 인차가 보카 바라브라바에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갈등이 심화되었다.
3. 리버 플레이트(River Plate)
아르헨티나 5대 명문 클럽 간의 경쟁 구도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라이벌 관계이다.
4. 산 로렌소(San Lorenzo)
1958년, 산 로렌소 경기장에서 라싱의 인차들이 폭력 사태를 일으켜 라싱 클럽 구단이 홈경기 정지 처분을 받은 사건으로 관계가 악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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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774809150
※ 최초 작성일 : 2025. 0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