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s Borrachos del Tablón(스탠드의 취객들·타블론)’은 아르헨티나 축구 명문팀 리버 플레이트의 인차이자 바라브라바 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룹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그룹은 1980년대에 결성되었으며, 이전부터 존재하던 수많은 그룹들이 팀을 중심으로 결집하여 강렬하고 열정적인 응원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모임은 몇 년 앞섰으나 ‘스탠드의 취객들’이라는 정식 그룹명은 대략 1970년대 후반 ~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이 그룹명은 당시 아르헨티나의 거의 모든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던 목재 구조의 관중석과 리버 플레이트 팬들 사이에서 흔히 보였던 술병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확한 의미는 ‘나무 판자 위에서 응원하는 열정적인(때론 술에 취한) 팬들’을 의미한다.
리버 플레이트 최초의 Hincha
유명 잡지 ‘El Gráfico’의 기록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최초로 조직된 서포터즈 그룹(인차)은 리버 플레이트의 팬들이라고 한다. 이 서포터즈 그룹은 바로 1928년경 결성된 ‘바라 아니마도라(Barra Animadora)’이다. 이들은 클럽의 색깔을 상징하는 옷이나 악세사리를 착용하고 베이스 드럼을 중심으로 한 반다를 조직했으며 플래카드 등을 이용하여 리버 플레이트를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일반적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클럽의 서포터즈들은 자신들이 ‘리그 최초의 서포터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체로 이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 자료나 기록은 애매하거나 제각각인 경우가 많으며, 개인 또는 단체의 기억이나 전해진 옛이야기에 의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게 축구 응원 문화가 태동할 당시 이와 비슷한 그룹들이 각 팀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탄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중 문화적 측면에 있어 독보적인 활동을 전개한 그룹이 유명세를 떨치는 경우가 있을 뿐, 사실 ‘최초’라는 타이틀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별 의미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기서는 리버 플레이트가 아르헨티나 최초의 서포터즈 그룹을 보유한 클럽이라고 소개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1982년 유명 만화가 ‘카를로스 로이소(Carlos Loiseau·칼로이(Caloi))’가 만든 캐릭터 ‘클레멘테(Clemente)’가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다. 주로 축구 팬들을 겨냥한 줄거리가 많았던 이 애니메이션은 “노래와 개그가 온다, 클레멘테가 왔다(Llegan los cantitos y el humor, llegó Clemente)”라는 중독성 있는 오프닝 멜로디로 시작했다.
당시 여러 축구팀의 인차들은 이 멜로디를 가져와 “관중석의 친구들이 온다, 인차가 왔다(Llegan los muchachos del tablón, llegó la hinchada)”라며 관중석에 입장할 때 불렀다. 대표적으로 라싱, 티그레, 차카리타 주니어스 등 여러 팀의 인차들이 이 노래를 사용했으며 리버 플레이트 팬들에게도 불려졌다.
이 당시 리버 플레이트의 관중석 곳곳에서 굉장히 큰 술병들이 흔히 보였는데, 덕분에 이 노래의 가사가 약간 수정되었다. 수정된 가사는 “관중석의 취객들이 온다, 인차가 왔다(Llegan los borrachos del tablón, llegó la hinchada)”였다. 이는 리버 플레이트 팬들 사이에서 흔하게 보였던 대량의 술병을 암시하는 표현이었고, 이는 얼마 후 리버 플레이트 인차가 “스탠드의 취객들(Los Borrachos del Tablón)”이라는 그룹명을 갖는 시초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Los Borrachos del Tablón”이라는 응원가의 위세는 매우 강력해졌으며, 결국 리버 플레이트 인차 자체가 돼버렸다. 이 노래가 리버 플레이트 팬들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자, 다른 팀들의 인차들은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스탠드의 취객들(Los Borrachos del Tablón)’이라는 그룹명이 새겨진 배너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4년 4월 30일이었다. 그날 라이벌 보카 주니어스의 경기장 ‘라 봄보네라(La Bombonera)’의 2층 원정석에는 ‘Los Borrachos del Tablón’라고 정확하게 새겨진 대형 통천이 덮였다. 이날은 리버가 8년간의 보카 원정 무승 부진을 끊고 2:0 승리로 시합을 장식했는데, 덕분에 그 통천은 리버 인차들 사이에서 행운으로 여겨졌다.


몇 년 후, ‘Los Borrachos del Tablón’이 리버 플레이트 인차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영원히 자리 잡게 된 뒤 고딕체로 디자인한 새로운 배너가 제작되었다. 이 배너는 주로 리버 플레이트의 홈구장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의 난간에 걸렸으며, 리버 플레이트 팬들의 정체성과 열정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었다. 또한 이들의 그룹명은 1996년, 인터콘티넨탈컵이 열리는 일본 원정을 떠날 인차들을 위한 기념 티셔츠로 제작되기도 했다.

2005년,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 역사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인 ‘알란 슈렌커(Alan Schlenker)’는 최초로 ‘스탠드의 취객들(Los Borrachos del Tablón)’이라는 이름과 로고의 저작권을 공식적으로 등록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 로고는 와인을 담는 ‘다마후아나 병’에 리버 플레이트를 상징하는 붉은 띠가 교차하는 모습으로 디자인되었고, 이를 둘러싼 고딕체 글씨가 리버 플레이트 인차의 정체성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이는 한 그래픽 디자이너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이후 영원히 리버 플레이트 인차의 상징이 되었다.
스탠드의 취객들은 응원석에서 트럼펫이나 확성기 사용을 거부한다. 또한 검정색 깃발을 걸지도 않고,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는 결코 팀을 버리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항상 팀을 응원하며 좋은 시기는 물론이고,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강하게 응원하며, 그것을 리버 플레이트 전체 팬들의 정신이자 자신들이 가진 진정한 자부심으로서 내세우고 있다.
초기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
리버 플레이트는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보카 주니어스와 양대산맥을 이루는 대형 클럽으로, 과거부터 많은 팬들을 보유했고 다양한 인차 그룹들이 있었다. 그중 초기 리버 바라브라바의 리더로 알려진 사람은 ‘마투테(Matute)’라는 인물이었다. 그 옆에서 또 한 명의 인물이 바라브라바를 함께 이끌었지만 그는 1983년 10월, 보카와의 수페르클라시코가 끝난 후 벨레즈의 경기장 밖에서 살해됐다.

이후 ‘조 페레이라(Joe Ferreyra)’, ‘월터(el Viejo Walter)’, ‘가야르도(el Oso Gallardo)’, ‘히맨(He-Man)’, ‘티오 리코(Tío Rico)’ 등 인물들이 돌아가며 조직을 장악했다가 ‘미겔 알레한드로 카노(Miguel Alejandro Cano)’, 일명 ‘산도칸(Sandokan)’의 시대가 도래했다. 그는 무력으로 조직을 장악했으나 당시 클럽의 감독이었던 ‘다니엘 파사레야(Daniel Passarella)’를 협박한 일로 몰락했다.
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파라발란차스(Paravalanchas·난간 위에서 응원하는 자리)’를 장악한 인물은 ‘루이스 페레이라(Luisito Pereyra)’였다. 그는 ‘에드가르 “엘 디아리에로” 부타시(Edgar “el Diariero” Butassi)’와 ‘라몬 “리토” 바리오(Ramón “Rito” Barrios)’와 함께 삼각 구도를 이루며 권력을 유지했다.
이들의 리더십 아래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는 경기장 안팎에서 여러 싸움과 논란에 연루되었다. 1996년, 리버 플레이트와 클럽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의 경기가 있었던 날, 경기 종료 후 리버 바라브라바는 인데펜디엔테의 팬들과 충돌을 하게 되는데 그 사건은 페레이라와 부타시가 바라브라바 내에서 몰락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이 충돌은 인데펜디엔테의 팬이었던 ‘크리스티아노 루수리스(Cristiano Rousoulis)’가 ‘Los Borrachos del Tablón’의 멤버들에게 칼에 찔려 사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은 리버 바라브라바 조직 내부에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페레이라와 부타시는 조직 내에서 힘을 잃게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본 사건의 관련된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잠시 공석이 된 리더 자리를 두고 새로운 인물들이 부상한다.
1997 ~ 2003 : 새로운 세력 ‘로스 파토비카스(Los Patovicas)’의 부상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리버 플레이트의 바라브라바 스탠드의 취객들은 강력한 보디가드 출신 조직원들, 즉 ‘로스 파토비카스(Los Patovicas)’라 불리는 새로운 리더들의 등장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사실 파토비카스의 초기 그룹명은 ‘라 반다 델 요거트(La banda del Yogurt)’이다. 이들은 어릴적부터 리버 플레이트가 운영하는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을 하고 끈끈한 우정을 다지며 그룹을 성장시켰고, 얼마 후 그룹명을 ‘Los Patovicas’로 바꿨다.

이들은 곧 리버 바라브라바 내에서 힘을 행사하며 조직을 장악한 새로운 세력이 되었다. 파토비카스는 주로 아르헨티나의 클럽이나 바, 콘서트장 등에서 일하는 일종의 보디가드(경호원)이나 건장한 문지기를 가리키는 속어이며 덩치가 크고 몸을 단련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리버 바라브라바 내부에서 파토비카스란 단순 경호원을 뜻하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팀 팬들이나 경찰과의 충돌로부터 그룹원들을 보호하고, 리버 플레이트 인차 내부 질서와 규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이 시기 리버 바라브라바 내부에는 대표적인 2개의 파벌이 존재했다. 한 파벌은 콘스티투시아 지역을 근거지로 삼았던 ‘엘 사파테로(El Zapatero)’와 ‘엘 모니토(El Monito)’가 이끌던 그룹으로, 이들은 페론주의 정당과 연관이 있다는 소문을 받고 있었다. 또 다른 파벌은 당시 조직 내에서 세 번째 계층(하위 리더 그룹)에 속해있던 두 명의 절친한 친구들이 이끌었던 ‘로스 파토비카스(Los Patovicas)’였다. 그 두 친구는 중산층 출신인 ‘아드리안 루소(Adrián Rousseau)’와 부유층 거주 지역 벨그라노 출신의 ‘알란 슈렌커(Alan Schlenker)’였다.

2002년, 리버 플레이트와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경기가 시작되기 전, 파토비카스는 경기장 밖에서 당시 뉴웰스의 바라브라바와 친분 관계에 있던 로사리오 센트랄의 바라브라바와 충돌하며 힘을 과시했다. 동시에 리버 플레이트 인차 조직 내부에서 경쟁했던 ‘엘 사파테로 & 엘 모니터’ 그룹에게도 위협을 가했다. 시간이 지나며 파토비카스의 규모는 더욱 커졌고, 바라브라바 내 다른 파벌들도 슈렌커와 루소가 이끄는 파토비카스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파토비카스는 ‘Los Borrachos del Tablón(스탠드의 취객들·타블론)’을 완전히 장악하며 조직을 정화하고 내부 질서를 강화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한 예로, 조직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거나 신뢰받지 못하는 인물들에게 경고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당시 ‘나사레노(Nazareno)’라는 멤버는 경기장에서 다른 팬들을 상대로 절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파토비카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가장 위험하고 범죄율이 높은 빈민가 중 하나인 빌라 사바도르 데 올리아 지역에서 형성된 범죄 조직이자 또 하나의 주요 파벌이었던 ‘마르틴 스탐불리(Martin Stambuli)’가 이끄는 ‘푸에르테 아파체(Fuerte Apache)’ 그룹이 파토비카스에 합류하며 조직의 세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파토비카스의 존재감은 곧 리버 바라브라바가 더욱 폭력적이고 통제적인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이들은 바라브라바 내부 질서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는 한편 경기장뿐만 아니라 클럽 운영과 관련된 여러 비즈니스에도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한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뿐만 아니라 국가 대표팀의 국내외 경기에서도 조직적인 응원과 활동을 주도하며 바라브라바의 위상을 강화했다. 이 시기, 스탠드의 취객들은 단순한 ‘서포터 레벨을 넘어서 더욱 강력하고 조직화된 바라브라바 그룹’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2003 ~ 2006 :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두려운 바라브라바가 되다
이 시기, ‘타블론(Tablón)’은 강력한 리더십과 뛰어난 조직력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두려운 존재이면서 동시에 존경받는 바라브라바가 되었다. 합법과 불법은 넘나든 성공적인 사업 수완과 압도적인 힘과 폭력으로 다른 팀의 바라브라바에게서 빼앗은 수많은 배너, 깃발들, 그리고 무기 소지는 스탠드의 취객들이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증명한다.


특히 이들은 싸움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를 압살하였는데, 어느 날 스탠드의 취객들은 로사리오 센트랄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하던 중, 9번 국도에서 다른 경기의 원정을 떠나고 있던 뉴웰스 올드 보이스의 바라브라바를 태운 버스와 마주쳤다. 국도 한복판에서 두 바라브라바는 심한 난투극을 벌였으며 이 싸움에서 뉴웰스의 팬 2명이 사망하고 만다. 일부 스탠드의 취객들 멤버들은 그 사건 이후 오늘날까지도 법적 처벌을 받고 있다.

한편, 알란 슈렌커의 동생이자 스탠드의 취객들의 핵심 멤버이기도 한 ‘윌리엄 슈렌커(William Schlenker)’의 측근 중 한 명은 벨그라노 지역의 한 식당에서 로사리오 센트랄의 반바지를 입고 있던 손님에게 당장 옷을 벗으라 요구했고 거부하자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또한 이들은 코린치안스와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브라질 원정에서 브라질 경찰과 충돌,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며 경찰력을 무력화하기도 했다.
이 당시 스탠드의 취객들은 리버 플레이트의 모든 팬들에게 인정받는 존재였으며, 그들이 모누멘탈에 입장할 때면 관중석 전체가 열광하며 클레멘테 노래를 부르고 점프를 했다. 이 시기는 리버 플레이트 인차의 전성시대이자 영광의 시대로, 팀 색깔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모든 경기장이 축제로 가득 찬 시기였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모누멘탈 내에서 범죄 사건, 사고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또한 원정 경기 중 리버 플레이트 팬들이 홈 팬들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일이 있을 경우 ‘Los Borrachos del Tablón’은 항상 팬들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전멸 시켰다. 이는 리버 플레이트 인차들의 결속력과 소속감을 공고히 한 효과를 발휘했고, 이러한 절대적인 단결은 오늘날까지도 리버 플레이트 팬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의 존재감 과시

2006년 월드컵 동안, 로스 보라초스 델 타블론의 영향력은 독일까지 확장되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월 7만 달러에 달하는 상당한 재정을 확보하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보카 주니어스, 인데펜디엔테 등 아르헨티나의 다른 바라브라바가 월드컵이 한창 진행 중인 독일 현지의 높은 물가로 인근 체코와 폴란드에 숙소를 마련해 머물러야 했던 반면 스탠드의 취객들은 뮌헨에서 체류할 수 있었다. 또한 일부 핵심 멤버들은 당시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자 대표팀에서 센터백을 맡았던 ‘마르틴 데미첼리스(Martin Demichelis)’의 독일 현지 자택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타블론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경기 중 좌석에 착석하지 않고 계속 서서 응원했으며, 이로 인해 FIFA로부터 모든 월드컵 경기장에 출입 금지 조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독일의 고위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FIFA의 결정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경기장의 안전요원은 물론 FIFA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 이들은 막대한 자금을 손에 쥐고 다시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성공이 후에 조직의 몰락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스탠드의 취객들은 아르헨티나 복귀 후 파라과이로 이동해 리버 플레이트의 리베르타드 원정 경기에 참여했다. 그 경기에서 리버 플레이트는 후반전을 3:1로 뒤지고 있었으며 이때 스탠드의 취객들은 경찰과 충돌을 일으키며 다시 한번 압도적인 힘을 과시했다. 이 사건은 리버 플레이트 유니폼을 입고 있던 바라브라바의 폭력 행위가 영상으로 촬영되었으며, 파라과이 법원은 폭동을 주도했던 리버 바라브라바의 리더진에 대한 법적 조치를 발표하기도 했다.
2006 ~ 2009 : 바라브라바 내부 권력 다툼, 킨초스 전투, 그리고 ‘곤잘로 아크로(Gonzalo Acro)’의 죽음
잘나가던 스탠드의 취객들 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게 된다. 바로 아드리안 루소와 알란 슈렌커 두 리더가 갈등을 빚기 시작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파벌로 분열하게 되었고 이후 루소를 지지하던 그룹과 슈렌커를 지지하던 그룹 간의 충돌이 발생한다. 가장 심각한 사건은 2007년 2월 11일 발생한 ‘킨초스 전투(La Batalla de los Quinchos)’이다. 이 충돌은 ‘엘 모누멘탈(El Monumental)’이라고 불리는 리버 플레이트의 홈구장 에스타디오 안토니오 베스푸시오 리베르티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 이후 아르헨티나 법원은 3경기 동안 경기장을 폐쇄하는 조치를 내렸다.
루소와 슈렌커는 ‘Los Borrachos del Tablón’의 지배권을 놓고 끊임없이 대립했고, 그 긴장이 폭발한 사건이 바로 킨초스 전투이다. 이 사건은 단순히 인차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 조직 내부에서 벌어진 권력 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이후 더 큰 폭력 사태들이 이어졌고, 2000년대 후반 리버 바라브라바 내부 사정이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계기가 된 큰 사건이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루소 파벌과 슈렌커 파벌 간에 말다툼이 격화되면서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칼과 둔기 등 무기가 동원되었고, 가담자 다수가 부상을 입었다. 특히 루소의 파벌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이 충돌은 경기장 내에서도 이어질뻔 했지만 사건 직후 경찰이 개입하며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이후 리버 플레이트 클럽은 양측의 주요 그룹원들의 출입을 금지했으나, 실질적으로 폭력을 근절하지는 못했고 몇 개월 뒤, 루소 파벌의 핵심 멤버였던 ‘곤잘로 아크로(Goncalo Acro)’ 살해 사건으로 이어졌다.


두 그룹은 2007년 5월 6일 다시 한번 충돌하게 된다. 이번 충돌은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 밖에서 발생했으며 충돌 과정에서 2명이 칼에 찔렸으며 여러 건의 경미한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월마트의 주차장에서 또 한차례의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2007년 8월 7일 밤에 비극이 발생한다. 바로 아드리안 루소의 오른팔이었던 ‘곤잘로 아크로(Gonzalo Acro)’가 체육관에서 운동을 마친 뒤 귀가하던 중 세발의 총격을 받아 병원에 실려갔고 다음 날 사망한 것이다. 그가 죽고 난 뒤 유족들과 루소는 언론에 나와 아크로는 권력 다툼에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건 직후 슈렌커 형제는 즉시 아크로 살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기소되었고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했다. 이 사건으로 바라브라바 멤버 중 다수가 용의자로 간주되었으며 결국에는 알란, 윌리엄 슈렌커 형제가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곤잘로 아크로 사망 이후 슈렌커 형제의 파벌은 완전히 몰락했고, 루소가 ‘Los Borrachos del Tablón’를 장악하게 된다.

후에 이탈리아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엘 콜로”루나(“El Colo” Luna)’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자신이 실수로 아크로에게 총을 쐈다고 자백했다. 그는 당시 왼손으로 총을 잘못 쏴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다.(2009년)



하지만 바라브라바 내부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피 비린내 나는 리버 바라브라바 내부 갈등이 절정에 이르었던 곤잘로 아크로 사망 당시, ‘팔레르모 그룹(grupo de Palermo)’이 스탠드의 취객들의 권력을 잡고 있었다. 이 그룹은 ‘루벤 핀토스(Rubén Oveja Pintos)’, ‘카를로스 베론(Carlos Urko Berón)’, ‘파블로 히론(Pablo Cuca Girón)’이 이끌던 세력으로 루소를 지지했다.
이 당시 루소는 경찰의 집중적인 단속과 내부 갈등의 장기화로 인해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때를 틈타 또 하나의 세력이 성장하는데, 스탠드의 취객들 내부의 주요 핵심 인물 중 한 명이던 고도이는 당시 루소 파벌의 핵심 그룹원들을 포섭해 세력을 확장했다. 2008년 중반, 벨레즈 경기장에서 벌어진 ‘서부 지역 반다(La banda del Oeste)’와 루소 그룹 잔당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스탠드의 취객들의 새로운 권력자로 ‘마르틴 아라우호(Martín Araujo)’와 ‘기예르모 “카베르나” 고도이(Guillermo Caverna Godoy)’가 등극하게 되었다.

카베르나 고도이는 킨초스 전투 당시 루소의 편을 들었었다. 하지만 내부 권력 투쟁이 심화되면서 결국 루소와는 적대적 관계로 변한 인물이다. 그는 리버 플레이트 클럽의 이사회가 선정한 7명의 Los Borrachos del Tablón 멤버 중 한 명으로, 천문학적 급여를 받는 정규 직원으로 임명된 바 있다. 특히 사기 행정 가담, 티켓 재판매, 사기 등 각종 불법 행위로 오랜 기간 법정 다툼을 벌였다. 2012년 루소를 완전히 축출한 고도이는 이후 오랜 기간 바라브라바 조직을 장악하며 불법 티켓 판매, 경기장 내 조직 운영 등을 주도했다. 참고로 루소는 2012년 이후 조직 내 영향력을 거의 상실하고 사실상 은퇴를 했다.
한때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 Los Borrachos del Tablón 내부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최소 6개의 세력이 명확하게 존재했다. 일각에선 이 전쟁에 참여한 잘 알려지지 않은 세력들이 더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경기장 출입 금지 조치를 받은 고도이는 여러 건의 형사 소송에도 임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주목받았던 혐의는 검찰관 노르베르토가 맡고 있는 티켓 암거래 및 바라브라바 조직 운영 혐의이다. 참고로 그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은 주로 고위급을 변호했던 ‘페르난도 부를란도(Fernando Burlando)’라는 변호사였다. 고도이는 직접 경기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으나 충성스러운 핵심 세력을 유지하며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에 반대하는 파벌은 ‘세르히오 알레한드로 메디나(Sergio Alejandro Medina)’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트럭 운전사 노조 VIP 회원’이었으며, 좌파 정치인의 경호를 맡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로마스 데 사모라(Lomas de Zamora)’ 지역의 ‘이녜니에로 부헤(Ing. Budge)’ 출신으로 극도로 폭력적인 세력을 이끌었으며 인근 도시들에서도 조직원을 모집해 세력을 확장했다. 그는 상당한 범죄 기록을 갖고 있으며 감옥에 수감된 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2015년에는 전쟁 무기 소지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은적 있다. 메디나는 기존 리더들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지만 카베르나의 몰락 이후 권력에 야심을 드러냈던 인물이다.
메디나는 모누멘탈 주변 상인들에게 돈을 강제로 취하려 한 혐의로 소송을 당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는데, 특히 조직원들과 함께 ‘라 살라다(La Salada) 시장’ 주변을 배회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는 조직 내부의 암투와 연관된 보복 공격으로 자택 인근에서 총격을 당한적도 있었다. 참고로 메디나 세력은 오랜 기간 리버 플레이트 바라브라바를 변호해 온 법률가 ‘디에고 발렌테(Diego Valente)’로부터 변호를 받았다.

또 다른 세력은 ‘베카르(Beccar)’ 파벌이다. 이들은 ‘마우로(Mauro)’, ‘레안드로(Leandro)’, ‘알레호 페라라스(Alejo Ferraras)’ 삼형제가 이끄는 그룹이다. 이들은 두 가지의 사건을 통해 유명해졌다. 하나는 2011년 리버 플레이트가 충격의 2부 리그 강등을 맞이했던 해, 벨그라노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당시, 맏형이 얼굴을 가린 채 경기장에 난입하여 선수들에게 위협을 가한 사건이었다. 두 번째는 2013년 콜롬비아와의 월드컵 예선전에서 리오넬 메시의 유니폼을 훔친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클럽 월드컵 결승전에서 FC바르셀로나와 맞붙었을 때, 삼형제 중 한 명이 경기장으로 난입하면서 또다시 주목을 받기도 했다. 베르카 파벌은 2016년부터 ‘산 이시드로(San Isidro)’ 지역의 ‘빌라 라 카바(Villa La Cava)’ 조직원들을 포섭하며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다음 세력은 ‘후안 카를로스 “치미” 레기사몬(Juan Carlos “Chimi” Leguizamón)’, ‘마리아노 “골로” 파탄촌(Mariano “Golo” Patanchon)’, ‘구스타보 “엘 우루과요” 라라인(Gustavo “El Uruguayo” Larrain)’가 이끄는 세력이다. 이들은 과거 리버 플레이트가 ‘호세 마리아 아길라르(José María Aguilar)’가 회장이던 시절, ‘시보리(Sívori)’ 구역을 장악한 이들에게 흘러들어간 불법 자금을 세탁하는 역할을 했다. 일부 핵심 멤버의 경우 경기장 출입을 제한하는 ‘트리부나 세구라(Tribuna Segura)’ 리스트에 올라 있지만 여전히 리버 플레이트 경기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목격되고 있으며, 악명 높은 킨초스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등 내부 전쟁 과정에서 여러 차례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또한 그들은 라 보카와 벨그라노 지역의 조직원들을 관리, 모집하고 있으며 슬럼가 ‘빌라 솔다티(Villa Soldati)’ 지역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인 ‘마르틴 바예호스(Martín Vallejos)’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여러 세력들이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와중, 가장 큰 경쟁 세력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서부 지역 반다(La banda del Oeste)’이다. 이들은 내부 전쟁 과정에서 스탠드의 취객들 내 축출된 여러 그룹과 인원들이 결집하여 연합한 세력이다. 2018년 말, 이 세력은 ‘엘 사파테로(El Zapatero·구두 수선공)’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알레한드로 플로레스(Alejandro Flores)’가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와 함께 2016년 말 감옥에서 출소하였고, ‘메를로(Merlo)’와 ‘모레노(Moreno)’ 지역의 폭력 조직을 통합하는 역할을 맡은 ‘마르틴 누녜스 지오고사(Martín Núñez Giogosa)’가 있다. 이들은 한때 앞선 리더였던 고도이를 몰아내려다 실패하기도 했다. 현재 그들이 서부 지역의 폭력 조직과 지역 정치권 인사들과 강한 연계를 맺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또 한 명은 한때 아드리안 루소의 오른팔이자 초기 피토바가스(요거트 반다·La banda del Yogurt)를 계승 했던 ‘아리엘 “파토” 칼바시(Ariel “Pato” Calvici)’이다. 그는 한때 루소 세력의 충성스러운 멤버 중 한 명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하지만 2013년 당시 서부 지역 반다의 리더인 고도이에 의해 축출되었고 그 후 복수를 실행했다. 그 일로 2년간 감옥 생활을 했고 출소 이후에도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으나 ‘필라르(Pilar)’와 ‘베나비데스(Benavídez)’ 지역에서 많은 조직원을 통제하며 ‘파라발란차스(Paravalanchas·난간 위 응원석)’를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스탠드의 취객들은 2020년대 들어서도 바라브라바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피 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혼란이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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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760429247
※ 최초 작성일 : 2025. 0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