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는 축구에 열광하는 도시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소속된 팀이 여럿 있는 런던에 이어, 모스크바는 자국 1부 리그에서 활약 중인 5개의 팀을 보유하고 있고, 이는 잉글랜드를 제외하면 유럽축구연맹 계수 상위 8개국 중 가장 많은 1부 리그 클럽을 보유한 도시로 기록된다.

그러나 잉글랜드에서 정상을 향해 올라온 런던 클럽들의 이야기는, 모스크바 클럽들이 탄생했던 불꽃 튀는 시대적 배경과 비교하면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 체제 수립을 위한 투쟁 이후의 시기는 러시아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격변의 시기로 여겨진다. 이러한 대대적인 사회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서로 다른 정체성과 배경, 그리고 정부 기관과의 밀접한 연관을 지닌 다섯 개의 축구팀이 모스크바에서 탄생한다.
CSKA 모스크바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모스크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축구팀은 1917년 혁명 이전인 1911년에 창단된 CSKA 모스크바이다. 소소한 재미로 ‘CSKA Moscow’는 영어로 ‘C-S-K-A’라고 철자를 따서 읽는 것이 아니라 ‘스카’ 또는 ‘스스카’처럼 러시아어식으로 발음된다.


이 클럽의 시작은 러시아 군대와 깊은 관련이 있으며, CSKA는 영어로 번역하면 대략 ‘중앙 육군 스포츠 클럽(Central Sports Club of the Army)’라는 의미이다. 비록 현재는 러시아 군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러시아 육군의 상징인 붉은 별은 여전히 클럽 엠블럼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소련(소비에트 연방) 시절, CSKA는 사실상 ‘붉은 군대(소련 육군)’의 클럽이었다. 현재 CSKA는 완전한 민간 소유 클럽으로 전환되었다. 이 클럽은 러시아 축구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2005년에는 러시아 클럽 최초로 유럽 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역사적인 업적을 세우기도 했다.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1917년 혁명 이후, 모스크바에서 다음으로 등장한 팀은 바로 ‘로코모티프 모스크바(Lokomotiv Moscow)’였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클럽은 러시아 교통부 소속 철도 노동자들에 의해 1922년에 창단되었다.


클럽 명칭은 몇 차례 변경되었지만, 1936년부터는 ‘로코모티프’라는 이름이 정착되었으며, CSKA처럼 현재의 엠블럼에도 초기 정체성을 나타내는 ‘녹색 기차’ 상징이 남아 있다. 이처럼 로코모티프는 철도 노동자 대표 클럽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러시아철도공사(Russian Railways)’는 러시아 최대의 고용기관이기 때문에, 로코모티프는 많은 러시아 축구 팬들 사이에서 호감 가는 팀으로 여겨지며, 일종의 제2의 팀으로 응원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철도 산업이라는 규모가 크고 전국적인 고용 기반을 가진 조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비러시아 국적의 선수들도 많이 영입해 왔다.
이런 배경 덕분에 로코모티프는 도시 내 다른 클럽들보다 포용성과 다양성 면에서 더 진보적인 클럽으로 평가받는다. 한편, 로코모티프는 CSKA와 함께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최대 연속 시즌 출전 기록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1922년, 또 하나의 새로운 모스크바 팀이 등장했다. 이번에는 가장 흥미로운 창립 배경을 가진 팀이라 할 수 있는 ‘스파르타크 모스크바(Spartak Moscow)’이다. 이 팀은 ‘노동조합 운동’의 흐름 속에서 탄생했으며, 로마 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유명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이름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이 지어졌다.


스파르타크는 곧 ‘민중의 클럽’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창립자 중 한 명인 ‘니콜라이 스타로스틴(Nikolai Starostin)’과 그의 세 형제는 1930년대 소련의 ‘대숙청’ 시기에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스탈린의 아들 바실리(Vasily Stalin)’로부터 소련 공군 축구팀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수락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암울한 출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크는 러시아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팀으로 성장했다. 현재 엠블럼에는 네 개의 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각각 러시아 챔피언십 5회 우승을 상징하며, 총 20회의 리그 우승을 기념하는 표시이다. 스파르타크는 모스크바뿐 아니라 러시아 전체에서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한 클럽이며, 그들의 팬 수는 도시 내 다른 라이벌 팀들을 압도적으로 앞지르며 전국적인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다.
디나모 모스크바
1923년, 모스크바에서 네 번째 팀이 등장했다. 이번에도 또 다른 정부 조직에서 비롯된 팀으로, 바로 ‘내무부’, 즉 경찰 조직에서 창단된 팀이 바로 ‘디나모 모스크바(Dynamo Moscow)’이다.


러시아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 조직(체카·GPU·NKVD·후일 KGB)’은 자신들만의 축구 팀을 만들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디나모 모스크바의 시작이었다. 디나모는 역사 내내 기복 있는 성적을 기록해왔다. 리그에서 11회 우승하여 엠블럼에 두 개의 별을 달 수 있었지만, 2016년에는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강등의 수모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디나모는 빠르게 재정비하여 러시아 프리미어리그로 복귀, 현재는 다시 국내 최상위 무대에서 경쟁 중인 네 개의 모스크바 클럽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비록 경찰 조직과의 연관 속에 탄생한 디나모지만, 현재는 러시아 국영기업인 ‘VTB 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상태이며, 모스크바는 물론 러시아 전체에서 최고의 유소년 아카데미와 인프라 시스템을 갖춘 클럽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토르페도 모스크바
‘검은 양’, ‘들러리’라는 별명을 가진 모스크바의 다섯 번째 이자 마지막 팀, ‘토르페도 모스크바(Torpedo Moscow)’는 1924년에 창단되었다. 이 클럽은 모스크바 클럽들 중 가장 인지도나 존재감이 낮은 팀으로 평가된다.


이 팀은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에 의해 창단되었으며, 이러한 유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클럽 엠블럼에 자동차 이미지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다른 팀들이 군대, 경찰, 철도, 노동조합과 연결되어 있다면, 토르페도는 ‘산업 노동계층’을 대변한 클럽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승 기록 면에서 보면 토르페도는 모스크바 클럽들 중 가장 적은 성과를 거둔 팀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러시아 2부 및 3부 리그를 오가는 하위권에서 보내고 있다. 또한 모스크바 내에서 팬층이 가장 적고, 수용 인원 15,000명 이하의 가장 작은 규모의 경기장을 사용한다.
모스크바의 라이벌전, 울트라스 그리고 훌리건 문화
모스크바의 다섯 팀은 모두 열정적인 팬 문화, 특히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룹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갖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라이벌 관계는 스파르타크와 디나모 사이에 형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축구 경쟁을 넘어, 노동자 계층과 경찰 조직 간의 역사적인 긴장 관계를 반영한다. 민중의 클럽 ‘스파르타크’와 권력의 상징 ‘디나모’의 대립은 오랜 세월 동안 불꽃 튀는 라이벌 구도를 유지해 왔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격렬해진 라이벌은 CSKA와 스파르타크 간의 대결이다. 두 팀 모두 러시아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의 단골 주자로 부상하며, 성적과 자존심을 놓고 벌이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들의 라이벌리즘은 단순한 지역 라이벌을 넘어, 러시아 축구 최고 자리를 두고 맞붙는 최대 격돌로 자리 잡았다.
반면, 디나모와 CSKA의 팬들 사이에는 다른 클럽들에 비해 훨씬 더 관대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들을 ‘동맹 혹은 우호’ 관계라고 부르기엔 다소 과장일 수 있지만, 어쩌면 경찰과 군대 간의 관계와 유사한 감정적 거리감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서로를 적대시하지는 않지만 긴장된 상호 인식이 존재하긴 한다.

모스크바의 각 팀들은 열정적인 울트라스 그룹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전 세계적으로도 악명 높거나 유명한 훌리건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 Red-Blue Warriors (CSKA)
- Fratria (Spartak)
- Red-White Djigits (Lokomotiv)
- Ultras Dynamo (Dynamo)
- Troublemakers (Torpedo)
이 그룹들은 극도의 열정적인 응원과 집단행동, 국수주의적, 때때로 인종차별적 행동 양상을 보이기도 하며, 클럽과 도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물리적 충돌을 감수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스크바 더비를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닌, 이념과 신념, 정체성의 충돌로 발전시켜온 핵심 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열렬한 민족주의자인가, 인종차별주의자인가? 혹은 네오나치인가, 우익 정치성향인가? 폭력배인가, 훈련된 병사들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개인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모스크바의 축구팀들이 받는 팬들의 응원은 체계적이고, 생동감 있으며, 예술적이고, 불꽃놀이와 같이 뜨거우며, 무엇보다도 열정적이라는 점이다.
팬들은 팀을 위해 러시아 전역은 물론 국경 너머까지도 따라다니며 응원을 펼친다. 그 열정만큼은 누구라도 감탄할 만한 문화임이 분명하다. 요즘 유럽 전역에서는 ‘풋볼 그라운드호핑(Football Groundhopping)’, 즉 다양한 도시와 경기장을 여행하며 축구를 즐기는 문화가 점점 인기를 끌고 있다.
모스크바는 런던, 베를린, 마드리드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거나 저렴한 도시는 아니다. 그러나 축구의 깊이, 역사, 그리고 문화적 풍부함에 있어서 절대 뒤지지 않는 도시이다. 진정한 축구 팬이라면, 그리고 열정적인 ‘그라운드호퍼’라면, 모스크바는 반드시 방문 리스트에 포함시켜야 할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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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작성일 : 2025. 0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