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지역의 흙바닥 축구장에서 공을 차는 복면의 사람들. 처음 보면 낯선 풍경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단순한 축구 동호회가 아니다. 바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 소속 공동체 구성원들이다.
무장 혁명 운동으로 알려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수십 년 동안 멕시코 정부와 갈등을 이어왔지만, 동시에 축구를 통해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연결해 왔다. 이들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사회를 조직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탄생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은 1994년 1월 1일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날이었다. 멕시코 정부의 경제 정책이 원주민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판단한 무장 원주민 조직들은 치아파스 지역 여러 도시를 점령하며 봉기를 일으켰다.
그들은 오랫동안 지속된 빈곤과 차별, 그리고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을 비판하며 무장 투쟁을 시작했다.

무장 조직에서 자치 공동체로
시간이 지나면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단순한 게릴라 조직이라는 이미지를 넘어섰다.
그들은 치아파스 지역 곳곳에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자치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학교와 의료 시설, 공동체 공간 등이 국가 행정 체계와는 별개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도 축구장이 이러한 공동체의 중요한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축구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다
사파티스타 공동체에서 축구는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었다.
EZLN은 지역 리그와 토너먼트, 마을 간 친선 경기를 꾸준히 개최했다. 교통이 불편하고 외부와 단절된 마을들이 많았던 만큼 축구는 주민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는 환경 속에서 축구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공통 언어 역할을 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축구가 사회적 연대와 공동체 형성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많지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사례는 그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혁명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은 인간다움
혁명 운동이라고 하면 흔히 무장 투쟁과 시위, 충돌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축구를 하는 사파티스타들의 모습은 또 다른 현실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저항만이 아니었다. 공동체를 유지하고, 아이들이 뛰어놀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상을 지켜내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였다.
축구는 이러한 가치를 가장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유럽에서도 이어진 ‘축구 외교’
2021년 사파티스타 대표단은 유럽 순방에 나섰다.
그들은 각국 시민단체와 사회운동 단체들을 만나 정치적 토론과 교류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일정 속에서도 축구가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파티스타 대표단은 방문한 지역의 연대 단체들과 축구 경기를 진행하며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언어가 달라도, 정치적 배경이 달라도 축구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에게 축구란 무엇인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역사는 단순한 무장 투쟁의 역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은 학교를 만들고 병원을 운영했으며, 공동체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구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치아파스의 흙바닥 운동장에서 시작된 작은 경기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체를 유지하고 연대를 강화하는 사회적 도구였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축구를 사랑한 이유는 어쩌면 매우 단순하다. 축구가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가장 강력한 언어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
Exército Zapatista de Libertação Nacional – EZLN : sobre uma geografia das e dos de baixo
Ejército Zapatista de Liberación Nacional
Movimento zapatista
<브라질의 전설 ‘닥터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