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cos futbol

나르코 풋볼,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과 축구

콜롬비아라는 나라는 아마도 두 가지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축구와 코카인. 이 나라의 코카인 생산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마약 카르텔들을 탄생시켰고,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유명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와 같은 이름도 낳았다.

한편 축구 경기장 위에서는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íguez)’, ‘카를로스 발데라마(Carlos Valderrama)’, ‘라다멜 팔카오(Radamel Falcao)’와 같은 세계적인 스타들을 배출했으며, 1995년 웸블리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레네 이기타(René Higuita)’ 골키퍼가 선보인 스콜피온 킥처럼, 팬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명장면들도 만들어냈다.

나르코 풋볼(Narco Football)

이 마약 카르텔들의 권력과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1980년대 초가 되자 콜롬비아는 마약 폭력과 마약 자금으로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의 흐름을 정확히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보고에 따르면 당시 콜롬비아는 전 세계 코카인 공급량의 약 70%를 생산하고 있었다.

이처럼 막대한 부를 쥔 마약 카르텔들은 이 돈을 세탁할 합법적인 사업체가 필요했고, 많은 카르텔들이 콜롬비아의 축구 클럽들을 자금 세탁의 수단으로 삼기에 적합한 대상으로 보았다. 축구 클럽은 돈을 정당하게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쉬운 통로였던 것이다.

당시 ‘나르코 풋볼(Narco Football)’의 대표적인 사례들은 콜롬비아의 세 주요 도시를 기반으로 한 팀들에서 나타났으며, 이는 콜롬비아 마약 세계의 가장 거물급 인물들과 직결되어 있었다. 공식적으로 인정되거나 밝혀진 적은 없지만, ‘파블로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는 메데인을 연고로 한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을 사실상 좌지우지한 것으로 보였다. ‘곤살로 가차(Gonzalo Gacha)’는 수도 보고타의 명문팀 미요나리오스 FC를 공개적으로 소유하고 있었고, 악명 높은 칼리 카르텔의 수장인 ‘로드리게스 오루엘라(Rodríguez Orjuela)’ 형제는 아메리카 데 칼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처럼 거대한 부를 지닌 ‘사업가’들에게 있어, 축구 클럽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운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대중의 호감을 얻고, 동시에 자금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매우 영리한 방법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그들은 새로운 훈련 시설, 유소년 아카데미 설립, 경기장 개보수 등을 매우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이를 지역 축구 클럽의 구단주들이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행위로 여긴 지역 주민들로부터 사랑과 호감을 얻었다. 동시에 이들은 클럽을 통해 마약 자금을 세탁하고, 선수 이적료, 선수 연봉, 경기일 입장 수익 등과 관련된 허위 정보를 제출함으로써 그 돈의 대부분을 다시 회수하고 있었다.

콜롬비아 축구에 막대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경기장 위에서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전 세계는 마침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나르코 풋볼(Narco Football)’이라는 용어가 탄생했다.

콜롬비아는 이전에 단 한 차례, 1962년에만 월드컵에 진출한 적이 있었지만, 이후 1990년, 1994년, 1998년 월드컵에 3회 연속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편,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은 1989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를 우승하며, 콜롬비아 클럽 최초로 이 대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마약 범죄와 축구

물론 콜롬비아의 모든 사람들이 이 카르텔들이 자국의 가장 큰 축구 클럽들 중 일부를 운영하는 것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업계의 특성상, 이들 카르텔은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처리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1983년, 콜롬비아의 법무장관은 ‘로드리고 라라 보니야(Rodrigo Lara Bonilla)’라는 인물이었다. 보니야는 카르텔의 영향력과 권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강하게 반대 입장을 밝혔으며, 특정 콜롬비아 축구 클럽들의 운영에 대해 구체적인 수사를 시작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는 보고타에서 차량을 타고 있던 중,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보냈다고 알려진 남성에게 총격을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1989년, ‘알바로 오르테가(Álvaro Ortega)’라는 심판이 메데인에 있는 자신의 호텔 밖에서 총에 맞아 살해당했다. 오르테가는 이전에 데포르티보 인데펜디엔테 메데인과 아메리카 데 칼리 간의 무승부 경기에서 주심을 맡았으며, 이 경기에서 논란이 된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카르텔들은 그 판정으로 인해 경기 결과에 걸었던 베팅에서 막대한 금액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르테가의 살해 사건은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탈리아 축구 협회는 콜롬비아를 1990년 월드컵에서 퇴출시킬 것을 요구했으며, 그해 말 일본에서 열리는 인터콘티넨탈컵에서 AC 밀란을 철수시키는 방안도 논의되었다. AC 밀란은 준결승에서 아틀레티코 나시오날과 맞붙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 두 사안 모두 실제로 실행되지는 않았다.

마약 카르텔들의 눈 밖에 난 사람은 누구든 살해당할 위험에 처하는 듯 보였고, 1994년에는 선수들조차도 이 위협에서 예외가 아님을 전 세계가 알게 되었다.

1994년 월드컵에서 콜롬비아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두고 콜롬비아는 뛰어난 선수단을 구성했으며, 대회에 대한 기대감과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조별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며 본선에 자동 진출했고,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아르헨티나를 5-0으로 대파하며 대회를 향한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브라질의 전설 펠레는 콜롬비아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모든 것이 콜롬비아에게는 흥미진진한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이었고, 그 중심에는 냉정하고 단단한 센터백, ‘안드레스 에스코바르(Andrés Escobar)’가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고 있었다.

콜롬비아가 그동안 쌓아온 모든 준비와 노력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루마니아에게 3-1로 패배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음 경기는 개최국인 미국과의 대결이었으며, 콜롬비아에게는 무난한 승리로 여겨졌고 대회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릴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사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미국전 경기를 앞두고 콜롬비아 대표팀의 선수들과 스태프들은 다시 실수할 경우 죽이겠다는 내용의 전화와 팩스 협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감독 ‘프란시스코 마투라나(Francisco Maturana)’는 이후 인터뷰에서, 특정 선수들을 선발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자신에게 직접적인 협박이 가해졌다고 밝혔으며, 이러한 압박은 주로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소속 선수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콜롬비아는 최악의 출발을 보였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안드레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먼저 실점한 것이다. 이후 미국은 후반전에 추가 골을 넣었고, 결국 2-1로 승리하며 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 콜롬비아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탈락이 확정되고 말았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두었지만, 콜롬비아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민들은 대표팀을 ‘수치’라고 낙인찍었다. 미국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던 주장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공개 인터뷰를 통해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사과했고, 국민들에게 단합과 용서를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끝내 외면당하고 말았다.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살해 사건

스위스전이 끝난 지 일주일 후, 콜롬비아 대표팀은 귀국한 상태였고,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여자친구와 함께 메데인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 밖에 있었다. 그때 한 괴한이 그에게 접근해 총을 여섯 발 쏘았고, 에스코바르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에스코바르가 살해당할 당시 그의 곁에 있던 여자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총격범은 총을 쏘기 전마다 “GOOOAAALLLL!”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움베르토 무뇨스 카스트로(Humberto Muñoz Castro)’는 에스코바르 살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4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로 분류되어 약 11년만 복역한 뒤 조기 석방되었다.

재판 과정 내내 카스트로는 범행 동기에 대해 진술을 계속 바꿨다. 처음에는 에스코바르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고 주장하다가, 이후에는 자신이 콜롬비아 최대 카르텔 중 하나의 수장인 ‘가욘(Gallón)’ 형제를 위해 행동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욘 형제는 미국과의 경기 결과로 인해 막대한 금액의 돈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후반, 콜롬비아에서 마약과의 전쟁과 강력한 단속이 격화되면서 카르텔 수뇌부는 축구에 신경 쓸 여유를 점점 잃어갔고, 그렇게 이른바 ‘나르코 풋볼(Nraco Football)’로 불리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콜롬비아는 2002년, 2006년, 2010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연이어 실패하며 부진을 겪었다.

‘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íguez)’, ‘라다멜 팔카오(Radamel Falcao)’, ‘후안 콰드라도(Juan Cuadrado)’와 같은 최근 세대의 콜롬비아 선수들은 다시 한번 콜롬비아 축구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았다. 이들은 2014년과 2018년 월드컵에서 모두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으며, 경기장에서의 활약을 통해 ‘나르코 풋볼(Nraco Football)’이라는 고통스러운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 콜롬비아 축구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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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46548935
※ 최초 작성일 : 2025. 0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