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라치오 울트라스 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 이야기

‘Irriducibili(이리두치빌리)’는 1987년부터 2020년까지 SS 라치오의 Curva Nord를 대표했던 가장 영향력 있고 논쟁적인 울트라스 그룹 중 하나다. 독창적인 응원 문화와 조직 방식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을 얻은 한편, 폭력 사건과 신파시즘 성향의 정치적 행보로도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지난 2020년 2월, 그룹의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irriducibili Lazio Ultras

SS 라치오를 응원했던 역사적인 그룹들

초기의 ‘Curva Nord(꾸르바 노드·북쪽 응원석)’에서 활동했던 울트라스 그룹은 1971년 결성된 ‘Commandos Monteverde Lazio(코만도 몬테베르데 라치오)’였다. 라치오 울트라스 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이 그룹은 22m에 달하는 대형 배너를 경기장 난간에 걸어 대중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룹명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들은 단순한 응원이 아닌, 마치 군부대와 유사한 활동을 보였던 그룹이었다. 가령 사용하는 상징이나 복장, 용어, 의식은 물론 조직 내부의 서열과 위계 구조 등 상당 부분 군사적인 부분에서 차용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당시 사회 전반의 급진 정치, 청년 하위문화, 권위주의에 대한 매혹과도 관련이 깊으며, 일부 그룹은 극우 정치 이념과도 연결되어 있어 더욱 복합적인 문화 현상으로 나타났다.

Commandos Monteverde Lazio
코만도 몬테베르데 라치오
라치오의 역사적인 울트라스 그룹들

1977년 Eagles Supporters의 등장

당시 라치오 팀 자체의 성과가 더해지면서, 코만도 몬테베르데 라치오가 걸었던 인상적인 배너를 중심으로 다른 이들도 합류하게 되었고, 새로운 구성원들이 계속 늘어났다. 1974년 5월에는 라치오가 세리에A에서 우승하며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이러한 활약에 이은 열광적인 분위기는 비슷한 방식으로 서포터즈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뒤를 이어 이탈리아 육군의 정예 낙하산 부대에서 이름을 따온 ‘Folgore(폴고레)’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이 부대는 신파시스트 성향의 청년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집단이었다. 뒤를 이어 ‘Boys(보이즈)’라는 그룹이 등장했으며, 다시금 군대에서 영감을 받은 ‘Marines(마린스)’라는 그룹도 나타났다.

이처럼 1976년까지 여러 소규모 그룹들이 G.A.B.A.(Gruppi Associati Biancazzurri)라는 연합체를 조직했고, 이를 기반으로 ‘Eagles Supporters(이글스 서포터즈)’가 탄생했다.

Eagles Supporters
이글스 서포터즈

이글스 서포터즈는 당시 기준으로 매우 화려한 응원을 선보였다. 그들의 리듬감 있는 북소리, 경기장을 뒤덮는 연막탄과 색종이, 그라운드를 향해 던져지는 대량의 두루마리 휴지로 구성된 응원은 장관이었다.

이들은 경기당 평균 약 2,000명이 모여 응원을 펼쳤으며, 특히 유벤투스나 AS로마와의 주요 경기에서는 5,000 ~ 6,000명의 인원이 모였다.

몇 년 후인 1978년, 신파시스트 성향의 ‘Vikings(바이킹스)’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이들은 꾸르바 노드에 모여 바이킹의 드라카르(전투용 배)와 태양 문양이 그려진 배너를 내걸었다. 하지만 이 그룹의 이념적 색채는 꾸르바 노드의 모든 이들에게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바이킹스를 포함한 극우 성향의 서포터즈와 보다 온건한 이글스 서포터즈 사이에 잦은 충돌이 발생하기도 했다.

Vikings Lazio
라치오 울트라스 그룹 바이킹스
바이킹스 라치오
Gruppi Associati Biancazzurri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라치오 울트라스는 이탈리아 전역에서 자신들의 명성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이들은 라치오에 대한 충성심과 열정은 물론이고, 압도적인 응원 퍼포먼스와 창의적인 응원가 제작 능력으로 다른 이탈리아의 열성 팬들 사이에서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명성은 ‘Bari(바리)’, ‘Torino(토리노)’, ‘Trieste(트리에스테)’ 등 이탈리아 내 비슷한 성향의 다른 팀 울트라스 그룹들과의 동맹으로 이어졌다.

Stadio Olimpico
1990 이탈리아 월드컵

1989-90 시즌은 꾸르바 노드에 있어 중요한 시기였다. 당시 ‘Stadio Olimpico(스타디오 올림피코)’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을 위해 보수 공사에 들어가면서 ‘로마의 두 팀(SS 라치오 & AS 로마)’은 ‘Stadio Flaminio(스타디오 플라미니오)’에서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곳은 작지만 열광적인 서포터즈에게 이상적인 장소였다. 기존의 올림피코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관중석이 경기장과 훨씬 가까이 위치해 있어, 서포터들이 선수들과의 거리를 가깝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즉, 팬들이 경기의 열기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같은 시즌, 당국은 울트라스에 대한 강경한 탄압을 시작했다. 이는 다가오는 월드컵을 앞두고 훌리건 관련 문제로 인한 언론 노출을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 초 라치오의 꾸르바 노드 역시 사회 전반의 변화된 분위기를 반영하는 새로운 팬 그룹들의 등장으로 활기를 띠었다.

Gruppo Rock
Gruppo Rock Lazio
Gruppo Sconvolti
Ultras 74

이후 몇 년은 라치오 팬들의 영향력, 즉 ‘팬 파워’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시기가 도래한다. 1980년대에는 ‘Gruppo Sconvolti(그루포 스콘볼티)’, ‘Ultras 74(울트라스 74)’, ‘Gruppo Rock(그루포 록)’ 같은 새로운 그룹들이 등장했다.

특히 중요한 전환점은 1987년에 발생했다. 그 해, 꾸르바 노드에는 일시적으로 ‘Vikings(바이킹스)’의 배너가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Irriducibili(이리두치빌리)’의 배너가 등장했다. 이 그룹은 라치오의 꾸르바 노드, 나아가 이탈리아 울트라스 문화 전체의 주축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다.

Irriducibili Lazio
이리두치빌리의 탄생

1987년 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의 탄생

‘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 자신들의 기원과 성장에 대해 외부의 해석 없이 스스로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의 이야기는 1980년대에 시작된다. 당시 이탈리아 울트라스 운동은 갱신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다양한 응원석에서 여러 소규모 분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그룹들이 잃어버렸던 초심을 대체하고자 하였고, 체제(이탈리아 당국과 축구 기구로 대표되는)에 타협하지 않는 강한 ‘mentalità(멘탈리타·정신·태도)’를 보여주고자 했다.

라치오의 원정을 떠나는 이리두치빌리

우리는 라치오의 홈경기마다 철저하게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Monteverde(몬테베르데)’ 지구에 있는 한 ‘Bisca(비스카·불법 도박장)’에 모였다. 그곳에서 영국 스타일로 머플러를 착용하고, 여기에 패치를 꿰매 붙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한편, ‘Eagles(이글스)’와의 공존은 점점 더 긴장감 있게 변해갔다. 응원 방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많은 인원들이 이글스를 떠나 우리 그룹으로 합류했다는 점에서 다툼이 시작되었다. 라치오와 바를레타의 경기에서 양 그룹(이리두치빌리 & 이글스 서포터즈) 사이의 첫 충돌이 일어났고, 경찰의 개입이 필요했다.

irriducibili 이리두치빌리

이리두치빌리는 1987년 10월 중순, 라치오와 파도바의 세리에B 경기에서 처음 등장했다. 우리는 라치오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많은 이들을 ‘Muretto(무레토·작은 벽)’으로 초대하여, 늘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바이킹스 그룹을 몰아내고자 했다.

‘Irriducibili(이리두치빌리)’라는 이름은 독창적이었으며, 다른 팬 그룹들처럼 구단이나 언론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우리의 결의를 나타냈다. 우리는 우리 팀을 지지하되, 과거 울트라스들이 만들어낸 긴장을 야기했던 도덕주의적 접근이나, 편협함을 배제하고 응원하고자 했다.

이리두치빌리 캐릭터
Mr Enrich Lazio 미스터 엔리치 라치오

우리는 과거와의 단절을 표현하고 싶었고, 원정 경기를 갈 때조차도 우리만의 교통수단을 선택했다. 이글스가 제공한 버스를 대신하여 우리는 기차를 선택했으며, 이는 우리에게 정해진 일정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은 큰 인기를 얻었고, 많은 팬들이 우리와 함께 이동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스코트로 ‘Mr. Enrich(미스터 엔리치)’라는 작은 남자를 채택했다. 이리두치빌리의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몇 개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평범한 울트라스들과 달랐다. 우리는 훨씬 더 예측 불가능했다.

당시 우리의 좌우명은 ‘Being original(독창적이 되자)’이었다. 그래서인지 평범한 팬들이 우리를 볼 때마다, “저 친구들이 이번엔 또 무엇을 준비했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이리두치빌리와 이글스 서포터즈
Mr Enrich Fanzine

베로나와의 경기에서는 팀을 응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북을 사용했다. 아스콜리와의 경기를 앞두고는 처음으로 ‘Mr. Enrich(미스터 엔리치)’라는 ‘Fanzine(팬진)’을 발행했고, 이는 꾸르바 노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87년 12월, 제노바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거의 모든 라치오 서포터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우리는 기차를 이용했다. 기차역에서는 버스를 타고 온 800명의 서포터들이 우리를 따라 함께 이동했고, 우리는 이 행렬을 이끌며 제노바의 마라시 스타디움까지 행진했다.

이는 이후 우리 자신을 상대 서포터들에게 ‘소개’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었다. 그날 이후, 모든 라치오 팬들은 원정 경기가 있을 때마다 미스터 엔리치 문양을 단 ‘Unofficial bianco-celeste train(비공식 하늘색-흰색 기차)’가 떠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우리 스스로 라치오의 선봉이라는 자각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Dio salvi gli Ultras

1989-90 시즌, 라치오는 스타디오 플라미니오에서 경기를 치렀다. 우리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의 개보수에 반대했다. 이는 공공자금의 낭비라고 생각했고, 경기장 내에서 그에 대한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 시기는 동시에 지속적이고 강력한 경찰의 탄압이 있었던 해이기도 했다. 당시 우리에게 첫 ‘Diffida(디피다)’ 즉, ‘경기장 출입 금지 명령’이 내려졌다. 이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며, 경찰에게 자신들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사람’을 스포츠 경기로부터 배제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었다.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는 이리두치빌리와 경찰 사이에 첫 대규모 충돌이 발생핬다. 비슷한 규모의 충돌은 로마와의 더비에서도 있었는데, 우리는 그때 디피다에 대한 항의를 담아 ‘Dio salvi gli Ultras(신이시어 울트라스를 구하소서)’라는 유명한 배너를 내걸었다.

1990-91 시즌, 완전히 바뀐 스타디오 올림피코로 복귀했다. 우리는 그 경기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계속 내려지는 디피다에 반대하는 의미로 곧바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배너를 만들었다. ’12 in campo? Solo quando lo vogliamo noi!(12번째 선수가 경기장에 있다고? 그건 우리가 원할 때만이야!)’.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경기장에서 더 이상 어떤 응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전반전 45분 동안 응원 구호와 배너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Strike(스트라이크·응원 거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방식은 다른 어떤 울트라스 그룹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이리두치빌리와 이글스 서포터즈의 경쟁

또한 우리는 더비 경기에서 ‘Choreographies(꼬레오그라피·응원 퍼포먼스)’를 포기했고, 대신 우리의 감정을 담은 배너를 걸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Lo spettacolo colora la curva, la solidarietà la rende grande(쇼가 꾸르바를 화려하게 만들지만, 연대가 그것을 위대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응원보다는 서포터들 간의 유대와 연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디피다에 반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언론은 우리가 팀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이리두치빌리는 ‘응원이 의무가 아님을, 그리고 응원 외에도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라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우정, 특히 경기장 출입 금지 처분을 받은 친구들과의 연대가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다.”

미스터 엔리치와 이리두치빌리의 꾸르바 노드 장악

‘Irriducibili(이리두치빌리)’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는 없지만, 그들의 마스코트 ‘Mr. Enrich(미스터 엔리치)’의 기원은 1950년대 중반 ‘Reginald Smythe(레지널스 스마이시)’가 영국 신문을 통해 연재했던 만화의 캐릭터 ‘Andy Capp(앤디 캡)’일 가능성이 있다.

앤디 캡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공격적인 남성이었으며, 영국 북부 노동 계급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리두치빌리의 마스코트는 앤디 캡보다 더 젊은 외형을 하고 있으며 복장도 다르다.

미스터 엔리치는 소매가 없는 버튼다운 폴로 셔츠와 ‘Pork Pie(포크 파이)’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 스타일은 1960년대 후반 영국의 ‘Ska(스카)’와 ‘Skinhead(스킨헤드)’ 하위문화에서 유행하던 복장이었다.

Andy Capp
앤디 캡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리두치빌리는 꾸르바 노드 내에서 경기장과 가장 가까운 구역을 장악하게 된다. 이 구역, 즉 그들의 ‘영역’에 들어가려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거나, 초대를 받은 사람이어야 하며, 이리두치빌리의 문지기들을 통과해야 했다.

이 문지기들은 사람을 알아보는 직감과 ‘외부인’을 거리낌 없이 걸래낼 수 있는 태도로 선발된 이들이었다. 이리두치빌리는 꾸르바 노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겼다.

이 공간에 들어오면, 때로는 배너나 응원 연출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부금을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자금은 ‘사회적 캠페인’이나 ‘응원에 필요한 물품(천, 페인트, 홍염 등)’을 마련하는 데 사용되었다.

Ultras Lazio 울트라스 라치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강제적인 돈 요구나 폭력적인 징수는 전혀 없었으며, 응원석에 입장한 사람들에게 비공식적인 세금을 부과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기부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졌고, 돈을 걷는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이리두치빌리는 이 구역에서 행해지는 배너의 메시지와 응원 내용 전체를 통제했다. 바로 이곳에서 경기 당일의 조직적인 응원 방향성이 조율되었으며, 여기에 있는 팬들은 경기를 관람하고, 경기 내용에 대해 토론하며, 다양한 종류의 반응과 의견(모욕적이거나, 격려하거나, 정치적이거나, 혹은 단순히 파격적인)을 쏟아냈다. 리더들은 확성기를 들고 군중들에게 함께 응원하자며 독려했다.

때로는 노래하지 않고 있는 서포터들을 콕 집어 지적하기도 했다.

이리두치빌리 혹은 울트라스가 아닌 ‘일반적인’ 팬들 가운데, 응원석에 입장했으면서 응원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주도적인 인물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리두치빌리는 그들에게 외쳤다. “얘들아, 우리 팀을 위해 다 같이 노래하자! 응원도 안 할 거면 도대체 왜 경기장에 오는 거야, 씨발!” 이처럼 때때로 이리두치빌리의 리더들은 몇몇 구성원들을 비참여 팬들에게 직접 보내, 목소리를 내어 응원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득하게 하기도 했다.

폴 게스코인

1990년대는 라치오의 경기에서 ‘영국의 유니언 잭(Union Flag)’이 자주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1992년, 라치오는 잉글랜드 국가대표 ‘Paul Gascoigne(폴 개스코인)’을 영입했다. 이에 반응하여 이리두치빌리는 영국식 맥주 한 잔이 그려진 모습과 함께, 그의 악명 높은 음주 습관을 기리는 의미로 ‘It’s ready for you(너를 위해 준비했어)’라는 배너를 제작했다.

1992-93 시즌, 식품 재벌 기업의 ‘Sergio Cragnotti(세르지오 크라뇨티)’가 SS 라치오의 회장으로 부임하며 팀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같은 해, 이글스 서포터즈는 해체되었고, 꾸르바 노드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이리두치빌리도 새로운 인물들과 리더들이 등장했다. 당시, 새 회장은 이리두치빌리와 직접 협상을 벌였고, 이리두치빌리는 여전히 경찰과의 대립을 이어나갔다.

젊은 티포지들의 우상, 이리두치빌리의 주요 활동

1995-96 시즌, 이리두치빌리를 포함한 라치오 서포터들의 대규모 항의 끝에 SS 라치오의 회장 크라뇨티의 ‘Beppe Signori(베페 시뇨리)’ 매각 계획이 철회됐다.

당시 이들이 있던 꾸르바 노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창의적인 꾸르바이기도 했다. 1997년 1월에는 감독 ‘Zeman(체만)’이 해임되고 ‘Dino Zoff(디노 조프)’가 그를 대신했다.

AS로마와의 더비에서 선수들은 꾸르바 노드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 당시 꾸르바 전체를 뒤덮은 거대한 미스터 엔리치와 파란 풍선으로 만든 ‘Lazio’라는 거대한 글자에 모두가 매료되었다. 1997-98 시즌, 꾸르바 노드는 몇 가지의 훌륭한 꼬레오그라피를 선보였다.

제국의 독수리와 함께 적힌 이리두치빌리의 모토 : ‘Osare, Creder, Spavaldi di Essere (감히 도전하라, 믿어라, 대담해져라)’

SS 라치오의 상징과 함께 등장한 문구 : ‘Nobiltà Ultras : da Sempre(울트라스의 고귀함 : 언제나 그래왔듯이)’

경찰 탄압에 대한 항의를 담다 : ‘Noi Più Forti dell’Indifferenza(우리는 무관심보다 더 강하다)’

Osare, Creder, Spavaldi di Essere

2000년 1월, 이리두치빌리는 꾸르바 노드 전체를 라치오의 역사적 인물들로 채워 마치 박물관과 같은 대형 코레오그라피를 연출했다. 여기에는 팀의 창립자인 ‘Bigiarelli(비자렐리)’부터 ‘Beppe Signori(베페 시뇨리)’까지의 구단의 역사적인 인물들의 형상이 전시되었다. 이는 클럽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5-96 시즌은 이리두치빌리에게 중요한 해였다. 이 해에는 새로운 팬진 ‘La Voce Della Nord(북부의 목소리)’가 처음 발간되었으며, 이는 곧 꾸르바 노드 전체가 애독하는 잡지가 되었다.

SS 라치오의 역사

같은 시즌, 크라뇨티 회장의 라치오 구단 경영진은 이리두치빌리를 처음으로 강하게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 갈등은 1995년 6월, 구단이 SS 라치오의 최고 득점자인 ‘Beppe Signori(베페 시뇨리)’를 파르마로 매각하려 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팬들은 라치오 본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고, 결국 구단은 해당 매각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1999-2000 시즌, 클럽 창립 100주년을 기념에 발맞춰 팬들은 축하 행사를 가졌다.

2000년 1월, 볼로냐와의 경기를 앞두고 꾸르바 노드의 팬들은 아침 10시부터 클럽이 창립된 ‘Piazza della Libertà(피아차 델라 리베르타)’에서 축제를 시작했다. 이날 25,000명 이상의 서포터즈가 광장에서 스타디오 올림피코까지 행진하며 라치오의 한 세기를 함께 기념했다.

Curva Nord Lazio 꾸르바 노드 라치오

꾸르바 노드, 특히 이리두치빌리의 꼬레오그라피는 그날의 진정한 볼거리였다. 놀라운 우연으로 라치오는 같은 시즌에 두 번째 스쿠데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꾸르바 노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리두치빌리 리더들의 카리스마와 다른 팬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존경심’, 그리고 그 존경심에 필연적으로 얽힌 ‘두려움’의 결합에 의해 통제되었다.

이리두치빌리의 일에 참견하거나 그룹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꾸르바 안에서 즉시, 혹은 며칠 후 경기장 밖에서라도 반드시 ‘처리’되었다. 하지만, 이리두치빌리는 자신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위협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Piscitelli Lazio
Piscitelli Diabolik 피시텔리 디아볼릭

이리두치빌리의 주역들에게 폭력이란 ‘필요한 때에만 가하는’ 것이었다. 꾸르바 노드 청년 팬들 사이에서 이 그룹과 리더들이 가진 헤게모니는 뚜렷했다.

젊은 ‘Tifosi(티포지·열정적인 팬들)’에게 있어 ‘이리두치빌리의 일원’이라는 것은 멋진 일로 여겨졌고, 이들은 이리두치빌리의 티셔츠와 모자 및 기타 굿즈를 즐겨 입었다.

이들은 월요일 학교에서, 강력한 이리두치빌리와 어울린 경험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그 대담함은 사회로부터 ‘쎈 사람’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으로 보상받았다.

새로운 세력 ‘반다 노안트리’의 등장

권력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항이 존재한다. 이리두치빌리는 항상 축구적 순수성과 이념적 순수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리두치빌리의 ‘머천다이징 사업’은 그들이 초심을 잃었고, 순수함과 타협했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이런 와중에 2000년 무렵, 이리두치빌리는 내부에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Banda Noantri(반다 노안트리)’라는 그룹이 등장했다.

Banda Noantri Lazio

같은 해, 이리두치빌리는 예전처럼 충돌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사라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리두치빌리의 머천다이징 사업은 그들이 행동과 싸움에 기반한 명성이 아니라, 디자이너 브랜드 옷을 입고 외형적 이미지에 치중하는 데 관심을 둔 것 아니냐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심지어 ’embourgoisement(부르주아화)’ 됐다는 모욕적인 비판, 즉 돈에 휘둘리게 되었고 브랜드를 통해 악명을 쌓으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과거, 이리두치빌리가 꾸르바 노드에서 이글스를 몰아낼 당시, 그들은 꾸르바 내 어떤 형태의 상업화도 혐오한다며 ‘No al Mercato in Curva Nord(꾸르바 노드에 시장은 안 된다)’는 구호까지 내걸었던 바 있다. 새롭게 등장한 비판자들은 이제 그들 스스로가 그 초창기 원칙 중 하나를 어겼다고 주장했다.

라치오 반다 노안트리 Banda Noantri
Banda Noantri 반다 노안트리

‘Banda Noantri(반다 노안트리)’는 자신들이 꾸르바 내에서 ‘순수한 울트라스의 모델’을 재정립하려 했다. 이들도 마찬가지로 신파시스트 성향이었지만,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배너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이 그룹은 18세에서 28세 사이의 남성 약 4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스스로를 ‘순수하고 거친 존재’, ‘항상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정의했다. 이는 과거 이리두치빌리가 자처하던 이미지와 흡사했다.

타협하지 않고,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아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이 그룹은, 이리두치빌리에게 1980년대 영국의 축구 훌리건 집단 ‘Casuals(캐주얼스)’와 유사한 존재로 여겨졌다. 이들은 이리두치빌리의 극단적인 버전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분열은 겉으로 보기에 이념적인 차이였을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이리두치빌리와 반다 노안트리는 경기장에서 같은 공간을 공유할 때 규범과 암묵적 사인, 상호 존중을 지켰고, 여전히 동지 관계를 유지했다. 공통된 이념을 갖고 있던 그들이지만, 때때로 의견 충돌로 인해 흔들리긴 했어도, 대체로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의 분위기를 지속시켰다.

Casuals Lazio
Casuals Lazio

새로운 시대 , 이리두치빌리의 해체 그리고 새로운 그룹 ‘라치오 울트라스’의 탄생

이리두치빌리의 리더는 그 유명한 ‘Piscitelli(피시텔리·별명 Diabolik 디아볼릭)’이었다. 피시텔리는 로마 암흑 세계와도 연관된 인물로, 폭력과 마약 밀매와 관련된 다양한 범죄로 여러 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90년대 초부터 2019년까지 이리두치빌리의 리더로 활동했다. 그는 이리두치빌리의 리더로 재임하는 동안 그룹을 통해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를 외쳤고, 그로 인해 라치오는 오랜 기간 극우 이념과 끈질기게 연결되었다.

피시텔리는 2019년 8월 7일 로마에서 총격으로 피살됐다. 사건은 로마의 조직범죄·마약시장 등을 배경으로 수사가 진행됐지만, 2026년 현재 실행범과 범행의 전모를 확정적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 살인사건의 실행범으로 기소된 Raul Esteban Calderón은 2025년 1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지만, 2026년 5월 8일 로마 항소법원에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어 2026년 7월 공개된 판결 이유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에 대한 증거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2020년 2월 27일 이리두치빌리는 33년 역사를 끝내며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이리두치빌리는 공식 성명에서 “Curva Nord에는 앞으로 하나의 배너만 존재하며, 그 이름은 ‘Ultras Lazio'”라고 밝혔다.

이리두치빌리가 해체를 공식 발표한 뒤, 라치오 울트라스는 과거 이리두치빌리의 리더 피시텔리와 그의 동료들이 한때 악명을 떨쳤던 꾸르바 노드의 일부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한편, 이리두치빌리 해체 후에는 ‘No Bullshit’, ‘gli S.S. Lazio Tibur Crew’. ‘gli Aggregazione’와 같은 새로운 그룹들이 탄생했는데, 이들이 기존의 이리두치빌리를 추종하는 그룹들인지는 확실치 않으며, 향후 꾸르바 노드가 어떠한 전개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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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815482069
※ 최초 작성일 : 2025. 0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