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o di canio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파올로 디 카니오 이야기

그의 팔에는 로마 숫자로 ‘DVX’라는 타투가 새겨져 있다. 이는 라틴어로 ‘Il Duce(일 두체·무솔리니의 별칭)’를 뜻한다. ‘Paolo Di Canio(파올로 디 카니오)’는 선수 시절 내내 라치오의 울트라스 그룹 ‘Irriducibili(이리두치빌리)’의 모토인 ‘Dare(감히 도전하라)’, ‘Believe(믿어라)’, ‘Be Temerarious(대담하라)’를 체현했다. 그로 인해 그는 한때 전 세계적인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디 카니오는 여러 논란을 차치하고서, 오직 축구에서 훌륭한 성과를 달성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그는 1995년 AC밀란 소속으로 세리에A 우승을 차지했으며, 유벤투스에서는 UEFA컵 우승을 경험했다. 1996년에는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셀틱으로 이적했고, 이어서 42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셰필드 웬즈데이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 그곳에서 그는 1997-98 시즌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그는 탁월한 축구 실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종종 그라운드 위에서 과도한 승부욕과 열정에 따른 폭력적 행동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러한 열정은 1998년, 셰필드 웬즈데이와 아스널의 경기에서 정점을 보인다. 당시 경기에서 디 카니오는 심판 판정에 분노하여 그를 밀쳐 넘어뜨려 들것에 실려나가게 했다. 디 카니오는 곧바로 퇴장당했으며, 이후 잉글랜드축구협회(FA)로부터 1만 파운드의 벌금과 11경기의 출장 정지 징계를 받고 만다.

이후 이탈리아로 떠난 디 카니오는 복귀를 거부했고, 결국 셰필드 웬즈데이는 그를 단돈 170만 파운드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로 이적시켜야 했다. 런던 동부에서 보낸 4년 동안 그는 48골을 기록하며 웨스트햄의 영웅이 되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가 하며, 팀을 해당 시즌 5위에 올리는데 기여했고, 2000년에는 BBC 올해의 골 상을 받기도 했다. 디 카니오는 ‘이리두치빌리’의 엄격하지만 명예로운 신념을 상징하는 두 가지 중요한 행동으로도 기억된다.

그중 하나는 2000년, 에버튼과의 경기에서 일어났다. 당시 에버튼 골키퍼 폴 제라드는 경기 중 부상으로 쓰러졌다. 양측이 한 골씩 주고받으며 1:1로 팽팽한 상황에서 그 순간 디 카니오에게 골 찬스가 주어졌다. 그는 누구나 득점할 수 있었던 기회를 버리고, 공을 손으로 잡아 경기를 멈추며 쓰러진 골키퍼를 가리켰다. 홈 관중들은 그의 기사도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이 일로 인해 디 카니오는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제프 블라터로부터 공식 칭찬 서한을 받았고, 이후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감독과의 공개적인 갈등 끝에 웨스트햄을 떠났고, 사우스 런던의 찰턴 애슬레틱에서 약 2시즌 동안 활약했다. 찰턴에서 한 시즌 더 뛸 기회도 있었으나, 그는 거액의 연봉을 포기하고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라치오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또 다른 논란은 2005년, 라치오와 AS로마의 더비에서 발생했다. 경기가 라치오의 대승으로 끝난 뒤, 디 카니오는 열광하던 이리두치빌리 그룹을 향해 ‘Roman salute(로마식 경례)’를 하며 승리에 대한 기쁨을 표현했다. 사진으로 촬영된 이 장면은 곧바로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키게 된다. 그는 이후 리보르노와 경기에서도 같은 경례를 반복했다. 이 경기는 리보르노 클럽과 팬들의 극좌 성향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경기였기에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디 카니오는 이로 인해 1만 유로의 벌금과 1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마 후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도 같은 경례를 반복했다. 이는 ‘Warrior Spirit(권위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전사의 정신)’을 이리두치빌리에게 상징적으로 전달한 행위였다. 또다시 그는 1만 유로의 벌금과 1경기 출장 정지 처분을 받는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질문을 받았던 디 카니오는 “그 경례는 ‘나의 사람들’에 대한 소속감에서 나온 것”이라며 “당신이 신념을 가지고 있다면, 항상 옳은 것”이라고 답했다.

그를 옹호한 인물 중에는 당시 이탈리아 총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그 경례는 아무 의미도 없다. 디 카니오는 그냥 과시욕이 강한 친구지만, 좋은 청년이다”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이후 디 카니오는 라치오의 구단주이자 대주주인 클라우디오 로티토와 갈등과 불화로 인해 2006년 여름, 라치오의 계약 연장에 서명하지 않았으며, 같은 해 7월 이탈리아 세리에C2 소속의 시스코 로마에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며 2008년 은퇴했다.

“나는 지금 삶의 방식을 바꾸었지만, ‘Curva Nord(꾸르바 노드)’에서 보낸 시절의 기억은 지우지 않았다. ‘Ultras(울트라스)’로 살았던 그 시절은 내 몸에 새겨진 독수리 타투처럼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나에게 울트라스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회 계층과 어울릴 수 있는 통로였다. ‘Quarticciolo(콰르티초올로)’ 처럼 노동자 계층의 동네에서 자란 내게, 그것은 정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벽돌공의 아들인 나에게 울트라스의 삶은 대안이었고, 사회적 구원을 찾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했다. 원정 경기는 가장 아름답고 짜릿한 순간들이었다.”

“금요일 저녁만 되어도, 나는 다음 원정 경기를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걸 선호했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경외와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라치오의 울트라스였다. 주머니에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쥐고 원정 경기를 따라다녔고,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패배의 고통이 무엇인지, 꾸르바에서 경기를 함께 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몸소 겪었다. 나는 한밤중에 일어나 이리두치빌리와 함께 원정 경기를 떠나곤 했다. 사람들은 나를 미워할 수도 있고, 파시스트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나를 모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울트라스들의 편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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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11527798
※ 최초 작성일 : 2025. 0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