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브라바

피보다 진한 우정, 남미 축구 ‘바라브라바’와 브라질 ‘토르치다’의 은밀한 국제 동맹

국가대표팀 무대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혹은 우루과이의 매치업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전쟁이다. 펠레와 마라도나, 메시와 네이마르 그리고 수아레즈로 이어지는 라이벌 의식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클럽 축구로 무대를 옮겨, 골대 뒤 관중석을 지배하는 극성 서포터즈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상반된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다.

남미 축구의 악명 높은 팬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의 ‘바라브라바(Barras Bravas)’와 브라질의 ‘토르치다스 오르가니자다스(Torcidas Organizadas)’가 국경을 넘어 목숨을 건 ‘형제적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남미 국제 대회(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코파 수다메리카나)의 원정길에서 서로의 방패와 칼이 되어주는 초대형 국제 연대 사례들과, 반대로 파국을 맞이했던 실제 역사적 사건들을 사실 기반으로 소개한다.

세력 균형의 시작 : 리버 플레이트 & 팔메이라스

남미 바라브라바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철저한 논리 중 하나는 바로 라이벌 전선에 대항하기 위한 세력 균형이다.

아르헨티나 리버 플레이트의 거대 바라브라바 조직인 ‘로스 보라초스 델 타블론(Los Borrachos del Tablón)’과 브라질 팔메이라스의 토르치다 ‘만샤 베르지(Mancha Verde)’의 동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1999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준결승 매치업을 계기로 공식 연대를 시작했다.

남미 대항전에서의 평화 협정 비하인드

202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토너먼트에서 원정 경기 발생 시 우려되는 유혈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만샤 베르지와 로스 보라초스 델 타블론의 핵심 지도부가 사전에 극비리에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양측 수뇌부는 “그라운드 밖에서 양측 조직원 간의 불필요한 충돌을 절대 금지하며, 서로의 안전을 100% 보장한다”는 내용의 공식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이는 남미 축구 역사상 서포터즈 지도부가 외교적 조약처럼 평화 조약을 맺은 대표적 사례이다.

최근 남미 대항전에서의 에스코트

이 평화 협정과 동맹의 전통은 최근 대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팔메이라스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원정을 오거나 리버 플레이트가 상파울루 원정을 떠날 때, 만샤 베르지 조직원들이 직접 공항 및 경기장 외곽까지 마중을 나가 상대 바라들을 경호하고 동선 전반의 치안을 책임지는 모습이 현지 카메라와 팬들의 직캠을 통해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스타디움을 점령한 황색과 검은색의 형제 : 페냐롤 & 코린치안스

우루과이 전통 강호 페냐롤의 바라브라바인 ‘바라 암스테르담(Barra Ámsterdam)’과 브라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코린치안스의 ‘가비오에스 다 피에우(Gaviões da Fiel)’는 남미 대륙 전체에서도 가장 조직적인 국제 동맹으로 손꼽힌다.

본거지 제공과 프레비아 인증

얼마 전 상파울루를 방문한 페냐롤의 바라들은 코린치안스 가비오에스의 심장부이자 삼엄하게 통제되는 본거지 내부를 그대로 제공받았다. 이 안에서 페냐롤 팬들이 코린치안스 멤버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경기 전 축제인 ‘프레비아(Previa)’를 즐기며 아사도(바비큐)와 맥주를 나누는 모습이 SNS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포착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타 팀 팬들에게는 극도로 배타적인 코린치안스의 토르치다가 우루과이의 바라브라바들에게 본거지를 전면 개방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형제애를 증명한다.

원정길의 철저한 치안 품앗이

반대로 코린치안스 팬들이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원정을 가면 페냐롤의 바라브라바들이 국경이나 공항에서부터 경호원을 자처한다. 이는 우루과이 경찰의 과잉 진압이나 현지 라이벌 팬들의 기습으로부터 동맹 형제들을 철저하게 에스코트하는 일종의 품앗이 구조인 것이다.

리오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결속 : 보카 주니어스 & 바스쿠 다 가마

아르헨티나의 가장 강력한 바라브라바인 보카 주니어스의 ‘라 도세(La Doce)’와 브라질 리오 데 자네이로의 명문 바스쿠 다 가마의 최대 오르가니자다 ‘포르사 조벵(Força Jovem Vasco – FJV)’의 동맹은 최근 몇 년 새 SNS에서 가장 뜨겁게 인증샷이 올라오는 라인이다.

역사적 결속 배경

이들의 동맹은 앞서 언급한 [리버 플레이트 × 팔메이라스] 연맹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에서 출발했다. 리버 플레이트의 숙적인 보카 주니어스와, 팔메이라스의 라이벌 전선과 맞닿은 바스쿠 다 가마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은 것이다.

이 외에도 남미 축구 세계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라 도세와 아르헨티나의 라이벌인 브라질의 포르사 조벵 서로 간의 호의적인 태도와 일반 팬들의 교류가 양측의 핵심 수뇌부들의 긍정적인 기류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다.

교류 형태

2025 시즌 당시, 바스쿠 다 가마 팬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 원정을 올 때 라 도세 수뇌부들이 직접 보카의 홈구장인 ‘라 봄보네라(La Bombonera)’ 주변 아지트로 안내해 환대했다. 특히 공개된 양측 수뇌부들이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나, 기념 촬영을 한 사진들을 보면 이들의 관계가 상당히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라 도세 멤버들이 바스쿠 다 가마의 검은 사선 유니폼이나 바람막이를 입고 스탠드에 서 있거나, 반대로 리오의 상 자누아리우 경기장에 보카의 ‘La 12’ 로고 의류를 입은 브라질 팬들이 깃발을 흔드는 믹스매치 사진들이 온라인상에서 지속적으로 교차 검증되고 있다.

비극으로 끝난 파국 :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 인데펜디엔테의 ‘최단 시간 절교’

모든 국제 동맹이 아름다운 결말을 맺는 것은 아니다. 칠레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U de Chile) 바라브라바와 아르헨티나의 인데펜디엔테(Independiente) 바라브라바 간에 발생했던 사건은 남미 축구사에서 가장 허망하게 깨진 ‘최단 시간 절교’ 사례로 기록되어 있다.

동맹의 결성과 배경

과거 두 구단의 바라브라바들은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맺고 국제 대회에서 서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그리고 2025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당시 이들은 ‘동맹’을 공식화 했다.

우정의 파국과 폭력 사태

홈팀 인데펜디엔테와 원정팀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의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경기 당일, 양측 바라와 반다들은 인데펜디엔테 바라브라바의 본거지에서 아사도 파티를 하며, 서로의 상징물을 교환하고,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몇 시간 후, 관중석에서 사소한 시비와 오해가 도화선이 되어 양측 바라브라바 간에 전면적인 패싸움과 폭력 사태가 발발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형제”를 외치며 경기 전 프레비아를 함께 즐겼던 이들이 스탠드 위에서 무차별적인 폭력과 투석전을 벌인 것이다.

이 유혈 사태로 인해 양측 수뇌부가 공들여 쌓아온 국제 동맹은 단 6일 만에 완전히 파기되었다. 남미 축구계에서는 이 사건을 두고 “바라브라바 세계의 통제 불가능한 폭력성이 어떻게 오랜 운정을 순식간에 집어삼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비극적 사례로 인용된다.

국경을 넘어선 남미 바라브라바 그리고 토르치다스 오르가니자다스 의 국제 동맹은 단순한 축구 응원을 넘어, 거친 길거리 서브컬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자 ‘조직적 조약’과 같다.

하지만 나시오날 & 인데펜디엔테의 사례처럼, 그 근간에 자리 잡은 가공되지 않은 폭력성은 언제든 아슬아슬한 평화를 깨뜨릴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양국 선수들이 라이벌로 격돌하지만, 골대 뒤 테라스 스탠드에서는 이처럼 국경을 초월한 정교한 역학 관계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남미 축구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이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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