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째 선수(Jugador Número 12)’라는 의미를 갖는 ‘La12(라 도세)’는 아르헨티나 명문 축구 팀 보카 주니어스 팬들을 지칭함과 동시에 1960년대 말 ‘엔리케 오캄포(Enrique Ocampo)’에 의해 창설된 바라브라바 그룹이다.

La12는 국내외에서 다른 바라브라바와의 잦은 충돌, 내부 파벌 간의 갈등 등 여러 가지 폭력 범죄와 사건, 사고로 자주 언급된다. 또한 경기장 입장권 관여 문제나 회원들이 연루된 각종 이권 사업 활동들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며,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폭력적인 바라브라바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들은 홈구장 ‘라 봄보네라(La Bombonera)’에서 깃발을 흔들고 브라스와 타악기를 연주하며 팀을 응원한다. 라이벌은 리버 플레이트의 바라브라바 ‘Los Borrachos del Tablón(LBDT·스탠드의 취객들)’이다.


※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는 전통적인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팬들끼리도 사이가 나쁘다. 두 팀의 시합은 ‘수페르 클라시코(superclásico)’라고 불린다.
La12의 기원
La12의 기원은 19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5년은 보카 주니어스 구단에게 처음이자 아르헨티나 축구 역사상 최초로 유럽 투어를 펼친 해로 기억된다. 당시 이 투어에는 선수들과 코칭 스테프 외에도 ‘빅토리아노 “토토” 카파레나(Victoriano “Toto” Caffarena)’라는 열정적인 팬도 동행했는데, 이때 득점왕이었던 ‘안토니오 세로티(Antonio Cerroti)’는 그를 가리켜 “우리의 첫 12번째 선수(Primer Jugador Número Doce)”라고 불렀다.

그로부터 1년 후, 이 팬은 싱어송라이터인 ‘이탈로 고예네체(Italo Goyeneche)’에게 보카 주니어스를 위한 공식 응원가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하기도 했다. 이후 카페레나는 보카 팬들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으며, 종국에는 보카 주니어스 ‘종신회원(Socio vitalicio)’으로 인정받았다.

“El Toto es nuestro jugador Número 12 (토토는 우리의 12번째 선수다)” – Antonio Cerrotti en 1925(안토니오 세로티, 1925년)
1세대 La12 : 1965~1980
1960년대, La12의 첫 번째 공식 리더로 알려진 인물이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엔리케 오캄포스(Enrique Ocampos)’이며 ‘키케 엘 카르니세로(Quique el Carnicero·정육점 주인 키케)’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오른팔인 ‘카를로스 바라니(Carlos Varani)’와 ‘알레만(Aleman)’, ‘엘 비에호 카라스코사(El Viejo Carrascosa)’, ‘엘 고르도 우파(El Gordo Upa)’, ‘엘 우루과요 추파미엘(El Urguayo Chupamiel)’ 등 주로 20~30대였던 이들과 함께 보카 주니어스를 열정적으로 응원할 초기 La12를 조직하고 성장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시기 동안 La12는 아르헨티나의 다른 4대 주요 축구팀의 바라브라바와 몇 차례 작은 충돌을 겪었으며, 경찰과도 몇몇 경미한 충돌을 가졌다. 이들이 활동할 시기 주요 자금 조달은 다른 보카 주니어스 팬들과 구단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획한 복권 판매 수익금이었다. 때로는 구단의 집행위원회 일부 구성원들이 자체적으로 이들 바라브라바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지원금은 주로 국내 원정 경기 시 바라브라바의 원정 경비에 쓰이거나, 팀이 우승했을 때 경기장에서 축하 행사를 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키케는 그렇게 약 10년 동안 La12의 리더로 활동하였으나, 1979년에 조직 내부 갈등이 발화되면서도 리더십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는 결국 리더 자리를 다음 세대인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에게 넘기게 된다.
2세대 La12, 1981~1994 : La Barra del Abuelo(대부의 바라브라바)
1981년, La12의 주요 멤버들은 내부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합을 가졌다. 그러나 그 회합은 더 큰 폭력으로 끝을 맺었고 결과적으로 1세대 리더인 키케는 힘을 잃게 되었다. 이후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El Abuelo(대부))’라는 인물이 바라브라바의 새로운 리더가 되었다. 호세 바리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로 이주해 자란 인물로, La12 실권 장악 이후 더 많은 팬들을 그룹에 합류시키며 구성원 수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그가 리더가 된 후 바라브라바 내 자금 조달 방식은 기존보다 더 다양해졌다. 복권 판매, 구단 임직원의 지원과 별도로 홈경기 시 봄보네라 인근 거리에서 주차 요금을 징수하거나 주요 멤버들이 클럽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직업에 고용되는 등 클럽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더 나아가 클럽의 선수들에게 접근해, 월별로 기부금을 요구하며 자금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거부한 선수에게는 협박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 아르헨티나 축구팀의 여러 바라브라바들과 마찬가지로 La12 또한 경기 당일 경기장 곳곳에서 마약 판매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불법 활동을 통해 상당한 경제적 수익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호세 바리타는 보카 바라브라바의 자금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La12를 보다 ‘기업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였던 젊은 시절 ‘라파엘(Rafael) & 페르난도 디 제오(Ferrnamdo Di Zeo)’ 형제의 조언을 적극 수용한 결정이었고, ’12번째 선수 재단(Fundación Jugador Número Doce)’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이 재단은 자선 활동을 명목으로 삼았지만 실제로는 바라브라바의 원정 투어, 경기 입장권, 그리고 설립자들의 일상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La12를 이끌던 초창기, 호세 바리타는 다른 팀의 바라브라바와 더 많은 폭력적 충돌을 주도했다. 그 결과로 5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되었다. 1988년과 1989년 사이, 몇몇 언론들은 보카 지역 주민 일부가 La12에 불만을 갖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호세 바리타가 원정 경비를 독점하며 사기와 기만, 각종 부정행위를 펼쳐 젊은 팬들을 속이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보카 주니어스는 1992년, 10년 넘게 우승을 놓쳤던 토너먼트 대회 토르네오 아페르투라 마지막 경기에서 상대팀인 산 마르틴과의 경기에서 최소 무승부 또는 승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팀은 전반전을 1:0으로 뒤진 채 마쳤다. 이때 La12는 호세 바리타 지휘 아래 산 마르틴 선수들의 라커룸에 침입해 “보카가 우승하지 못하면 여기서 아무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며 협박을 가했다. 이후 보카 주니어스는 동점골을 기록하며 분위기를 반전시켰고, 결국 경기를 이기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1994년, La12는 라이벌인 리버 플레이트 팬들을 대상으로 매복 공격을 실행, 2명의 팬을 살해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멤버 여러 명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인 2001년, 호세 바리타가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호세 바리타는 생에 마지막 몇 년 동안 불법 단체 결성 및 공갈 협박 등 혐의로 복역했으며 사인은 폐렴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보카 주니어스 팬들은 그의 장례식에서 “Se siente, se siente, José está presente(느껴진다, 느껴진다, 호세가 여기 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그를 추모했다.

같은 시기, 보카 주니어스에서 팬 중 ‘라 라울리토(La Raulito)’라는 매우 유명한 여성 팬이 있었다. 그녀는 La12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며 보카를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한 명은 ‘보카의 신부(La Novia de Boca)’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알베르토 메디나(Alberto Medina)’라는 팬으로, 그는 보카 바라브라바 내에서 독특한 전통을 이어간 유명한 서포터이다. 1976년, 보카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출전권을 확보했을 때, 카니발을 즐기던 팬들 사이에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신부로 변장한 모습이 목격되었다. 이때 호세 바리타는 그 모습에 감명받았고, 훗날 이를 전통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알베르토 메디나에게 그 역할을 맡아줄 것을 제안했다. 이에 알베르토는 “미쳤냐, 내 가족이 뭐라고 하겠어?”라며 거절했지만 리더이자 친구인 호세의 끈질긴 부탁에 결국 받아들였다.
이후 ‘보카의 신부’가 된 알베르토 메디나는 예상치 못한 큰 주목을 받으며 보카 팬들 사이에서 상징적인 인물이 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처음에는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후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내가 보카 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라고 밝혔다. ‘보카의 신부’는 “나는 보카와 결혼했다. 그러므로 동반자이며 평생 충성을 맹세한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알베르토는 팬들 사이에서 ‘보카의 신부’라는 별명으로 기억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3세대 La12, 1995 ~ 2006 : La Barra de Rafa(라파의 바라브라바)

1995년, La12는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가 권력을 잡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새로운 리더가 된 라파는 La12의 경제적 수익을 더욱 증대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전에 행하던 합법적, 불법적 활동을 유지함과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을 추가해 바라브라바의 자금 기반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La12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자금 조달 활동을 도입했다.
- 정치 정당과 노동조합 행사 참여 : 바라브라바 구성원들이 정당 및 노동조합의 공개 행사에 참여하여 금전적 이익을 벌어들임.
- 선수 이적 수수료 : 일부 프로 선수의 이적 과정에 적극 관여하여 일정 비율의 수익을 배분 받음.
- 티켓 재판매 : 홈경기 시 봄보네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응원석의 입장권을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림.
특히, La12는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되기 전의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가 보카의 구단주로 임기 중이던 1995~1997년 동안 외부 관람객을 대상으로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프로그램은 보카 지구 밖에 사는 외지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며, 천문학적 가격의 경기 입장권 등 상품들로 구성되었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는 봄보네라 투어가 제공되었으며, 매치가 있는 날에는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응원 구역에 ‘초대 손님’ 자격으로 입장하여 바라브라바와 함께 응원을 펼칠 기회를 주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바라브라바의 수익 창출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관광과 축구 문화를 결합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2000년대가 되자 La12의 폭력성은 더욱 강해졌다. 라파 디 제오는 다른 클럽들의 바라브라바와 싸움은 물론 경찰과도 자주 충돌했고 소요 사태도 여러 번 일으켰다. 라파는 2002년에 마르 델 플라타에서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 팬들과 충돌했다. 이 충돌은 사흘 전, 멘도사에서 열린 보카와 리버의 1차전 경기에서 후반 도중 리버의 바라브라바 LBDT가 보카 팬들로부터 빼앗은 4개의 배너를 전시, 농락했던 게 시발점이었다.
La12의 주장에 의하면 해당 배너들은 바라브라바의 것이 아닌 다른 평범한 보카 팬 그룹의 깃발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바라브라바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으며 La12 전체의 모욕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얼마 후 마르 델 플라타에서 예정된 2차전에 복수를 다짐했고 이러한 긴장감은 이후 벌어질 대규모 난투극의 도화선이 되었다. 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 경찰은 마르 델 플라타로 들어가는 고속도로 중간 주유소에 양 팀 바라브라바 리더들을 소집하였고 경기 당일 소동을 일으키지 않기로 협상을 주선했다.

이는 바로 1년 전, 대규모 폭력 스캔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봄보네라 원정에서 나선 리버 플레이트의 바라브라바는 5m 길이의 배너를 경기장 안으로 반입하였다. 하지만 당시 이는 반입 금지 물품이었으며,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경기 후반에 리버 팬들의 배너를 압수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리버 바라브라바와 경찰 간의 대규모 충돌을 초래하고 말았고 1,000명의 경찰이 나섬에도 불구하고 후반 38분에 경기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라는 결과를 내고 말았다.
협상은 바로 1년 전 발생한 폭력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경찰, La12, LBDT 이렇게 ‘3자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 회의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바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거래’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틀 후 경기에는 보안 작전에 약 1,100명의 경찰이 배치될 예정이었다. 그중 850명은 추가 배치로 별도의 급여를 받는 인력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3자 간 합의점이 모아지게 되었으며, 그것은 바로 실제 경기장에 배치되는 경찰을 400명으로 줄이고 나머지 450명분의 비용을 경찰, La12, LBDT가 삼등분하자는 것으로, 협상에 참여한 모든 참여자들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악수를 나누며 최종 합의에 도달한다.

그러나 La12는 다른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경기 당일, 전반전을 조용하게 마친 뒤 후반전에 리버 팬들에게서 빼앗은 14개의 배너와 깃발을 전시해 조롱할 계획을 세웠다. 이는 리버 바라브라바 LBDT의 상징인 숫자 ’14’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중에는 1993년 LBDT로부터 빼앗은 리버 구단의 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바 있는 ‘디 카를로(Di Carlo Presidente)’를 상징하는 깃발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기는 보카의 대승 분위기 속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나 후반 5분 그 평화는 깨지고 말았다.
앞서 리버의 바라브라바는 보카 바라브라바의 실시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보카 팬들 사이에 스파이를 심어놓았다. 그리고 그 스파이로부터 La12의 계획을 전달받았고,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즉각 행동에 나섰다. 리버 바라브라바들은 자신들의 응원석을 넘어 관중석으로 이동해 보카 팬들의 깃발과 배너를 빼앗고, 무차별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관중석은 두 팬들이 공간을 공유하였고 경찰들이 줄을 지어 두 팬들을 분리하던 형태였다.

하지만 그날 상황은 매우 달랐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약 100명의 경찰이 배치되곤 했지만 해당 작전의 책임자는 그날 단 12명의 경찰만 배치하였고 이는 양측 바라브라바 간에 폭력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협상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정 아래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는 두 바라브라바 간의 충돌 가능성을 키우며 폭력 사태로 이어질 위험을 초래한 결정적 요소가 되고 만다.
보카 진영에 있던 팬들은 리버 바라브라바의 움직임을 알아차렸고 자신들의 깃발을 휘두루며 방어를 시작했다. 양측은 서로를 향해 모든 것을 던지며 충돌했고 LBDT의 다수는 관중석 안으로 깊이 침투해 보카 팬들을 공격했다. 이 상황을 본 La12는 부패한 경찰과 체결했던 평화 협정 따위는 지킬 이유가 더 이상 없다고 판단했으며, 즉각 리버 바라브라바에 맞서 싸우기 위해 나섰다. 이 같은 소요 사태는 후반 11분경 시작되었고 14분에 추가 골이 터져 보카가 4:0으로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정되지 않았으며, 경기장은 사실상 ‘무법지대’가 되어 팬들 간의 격렬한 난투극이 이어지게 된다.
La12는 이 싸움에서 리버 플레이트의 또 다른 바라브라바 그룹 중 한 파벌인 ‘La banda del Oeste(서부 지역 반다)’의 리더 ‘마르틴 스탐불리(Martin Stambuli)’가 공격을 받아 경기장 해저드로 떨어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힌 것을 두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반대로 LBDT는 이 싸움에서 흉기에 찔려 가장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인물이 보카 바라브라바의 핵심 멤버였던 ‘앙헬 페코 디아스(Ángel Feco Díaz)’였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안타깝게도 스탐불리는 2012년 리버의 내부 분쟁 과정에서 살해당했으며 디아스 역시 2013년 보카 내부 분쟁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이는 아르헨티나 바라브라바가 단지 팀 간의 충돌뿐만 아니라 내부 권력 다툼 역시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이 싸움에서 La12의 리더인 ‘라파 디 제오(Rafael Di Zeo)’의 형제 ‘페르난도 디 제오(Fernando Di Zeo)’는 난투극의 선두 그룹에 있었는데 경미한 부상을 입었다. 또한 ‘후안 프란시스코 베론(Juan Francisco Verón)’이라는 리버 플레이트 팬은 복부에 칼을 맞아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싸움은 관중석에서 시작해 경기장 밖으로, 주차장과 인근 레스토랑, 길거리에서 계속 이어졌다. 경기장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거리에서 비극이 일어났다. ‘람블라(Rambla)’ 지역에 있던 보카 주니어스 팬 ‘페르난도 팔레르모(Fernando Palermo)’가 리버 바라브라바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칼로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팔레르모는 다른 네 명의 동행자와 있었고 그중 세명이 근처 레스토랑에서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혼자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때 리버 바라브라바의 한 그룹이 그를 발견하였고 당시 팔레르모가 보카 주니어스를 상징하는 ‘제네이세(Xeneizes)’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공격했다고 한다. 이날 대규모 폭력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맡은 검사들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바라브라바 구성원들에 대한 기소 역시 없었다. 다만 3자 간 협상을 주도해 경찰 대금을 가로챈 혐의로 당시 부패한 경찰서장 ‘호세 리베로(José Rivero)’가 기소되었을 뿐이다.
4세대 La12, 2007 ~ 2013 : Mauro Martin(마우로 마르틴) & 막시 마사로(Maxi Mazzaro) 시대

2007년, 리더였던 라파 디 제오와 그의 동생 페르난도 디 제오를 비롯한 당시 La12 주요 핵심 멤버들이 1999년에 차카리타 주니어스 바라브라바를 공격했던 혐의를 받던 중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다.

이후 디 제오 형제를 따르며 활동했던 ‘마우로 마르틴(Mauro Martin)’과 그의 오른팔 ‘막시 마사로(Maxi Mazzaro)’가 La12의 새로운 리더로서 권력을 이어받게 되었다. 이 시점 마우로는 반대파인 기존 지도층과 내부 갈등에 휩싸였으며 권력 다툼이라는 명목 아래 지속적인 폭력을 치렀다. 그러다 몇 년 후, 석방된 라파가 공식적으로 La12의 리더로 다시 복귀할 뜻을 밝히면서 기존 리더와 새로운 리더 간 내부 권력 다툼은 정점을 찍게 된다.

2011년 10월 30일, 보카 주니어스는 홈구장 봄보네라에서 아틀레티코 라파엘라와의 경기를 3:1 승리로 장식했다. 그러나 모든 언론은 그날 경기 결과보다는 경기 도중 이례적인 상황에 더 주목했다. 바로 현시점 La12의 리더인 마우로와 과거 리더였던 라파가 서로 반대편 응원석에서 마주 보며 경쟁을 벌인 것이었다. 마우로는 기존의 홈팀 응원석 구역에 자리 잡았고, 라파는 맞은편 구역에서 맞섰다. 보카 선수단이 경기장에 입장했을 때 두 그룹은 서로 다른 응원가를 부르며 세를 과시했고 각기 다른 문구가 적힌 파란색과 노란색 배너를 걸고 깃발을 흔들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행히 이날 두 바라브라바 그룹 간의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이후 두 그룹은 경기장 안팎에서 여러 차례 충돌하게 된다. 2012년 8월 25일, La12의 두 파벌은 도로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마우로 마르틴이 총상을 입었으나 목숨을 건졌다. 이후 2013년 1월, 마우로는 지난 2011년 8월 반대 파벌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에르네스토 시리노(Ernesto Cirino)’에 대한 폭행 및 살인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며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한편, 당시 산 로렌소의 골키퍼였던 ‘파블로 밀리오네(Pablo Migliore)’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보카 바라브라바의 도주를 돕고 은닉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2013년 7월 21일, La12의 두 파벌은 다시 한번 충돌했다. 이날 충돌은 막시 마사로의 측근과 라파 디 제오 지지자들이 맞붙었다. 이 사건은 당시 산 로렌소 경기장에서 불과 다섯 블록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으며, 당시 보카와 산 로렌소의 친선 경기가 열리기 직전에 발생했다. 이 충돌로 인해 여러 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후 마사로는 살해 사건의 가담자로 6개월간 도피 생활을 하다가 자수하였고 그가 자리를 비운 뒤 La12의 지휘권은 ‘피도(Fido De Vaux)’가 맡게 되었다. 피도 역시 La12 내부에서 중요한 핵심 인물 중 하나였고 조직 내 권력 다툼 속에서 리더로 부상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구체적인 행적이나 이후 상황에 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보카 바라브라바 내에서의 활동이 얼마나 지속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La12 내부 갈등 종식, 2014 ~ 2019 : 디 제오 형제 & 마우로 공동 리더 체제


2014년 10월, 마우로 마르틴이 에르네스토 살해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석방 후 그는 라파 디 제오 측 세력에 합류하며 두 파벌 간의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다. 이후 이들은 마우로 & 마사로가 수감될 당시 지휘권을 이어받았던 피도를 몰아내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2015년 1월, 마우로와 최측근 아라베나, 그리고 디 제오 형제(라파 & 페르난도)가 회동을 통해 피도를 몰아내고 다시 La12 지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2007년 이후 사라졌던 ‘디 제오(Di Zeo)’ 세력이 다시 La12의 지배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후 마우로 마르틴 & 디 제오 형제는 La12를 공동으로 이끌어 나가는 체제를 구축했다.
2015년 5월,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16강 2차전에서 큰 사건이 발생한다. ‘아드리안 나폴리타노(Adrián Napolitano)’라는 보카 팬이 경기장 내부로 침입해 후반전 시작을 위해 경기장에 재입장하던 리버 플레이트 선수들을 향해 최루 가스를 분사한 것이다. 이 사건은 전례 없는 국제적 스캔들로 번지게 되는데, 보카 주니어스는 이후 실격 처리되어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에서 탈락하게 된다. 사건 직후 나폴리타노는 보카 주니어스 클럽에서 제명되었으며 경기장 출입 금지 조치를 받게 되었다. 이후 이 사건은 나폴리타노의 단독 범행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언론으로부터 바라브라바와 연관되었다는 의혹을 받으며 여러 핵심 인물들이 의심받게 된다.

2017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La12의 공동 리더인 라파 디 제오와 마우로 마르틴의 영구 출입 금지 조치를 내린다. 하지만 이들은 보카 주니어스가 참가하는 리그, 컵대회, 토너먼트 등 모든 경기에 자신들의 측근을 주요 응원석에 배치하며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2018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이 산티아고 베르나우베우에서 개최되었을 때는 100명 이상의 바라브라바가 스페인으로 이동하여 직접 경기를 관람하는 등 국제적인 조직력을 과시했다. 같은 해 라파는 보카 주니어스의 홈경기에는 최소 500명의 바라브라바가 응원석에 입장한다고 주장하며 여전히 조직이 건재하며 강력하다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4월, 아르헨티나 당국은 보카 바라브라바 128명에게 4년간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는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그 대상에는 라파, 마우로, 나폴리타노가 포함되었으며 마르셀로 아라베나, 막시 마자로 등 La12의 핵심 멤버가 대거 포함되었다. 이 조치는 아르헨티나 정부와 축구 연맹이 보카 바라브라바의 폭력적 행태를 억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라파와 마우로의 조직은 경기장 밖에서도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La12 완전 통합, 2000 ~ 현재 : 핵심 인물 다수의 출입금지 조치, 이후 다른 세력이 새롭게 부상할 가능성


오랜 기간 법적인 문제와 재판 등으로 활동이 제한되었던 La12의 리더 라파와 마우로는 2022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경기에서 다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2022년 4월, 콜롬비아에서 열린 데포르티보 칼리와의 경기에서 공개적으로 등장하며 La12에서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을 과시했다. 이는 오랜 기간 아르헨티나 내에서 개최되는 공식 경기에서의 활동이 어려웠던 두 사람이 국제 경기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또한 2023년 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개최되었던 라싱 클럽과의 경기에서 다시 한번 모습을 드러내며 국제 경기에서 여전히 서포터 그룹을 조직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해 4월, 라파와 마우로는 약 6년 만에 콜론과의 홈경기가 있었던 보카 주니어스의 홈구장 라 봄보네라에 입장했다. 이는 지난 6년간 지속된 출입 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음을 의미했으며, 기존의 La12 핵심 멤버들이 다시 공식적으로 경기장 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2023년 11월, 보카 주니어스와 브라질 플루미넨세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전을 앞두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양 팀 팬들 간의 충돌 사건이 발생됐다. 플루미넨세 팬들은 도시 곳곳에서 보카 주니어스 팬들을 향해 매복 공격을 가했다. 당시 La12의 리더진(라파, 마우로, 마르셀로 아라베나)은 아직 브라질에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핵심 멤버 중 한 명이던 ‘마르셀로 아라베나(Marcelo ‘Manco’ Aravena pidió)’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우리는 보카 팬들을 보호할 것이다. 플루미넨세 팬들은 우리가 도착하는 즉시 우리와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출발했고 곧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다려라.”라며 경고했다. 이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모두 긴장감이 밑돌았고 양측 모두 언론의 집중을 크게 받게 된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지만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데 부담을 느낀 보카 바라브라바와 플루미넨세의 울트라스 양측은 물밑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협의했고 최종적으로 ‘비공식 휴전협정’을 체결함으로써 다행히 더 큰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2024년 4월, 코르도바에서 열린 보카 주니어스와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 플라타의 코파 데 라 리가 준결승전이 열리기 전, La12의 많은 인원들이 경찰 단속에 적발되었다. 당시 경찰은 코르도바로 진입하는 9번 도로 국도에서 La12를 불시 검문했다. 이때 총기와 흉기, 탄약, 술, 마약 등 불법 무기가 발견되었고 라파 디 제오를 비롯한 60명의 바라브라바가 체포됐다. 아르헨티나 보안부 장관은 라파를 비롯한 체포된 전원에게 라 봄보네라를 비롯한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모든 경기의 영구 출입 금지 조치를 내리는 강경 대응을 발표했다.
라파 디 제오를 비롯한 주요 멤버들이 대거 체포 및 수감,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받게 됨에 따라 현재 La12는 리더진의 공백이 있다. 이대로 기존의 라파 디 제오 체제가 붕괴될 경우, 새로운 리더 자리를 둘러싼 내부 권력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경찰과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인해 바라브라바 조직의 운영 방식이 변화할 가능성 또한 있다. 현재까지 공식적인 내부 분열 소식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국은 주요 리더진들의 공백에 의한 새로운 권력 투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La12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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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743758063
※ 최초 작성일 : 2025. 0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