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쇼스 노이스(Boixos Nois)’는 1981년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팬클럽으로 창설되었다. ‘Boixos Nois’를 영어로 직역하면 ‘미친놈들(Crazy Boys)’라는 뜻이다. 사실 이 그룹명은 카탈루냐어 문법상 맞춤법 오류가 있으며, 고유명사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에서 비롯된 이름은 단순한 팬 그룹명을 넘어서, 하위문화적 정체성과 거리 문화적 뉘앙스를 담은 고유 브랜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그룹은 처음에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집단이었으며, 카탈루냐 독립과 좌파 정치 성향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시 구단 회장인 ‘호셉 누녜스(Josep Núñez)’를 권위주의적 인물로 간주하며, 구호와 현수막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를 비판했다.
보이쇼스 노이스는 불과 4년 만에, 누녜스 회장 재임 기간 동안 구성원 수가 700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누녜스는 한편으론 유럽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르셀로나에는 스킨헤드 문화가 퍼졌고, 일부는 극우 분리주의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물들이 보이쇼스 노이스에 합류하면서, 이 단체의 이념은 사회자유주의에서 파시즘으로 급격히 변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사한 극우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마드리드의 ‘프렌테 아틀레티코(Frente Atlético)’ 일부 구성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정치적 변화는 내부 분열을 초래했고, 동시에 이들은 영국 훌리건 문화에 영향을 받아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경기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며 대규모 체포 사건들이 벌어졌다.
이 조직의 문화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키코 아맛(Kiko Amat)’의 소설 ‘아마도르의 비밀(Il segreto di Amador)’이 있다. 이 작품은 해당 현상에 대한 많은 세부 정보를 담고 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맛은 이렇게 밝혔다.
“1980년대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킨헤드 운동에 속한 나치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존재처럼 여겨졌어요. 어떤 이들은 거의 유명인사처럼 인식되기도 했죠. 이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우리 세대에게 그들은 공포의 괴물 같은 존재였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세대를 거쳐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은 언론이나 구전을 통해 과장된 것이었고, 실제로 그들을 가까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들의 삶과 행동은 현실보다는 신화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쇼스 노이스는 같은 바르셀로나 팬 그룹인 ‘페냐 알모가버르스(Penya Almogàvers)’와도 갈등을 겪었다. 이들은 동일하게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했지만, 반파시즘·비폭력 노선을 따랐으며 자유주의적·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지녔다. 이념의 차이는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쇼스 노이스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구단은 이들에게 무료 입장권과 교통편, 경기장 내 현수막 설치 공간까지 제공하며 사실상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1985년, 헤이젤 참사 이후 이들은 “¡Gracias Liverpool!(리버풀 고마워!)”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쳤고, 카탈루냐 깃발 대신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내걸었다. 이에 분노한 구단 회장은 이들을 경기장 3층으로 쫓아냈다. 보이쇼스 노이스는 이에 대응해 경기장 내에서는 비폭력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여전히 도발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1989년, ‘보이쇼스 노이스(Boixos Nois)’의 구성원 140명이 캄프 누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시기, 내부의 극우화에 환멸을 느낀 일부 구성원들은 새로운 그룹 ‘상 쿨레(Sang Culé)’를 결성하며 조직에서 이탈했다. 1990년대 초, 보이쇼스 노이스는 여러 폭력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며, 특히 1991년에는 에스파뇰 팬 한 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이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응해 스페인 정부는 ‘국가 체육 행사 폭력 대책 위원회(Comisión Nacional Contra la Violencia en Espectáculos Deportivos)’를 설립했지만, 실질적 효과는 미미했다.
1990년대 중반이 되자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도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 세력 간의 갈등이 격화되어 경기장 내 충돌로 이어졌다. 보이쇼스 노이스 내부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캄프 누에서 파시스트들의 축출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폭력의 온상으로 비난받았고, 구단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러나 2000년, 누녜스 회장이 사임하고 후임으로 ‘호안 가스파르트(Joan Gaspart)’가 취임하면서 상황은 다시 요동쳤다. 가스파르트는 보이쇼스 노이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큰 논란을 낳았다. 특히 2002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도중, 보이쇼스 팬들이 ‘루이스 피구(Luís Figo)’에게 돼지 머리를 던진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다.
결국 2003년, 새 회장으로 취임한 ‘호안 라포르타(Joan Laporta)’는 보이쇼스 노이스의 경기장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이들에게 주어졌던 모든 특혜를 박탈했다. 이에 격분한 보이쇼스 노이스는 라포르타의 집에 협박 낙서를 하고 기물 파손을 일삼았으며, 그를 직접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는 이 단체가 구단 운영진과 밀접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늘날, 보이쇼스 노이스는 비록 ‘캄프 누(Camp Nou)’로의 출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경기장을 찾고 있으며, 현재에도 북쪽 골대 뒤편에 모여 응원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 FC 바르셀로나가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이들은 골대 뒤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사회 계층으로 구성된 혼합적 성격의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에는 그룹 내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분파로, ‘극우 스페인 국수주의 집단’으로 알려진 ‘Casuals FCB’의 여러 구성원이 스페인 전역 7개 도시에서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로코 및 콜롬비아 마약 조직으로부터 마약을 탈취한 뒤 재판매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2014년에는 보이쇼스 노이스의 구성원들이 PSG 팬 두 명을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스페인에서 울트라스 문화 전면의 퇴출 논의가 같은 해 12월을 기점으로 해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보이쇼스 노이스 내부의 주요 이념은 극우 성향의 스페인 및 카탈루나 국수주의로, 일반적인 극우 집단과 마찬가지로 카탈루나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카탈루나 독립을 지지하는 소수 구성원도 존재하며, 집단 내 이념의 일관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긴 한다. 이들의 역사는 정치적 격변, 폭력, 충성의 변화로 점철된 복잡한 이야기이며,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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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05544923
※ 최초 작성일 : 2025. 06.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