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Barra del Rojo(붉은 군단)’은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Cinco Grande(씽코그란데·빅5)’ 중 하나인 클럽 아틀레티코 인데펜디엔테의 바라브라바 그룹 전체를 통칭하는 이름이다.

또한 인데펜디엔테를 응원하는 인차와 관중 모두를 일컫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Rojo’는 인데펜디엔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개의 바라브라바 그룹 중에서도 현재는 ‘Los Dueños de Avellaneda(아베야네다의 주인)’라는 파벌이 전체 조직을 이끄는 사실상 리더 그룹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룹은 최근 몇 년간 응원의 중심 구역인 스탠드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최근 리더인 ‘Juani(후아니)’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룹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때때로 이들은 폭력적인 사건과 연관되기도 한다. 지난 2024년 9월에는 일부 그룹원들이 경기 중 다른 인데펜디엔테 팬들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Los Dueños de Avellaneda’는 같은 팀을 응원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파벌 ‘Los Mismos de Siempre(변함없는 자들)’라는 그룹과 내부 동맹 관계에 있다. 해당 그룹은 ‘César “Loquillo” Rodriguez(세사르 “로킬로” 로드리게스)’가 리더이며 두 파벌은 경기장의 서로 다른 구역에 위치하면서 경쟁하지만 대체로 서로를 존중하며 비교적 평화로운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한때 이들은 클럽 본부 근처에서 대규모 무력 충돌을 벌여 지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후에도 두 파벌 간의 긴장은 계속되고 있지만 가급적 평화를 지속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성기 Los Diablos Rojos 시절, 강력한 리더 베보테의 철권통치, Hinchadas Unidas Argentina 조직
과거 인데펜디엔티 바라브라바는 ‘Los Diablos Rojos(붉은 악마)’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들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강력한 바라브라바 그룹 중 하나였다. 그러나 리더인 ‘Pablo “Bebote” Álvarez(파블로 “베보테” 알바레스)’가 그룹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서 이전의 지배적인 힘을 잃고, 경기장 안팎에서 영향력과 권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베보테’는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 그룹의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가 떠난 후 그룹의 쇠퇴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인데펜디엔테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남쪽 아베야네다에 위치하며, 이곳은 전통적으로 노동자 중심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도시였다. 자연스럽게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의 구성원 대부분은 ‘Clase Obrera(노동자 계급)’ 출신이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베보테 알바레스가 바라브라바 내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이전 바라브라바의 리더였던 ‘Raúl(라울)’을 살해한 후 권력을 장악했으며 강력한 폭력 조직을 구축하고 바라브라바를 통해 다양한 이권 사업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베보테가 리더로 활동했던 시기,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강력한 그룹 중 하나로 군림했다. 이 그룹의 주요 리더들은 인데펜디엔테뿐만 아니라 월드컵이나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 대표님을 응원하기 위해 해외 원정을 다니기도 했다. 베보테는 그 유명한 ‘Hinchadas Unidas Argentinas(아르헨티나 인차 연합)’을 조직하며 각 팀의 바라브라바들과 연합해 국제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HUA’ 결성 이면에는 단순히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정치적, 금전적 이익이라는 목적도 있었다.

당시 베보테는 정치인들과의 연계로 선거 기간 동안 돈을 받고 시위를 조직하거나 집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 응원을 빌미로 돈을 받고 바라브라바 멤버들을 해외로 보내는 일에 개입했다. 그는 폭력과 철권통치로 악명이 높았는데, 조직 내부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거나 거대한 불법 비즈니스(티켓 암거래, 마약 유통, 협박 등)를 운영하는 한편, 경기장에서 자신이 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클럽 내부 인사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구단 내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이러한 철권통치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많은 적을 만들었고 결국 내부 분열과 함께 그의 영향력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더불어 바라브라바 문화의 어두운 면 중 하나인 폭력 사건, 경기장 내 충돌, 금전 거래 및 정치적 연계 등을 문제 삼은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체포되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 사실상 베보테는 바라브라바 내에서 권력을 상실해 자취를 감췄으며, 2010년대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의 강력한 단속까지 맞이한 ‘Los Diblos Rojos’의 활동은 점점 더 위축되었다.
현재 ‘Los Diblos Rojos’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강력한 단일 그룹의 형태가 아니다. 또한 인데펜디엔테 구단 자체가 재정적 위기와 운영 문제를 겪으면서 바라브라바 그룹의 영향력도 점차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과거와 같은 지배력을 회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며 ‘Los Diblos Rojos’는 ‘Los Dueños de Avellaneda’와 ‘Los Mismos de Siempre’ 같은 파벌로 분열된 상태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그룹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목표(팀 응원·구단 내 영향력 확대·바라브라바 유지)’를 공유하며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라싱 클럽 La Guardia Imperial과의 오랜 라이벌 관계
인데펜디엔테, 라싱 클럽 양측 바라브라바의 폭력적 충돌은 1950년대부터 이어져 왔다. 두 클럽은 모두 아르헨티나 아베야네다 지역을 연고로 하는 라이벌로, 두 팀 간의 대결은 ‘Clásico de Avellaneda(클라시코 데 아베야네다)’라고 불린다. 두 팀의 클라시코는 단순한 축구 시합을 넘어, 양측의 바라브라바 그룹 ‘Los Diablos Rojos’와 ‘La Guardia Imperial’ 사이의 오랜 적대감과 충돌로 이어졌다. 이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경기장 내외에서 난투극과 거리에서의 대규모 폭력 범죄를 벌이곤 한다.

특히 1990년대 ~ 2000년대 바라브라바 문화 확산으로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는데, 최근에는 경찰과 정부의 강력한 단속으로 과거와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는 줄었지만 여전히 경기 전후로 긴장감이 존재한다. < Los Dueños de Avellaneda + Los Mismos de Siempre vs La Guardia Imperial > 이 구조는 단순한 바라브라바 그룹 간의 대결이 아니라 아베야네다 지역 전체를 둘러싼 역사적 라이벌 관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La Barra del Rojo의 구조와 주요 서브그룹
‘La Barra del Rojo’는 하나의 그룹처럼 운영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러 개의 서브그룹들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조직이다. 이러한 서브그룹은 연고지인 아메야네다뿐만 아니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도시권, 부에노스 아이레스시, 라 플라타, 그리고 그 주변 지역에서 모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 대게 각 서브그룹들은 주로 자신들의 출신 지역 이름이나 리더의 별명을 그룹명으로 사용한다. 또한 대다수 그룹들이 빈민가와 저소득층 거주 지역에서 형성되었으며, 특정 경기나 사건에 따라 내부적으로 경쟁하거나 연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령 평소 내부적으로 세력 다툼을 벌이기도 하지만, 외부 세력(특히 라싱 바라브라바)과 맞설 때는 공동 전선을 형성하는 게 일반적이다.

● 주요 서브 그룹
Fiorito –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의 빈민가인 빌라 피오리토(Villa Fiorito) 출신
Villa Corina – 아베야네다 내 빌라 코리나 지역 기반
Los Gerlis – 아베야네다의 헤를리스(Gerlis) 지역에서 형성된 그룹
Los Bera – 베라사테기(Berazategui) 지역 기반
La 4 de Julio – 특정 지역보다는 조직화된 소규모 그룹
Los Camioneros – 이름 그대로 트럭 운전사들로 구성된 그룹
La Tranquila – ‘조용한 자들(La Tranquila)’이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그룹
La Banda de San Justo – 부에노스아이레스 서부 산 후스토(San Justo) 지역 출신
Los Polacos – ‘폴란드인들(Los Polacos)’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룹
Los Rana – ‘개구리들(Los Rana)’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서브그룹
La Pepsi – 브랜드 이름을 따온 특이한 그룹명
● 서브그룹들의 주요 출신 지역
아베야네다(Avellaneda)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산 후스토(San Justo)
베라사테기(Berazategui)
사란디(Sarandí)
메를로(Merlo)
빌라 도미니코(Villa Domínico)
빌데(Wilde)
라누스(Lanús)
클레이폴레(Claypole)
킬메스(Quilmes)
빌라 피오리토(Villa Fiorito) → 디에고 마라도나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한 빈민가
로마스 데 사모라(Lomas de Zamora)
반필드(Banfield)
라 플라타(La Plata)

바라브라바 내에서는 엄격한 계층적 질서가 존재한다. 이는 조직의 효율적인 운영과 권력 분배를 위해 만들어진 구조로, 서열에 따라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바라브라바는 단순한 축구 응원단이 아닌 철저한 위계질서 속에서 폭력과 응원, 자금 운용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대게 이러한 계층은 최상층과, 중간층, 실행층, 하위층 이렇게 4개의 질서로 정립된다.
● 첫 번째 서열 – 지도부 (리더 그룹)
구성원 : 10명 미만 | 역할 : 바라브라바 최고 지도자 그룹 | 특징 : 조직 전체를 지휘하는 ‘수장(El Líder)’과 주요 부하들로 구성된 1등 서열이다. 각 주요 서브그룹의 두목(리더)들이 포함되며, 이들은 최소 10년 이상 바라브라바 그룹원으로 활동해야 지도자가 될 수 있고, 주로 자금 관리 및 조직 운영을 담당하며 바라브라바 내 업무 분배, 폭력 계획, 돈 분배 등 실질적 권력을 행사한다.
● 두 번째 서열 – 중간 관리자
구성원 : 15 ~30명 | 역할 : 조직의 실무를 담당하는 핵심 운영진 | 특징 : 각 서브그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멤버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신입 모집, 경기장 정보 파악, 적대적 바라브라바 감시, 이동 차량(버스) 대여 등 운영 업무를 담당한다. 또한 경찰 및 구단과의 커뮤니케이션, 관계 관리에도 임하며 조직 확장을 위해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세 번째 서열 – 실행 부대
구성원 : 약 400명 | 역할 : 실질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중견 멤버들 | 특징 : 바라브라바로 몇 년 동안 활동했지만, 핵심 지도부에는 속하지 않은 멤버들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경기장에서 북(드럼)과 깃발을 관리하며 응원 분위기를 주도하고, 조직 내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강한 충성심을 요구받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 네 번째 라인 – 일반 구성원
구성원 : 1,000명 이상 | 역할 : 일반 바라브라바 멤버들 | 특징 : 스스로 결정권이 없으며, 위 계층의 지시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 모든 구성원은 특정 서브그룹(Subgrupo)에 소속되어 있으며, 바라브라바 간 충돌이 발생하면 강제적으로 싸움에 참여해야 한다. 주로 단순한 응원, 거리 행진, 단체 행동을 수행한다.
La Barra del Rojo 주요 자금 조달 방식
‘La Barra del Rojo’는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것을 넘어 범죄 활동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특히 베보테가 이끌던 시기에 다양한 불법 사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였으며, 이는 바라브라바가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노조 및 정치권과도 깊이 얽혀 있으며 조직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고용된 폭력배’ 역할도 수행하는 등 아르헨티나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조직체를 이루고 있다.

● 경기 티켓 암거래
경기 티켓을 대량으로 확보한 후 암거래(리셀)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이는 바라브라바가 구단 내부와 연결되어 있어 티켓을 직접 확보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인기 있는 경기에서는 티켓 가격이 몇 배로 뛰어올라 큰 수익을 남기기도 한다.
● 마약 거래
바라브라바 일부 서브그룹이 마약 유통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 경기장 주변이나 바라브라바 내부에서 마약을 판매하여 추가적인 수익 창출하며, 아르헨티나의 여러 바라브라바 그룹이 코카인과 대마초 밀매에 연루되어 있고, ‘La Barra del Rojo’도 예외가 아니다.
● 정치 조직과의 연계 – ‘폭력부대’ 역할
일부 서브그룹이 노조 및 정치 단체의 ‘폭력 부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로 ‘CGT(아르헨티나 노동자연맹)’과 ‘Sindicato de Camioneros(트럭 운전사 노조)’ 같은 단체와 연결되고 있으며, 필요할 때 폭력 시위를 주도하거나, 반대 세력을 위협하는 역할을 맡는다. 노조 및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대가로 바라브라바에게 금전적 지원을 제공한다.
● 구단 관계자 및 선수 협박
바라브라바는 인데펜디엔테 구단 내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구단 경영진 및 선수들을 협박하여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 특정 선수들에게 “우리 조직을 위해 돈을 내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경우도 있으며, 특히 구단이 성적 부진을 겪을 경우, 선수들에게 폭력적 위협을 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 바라브라바와 CGT 및 정치 조직과의 관계
2006년 조사에 따르면, 바라브라바 내 서브그룹 ‘Los Polacos’의 리더이자, ‘Los Diablos Rojos’의 주요 간부 중 한 명인 ‘Polaco(포라코)’는 과거 ‘CGT(아르헨티나 노동자연맹)’의 사무총장인 ‘Hugo Moyano(후고 모야노)’의 경호원 역할을 했으며, 여전히 그 역할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라브라바가 단순한 축구 조직이 아니라, 노동조합 및 정치권과 깊이 얽혀 있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조직임을 보여준다.
인데펜디엔테 클럽과 La Barra del Rojo의 갈등

2011년 말, 인데펜디엔테의 새 회장으로 ‘Javier Cantero(하비에르 칸테로)’가 선출되면서 기존 바라브라바와 구단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 시작되었다. 칸테로는 구단을 재정적으로 회복시키고 바라브라바의 특권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강력한 저항을 불러오며 결국 클럽 내부의 대규모 위기로 이어지게 된다. 칸테로는 경제학자이면서도 기존 인데펜디엔테의 경영진을 반대하는 야권 후보로 선출된다. 당시 인데펜디엔테는 재정적 위기에 직면했으며 그 가운데 바라브라바와의 연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었고, 칸테로는 선고 공약으로 바라브라바가 누려온 특권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La Barra del Rojo’는 경기장에서 시합 중 응원을 중단하며 침묵 시위로 일관했고, 인데펜디엔테의 열정적인 응원이 사라지자 실제로 클럽 분위기가 침체되기 시작한다. 이런 와중에 칸테로는 클럽 사무실을 습격한 일부 바라브라바 그룹원들에게 살해 위협을 받기까지 했다. 계속된 바라브라바와의 폭력적 사건으로 구단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칸테로는 이러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바라브라바 척결을 강행하며 정치인들과 유명 인사들의 지원을 얻어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미 깊이 뿌리내린 구단과 바라브라바 간의 관계를 완전히 끊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칸테로의 개혁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바라브라바는 경기장 내외에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클럽 내부에서도 칸테로의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등, 내부 갈등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과거 몇 가지 대표적인 폭력 전과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는 라이벌 팀이 아니더라도, 다른 팀의 바라브라바는 기본적으로 적으로 간주한다. 인데펜디엔테의 바라브라바는 라싱 바라브라바와 경기장 안팎에서 가장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또한 이들은 경기장 밖에서도 도시 내 패권을 놓고 빈번하게 충돌한다. 하지만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 산 로렌소 등과도 지속적인 대립을 펼치며 어떤 팀의 바라브라바든 기본적으로 ‘적’으로 간주하는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아무래도 이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라싱 클럽의 ‘La Guardia Imperial’이다.

1997년, 아베야네다에서 라싱 클럽과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가 끝난 후, 라싱 바라브라바 그룹 ‘Racing Stones’ 소속의 ‘Waldo Rodríguez(왈도 로드리게스)’가 경기장 밖에서 살해됐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은 당시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 멤버인 ‘Walter Rinaldi(월터 리날디)’였고, 그는 용의자로 지목되어 기소됐다. 2001년에는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또 한 명의 라싱클럽 팬이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에게 살해됐다. 이는 인데펜디엔테와 라싱 클럽 바라브라바 간의 극심한 적대감의 결과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4년, 에콰도르 키토에서 열린 엘 나시오날과 인데펜디엔테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경기에서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는 경찰과 충돌하며 국제적인 스캔들을 일으켰다. 이 일로 2명의 멤버가 에콰도르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2일 후 석방됐다. 이외에도 다른 클럽의 팬들, 경찰과의 충돌에 적극 가담하는 등 폭력적인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2006년, 아르헨티나 전 대통령이자 ‘페론주의(Peronismo)’의 상징적 인물인 ‘Juan Domingo Perón(후안 도밍고 페론)’의 장례 행렬에서 ‘La Barra del Rojo’ 소속 일부 멤버들이 폭력 사태에 휘말렸다. 당시 전 대통령의 유해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Cementerio de La Chacarita(라 차카리타 묘지)’에서 ‘San Vicente(산 비센테)’의 여름 별장 내 영묘로 이송되고 있었고, 상당수의 패론주의자들과 주요 정치 및 노동조합 관계자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거기에는 ‘La Barra del Rojo’의 일부 구성원도 함께 했다. 또한 ‘Estudiantes de La Plata(에스투디안테스 데 라 플라타)’와 ‘Defensores de Cambaceres(캄바세레스)’의 바라브라바 멤버들도 있었다. 이들은 주로 ‘아르헨티나 노동자연맹(CGT)’, ‘트럭 운전사 노조(Sindicato de Camioneros)’, ‘건설 노동조합(UOCRA)’ 소속이었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했다. 같은 페론주의 성향의 노동조합 사이에서도 바라브라바 소속이 갈리면서 긴장감이 조성되고, 결국 폭력 사태로 이어진 사례이다. 당시 경찰은 사태가 더 악화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개입했으며, 이후 행사는 정상적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이 충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은 ‘La Barra del Rojo’의 멤버인 ‘Jorge “Madonna” Quiroz(호르헤 “마돈나” 키로즈)’이며, 그는 당시 폭력 사태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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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784498962
※ 최초 작성일 : 2025. 03.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