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디움의 녀석들 Ragazzi di stadio

이탈리아 울트라스 문화의 바이블 ‘스타디움의 녀석들(Ragazzi di stadio)’

시대가 버린 청춘, 관중석으로 모이다 : 다큐멘터리 <Ragazzi di stadio>

축구공이 구르는 피치 뒤, 언제나 연기와 함성으로 가득 찬 곳이 있다. 바로 골대 뒤 관중석이다. 사람들은 그곳을 지배하는 이들을 ‘울트라스(Ultras)’라 부른다.

오늘날 울트라스는 거대한 티포를 선보이는 열정적인 팬이자, 때로는 과격한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로 양면적인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 기묘하고도 뜨거운 하위 문화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 토리노의 거칠었던 길거리로 시간을 되돌려야 한다. 축구 서브컬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다니엘레 세그레(Daniele Segre)’ 감독의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이자 사진집, <스타디움의 녀석들(Ragazzi di stadio, 1980>을 소개한다.

1970년대 이탈리아, 그리고 울트라스의 탄생 배경

1970년대 후반 이탈리아는 이른바 ‘납의 시대’라 불리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와 경제적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공장의 문은 닫혔고, 노동자 계급의 청년들은 실업자로 전락해 길거리를 배회했다.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청년들에게 유일한 비상구는 주말마다 열리는 축구 경기장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군대처럼 조직을 결성하고, 꾸르바라고 부르는 자신들만의 구역을 선포하며 억눌린 분노와 에너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현대 울트라스 문화의 시초이다.

유벤투스 울트라스 ‘파이터즈(Fighters)’를 만나다

다큐멘터리 ‘스타디의 녀석들(Ragazzi di stadio)’은 이탈리아 명문 클럽 유벤투스의 초창기 악명 높았던 울트라스 그룹 ‘파이터즈’ 청년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밀착 취재했다.

이 영화는 유벤투스의 세련된 축구 기술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거친 입자의 흑백 화면 속에 다음과 같은 날것의 순간들을 담아냈다.

  • 지하 창고에서의 모의 : 주말 경기에 사용할 거대한 배너와 홍염을 몰래 제작하는 청년들의 비장한 모습
  • 테라스 위의 폭발 : 최루탄 연기가 자욱한 관중석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도 팀을 향해 목이 터져라 노래하는 소년들의 얼굴
  • 생생한 인터뷰 : “경기장 밖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이곳에서는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20대 청년들의 날카로운 눈빛

단순한 불량배인가, 하위 문화의 선구자인가

세그레 감독은 이들을 단순한 ‘축구 훌리건’이나 폭력배로 규정하지 않는다.

영화는 경기장이라는 거대한 해방구에서 청년들이 어떻게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거친 예술(티포, 응원가, 패션)을 만들어냈는지 다큐멘터리 시선으로 담담하게 추적한다.

당시 파이터즈 멤버들이 입었던 가죽 자켓, 군용 점퍼, 그리고 팀의 상징을 새긴 머플러는 오늘날 전 세계 축구 서포터즈 하위 문화의 시각적 모태가 되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년들은 어디로 갔을까?

재미있는 점은 세그레 감독이 38년이 지난 2018년, 속편인 <Ragazzi di stadio 40 anni dopo>를 발표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 당시에 거칠게 소리치던 소년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고, 현대 축구는 자본주의와 비즈니스로 얼룩졌다. 속편은 변해버린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꾸르바를 지키는 올드팬들의 모습을 통해, 울트라스라는 문화가 이들에게 단순한 취미를 넘어 ‘평생의 정체성’이었음을 증명한다.

국내에서 이탈리아 오리지널 울트라스의 태동기를 이토록 깊게 다룬 영상이나 시각 자료는 극히 드물다.

만약 당신이 축구 골대 뒤에서 펼쳐지는 거친 서브컬처와 그 이면의 사회학에 매료되어 있다면, <Ragazzi di stadio(스타디의 녀석들)>은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관문이다. 축구가 한 세대의 청춘들에게 어떤 구원이었는지, 이 작품을 통해 진짜 울트라스의 에너지를 느껴보기 바란다.

참고 자료 :
danielesegre.it
IMDb – Ragazzi di stadio (1980)

<IO, ULTRAS : 오래전 페스카라에서 있었던 일> Click

<I RIBELLI DEGLI STADI : 스탠드의 반항아들>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