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FA 규정 중 ‘제16조 UEFA 대회 경기의 질서와 보안(Article 16 Order and Security at UEFA Competition Matches)’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스포츠는 이벤트에 적합하지 않은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제스처, 언어, 물건 또는 기타 수단의 사용, 특히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또는 공격적인 성격의 도발적인 메시지를 금지한다.”
유럽 축구를 관장하는 기구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축구에서 정치 행위는 금지된다’. 하지만 이를 실제로 단속하고 시행하는 것은 어렵다. 말 그대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는 것만큼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정치는 항상, 그리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축구에 스며들기 마련일 것이다.
대체로 관중석에서 시작되지만, 가끔은 경기에 직접 임하는 선수 스스로가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들기도 한다. 지금 소개할 여섯 가지 사례는 특정한 순서로 나열된 것은 아니며, 어떤 행동이 다른 것보다 더 공격적이거나 도발적이거나 잘 알려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고, 정치적 및 사회적으로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는 여섯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조르고스 카티디스(Giorgos Katidis)의 경례

‘조르고스 카티디스(Giorgos Katidis)’라는 선수를 아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모를 것이다. 2013년 3월, 당시 20세였던 카티디스는 그리스 슈퍼리그에서 AEK 아테네 소속으로 베리아 FC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어 2-1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기쁨에 겨워 코너 플래그 쪽으로 달려가 셔츠를 벗었고, 곧 동료들의 축하를 받기 직전, 관중석을 향해 분명히 나치식 경례를 흉내 내는 듯한 제스처를 했다.
카티디스는 그리스 U-19 대표팀의 주장을 맡았었고, U-21 대표팀에서도 활약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국가대표로서 뛰는 일은 이 사건을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그리스 축구 협회는 즉시 성명을 발표하여 카티디스의 행동을 강력히 비난했고, ‘앞으로 어떤 연령대의 대표팀에서도 그를 다시는 선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카티디스는 자신을 무죄라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해명을 내놓았다. 그는 그 제스처가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고 주장했으며, 관중석에 있던 팀 동료를 가리킨 것뿐이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자신은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파시스트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상처나 불쾌감을 줬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그는 당시 AEK의 독일인 감독 ‘에발트 리넨(Ewald Lienen)’으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다. 리넨 감독은 “그는 정치적 신념이 전혀 없는 어린 선수일 뿐이다.”라며 카티디스를 감쌌다.

AEK 아테네의 팬들, 특히 울트라스 그룹인 ‘Original 21’은 정치적으로 상당한 좌파 성향을 띠고 있었다. 그들은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반(反)나치’, ‘ANTIFA(안티파)’ 관련 응원 연출이나 배너를 자주 사용했다. 당연하게도 그 사건에 대한 팬들의 분노는 예견된 일이었고, AEK 구단은 팬들로부터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결국 팬들의 압력에 따라 카티디스는 잔여 시즌 출전 정치 처분을 받았고, 최종적으로 AEK와의 계약이 해지되었다.
AEK 아테네의 울트라스는 “우리의 경기장에 나치는 없다(NO NAZIS IN OUR STADIUM)”, “안티파시스트 구역(ANTIFA ZONE)”이라는 배너를 자주 내걸었다. 이러한 모습은 AEK의 울트라스가 갖고 있는 뚜렷한 반파시스트 정치 성향을 드러내며, 경기장 내에서 나치 상징이나 극우적 표현에 대한 강한 거부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던 것들이고, AEK 팬 문화의 정체성과 깊게 연결된 것들이다.
그 해 여름, 카티디스는 이탈리아의 ‘노바라 칼초(Novara Calcio)’에 입단했지만, 그의 커리어는 그 사건 이후 결코 회복되지 않았다. 이후 그는 이탈리아, 그리스, 핀란드, 체코 등 여러 나라의 클럽을 전전했고, 2019년 7월 이후로는 어떤 팀과도 계약하지 못한 채 무적 상태로 남게 되었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든 없었든, 한순간의 경솔한 행동이 유망하던 한 젊은 선수의 커리어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파올로 디 카니오(Paolo Di Canio)의 경례

2005년 1월, 라치오가 로마를 3-1로 꺾은 ‘로마 더비’ 직후의 일이다. 경기 종료 후, 라치오 선수들은 자신들을 열렬히 응원해 준 ‘꾸르바 노드(Curva Nord)’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때 ‘파올로 디 카니오(Paolo Di Canio)’는 매우 의도적으로 꾸르바를 향해 경례를 했다. 그의 팔은 곧게 뻗었고, 손바닥은 아래를 향했으며, 머리 높이쯤에서 고정된 자세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디 카니오는 이렇게 말했다. “그 경례는 나의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그에게 그 제스처가 나치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질문하자, 그는 주저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 파시스트다.” 이것은 디 카니오가 라치오 시절, 경례를 한 첫 사례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탈리아 축구 협회가 직접 제재에 나섰고, 그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7,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디 카니오의 행동 이후, 그의 경례가 나치식인지, 인종차별적인지, 파시스트적인지, 고대 로마식인지 혹은 그 외의 의미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디 카니오는 로마 출신이라는 점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에 대한 존경심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다는 점이다.
2016년, 디 카니오는 생방송에 출연한 후 ‘스카이 이탈리아(Sky Italia)’에서 해고당했다. 그 이유는 방송 중에 그의 이두근에 새겨진 문신이 뚜렷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문신에는 ‘DUX’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라틴어로 ‘지도자’를 뜻하는 단어였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한 방식이었으며, 그가 권력을 잡았던 시절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일 두체(Il Duce)’로 불렸던 무솔리니를 찬양하는 표현이었다.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2013년 선덜랜드 FC 감독으로 임명되었을 당시, 디 카니오가 언론으로부터 2005년의 경례 사건과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의 답변이었다. 그는 이번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도, 파시스트도 아니다.” 극명한 의견이 갈리는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그가 했던 특정한 경례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서는 결국 각자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니콜라 아넬카(Nicolas Anelka)의 케넬 제스처(Quenelle Gesture)

니콜라 아넬카는 2013년 12월, 웨스트 브롬위치가 웨스트햄과 3-3 무승부를 거둔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두 팔로 이상한 동작을 했다. 한 손은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 채 바닥을 가리켰고, 다른 손은 자신의 이두근을 감싸는 자세였다. 이 순간에는 경기장 안에서도, 관중석에서도, 영국 언론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거의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후 사진이 온라인에 퍼지자, 그의 모국인 프랑스에서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아넬카는 당시 ‘케넬(Quenenlle)’ 경례를 한 것으로 보였으며, 이 제스처는 그의 친구이자 많은 논란을 갖고 있던 프랑스 코미디언 ‘디외도네 음발라 음발라(Dieudonné M’Balla M’Balla)’로 인해 유명해진 것이었다. 디외도네는 유대인 혐오적 요소를 다수 포함한 코미디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2009년에는 ‘반(反) 시온주의’ 정당 소속으로 유럽의회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이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많은 이들이 ‘케넬 제스처’를 ‘뒤집은 형태의 나치식 경례’로 인식하면서 아넬카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낙인을 받게 되었다. 또한 그는 디외도네 음발라와의 친분으로 인해 ‘반(反) 유대주의자’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당시 프랑스 스포츠부 장관 ‘발레리 푸르네롱(Valérie Fourneyron)’은 아넬카의 행동을 두고 ‘역겹다’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당시 아넬카는 자신의 제스처가 ‘반체제(anti-establishment)’ 성향을 드러낸 것일 뿐, 반유대적인 의미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거센 논란이 이어지자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아넬카는 5경기 출장 정지와 8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하게 된다. 이로써 공식적인 절차는 마무리되었고, 사건은 형식적으로 일단락된 셈이었다.
그러나 2020년, 넷플릭스는 니콜라 아넬카의 축구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넬카 : 오해받은 사나이(Anelka: Misunderstood)’를 공개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아넬카는 케넬 제스처 사건에 대해 다시 언급하며, 이번에는 그 제스처는 특정한 단 한 사람만을 겨냥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웨스트브롬의 감독이었던 ‘스티브 클라크(Steve Clarke)’는 경질된 상태였고, 웨스트햄과의 3-3 무승부 경기 이전까지 아넬카는 경기에서 벤치에 머물거나, 경기가 비기거나 지고 있을 때 교체로 빠지는 일이 잦았다. 아넬카는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의 골 세레머니가 클라크 감독에게 보내는 일종의 ‘엿 먹어라’ 메시지였다고 주장했다. 이는 프랑스 속어에서 ‘케넬(Quenelle)’이라는 단어가 손가락 또는 남성 성기를 뜻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이 사건 역시 아넬카가 그 제스처를 통해 실제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그의 진짜 의도와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해서는 각자가 스스로 판단해야 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터키 국가대표팀의 군사 경례 사건

2019년 10월, 터키 국가대표팀은 유로 2020 예선 두 경기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알바니아와의 홈경기에서 승리했고, 이어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무승부를 기록하며 총 승점 4점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와 경기력은 곧 잊혀질 수밖에 없었다. 두 경기 이후 터키 선수단이 보여준 행동 때문이었다.
이 두 경기는 마침 터키가 시리아 국경 일대에서 쿠르드 군사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 즉 ‘평화의 샘 작전’을 개시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이 작전에 대해 국제 사회는 강하게 비난했고, 특히 인권 문제와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 심화에 대한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터키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 정치적 상황을 다르게 받아들였고,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프랑스전에서 터키 군대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경례 세레머니를 펼치며 군사 작전에 대한 지지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터키 대표팀 선수들은 알바니아전에서 골을 넣은 후, 그리고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전에서도, 골 세레머니로 ‘군사식 경례’를 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 모습은 사진에 포착되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세레머니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국제적인 정치적 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터키 축구 협회의 공식 트위터 계정은 알바니아전 승리 직후, 탈의실에서 터키 국가대표팀 전원이 군사식 경례를 하는 사진을 게시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이 승리를 용감한 우리 군인들과 순교자들에게 바친다.”라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었으며, 이는 터키 내 애국주의 감정 고취와 동시에 국제 사회의 강한 반발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 축구 협회는 터키 선수들의 행동이 UEFA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며 터키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다. 결국 2019년 12월, UEFA는 터키 축구 협회에 대해 선수들의 행동을 이유로 5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 사건은 행동의 의미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이 누구인지가 너무나도 분명했던 사례로, 정치적 메시지를 명확히 담고 있었기에 축구 경기장과 정치의 경계를 다시금 문제로 떠올리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그란트 자카(Grant Xhaka)와 제르단 샤키리(Xherdan Shaqiri)의 알바니아 독수리 세레머니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유럽에서 여전히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은 발칸 지역의 국경과 독립 국가들의 승인(또는 그 부채)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특히 세르비아, 알바니아, 코소보, 크로아티아가 관련되어 있다. 축구는 여러 차례 정치적 긴장 속으로 끌려들어 간 바 있으며,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4년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경기 중 발생한 ‘드론 알바니아 국기 사건’과 그 후 2018년 월드컵에서 또다시 발생한 사건이 있으며, 지금부터는 바로 이 2018년 월드컵 사건을 살펴보려고 한다.
스위스는 러시아에서 열린 2018년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에서 세르비아를 2-1로 꺾었다. 결승골은 경기 종료 직전에 터졌다. 스위스가 넣은 두 골의 득점자는 ‘그란트 자카(Grant Xhaka)’와 ‘제르단 샤키리(Xherdan Shaqiri)’였다. 두 선수 모두 민족적으로는 코소보계 알바니아인이며, 1990년대 세르비아와의 전쟁을 피해 난민으로 스위스에 이주한 배경을 갖고 있다.
두 선수는 골을 넣은 후, 경기장에 있는 관중들과 전 세계의 수백만 시청자들을 향해 알바니아 국기의 쌍두독수리를 형상화한 제스처를 취하며 세레머니를 했다. 비록 골 세레머니를 제외하더라도, 중요한 공동 역사적 배경이 거의 없는 두 나라 간의 경기에서조차 정치적 영향력이 분명히 드러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세르비아 팬들은 경기 내내 자카와 샤키리가 공을 터치할 때마다 거세게 야유와 조롱을 보냈으며, 스위스 응원석 쪽에는 알바니아 국기들이 뚜렷이 보이는 장면들도 있었다. 또한 경기 후에는 샤키리의 축구화 중 하나의 뒤꿈치 부분에 코소보 국기가 새겨져 있었던 사진도 공개되었다.

경기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엄청난 정치적 여파가 이어졌고, 자카와 샤키리의 행동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이들도, 분노를 표하는 이들도 포함된 여러 주요 정치 인사들이 이 논쟁에 가세했다. ‘하심 타치(Hashim Thaçi)’ 코소보 대통령은 트위터에 스위스의 승리를 축하하며, 그란트 자카와 제르단 샤키리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알바니아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두 선수의 독수리 세레머니 사진을 게시하며, “오늘의 사진”이라는 캡션을 달았다. 한편 세르비아에서는 분노와 격앙된 반응이 이어졌으며, 해당 세레머니를 두고 “잔인한 도발”이며 “모든 세르비아인을 격분시켰다”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와 더불어 세르비아 축구 협회는 경기 중 명백한 페널티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격분했고, 골 세레머니, 샤키리의 축구화에 새겨진 코소보 국기, 그리고 경기장 내 알바니아 국기의 존재에 대해 공식 항의문을 제출했다.
FIFA는 두 선수에게 각각 10,000 스위스 프랑의 벌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두 선수 모두 출장 정치 처분을 받지는 않았다. 이에 따라 두 선수는 대회에서 계속해서 뛸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사례에서도 정치적 행위와 그 의미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축구에서 가장 큰 무대인 월드컵에서, 샤키리가 90분에 터뜨린 결승골, 그리고 두 선수에게 부과된 벌금이 이들의 주급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국 자카와 샤키리에게는 훨씬 만족스러운 결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의 오렌지 오더 플루트 사건

셀틱과 레인저스의 글레스고 더비는 서로를 향한 증오와 열정이라는 측면에서 세계 어느 더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치열하다. 이 격렬함은 경기장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북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과, 흔히 ‘더 트러블스(The Troubles)’로 알려진 그 지역의 갈등은 스코틀랜드로도 흘러들어왔고,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걸쳐 이 더비에 더욱 독한 증오와 적대감을 불어넣었다.
이 경기는 늘 격렬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며, 선수들이나 관중 모두 별도의 자극이 없어도 그러한 열기에 휩싸이기 마련이었다. 그런 와중에 1998년 셀틱 파크에서 열린 셀틱과 레인저스의 경기에서는 레인저스의 공격수 ‘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이 이미 타오르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행동을 했다.
1997-98 시즌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글래스고의 두 거대 클럽이 리그 우승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해였지만, 이 시즌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 시즌이었다. 당시 레인저스는 9년 연속 리그 우승을 기록 중이었으며, 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셀틱이 세운 연속 우승 기록과 동률을 이루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1997-98 시즌에 레인저스가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면, 이는 ’10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는 것으로, 국내 리그에서 셀틱을 앞서는 궁극의 자존심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공격수 폴 개스코인은 레인저스가 국내 리그에서의 우위를 유지하고, 또한 10 연속 우승 달성을 돕기 위해 1995년에 영입된 선수였다. 하지만 1998년 셀틱 파크에서 열린 올드펌 더비에서 그는 커다란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경기 중 플루트을 연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는데, 이는 ‘오렌지 오더(Orange Order)’, 특히 북아일랜드 오렌지 오더를 상징하는 행동으로 잘 알려져 있는 것이었다.
7월 12일에 열리는 북아일랜드 전역의 행진은 수십 년 동안 가톨릭과 개신교 공동체 간의 갈등의 중심에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민감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 행진은 주로 ‘개신교’, ‘연방주의자’, ‘충성주의자’들이 1690년 ‘보인 전투(Battle of the Boyne)’에서 ‘윌리엄 오브 오렌지(William of Orange)’가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축하 행사이다.
이 행진에는 플루트 밴드가 중요한 구성 요소로 참여하며, ‘가톨릭’, ‘민족주의자’, ‘공화주의자’ 성향의 지역들을 행진 경로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잦았다. 하지만 해당 지역 주민 대다수는 이 행진이 자신들의 거주 지역에서 열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 결과로 ‘행진 시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에는 공동체 간 폭력 충돌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예상대로, 개스코인의 플루트 제스처는 셀틱 팬들에게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경기 후 그는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로부터 징계 절차에 회부되었고, 결국 4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 받았다. 개스코인은 무죄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그 제스처의 의미를 완전히 인지하지 못했고, 이전에도 비슷한 세레머니를 했지만 징계를 받지 않았으며, 일부 동료들이 그 행동을 하도록 그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나중에 자신이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로 추정되는 이들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으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한동안 개인 경호를 강화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사례들은 축구와 정치가 맞닿은 수많은 사례 중 일부에 불과하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단 하나다. “축구와 정치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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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44031141
※ 최초 작성일 : 2025. 04.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