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uals

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캐주얼’ 패션의 짧은 역사

‘캐주얼(Casual)’을 이해하려면, 그 이전에 등장했던 다양한 하위문화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영국에는 ‘테디 보이(Teddy Boys)’, ‘로커(Rockers)’, ‘스킨헤드(Skinheads)’, ‘모드(Mods)’, ‘펑크(Punks)’ 같은 여러 젊은이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이 하위문화들은 서로 스타일도 철학도 많이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패션과 음악이 모든 걸 움직이는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캐주얼 패션의 역사

1970년대 후반이 되자, 영국은 노동계급 사이에서 새로운 하위문화가 등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기존의 평범한 축구팬들과는 조금 다르다고 느끼던 젊은 팬들은, 경기장 테라스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1970년대 말쯤, 영국 클럽들은 유럽 대항전에서 꾸준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글래스고 셀틱(1967)’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1968)’가 유러피언컵을 들어 올린 적은 있었지만, 진짜로 영국이 유럽 무대에서 지배적인 존재가 된 건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 사이였다.

1977년부터 1984년까지, 유러피언컵 우승 팀 8팀 중 7팀이 잉글랜드 팀이었다. 이런 유럽 무대에서의 압도적인 활약 덕분에, 젊은 팬들은 자주 유럽의 이국적인 도시들을 원정으로 다니게 됐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 영국 경기장 테라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희귀한 브랜드들을 처음 접하게 된다.

팬들은 유럽 대륙에서 돌아올 때마다, ‘세르지오 타키니(Sergio Tacchini)’, ‘휠라(Fila)’, ‘디아도라(Diadora)’, ‘라코스테(Lacoste)’, ‘프링글(Pringle)’ 같은 고급 브랜드 옷을 잔뜩 사 들고 왔고, 이 옷들은 곧 테라스 위에서 새로운 정체성과 스타일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그중 라코스테와 세르지오 타키니는 캐주얼 시대 때 가장 인기 있었던 브랜드였다.

해외 원정을 다니며 팀을 따라다니던 팬들에겐, 그런 옷차림과 새로운 스타일이 일종의 자부심이 되었다. 축구 ‘훌리건(Hooligan)’ 문화가 점점 더 커져가던 시기였고, ‘멋지게 보이는 것’ 자체가 라이벌을 압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 된 거였다. 가장 무서운 훌리건 그룹이 되는 것만큼이나, 가장 스타일리시한 집단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했다.

이 시기는 지금처럼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가 없던 시절이다. 이 하위문화는 자연스럽게 퍼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룩북도 없고, 정해진 발매일도 없었다. 새로운 옷이나 신발 정보는 전부 입소문으로 퍼졌고, 토요일 축구장에 갔을 때 친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있는 걸 보는 순간, 그 안에서부터 은근한 경쟁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건 라이벌 집단 사이뿐 아니라, 같은 그룹 내에서도 벌어졌고, 옷이나 운동화가 희귀할수록 더 대단해 보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물론 유럽 대륙은 희귀한 아이템을 찾는 데 있어서 성지 같은 곳이었지만, 영국 안에서도 캐주얼 문화 확산에 기여한 로컬 혁신가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리버풀의 스포츠숍 주인이었던 ‘와드 스미스(Wade Smith)’는 직접 유럽으로 건너가서 레어템 운동화를 밴 가득 실어다 팔았다. 그는 초기 테라스 패션 가게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그 외에도 잉글랜드 전역에 젊은 캐주얼들의 수요를 채워주던 개성 있는 상인들이 여럿 존재했다.

Adidas Forest Hills는 70~80년대에 가장 희귀하고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던 운동화 중 하나였다.

음악 & 캐주얼 문화

이 하위문화를 하나로 묶어준 건, 희귀하고 독점적인 브랜드를 향한 갈망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훌리건 그룹들이 같은 스타일을 입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에도 확실히 ‘남북 간의 스타일 차이(North-South divide)’가 있었다.

예를 들어,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같은 북부 팬들은 주로 카구올 재킷, 스키니 진, 아디다스 운동화를 즐겨 착용했고, 런던 클럽들은 전신 트레이닝복 스타일을 더 많이 채택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캐주얼보다 먼저 등장했던 하위문화들에겐 음악이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캐주얼 문화는 축구와 패션이 중심이었지만, 음악도 분명히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음악에서도 역시 ‘남북 간 차이’가 존재했다. 이 시기는 영국 전역에서 훌륭한 밴드와 밴드 음악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경기장에 다니는 팬들에게 음악적 선택지가 넘쳐났던 시기였다.(자세한 내용은 글의 후반부 참조)

1989년, 밀월 원정에 간 리버풀 팬들의 모습. 1980년대 말쯤엔,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청바지는 점점 더 헐렁해지고, 아우터도 루즈핏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새로운 트렌드들이 막 나타나기 시작했던 거다.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 씬이 인기를 얻으면서, 슬림한 청바지랑 똑떨어지는 카구올은 헐렁한 청바지랑 루즈핏 티셔츠로 바뀌게 되었다.

90년대엔 한동안 더 전통적인 캐주얼룩으로 돌아가는 흐름도 있었지만, 그게 단순한 복귀는 아니었다. 테라스에서 보이는 브랜드들이 전보다 훨씬 더 고급화되었기 때문이다.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버버리(Burberry)’, ‘프라다(Prada)’, 심지어 ‘구찌(Gucci)’ 같은 브랜드들도 영국 전역의 경기장 주변에서 익숙한 풍경이 돼버렸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2000년대 이후까지 인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SNS랑 온라인 포럼 같은 게 등장하면서, 이 문화는 점점 더 접근하기 쉬워지고, 입소문만으로 퍼지는 특유의 느낌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여러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 하위문화를 기록하고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1970~80년대의 캐주얼이 특별했던 건, 그 배타성과 희소성 때문이었는데, 2000년대가 되면서 그 고유성이 조금씩 희미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Green Street(훌리건즈)’ 같은 영화들은 이 하위문화를 세상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이런 영화들이 캐주얼 문화를 과장하고, 결국엔 그 의미를 희석시켰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이런 하위문화가 그때처럼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걸 상상하기가 어렵다.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 ‘아디다스(Adidas)’ 같은 브랜드들은 여전히 축구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브랜드들이 사회 전반에서 너무 흔해졌다는 점이 다르다. 이제는 Stone Island의 나침반 로고가 더 이상 캐주얼 팬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배지라고 할 수 없게 돼버렸다.

테라스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 ‘Away Days’

머지사이드, 2007년 11월 : 리버풀 출신의 사진작가 ‘존 존슨(John Johnson)’은 촬영장을 천천히 거닐고 있다. 출연진들은 촬영 중간에 간단히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JJ’는 늘 그렇듯 자신의 믿음직한 니콘 D700을 들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JJ는 ‘케빈 샘슨(Kevin Sampson)’의 대표 소설을 영화화한 ‘어웨이 데이즈(Away Days)’의 촬영 현장에 있다. Away Days는 ‘버컨헤드(Birkenhead)’ 출신의 지루한 삶에 염증을 느낀 젊은 남성 ‘카티(Carty)’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대처 시대의 어두운 날들이 막 시작되었고, 카티는 9시 출근 5시 퇴근의 일상에서 벗어날 돌파구가 간절히 필요하다. 그 시대 많은 젊은 남성들처럼, 카티는 음악, 축구, 그리고 패션을 통해 그것을 찾는다.

카티는 ‘트랜미어 로버스(Tranmere Rovers)’의 훌리건 집단 일원인 ‘엘비스(Elvis)’를 만나면서, 곧 ‘더 팩(The Pack)’과 함께 로버스의 홈과 어웨이 경기에 따라다니게 된다. 이것은 카티가 늘 원하던 삶이었다.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 그리고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소설과 영화는 모두 축구, 음악, 패션의 중요성과 이들의 긴밀한 연결성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을 제외하면, 카티와 그의 친구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세 가지뿐이다. 트랜미어 로버스를 따라다니는 것, 최신 운동화를 신는 것, 그리고 리버풀의 유명 음악 클럽인 ‘에릭스(Erics)’에서 가장 멋진 밴드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줄 서는 것.

출연진들은 줄곧 전형적인 테라스 패션으로 꾸며져 있다. 카구올 재킷, 스트레이트 핏 청바지, 아디다스 운동화가 그것이다. 사운드트랙은 1970~80년대 뉴웨이브와 펑크 명곡으로 가득하다. ‘에코 앤 더 버니맨(Echo & The Bunnymen)’,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티어드롭 익스플로즈(The Teardrop Explodes)’ 등.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축구, 음악, 패션은 여전히 기묘한 삼각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세 요소의 결합은 당시만큼이나 지금도 중요하다. Away Days 같은 영화들은 분명히 다음 세대에 영향을 주었고, ‘캐주얼(Casual)’ 또는 ‘테라스(Terrace)’ 하위문화의 생명력을 이어왔다. 수많은 하위문화들이 생겼다 사라지지만, 캐주얼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다시 영화 촬영장으로..

출연진들이 점심을 먹으며 자리에 앉아 있는 사이, 예리한 눈을 가진 JJ는 촬영 기회를 포착한다. 배우들은 기차역 플랫폼 끝에 앉아 다리를 내리고 있고, JJ는 그들의 허리 아래만을 담은 사진을 찍는다. 이 컷의 중심은 아디다스 운동화였다. 당시 JJ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이 사진은 ‘축구 & 테라스’ 패션 문화에서 가장 상징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될 운명이었다.

Q : ‘Away Days’의 운동화 사진은 테라스 문화에서 아이코닉한 이미지로,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장면이 되었는데요. 당시 그 사진이 그렇게 영향력을 가지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JJ : 고마워요. 사실 책 자체가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고, 이 이미지는 원래 책 표지 컨셉을 느슨하게 차용한 것이긴 해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부 다 우연이었어요. 결정적인 그 순간에 우연히 철로를 건너다가 마주친 장면이었죠. 완전히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사실 그때는 다들 점심을 정신없이 먹고 있던 상황이었거든요. 얼굴을 찍을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어요!

Q : 그 사진은 페이스북 커버 사진부터 스티커까지 전 세계에서 재사용되고 재가공되었는데요, 가장 뜻밖의 장소에서 이 이미지를 본 적이 있다면 어디였나요?

JJ : 비슷한 이미지가 수십 번은 재현된 걸 봤는데요, 가장 황당했던 건 어떤 남자의 스쿠터 옆면에 그 사진이 붙어 있는 걸 본 거예요.

Q : 캐주얼 문화의 뿌리에 대해서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노스웨스트 지역이 이 운동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리버풀과 맨체스터 같은 도시들이 패션과 문화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JJ : 리버풀과 맨체스터는 항상 강력한 음악적 전통을 지닌 도시였어요. 그래서 노스웨스트 출신의 젊은이들이 유럽 전역을 여행하면서 본 것들을 흉내 내고, 거기에 자신들만의 색을 입히는 건 당연한 일이었죠.

Q : 캐주얼 무브먼트는 때때로 ‘영국의 마지막 하위문화’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런 문화가 다시 등장할 수 있을까요?

JJ : 그와 같은 하위문화가 다시 그렇게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봐요. 다만, 캐주얼 하위문화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부활을 반복할 겁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그 문화가 아예 사라진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죠.

Q : Away Days는 사운드트랙으로도 찬사를 받았죠. 1980년대 신스/뉴웨이브 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무엇인가요?

JJ : ‘Ultravox’의 ‘Just For A Moment’요. 공교롭게도 Away Days 사운드트랙에도 실려 있어요. 정말 아름다운 곡입니다.

Q : 고마워요, 존노. 당신의 작품은 어디에서 더 볼 수 있을까요?

JJ : 대부분의 SNS에서 @john.johno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고, 제 작업 전반은 인스타그램에서 보실 수 있어요. 제 작품을 소장하고 싶으시다면 웹사이트 https://johnjohnson-photography.com 으로 방문해 주세요.

테라스의 사운드트랙 : 음악과 캐주얼 문화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캐주얼 문화가 전성기를 누릴 때, 캐주얼들은 어떤 밴드들을 들었을까? 그리고 오늘날, 경기를 직접 찾는 노동계급 팬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현대 밴드들은 누구일까?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테라스 문화’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음악은 축구 관중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축구장에서의 응원가와 집단 합창의 기원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중 하나는, 1960년대 중반쯤 이미 영국 전역의 축구 팬들이 대중가요의 가사를 각자의 팀에 맞춰 바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1964년, BBC의 프로그램 Panorama는 리버풀의 안필드를 방문해, 열기로 가득한 ‘더 콥(The Kop)’의 모습을 담았다. 아래 영상에서는 ‘The Beatles’의 ‘She Loves You’를 팬들이 합창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영상은 경기장에서 팬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최초로 기록된 사례 중 하나로, 음악이 어떻게 축구장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모드, 스킨헤드 & 펑크

캐주얼 문화는 영국 전역에서 생겨났지만, 그 중심에는 확실히 런던과 노스웨스트 지역의 그룹들이 있었다. 런던은 원래부터 문화의 중심지였고, 1960~70년대엔 ‘모드(Mod)’, ‘스킨헤드(Skinhead)’ 같은 하위문화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타일 면에서도, 모드에서 캐주얼로 넘어가는 건 굉장히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The Who’, ‘The Small Faces’, ‘The Kinks’ 같은 밴드들은 전부 모드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레게나 소울 음악의 유행은 모드와 스킨헤드 사이의 취향이 겹치는 부분을 잘 보여줬다. ‘폴 웰러(Paul Weller)’가 이끌던 ‘The Jam’도 모드 씬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1977년에 첫 앨범을 내면서 런던의 캐주얼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게 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런던 캐주얼들 사이에서 또 하나 인기를 끌었던 음악은 펑크, 그중에서도 ‘Oi 펑크(Oi Punk)’였다. 가장 유명한 Oi 펑크 밴드 중 하나는 ‘Cockney Rejects’였는데, 이 밴드는 웨스트햄의 훌리건 그룹인 ‘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ICF)’과 연관이 있었다. 당시 축구 관련 폭력이 심하던 시기라, 이들의 관계는 자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맨체스터랑 리버풀 쪽으로 올라가면, 진짜 재능 있는 밴드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다. ‘머지사이드(Merseyside)’에서는 ‘뉴웨이브 씬(New Wave Scene)’이 절정에 달했었고, ‘Echo & The Bunnymen’, ‘The Teardrop Explodes’, ‘Frankie Goes to Hollywood’ 같은 밴드들이 리버풀 FC, 에버튼 FC, 트랜미어 로버스의 캐주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편 맨체스터에선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까지 경기장에 다니는 팬들이 ‘Joy Division(나중엔 New Order)’, ‘The Smiths’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 덕에 어떤 음악을 들을지 행복한 고민을 할 정도였다.

매드체스터 & 브릿팝

아마 캐주얼 문화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음악 시대는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의 ‘매드체스터(Madchester)’ 그리고 ‘브릿팝(Britpop)’ 시대일 것이다.

이 시기의 밴드 중 단연 가장 영향력 있었던 건 맨체스터 출신의 ‘The Stone Roses’이다. 다양한 사운드를 결합한 이들의 데뷔 앨범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 축구를 사랑하던 노동계급 출신 청년들이 만든 밴드였기 때문에, 맨체스터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의 테라스에서 사랑받는 밴드가 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물론 ‘오아시스(Oasis)’와 갤러거 형제들도 경기장을 찾는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지만, ‘The Stone Roses’는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축구 팬들을 하나로 묶는 밴드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음악이 독창적인 건 물론이고, ‘밴드를 상징하는 아트워크(그래픽 디자인)’도 아주 유명하다. 이 디자인은 수없이 많이 재해석되고 복제돼서, 전 세계 팬 그룹의 스티커나 티셔츠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요소가 되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은 ‘The Stone Roses’의 명곡 ‘I Wanna Be Adored’를 재해석한 응원가를 불렀다. 보헤미안 FC의 팬 그룹 ‘Notorious Boo Boys’는 그들의 또 다른 명곡 ‘Beautiful Thing’의 가사가 담긴 걸개를 펼치기도 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캐주얼 문화가 처음 형성되던 시기에 축구 팬들 사이에서 사랑받았던 밴드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열렬히 추앙받고 있다. 요즘 경기장을 찾는 팬들이 좋아하는 현대 밴드들을 보면, 취향이 꽤 다양해졌고, 이제는 예전처럼 모든 축구 팬이 한목소리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밴드를 꼽는 게 어려워졌다.

그래도 ‘Oasis’, ‘The Stone Roses’, ‘The Jam’ 같은 밴드에서 영향을 받은 ‘The Courteeners’, ‘Gerry Cinnamon’, ‘Kasabian’ 같은 현대 밴드들도 확실히 인기가 많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여전히 경기장 분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예전 밴드들이다. 그들이 만든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테라스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다.

※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
※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96328258
※ 최초 작성일 : 2025. 06.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