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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축구의 신’ 마라도나와 나폴리 이야기

1984년 여름, SSC 나폴리의 회장 ‘코라도 페를라이노(Corrado Ferlaino)’는 리그 우승 경쟁에 다시 뛰어들기 위해 당시의 상식을 깨버린, 단 한 명의 선수에게 엄청난 금액을 쏟아붓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바르셀로나에서 24세의 ‘디에고 마라도나(Diego Maradona)’를 690만 파운드라는 기록적인 이적료에 영입한 것이다. 이 자금은 이탈리아 은행들과의 연줄을 활용한 지역 정치인 ‘빈첸초 스코티(Vincezo Scoti)’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대출을 통해 마련되었다.

이 영입은 나폴리가 필요로 하던 완벽한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되었고, 75,000명의 팬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1,000리라를 지불하며 이미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아르헨티나 출신 스타가 몇 번 공을 차는 모습을 보기 위해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이탈리아 내 북부와 남부 간의 긴장이 여러 요인으로 최고조에 달해 있던 시기, 특히 경제적 격차가 큰 문제로 대두되던 가운데, 아르헨티나 출신의 마라도나는 그의 겸손한 출신 배경 덕분에 남부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완벽하게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그의 첫 시즌을 앞두고 무려 6만 장의 시즌권이 판매되었다. 하지만 리그 우승은 의외의 팀에게 돌아갔다. 헬라스 베로나가 시즌 종료와 함께 1위를 차지하며 영광의 스쿠데토를 차지했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나폴리는 8위에 그쳤다.

1985-86 시즌, 나폴리는 3위로 마무리했고 전 시즌의 왕좌는 10위로 추락했다. 판도가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그 중심에는 마라도나가 있었다. 물론 그는 ‘알레산드로 레니카(Alessandro Renica)’와 ‘브루조 노르다노(Bruno Giordano)’의 영입, 그리고 새로운 감독 ‘오타비오 비앙키(Ottavio Bianchi)’의 부임이라는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비앙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마라도나를 단지 전술적인 역할에만 배치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그가 최대한 자기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 한다. 그의 기량, 그의 특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은 그를 중심으로 단단한 틀을 만들어 그의 능력이 더욱 빛나도록 하는 것이다.”

1986년 여름은 나폴리와 마라도나 모두에게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페를라이노 회장과 마라도나는 클럽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편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를 거의 혼자 힘으로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었는데, 그는 대회에서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다. 같은 시기, 나폴리는 세리에 A 우승인 스쿠데토에 도전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수비수 ‘테발도 빌리아르디(Tebaldo Bigliardi)’를 영입했으며, 공격진에는 ‘페르난도 데 나폴리(Fernando de Napoli)’, ‘프란체스코 로마노(Francesco Romano)’, ‘안드레아 카르네발레(Andrea Carnevale)’라는 세 명의 선수를 동시에 보강했다.

해당 시즌, 나폴리는 리그 마지막 경기 전에 있었던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무승부로 경기를 종료 함으로 우승을 확정 지었다. 마라도나는 이 시즌 41경기에서 17골을 넣으며 팀을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는 이탈리아 남부 팀이 처음으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나폴리 시민들은 유벤투스와 밀란을 위한 모의 장례식을 열었고, 관을 불태웠다. 그들의 부고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1987년 5월, 다른 이탈리아는 패배했다. 새로운 제국이 탄생했다.” 북부 사람들에게 ‘당나귀’라 불리며 조롱당했던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당나귀로 분장하고, 롬바르디아와 토스카나의 악마들을 꼬리째 붙잡아 도시의 거리에서 끌고 다녔다.

이듬해, 브라질 출신 스트라이커 ‘카레카(Careca)’가 합류했고, 마라도나는 39경기에서 21골을 기록하며 나폴리를 다시 한번 스쿠데토 경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시즌 막판 급격한 부진으로 인해(이 부진은 이후 승부조작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밀란이 막판에 나폴리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1988-89 시즌, 나폴리는 리그에서 인터 밀란에 이어 2위를 기록했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유벤투스, 슈투트가르트, 바이에른 뮌헨 같은 강호들을 차례로 꺾으며 1989년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마라도나와 나폴리의 사랑 이야기는 페를라이노 회장과의 불화로 인해 점차 틀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1989-90 시즌 36경기에서 18골을 터뜨리며 클럽을 또 한 번의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후 그는 코카인 복용, 마피아 연루 의혹, 비행으로 인한 출장 정치 등 여러 논란 속에 1992년 나폴리를 떠났지만, 동시에 나폴리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영감을 주는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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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46485640
※ 최초 작성일 : 2025. 0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