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창단된 ‘US 리보르노 1915’ 클럽은 이탈리아 사회주의의 태동이 이루어진 도시인 리보르노를 기반으로 한다. 이 클럽은 도시와 지지층 자체가 사회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클럽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창당한 것도 리보르노에서 열린 ‘이탈리아 사회당 전당대회’가 계기가 되었다. 이 클럽은 오랜 기간 하부리그에 있으면서, 한때 반세기 만에 1부 리그 승격을 하기도 했지만 승격과 강등을 반복했고, 2021-22 시즌 팀을 재창단해 5부 리그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리보르노는 이탈리아 내 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1부 리그의 강호 SS 라치오를 증오하며, 그 밖에 우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클럽들과도 대체로 사이가 나쁘다. 반대로, 좌파 성향을 가지고 있는 국내외 클럽들과 친분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중 일부 서포터즈 단체 간에는 공식/비공식 동맹 관계를 이루고 있는 클럽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스코틀랜드의 셀틱 FC, 키프로스의 AC 오모니아, 벨기에의 스탕다르 리에주, 이스라엘의 하포엘 텔아비브 FC, 독일의 FC 장크트 파울리, 그리스의 AEK 아테네가 있다.

‘붉은 별(Red Star)’이나 ‘낫과 망치(Hammer and Sickle)’ 같은 공산주의 상징은 리보르노 울트라스 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던 모티브였다. 사회주의 아이콘 ‘체 게바라(Che Guevara)’ 이미지가 깃발과 머플러, 티셔츠에 그려져 있으며, 구소련 지도자였던 ‘요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의 생일을 기념하는 배너가 ‘꾸르바 노드(Curva Nord·북쪽 응원석)’에 펼쳐진 적도 있다.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 같은 세계적인 혁명가들로 인해 유명해진 녹색의 게릴라 스타일 군복 재킷과 군용 모자 또한 자주 착용되며, ‘반디에라 로사(Bandiera Rossa·붉은 깃발)’와 ‘벨라 차오(Bella Ciao)’ 같은 공산주의 찬가를 응원가로 사용하는 모습은 리보르노 팬들의 정치적 성향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좌파 정체성은 ‘울트라스(Ultras)’가 보다 소외된 이들과의 연대를 보여주려는 움직임으로도 이어진다. 과거에는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거는 모습이 있었으며, 그 모습은 특히 이스라엘 팀 ‘마카비 하이파(Maccabi Haifa)’와의 UEFA컵 경기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 운동과 ‘IRA(아일랜드 공화국 군대)’에 대한 동조 역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표현된 바 있다. 홈구장 ‘아르만도 피키(Armando Picchi)’는 이러한 활동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2009년, 이탈리아 ‘라퀼라(L’Aquila)’ 지진 참사와 이듬해 아이티 지진 피해를 돕기 위한 모금 활동이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1999년, 그 유명한 ‘브리가테 아우토노메 리보르네세(Brigate Autonome Livornese·BAL)’가 결성되기 전까지 리보르노의 꾸르바는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조직적인 응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마젠타(Magenta)’, ‘페다인(Fedayn)’, ‘스반다티(Sbandati)’, ‘그루포 아우토노모(Gruppo Autonomo)’ 등의 그룹들이 있었다. 이 네 그룹이 통합되면서 ‘BAL’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들은 리보르노 응원 문화에 체계와 일관성을 가져다주었으며, 그 근간에는 좌파 이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BAL은 1999년 초, 기존의 모든 그룹을 해산하고 힘을 합쳐 의사결정권을 중앙 집중화하자는 다소 갈등이 있던 결정 끝에 공식적으로 탄생한 리보르노의 울트라스 그룹이다. 그러나 실제로 BAL을 형성한 각 그룹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을 구분 짓는 유일한 요소는 단지 태어난 동네나 평소 어울리던 친구들에 따른 선택뿐이었다.
“리보르노 사람 100명을 5개의 그룹으로 나누면, 5가지 서로 다른 입장이 나올 뿐 ‘집단적인’ 결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모두 같은 배에 태우면, 비록 며칠간의 논쟁 끝에야 가능하겠지만, 하나로 통일된 결정과 강한 소속감을 얻게 될 것이다.”

BAL을 결성했던 세대가 꾸르바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던 1990-91 시즌 당시, 그곳은 완전한 혼돈 상태, 말 그대로 절망적인 무정부 상태였다. 세리에C에서 30년의 세월과 세 차례의 파산은 극도로 기형적인 상황을 만들어냈고, 그 안에는 어떤 기준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른바 ‘구세대’는 이미 지쳐 있었고, 어떤 이들은 아예 포기해버렸으며, 또 어떤 이들은 완전히 무너져버렸고, 나머지 소수만이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이는 상황이었다.


그중 일부 구세대 인사들은 다시 관중석으로 돌아와 BAL에 합류했다. 반면, ‘울트라스 76(Ultras 76)’이라는 그룹은 BAL에 합류하기를 거부했고, 엉덩이를 제대로 걷어차인 채 남쪽 스탠드로 쫓겨났다가, 결국 그곳에서도 쫓겨나고 말았다. 수년간 BAL을 지지한 유일한 그룹은 ‘노스 카오스(North Kaos)’였다. 꾸르바에서 그들은 우익 성향의 그룹이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음에는 누구나 이렇게 말했다. “모두 같은 그룹에 함께 있다고? 오래 못 간다…” 그러나 정치적 신념은 BAL이라는 그룹에게 전부였다. 그것은 울트라스 환경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또 이탈리아 사회가 축구에 부여하는 관심에서 비롯된 이점들을 활용하면서, 그룹에 의식적인 정체성과 방향성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아래 인용문은 2003년 11월, 온라인 잡지 ‘Senza Censura’가 ‘BAL(Brigate Autonome Livornese·브리가테 아우토노메 리보르네세)’의 리더들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BAL 시절, 리보르노 경기가 있는 날이면 꼬레오그라피가 훨씬 더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 체 게바라와 붉은 별이 그려진 깃발과 배너 외에도, BAL의 지도부는 꾸르바 노드 전체를 아우르는 다양한 꼬레오그라피를 기획했다. 2004년, 55년 만에 세리에A로 승격을 이룬 것을 기념해 연출한 꼬레오그라피가 유명하다. 당시 꾸르바 노드 전체가 붉은 카드를 들어 올렸고, 스탠드 앞에서 뒤까지 펼쳐지는 대형 이미지가 중심을 차지했다. 거기에는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낫과 망치가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꾸르바 아래에는 길게 펼쳐진 배너가 있었는데, “긴 밤이 사라지고 있다… 지평선 너머, 우리의 태양이 떠오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배너는 클럽이 오랜 기간 1부 리그에서 뛰지 못한 ‘긴 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태양은 클럽과 팬들에게 새로운 날과 새로운 지평을 의미했다. 또한 이 이미지에는 공산주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낫과 망치라는 명확한 이미지 외에도,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선택은 매우 의미심장했다. 이는 공산주의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미지로, 공산주의가 도래했을 때 노동자들에게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개념을 상징한다. 특히 이를 기획한 자들은 빨간색으로 칠해진 “우리의”라는 단어를 추가해 리보르노의 정체성을 강조했다.
BAL은 수년간 수많은 ‘다스포(Daspo·출입 금지 명령)’ 조치를 받았는데, 단일 시즌에만 최대 500건의 다스포 조치에 불이익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2005년, BAL이 공식적으로 해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마지막 저항까지”라는 배너는 BAL이 자진 해산한 이후에도 2007년까지 사용되었다.

1년 뒤인 2008년, 꾸르바 노드의 주도권은 극좌 반파시트 성향과 경찰에 대한 강한 반감이 기반이 된 반권위주의적 이념을 갖고 있던 그룹 ‘비시토르스 1312(Visitors 1312)’가 되었다. 그들과 함께 ’17 Febbraio 1915’와 ‘Vecchia Guardia’ 등 좌파 성향의 또 다른 그룹들도 결성되었으며, 이들은 서로 꾸르바 노드 내 주도권을 공유하며 종종 공동성명을 발표하거나 연대 응원을 조직했다.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는 리보르노 팬들과 울트라스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정체성이다. 이는 그들이 이탈리아의 다른 클럽들과 자신들을 구별짓게 해주는 요소이며, 그들의 역사와 더 넓은 국가적 정치 및 사회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후 이탈리아에서 ‘기독교 민주당’의 지배적인 정치적 입지와 1960년대의 정치적 혼란은 일상생활의 정치화를 초래했다.
울트라스 하위문화는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세계화의 영향 속에서 지역 정체성이 다시 강조되었고, 축구는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다시 한번 기능하게 되었다. 리보르노는 자신만의 독특한 지역사를 바탕으로 울트라스 정치문화 속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립해 나갔다.
※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23530699
※ 최초 작성일 : 2025. 04.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