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IBELLI DEGLI STADI – Una storia del movimento ultras italiano(스탠드·경기장의 반항아들 – 이탈리아 울트라스 운동의 역사) ‘는 ‘피에를루이지 스파뇰로(Pierluigi Spagnolo)’가 쓴 책으로, ‘울트라스(Ultras)’ 세계를 선입견 없이 조명한다. 좋든 나쁘든, 울트라스는 이탈리아 축구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거의 반세기에 걸친 결속과 열정, 독창성, 그리고 민속 문화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축구에서 폭력을 조장하는 훌리건으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은 오늘날 진정성을 잃어버린 세상 속에서 마지막 남은 낭만주의자들로 여기기도 한다. 울트라스 운동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겉모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남성(때로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이 집단이 자발적이고, 계층을 넘나들며, 체제에 반하는 집합체라는 시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피에를루이지 스파뇰로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로, 관중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거울이라는 점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1960-70년대 초반 영국의 팬 문화를 모방한 이탈리아의 초기 울트라스 그룹의 탄생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의 전성기, 1990년대의 변화, 그리고 현대 축구의 상업화와 이에 대한 울트라스의 반응을 다룬다. 또한 울트라스 운동의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분석하며, 그들이 단순한 폭력 집단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역할과 정체성을 가진 집단임을 강조한다. 지금부터 저자가 책에 써낸 내용의 일부를 소개하자면…
1968년은 사회적, 문화적, 행동 양식 전반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이 시기는 상징적으로도 이탈리아에서 울트라스 운동이 시작된 시점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이탈리아의 울트라스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68년은 울트라스 세계가 탄생한 데 있어 결정적인 해이다.
1968년, AC 밀란의 ‘Fossa dei Leoni’가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다음 해인 1968년, 인터 밀란의 ‘Inter Boys’와 삼프도리아의 울트라스, 그리고 몇 년 후 토리노의 울트라스가 등장했다. 이어서 1971년엔 베로나, 1972년엔 나폴리, 1973년엔 제노아와 피오렌티나, 1974년엔 볼로냐의 울트라스들이 등장했다.

당시의 사회·문화적 배경, 즉 광장에 모여드는 군중 사이에서 정치적 참여의 확대와 같은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하위문화가 탄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현상은 수많은 정당과 협회, 노동조합보다도 더 오래 사회 변화를 견뎌내며 생존해왔다. 이 시기 이탈리아 사회에서는 ‘참여’라는 키워드가 확산되었고, 단순한 관중은 ‘팬’으로, 열성적인 팬들은 ‘울트라스’로 여겨졌으며, 그들은 경기를 단순히 관람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들은 응원 도구를 직접 준비하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카드 섹션이나 홍염, 연막탄, 색종이 던지기와 구호 외치기, 북, 확성기 등을 사용한 꼬레오그라피를 통해 자신들의 팀을 응원했다. 이들이 경기장에 들고 온 것은 단순한 응원 행위가 아니라, 거리 시위에서 사용되던 언어, 상징, 공격성, 대립적인 태도였다.
최초의 울트라스 그룹들이 정치적인 색채를 띤 이름들인 ‘브리가테(Brigate)’, ‘페다인(Fedayn)’, ‘세템브레 비안코네로(Settembre Bianconero)’를 사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광장에서 펼쳐지던 그 정치적 풍경과 갈등 구조 그대로가 경기장 내부로 옮겨졌던 것이다.
반목과 정치 갈등의 시대가 축구장에 미친 영향
1970년대는 반목과 강한 정치적 갈등의 시대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꾸르바(Curva)’에는 어떻게 반영되었을까? 1970년대에 울트라스 현상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이탈리아 전역의 모든 팬층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70년대가 끝날 무렵에는, 조직적인 응원을 위해 꾸르바에 모이는 관행이 존재하지 않는 경기장은 더 이상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한편, 시민 사회 전반에 드리워진 갈등의 분위기는 그대로 관중석에도 반영되었다. 바로 이 시기부터, 이탈리아 축구에서의 폭력 양상이 바뀌게 된다. 과거에는 대중이 선수나 심판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면, 이제는 ‘팬 vs 팬’의 대립으로 그 폭력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1980년대는 한편으로는 마라도나와 플라티니 같은 선수들이 등장하고, 베로나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베를루스코니의 밀란이 성공적 기반을 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팬덤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동시에 더욱 과격해졌다. 1989년, 처음으로 법률 401호 ‘DASPO(출입 금지 명령)’가 도입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성장의 시기였지만, 동시에 강한 모순이 존재했던 이 시기, 울트라스에게는 어떤 시대였을까?
이 시기는 바로 ‘운동의 봄’이 일어난 시기이다. 대규모 원정 응원이 흔해졌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카드 섹션과 응원 연출이 펼쳐지던 때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의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80년대는 결국 ‘안토니오 데 팔키(Antonio De Falchi)’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는 로마 팬이었으며, 밀란 팬들의 집단적인 공격을 피해 달아나다 심장마비로 숨졌다.
이 사건은 ‘DASPO(출입 금지 명령)’ 법률이 도입된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이는 국가 권력의 직접적인 대응이기도 했다. (10년 후, 살레르노 팬 몇 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원정 팬들을 위한 ‘특별 기차 운행 제도’가 폐지된 것과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울트라스 운동의 절정과 쇠퇴의 전환점

하나의 결정적인 순간은 ‘1993년, 유료 방송(Pay TV)의 출범’이다. 또 하나의 중대한 순간은 ‘1995년 1월, 제노바에서 일어난 ‘빈첸초 스파뇰로(Vincenzo Spagnolo)’ 살해 사건’이다. 나는 이 사건이 울트라스 세계를 가장 깊이 더럽히고, 상처 입히고, 충격을 안겨준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 이후 경기는 중단되었고, 제노바에서는 집회가 열렸으며, 그 자리에는 ‘Basta Lame, Basta Infami(칼은 이제 그만, 배신자도 이제 그만)’이라는 유명한 문구의 전단이 배포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울트라스들에게 ‘자기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자기반성의 움직임은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얼마 안 가 칼이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사건이 울트라스 세계의 쇠퇴를 알리는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울트라스는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며, 같은 것이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유료 방송, DASPO 강화, 티켓 실명제, 회전식 게이트, 피사누 법령, 무관중 경기, 보안 검색대, 집단 경고, 팬 ID 카드 등.. 2000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은 울트라스들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 축구 팬들까지도 서서히, 한편으로는 가차 없이 관중석을 떠나게 만든 시기였다.
이 시기는 한쪽에서는 경찰, 국가, 축구 협회가, 다른 한쪽에서는 울트라스들이 맞서는 대립의 절정을 이루는 시기이기도 하다. 근시안적인 억압의 시기이기도 했으며, 그 억압은 관중석을 사막처럼 만들어 놓고, 그런 결과를 ‘평화’로 착각하는 잘못을 범한다. 대부분의 경우가 ‘기본적인 자유의 점진적 상실’로 이어졌다. 이러한 조치들이 축구를 하나의 비즈니스로 보는 관점에 부합하기 위한 기능적 수단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반동적이고 일반적인 대응이었을까?
직설적이고 단정적인 대답을 하는 것은 어렵다. 국가는 아마도 도덕주의적인 태도로 대중 여론을 달래기 위해 반응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대응이 유료 방송 등 경제적인 이해관계에 힘을 줬다는 것에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축구 협회의 몇몇 결정은 경기장 관람을 장려하기보다는 TV 시청을 쉽게 만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가격 인상을 통해 티켓 구매를 어렵게 만들고, 터무니없는 시간대에 경기를 편성하는 것 등이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경기를 보게 만들거나, 더 부유한 관중층을 대상으로 한 것처럼 보인다.
일부 결정은 정말로 그러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또한 관중이 적은 경기장을 통해 팬 집단을 통제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막을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 부른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축구의 대중적인 영혼은 사라지게 되었다.
울트라스와 축구 팬들의 미래는 경기장이 아니라, 도심 외곽의 운동장과 ‘서민 스포츠 클럽’에 있는 걸까?

내 생각에는 울트라스의 순수하고 원초적인 영혼은 바로 그곳에 있다고 본다. 돈이 존재하지 않는 곳 말이다. 나는 내가 가장 잘 아는 현실, ‘이데알레 바리(Ideale Bari)’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선수들이 무보수로 뛰고, 클럽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매달 내는 회비, 그리고 굿즈나 티셔츠를 판매하는 행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운영된다.
그런 현실 안에서, 사람들은 진심으로 무언가의 일원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팀을 사랑하고, 함께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반면에 막대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선수들은 백만장자나 다름없으며, 꾸르바는 암표 거래가 만연하고, 그런 상황에서는 울트라스조차도 예전만큼 순수하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걸 일반화하려는 건 아니고, 일부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울트라스는 죽지 않았고, 꾸르바는 여전히 지난 50년간 가장 폭넓은 사회적 결속의 공간이자 매주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생생한 사회적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확신한다. 한때의 울트라스 정신은 정말로 3부 리그 경기장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그곳에서, 억만장자 축구에 질린 팬들이 자기만의 팀을 만들고, 울트라스는 다시 울트라스가 될 수 있다. 연막탄을 터뜨리고, 맥주를 마시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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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35848369
※ 최초 작성일 : 2025.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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