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바꾼 축구 울트라스 훌리건 씬 ep1|아조우·러시아 자원군단·에스파뇰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바꾼 축구 울트라스 훌리건 씬 ep1|아조우·러시아 자원군단·에스파뇰라

본 콘텐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 있어 특정 국가를 옹호하거나 정치적으로 미화할 목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단지 전쟁의 군사적 양상보다는 축구 하위문화가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작성된 내용은 전 세계 공신력 있는 언론 보도, 학술 논문 및 오픈 소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만, 전시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지 편향적이거나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비극적인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며,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축구장에서 서로 충돌하던 라이벌 팬들이 같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협력하고, 축구 하위문화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실제 무장조직을 결성해 전쟁에 참여했다. 2014년부터 이어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양국의 축구 팬 문화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디나모 키이우, 샤흐타르 도네츠크,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등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던 팬 집단들이 충돌을 줄이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구성원은 군에 입대하거나 자원부대에 합류했고, 경기장 밖에서는 모금과 보급 활동을 조직했다.

러시아 측에서도 축구 훌리건 출신 인원들이 전쟁에 동원됐다. 일부는 러시아군과 연계된 준군사조직을 구성했고, 반대로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러시아군과 싸웠다.

이 과정은 축구 팬 문화가 국가적 위기 속에서 연대와 저항의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에 폭력적 하위문화와 극우 정치, 국가의 군사 동원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위험도 드러냈다.

전쟁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축구 훌리건 문화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에서 형성된 인간관계와 조직력, 폭력과 명예의 규범을 실제 전쟁의 동원 체계 안으로 이동시켰다.

울트라스와 훌리건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축구 팬 문화를 설명하기 전에 울트라스와 훌리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문화는 한 조직 안에서 겹칠 수 있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울트라스란 무엇인가

울트라스(Ultras)는 조직적인 응원과 원정, 티포, 배너, 응원가, 그룹의 자율성과 집단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팬 문화다.

울트라스 그룹 안에는 폭력에 반대하는 구성원도 있고,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직도 있다.

훌리건이란 무엇인가

훌리건(Hooligan)은 축구와 관련된 계획적 또는 집단적 폭력에 가담하는 개인과 집단, 또는 그 현상을 가리킨다.

일부 훌리건 집단은 경기장 응원보다 상대 조직과의 충돌, 지역과 조직의 명예, 신체적 우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한 축구 팬 전체를 ‘훌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울트라스, 일반 서포터, 자원봉사자와 군인도 포함돼 있었다. 특정 인물이나 조직이 축구 폭력 하위문화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될 때에만 훌리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 경계의 재구성 ]

2014년, 우크라이나 축구 팬 문화의 변곡점

우크라이나 팬 문화의 변화는 2022년 전면 침공이 아니라 2013년 말부터 2014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유로마이단 시위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붕괴,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및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 무장 충돌은 축구 팬 집단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이벌 울트라스 사이에 확산된 휴전

2014년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의 라이벌 울트라스들은 기존의 충돌을 중단하고 친우크라이나 공동 행진과 집회, 친선경기 등에 참여했다.

이는 모든 조직의 대표가 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공식 문서에 서명한 중앙집중적 협정이라기보다, 여러 지역과 구단 팬 집단 사이에서 확산된 광범위한 휴전 운동에 가까웠다.

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디나모 키이우, 샤흐타르 도네츠크,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드니프로 등 서로 적대적이었던 팬들이 우크라이나의 통합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는 공동 활동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경기장과 거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등장했다.

  • 우크라이나의 통합 지지
  • 친러 분리주의 반대
  • 기존 팬 조직 사이의 충돌 중단
  •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의 공동 행동

그러나 이 휴전이 모든 팬 조직의 적대감을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

지역별 정치 성향과 언어, 구단 및 조직 사이의 갈등은 계속 존재했다. 그럼에도 2014년은 우크라이나 축구 팬 집단이 국내 라이벌 관계보다 국가적 위기를 우선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유로마이단에서 전쟁까지

우크라이나의 일부 울트라스는 유로마이단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시위대 보호, 바리케이드 관리, 현장 경비와 충돌 대응에 관여했다. 축구장에서 형성된 인간관계와 신속한 동원 체계가 거리 시위에서 활용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모든 우크라이나 울트라스가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울트라스 그룹 내부에는 민족주의자와 극우 활동가뿐 아니라 자유주의자, 정치적 무관심층, 일반 축구팬도 함께 존재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일부 팬은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국가방위군, 자원봉사 부대에 합류했다. 다른 팬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활동을 수행했다.

  • 전투 장비와 의료품 모금
  • 차량과 드론 구매 지원
  • 군복과 방한용품 전달
  • 부상병과 피란민 지원
  • 전사한 팬의 가족 지원
  • 해외 축구 팬 네트워크를 통한 모금

AP는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라이벌 팬 집단들이 전투 참여뿐 아니라 모금과 구호 활동에서도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축구 팬 네트워크가 국가의 보급체계를 대신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기존 팬 조직의 인간관계와 동원력이 군인과 민간인 지원에 실질적으로 활용됐다.

전쟁 속에서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축구

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중단됐던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는 2022년 8월 관중 없이 재개됐다.

이후 일부 경기에서는 제한적인 관중 입장이 허용됐다. 입장 가능 인원은 경기장 인근 방공호의 수용 능력과 지역의 보안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경기는 중단된다

전시 체제 아래에서도 경기가 계속되지만 공습경보가 울리는 동안 축구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경보가 발생하면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와 심판, 관중은 지정된 방공시설로 대피한다. 경보가 장시간 지속되면 경기가 수 시간 지연되거나 다른 날짜로 연기되기도 한다. AP는 전시 리그의 경기 도중 공습경보가 울리면 선수와 관중이 방공호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

경기장에 등장한 추모 문화

일부 구단과 팬 조직은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서포터를 추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 전사자 사진과 추모 배너 게시
  • 경기 전 묵념
  • 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트라포 설치
  • 가족과 동료를 위한 모금
  • 군 복무 중인 팬을 위한 응원가와 메시지

다만 이를 모든 구단과 경기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전쟁에 참여한 팬이 많았던 구단과 지역을 중심으로 추모 활동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

축구 하위문화는 군사조직으로 어떻게 이어졌나

축구장에서 형성된 집단이 군사조직으로 전환된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룹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 장기간 유지된 인적 네트워크
  • 지역 단위의 신속한 인원 동원
  • 원정과 단체 이동 경험
  • 집단 내 위계와 역할 분담
  • 신체훈련과 격투 경험
  • 강한 내부 결속
  • 민족주의 또는 극우 정치와의 연계

이러한 특징은 자원병 모집과 지원 활동에 활용될 수 있었다.

그러나 축구장에서의 조직력이나 신체적 강인함이 곧바로 전문적인 전투 능력으로 이어졌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

현대전에서는 지휘통제, 무기 운용, 통신, 정보, 공병, 포병 및 드론과 같은 전문 훈련이 필요하다. 축구 하위문화의 네트워크는 초기 동원에 기여할 수 있지만, 군사적 효율성은 이후의 교육과 지휘 체계에 더 크게 좌우된다.

아조우와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Sect 82

축구 하위문화와 우크라이나 군사조직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조직이 아조우다.

아조우 초기 구성에는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극우 성향 울트라스 그룹 Sect 82 출신 인원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아조우를 Sect 82가 단독으로 창설한 부대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아조우의 초기 인적 기반에는 다음과 같은 세력이 함께 존재했다.

  • Sect 82 등 축구 울트라스 출신
  •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가
  • Patriot of Ukraine 관계자
  • Social-National Assembly 관계자
  • 기타 자원병과 지역 자위대원

관련 연구는 아조우 초기 문화가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울트라스 환경과 여러 극우 민족주의 조직의 결합을 통해 형성됐다고 분석한다.

2014년 자원대대에서 국가방위군으로

아조우 대대는 2014년 친러 분리주의 무장세력과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자원부대 가운데 하나였다.

아조우는 2014년 6월 우크라이나 정부군, 국가방위군과 다른 자원부대가 함께 수행한 마리우폴 탈환 작전에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아조우가 단독으로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마리우폴을 탈환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2014년 11월 아조우는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국가방위군의 정식 편제로 편입됐다. 이후 병력과 장비, 훈련 체계가 확대되면서 민병대 성격의 대대에서 정규 국가방위군 부대로 전환됐다.

2022년 마리우폴과 아조우스탈 전투

아조우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과 마리우폴 전투였다.

아조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군과 국가방위군, 해병대, 경찰 및 국경수비대는 포위된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에 저항했다.

우크라이나 수비대는 전투 후반부에 아조우스탈 제철소로 이동해 방어를 계속했다.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수비대가 투항하면서 다수의 병력이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

아조우가 마리우폴 방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리우폴 방어군 전체를 아조우 하나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

이 전투에는 여러 우크라이나 군·경 조직이 함께 참여했다.

현재 아조우는 어떤 조직인가

아조우는 현재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소속의 제12특수목적여단 아조우로 운영된다.

2025년에는 제12여단의 지휘 인력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가 창설됐다. 제1군단은 제12특수목적여단을 포함한 여러 여단과 포병·무인체계 부대로 구성된다. 아조우 측 공식 자료도 제12여단이 제1군단 창설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현재의 아조우를 단순히 ‘아조우 연대’라고만 부르는 것은 편제상 정확하지 않다.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

  • 2014년 : 아조우 대대
  • 이후 : 아조우 연대
  • 현재 : 제12특수목적여단 아조우
  • 상위 편제 :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

아조우의 극우 논란은 끝났는가

아조우의 초기 구성원 일부가 극우·백인민족주의 이념과 연계됐고, 나치 및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상징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여러 국제 보도와 연구에서 지적됐다.

특히 초기 아조우 지도자였던 안드리 빌레츠키와 일부 창설 멤버의 정치적 이력, 부대 상징의 의미는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

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우크라이나 전체가 나치 세력에 지배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확대해 전면 침공의 명분 가운데 하나로 이용했다.

그러나 아조우의 초기 극우 인적 기반이 우크라이나 정부 전체의 성격을 대표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정규군 편입 이후의 변화

아조우는 국가방위군 편입과 병력 확대를 거치면서 초기 자원대대보다 규모와 구성원이 크게 달라졌다.

현재 아조우 측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군사조직이라고 주장한다.

일부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근거로 아조우의 이념적 성격이 약화됐다고 평가한다.

  • 국가방위군 지휘 체계 편입
  • 공개 모집을 통한 병력 확대
  • 초기 창설자들의 이탈
  • 전문 군사교육 강화
  • 다양한 지역과 배경의 인원 합류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아조우 운동과 초기 조직 사이의 인적·상징적 연결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아조우의 정치적 편향성이 완전히 제거됐다”거나 “현재도 전체 조직이 네오나치 부대다”라는 두 가지 극단적 설명은 모두 주의해야 한다.

미국의 리히법 심사

미국 국무부는 2024년 아조우 제12여단에 대한 리히법 심사를 완료하고 미국산 무기와 훈련 지원을 허용했다.

리히법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관여한 외국 군부대에 미국의 지원을 제한하는 제도다. 미국 정부는 심사 과정에서 현재 아조우 여단의 중대한 인권침해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결정은 아조우와 극우 정치 사이의 모든 역사적·이념적 논란이 해소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미국 정부의 판단은 군사 지원을 위한 인권심사 결과이지, 조직의 모든 구성원과 상징, 정치적 연계를 포괄적으로 인증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는 러시아인: 러시아 자원군단

이 전쟁에서는 러시아의 극우·훌리건 하위문화 출신 인물이 우크라이나 측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역설적인 사례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데니스 카푸스틴(Denis Kapustin)​이다.

그는 데니스 니키틴이라는 이름과 화이트 렉스(White Rex)​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데니스 카푸스틴의 훌리건·극우 이력

카푸스틴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로 이주했다.

그는 유럽의 축구 훌리건과 격투기, 백인민족주의 하위문화에서 활동했고, White Rex라는 의류 및 격투기 브랜드를 운영했다.

그의 브랜드와 행사는 유럽 극우 활동가와 훌리건 네트워크의 연결 지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 왔다.

카푸스틴은 단순한 반푸틴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다.

그는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면서도 극우 민족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인물로 평가된다.

러시아 자원군단

카푸스틴은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자원군단(Russian Volunteer Corps·RVC)​의 창설자이자 지도자다.

RVC는 자신들을 러시아인 중심의 반크렘린 무장조직으로 규정하며, 러시아 푸틴 정권과의 무장투쟁을 주장한다.

RVC는 자유 러시아 군단, 시베리아 대대 등 다른 반크렘린 러시아인 조직과 함께 러시아 벨고로드와 쿠르스크 접경 지역에서 국경 침투 작전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RVC가 우크라이나 측으로부터 정보·물류·탄약과 의료 후송 지원을 받는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했다. 다만 해당 조직의 전과와 작전 주장은 독립적으로 모두 검증되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정규군과의 정확한 지휘 관계도 공개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반푸틴이라고 해서 자유주의 세력은 아니다

RVC의 사례는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카푸스틴과 RVC의 일부 구성원은 푸틴 정권에 반대하지만 동시에 극우 민족주의 이념을 유지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 내부를 공격할 수 있는 전력을 활용하는 군사적 이익이 존재한다. 그러나 극우 이력이 명확한 조직과의 협력은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동반한다.

러시아 측 훌리건 기반 부대 에스파뇰라

러시아 측에서는 축구 훌리건 출신 인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무장조직 에스파뇰라(Española)​가 등장했다.

에스파뇰라는 러시아 여러 구단의 강성 팬과 훌리건을 모집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와 CSKA 훌리건 문화

에스파뇰라의 창설자이자 지휘자는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Stanislav Orlov)​였다.

오를로프는 ‘이스파네츠’ 또는 ‘스파니어드’라는 별칭으로 알려졌으며, CSKA 모스크바의 훌리건 조직인 Red-Blue Warriors 출신으로 소개됐다.

그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무장세력 편에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고,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여러 러시아 구단의 훌리건을 모아 에스파뇰라를 확대했다.

다양한 구단의 팬을 하나의 부대로 모집하다

에스파뇰라에는 다음과 같은 러시아 구단의 강성 팬 출신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됐다.

  • CSKA 모스크바
  •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 기타 러시아 프로구단

평소에는 라이벌 관계인 팬들이 전쟁에서는 러시아 민족주의와 친정부 전쟁 목표 아래 하나의 부대로 모인 것이다.

이 점에서 에스파뇰라는 2014년 이후 라이벌 관계를 중단한 우크라이나 울트라스와 외형적으로 유사한 현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직이 결합한 정치적 목표와 국가 권력과의 관계는 서로 다르다.

정확한 법적·지휘 구조는 불투명했다

에스파뇰라는 러시아 국방·정보기관 및 국가 권력과 연계된 친러시아 준군사조직으로 활동했다.

다만 이를 단순히 ‘러시아 국방부 정규 특수부대’ 또는 ‘독립 PMC’로 확정하기는 어렵다.

시기에 따라 후원 세력과 계약 구조, 지휘 관계가 다르게 설명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스파뇰라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는 것이 안전하다.

“러시아의 축구 훌리건과 극우 민족주의 인원을 중심으로 구성돼 러시아 국가기관과 연계된 형태로 활동한 준군사조직“

선전과 모집 활동

에스파뇰라는 축구 팬 문화의 이미지와 상징을 병력 모집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조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강조했다.

  • 축구 구단과 팬 조직의 정체성
  • 전우애와 남성성
  • 러시아 민족주의
  • 군사훈련과 전투 장면
  • 드론과 저격 등 전문 분야
  • 훌리건 출신 인원의 단결

여성 대원을 모집해 드론과 저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전쟁에 참전한 남성들의 부인이거나 연인들이 상당수 자원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여성 부대의 실제 규모와 전선 배치, 개별 전과는 독립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에스파뇰라는 2025년 해체·재편됐다

에스파뇰라를 2026년 현재 기존 형태로 활동하는 부대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에스파뇰라는 2025년 10월 기존 조직의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조직이 더 이상 통합된 단일 전투부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상·의료 부대와 정찰조직, 일부 공격부대는 별도의 조직으로 재편되거나 러시아 국방·치안 체계의 다른 구조로 이동한 것으로 보도됐다.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의 사망

오를로프는 2025년 12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사망했다.

러시아 독립매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택에서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망 경위와 배후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에스파뇰라는 이후 그의 장례 일정을 공식 채널을 통해 발표했다.

따라서 에스파뇰라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기존 에스파뇰라 부대는 2025년 해체·재편
  • 일부 인원과 하위 조직은 다른 편제로 이동
  • 창설자 오를로프는 2025년 12월 사망
  • 정확한 해체 배경과 후속 조직의 지휘 구조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음

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실제로 맞붙었나

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측에서 전쟁에 참여한 축구 하위문화 기반 조직이라는 점 때문에 자주 비교된다.

양측 모두 마리우폴과 돈바스 지역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그러나 두 조직이 지속적으로 직접 교전했다거나 ‘훌리건 대 훌리건’의 전투가 반복됐다고 단정할 수 있는 공개 자료는 부족하다.

개별 전투 지역이 겹쳤다고 해서 특정 부대끼리 직접 맞붙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두 조직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서로 반대편에서 전쟁에 참여한 축구 하위문화 기반 조직으로 비교됐지만, 양측이 반복적으로 직접 교전했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전투 기록을 통해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전쟁은 훌리건을 영웅으로 바꿨는가

우크라이나에서 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구성원이 군 복무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이전과 다른 사회적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

전쟁에서 사망한 팬은 구단과 지역사회에서 추모됐고, 생존한 참전자는 국가 방어에 기여한 군인으로 존중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다음과 같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

  • 과거의 폭력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
  • 훌리건 전체가 국민적 영웅이 됐다.
  • 폭력적 팬 문화가 애국심으로 정화됐다.
  • 전쟁 참여가 기존의 극우성과 범죄를 모두 정당화한다.

군 복무와 민간 지원은 평가할 수 있지만, 과거의 폭력과 극우 정치, 차별적 이념은 별개의 문제로 검토해야 한다.

한 개인이 국가 방어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과거 극우 활동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국가가 축구 하위문화를 이용하는 방법

전쟁에서 축구 팬 조직은 국가와 군사조직에 유용한 동원 기반이 될 수 있다.

축구 팬 조직은 이미 다음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젊고 신체적으로 활동적인 인원
  • 지역별 네트워크
  • 강한 집단 정체성
  • 이동과 원정 경험
  • 조직 지도부
  • 홍보 채널과 상징
  • 라이벌과 적을 구분하는 문화
  • 위험을 감수하는 명예 규범

국가는 이러한 구조를 군사 모집, 선전, 모금과 사회적 결속에 활용할 수 있다.

반대로 팬 조직은 전쟁 참여를 통해 다음을 얻을 수 있다.

  • 합법적인 무장과 훈련
  • 사회적 인정
  • 정치적 영향력
  • 조직의 지위 상승
  • 국가기관과의 관계
  • 새로운 인적·경제적 자원

이러한 상호관계는 위험성도 갖는다.

전쟁이 끝난 뒤 무장 경험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 민간사회로 복귀할 때, 기존의 폭력적 문화가 정치와 사회 갈등에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례의 공통점과 차이

공통점

양국의 사례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 라이벌 구단 팬들이 국가적·정치적 목표 아래 협력했다.
  • 축구장에서 형성된 네트워크가 전쟁 동원에 활용됐다.
  • 강한 민족주의가 중요한 결합 요소로 작용했다.
  • 훌리건 문화의 남성성과 전투성이 군사 선전에 사용됐다.
  • 팬 조직의 상징과 명칭이 부대 정체성에 반영됐다.

차이

그러나 조직의 형성과 국가와의 관계는 동일하지 않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국가의 군사력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자원부대가 만들어졌고, 일부는 이후 국가방위군과 정규 군사체계에 편입됐다.

러시아의 에스파뇰라는 이미 대규모 정규군을 보유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훌리건과 극우 네트워크를 별도의 준군사조직으로 모집하고 활용한 사례에 가깝다.

RVC는 또 다른 유형이다.

러시아인 극우 활동가들이 자국 정부에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영토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이나 에스파뇰라와도 다른 위치를 가진다.

러시아의 침공 책임과 조직 분석은 구분해야 한다

이 콘텐츠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극우·훌리건 조직을 함께 다룬다고 해서 전쟁의 책임이 대칭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현재의 대규모 전쟁이 시작됐다.

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측 무장조직의 역사와 극우 논란을 검증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전쟁 연구와 축구 하위문화 분석에서는 다음 두 원칙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

  1. 침략과 방어의 법적·정치적 차이를 혼동하지 않는다.
  2. 어느 편에 속했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조직의 역사와 이념, 폭력성을 같은 기준으로 검증한다.

우크라이나 측 조직을 무조건 영웅화하거나 러시아 측 조직을 근거 없이 악마화하는 방식은 정확한 분석을 방해한다.

각 조직의 실제 행위와 지휘 구조, 정치적 성향, 검증 가능한 기록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축구장의 전쟁은 실제 전쟁으로 이동했는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축구 팬 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꾸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라이벌 울트라스들이 국가적 위기 속에서 충돌을 줄이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일부 팬은 군에 입대했고, 다른 팬은 보급과 모금, 피란민 지원을 담당했다.

아조우의 초기 역사에는 축구 울트라스와 극우 민족주의 조직이 함께 존재했다. 이후 아조우는 국가방위군의 정규 편제로 확대됐지만, 초기 극우성과 현재 조직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러시아 측에서는 훌리건을 기반으로 한 에스파뇰라가 만들어졌지만, 이 조직은 2025년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다. 창설자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도 같은 해 사망했다.

러시아의 극우 훌리건 출신인 데니스 카푸스틴은 반대로 우크라이나 측에서 RVC를 지휘하며 러시아 정부에 맞서고 있다.

이 사례들은 축구 하위문화가 하나의 고정된 정치 성향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훌리건과 울트라스의 조직력은 국가 방어와 민간 지원에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극우 이념, 정치적 폭력과 국가의 군사 선전에 동원될 수도 있다.

결국 전쟁이 바꾼 것은 축구 팬들의 열정 자체가 아니다.

경기장에서 형성된 충성, 명예, 집단 정체성과 폭력의 규범이 더 이상 경기장 안에 머물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자주 묻는 질문

우크라이나의 라이벌 축구 팬들은 실제로 휴전했나?

2013~2014년 유로마이단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전후로 여러 우크라이나 라이벌 울트라스 및 훌리건 그룹이 충돌을 중단하고 공동 행진과 친우크라이나 활동에 참여했다. 다만 모든 조직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공식 협정에 서명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공습경보 중에도 축구 경기가 계속되나?

아니다. 공습경보가 발생하면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와 관중은 방공시설로 대피한다. 경보가 장시간 계속되면 경기 재개가 지연되거나 일정이 변경될 수 있다.

아조우는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훌리건이 만든 부대인가?

Sect 82 등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울트라스 출신이 아조우 초기 구성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조우는 축구 팬뿐 아니라 여러 극우 민족주의 활동가와 자원병이 함께 만든 조직이므로 Sect 82의 단독 후신으로 볼 수 없다.

현재 아조우는 네오나치 조직인가?

아조우의 초기 구성원 일부와 창설 지도부가 극우·네오나치 성향과 연결된 것은 확인된다. 이후 국가방위군 편입과 병력 확대를 통해 조직 구성이 변화했지만, 초기 극우 운동과의 인적·상징적 연계가 완전히 해소됐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 자원군단은 우크라이나군 소속인가?

RVC는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 측의 정보·물류·탄약 및 의료 후송 지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규군과의 정확한 지휘 관계는 공개적으로 명확하지 않다.

러시아 훌리건 부대 에스파뇰라는 현재도 활동하나?

기존 에스파뇰라 조직은 2025년 10월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단일 전투부대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인력과 하위 조직은 다른 러시아 군사·치안 조직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 자료 :
Associated Press, 전시 체제 아래 우크라이나 리그와 라이벌 팬 연대에 관한 보도
The Guardian, 2014년 우크라이나 라이벌 울트라스의 공동 행동 관련 보도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 공식 편제 자료
Reuters, 미국의 아조우 여단 리히법 심사 및 지원 제한 해제
Associated Press, 아조우의 극우 기원과 미국의 무기 지원
아조우 초기 구성과 Sect 82의 관계를 다룬 연구자료
Reuters, RVC의 러시아 접경 작전과 우크라이나 측 지원 관계
The Insider, 에스파뇰라 해체와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 사망
Ukrainska Pravda, 오를로프 사망 경위 관련 보도
에스파뇰라의 2025년 조직 재편 관련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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