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17일. 천천히 해가 지고 있던 어느 날,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브렌던 로저스(Brendan Rodgers)’의 선수단이 셀틱 파크의 잔디를 밟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로저스는 셀틱의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한 만큼, 유럽 클럽 대항전 중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의 조별리그에 반드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2016년 여름, 셀틱 파크에 새롭게 합류한 것은 로저스뿐만이 아니었다. ‘파크헤드(Parkhead)’의 관중석에도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2016/17 시즌부터 경기장에 ‘세이프 스탠딩(Safe Standing)’ 구역이 새롭게 도입된 것이다. 이 구역은 셀틱의 울트라스 그룹인 ‘그린 브리게이드(Green Brigade)’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곳은 열정적인 서포터들이 모여 안전한 환경에서 서서 응원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구역이었다.
2006년에 결성된 그린 브리게이드는 점차 자신들만의 독특한 응원 방식과 뚜렷한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좌파적 시각과 전통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체성을 결합한 이 그룹은 이곳에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들만의 시각을 자주 표출하곤 했다.
2016년, 셀틱 vs 하포엘 베르셰바
2016년 8월,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이스라엘 팀 하포엘 베르셰바와 맞붙은 경기는 그린 브리게이드에게 아주 특별한 기회를 제공했다. 2006년 결성 이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항상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해 왔다. 그동안 셀틱 파크에는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조명하는 현수막, 깃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시위가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하포엘 베르셰바와의 경기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집단행동의 무대가 되었다.
그린 브리게이드가 결성된 이후 셀틱이 이스라엘 팀을 상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 셀틱은 유로파리그에서 하포엘 텔아비브와 맞붙은 바 있다. 당시 셀틱 파크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일부 보이긴 했지만, 그날 밤 대규모 시위나 퍼포먼스는 없었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어쩌면 2009년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2016년에 더욱 강한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셀틱이 하포엘 베르셰바와 맞붙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형 퍼포먼스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셀틱 구단은 UEFA의 벌금을 우려했는지, 그린 브리게이드 측에 이러한 계획에 대해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

경기 당일, 두 차례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킥오프 전 그린 브리게이드는 자신들의 구역에서 첫 번째 ‘티포(Tifo)’를 선보였다. 티포에는 셀틱의 감독 브렌던 로저스가 포커 플레이어로 묘사되었고, 그 아래에는 “Let’s go all in(전부 올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퍼포먼스는 그날 경기의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중석에서 곧 펼쳐질 일에 대한 암시를 상징하기도 했다.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직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두 번째 행동에 나섰다. 이번 퍼포먼스는 그날의 경기 자체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순식간에 셀틱 파크의 꾸르바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의 색상인 검정, 흰색, 녹색,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린 브리게이드의 구성원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고, 그룹의 상징인 해골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케피예(keffiyeh)’를 두른 모습의 배너까지 펼쳐졌다. 이 연대의 메시지는 90분 내내 이어졌다.
이러한 행동을 계획하면서, 그들은 UEFA로부터 구단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셀틱은 이미 과거에도 그린 브리게이드의 팔레스타인 지지 행동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2년 전, KR 레이캬비크와의 경기에서 이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구단은 벌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벌금 매칭 캠페인
예상대로 UEFA는 셀틱에게 10,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불법 배너(illicit banner)’로 규정했다. 모두가 그린 브리게이드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


UEFA의 벌금 부과 이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팔레스타인 의료 지원 단체인 ‘Medical Aid Palestine’과 ‘아이다 난민촌(베들레헴)’에 있는 아동문화·스포츠 센터인 ‘Lajee Center’를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MatchTheFineForPalestine(팔레스타인을 위한 벌금 매칭)’이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의 목표는 분명했다. UEFA의 벌금이 부당하다고 본 그린 브리게이드는, 자신들을 둘러싼 (대체로 부정적인) 언론의 관심을 선한 영향력으로 전환하고자 했다.
모금은 거의 즉각적으로 시작되었고, 수많은 기부가 쏟아졌다. 최종적으로 이들이 두 팔레스타인 단체를 위해 모금한 금액은 약 175,000파운드, 한화로 약 2억 8천만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 브리게이드가 보여준 연대는 아이다 캠프와 요르단강 서안 전역에 깊은 울림을 안겼다. 하포엘 베르셰바와의 경기 이후 몇 주 동안,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그린 브리게이드의 지지에 감사를 전하는 감동적인 영상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2016년 8월의 경기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져 온 지지 활동의 정점이었다. 이날 경기에서의 ‘#MatchTheFine’ 캠페인을 계기로, 그린 브리게이드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한층 더 깊고 의미 있는 차원으로 도약했다.
아이다 셀틱(Aida Celtic)
그린 브리게이드와 아이다 난민촌의 아동문화·스포츠 센터 ‘Lajee Center’의 인연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2016년 8월의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한층 더 견고해졌다. 그리고 이 연대는 결국 아이다 난민촌에 축구 아카데미인 ‘아이다 셀틱(Aida Celtic)’이 창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2019년에 공식 출범한 아이다 셀틱의 핵심 목표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인다. 바로 팔레스타인 난민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장비와 재정이 완비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코 순탄치 않은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삶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 하나만으로도 일상 속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탈출구를 마련한 것이었다. 전 세계의 아마추어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다 셀틱 역시 유소년 팀과 시니어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궁극적으로 아이다 셀틱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요소는 바로 ‘지원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유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anon(A Number of Names)’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브랜드는 아이다 셀틱의 첫 공식 유니폼 제작을 전액 후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길 원하는 여러 유명 인사들의 기부도 있었고, 2016년 모금 캠페인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셀틱 팬들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었던 시기, 셀틱은 아이다 셀틱을 영국으로 초청해 문화 및 스포츠 교류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틱 팬들의 아이다 셀틱에 대한 지지,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연대는 멈추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창립자들은 큰 비전을 품고 있다.
앞으로 몇 시즌 동안 셀틱 파크의 세이프 스탠딩 구역에서는 정치적 메시지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2016년 8월의 사건처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만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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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35004853
※ 최초 작성일 : 2025. 0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