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두크·아약스 서포터 충돌 시도에 57명 연행…Torcida 반유대주의 구호 23명 수사
크로아티아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네덜란드 아약스의 UEFA 컨퍼런스리그 경기를 앞두고 양측 서포터 사이에서 대규모 충돌이 시도됐다. 경찰이 현장에 개입하면서 57명이 연행됐으며, 경기 당일에는 하이두크의 조직 서포터 Torcida Split(토르치다 스플리트) 일부 참가자가 반유대주의 및 나치 찬양 구호를 외쳐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건은 2026년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크로아티아의 항구도시 스플리트에서 발생했다.
특히 경기 당일 Torcida의 대규모 행진에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강제수용소를 찬양하는 구호가 등장하면서 크로아티아 정부와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다.

경기 전날 밤, 하이두크·아약스 서포터 약 500명 대치
사건은 10월 14일 오후 11시 30분경 스플리트 중심부의 해안 산책로 리바(Riva)에서 시작됐다.
당시 하이두크의 서포터 조직 Torcida와 아약스 원정 서포터들이 도심에 집결하면서 물리적 충돌 직전의 상황이 발생했다.
스플리트-달마티아 경찰청장 마르코 스르다레비치(Marko Srdarević)에 따르면 당시 현장과 주변에는 약 200명의 아약스 서포터와 300명의 Torcida 측 인원이 모여 있었다.
경찰은 두 집단의 충돌을 막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으며, 약 15분 만에 질서를 회복했다. 이 과정에서 총 57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일부 현지 언론은 서포터 사이에 소규모 몸싸움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지만, 경찰은 대규모 충돌을 사전에 저지했으며 해당 현장에서 부상자나 재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경기 전부터 이어진 긴장…아약스 서포터도 무기 소지로 적발
양측의 대립은 경기 전날 밤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경기를 이틀 앞둔 10월 13일부터 스플리트에 도착한 아약스 서포터와 하이두크 서포터 사이에서 여러 사건이 발생했다.
현지 경찰은 리바의 한 카페에 모여 있던 네덜란드인 19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흉기와 공격에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발견했다. 압수된 물품에는 칼 3개와 돌 등이 포함됐다.
현지 법원의 초기 판단에 따라 이들에게는 징역 7일과 리바 및 폴류드 경기장 접근을 2년간 제한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해당 판결은 확정 전 단계였다.
또한 별도의 사건에서 네덜란드인 2명이 경상을 입었으며, 경찰은 관련 혐의로 크로아티아인 6명을 체포했다. 이처럼 양측 서포터 사이의 긴장은 경기 이전부터 여러 차례 확인됐다.

Torcida의 대규모 행진…아약스의 이름이 적힌 관까지 등장
10월 15일 경기 당일, Torcida는 스플리트 도심에서 폴류드 경기장으로 향하는 대규모 행진인 코르테오를 진행했다. 오후 4시 10분경 시작된 행진에는 수천 명의 하이두크 팬이 참가했다.
행렬의 선두에는 노란색 폭스바겐 골프 차량이 등장했다. 차량 지붕에는 ‘Ajax’라는 이름이 적힌 관 모형이 실려 있었다. 이는 상대 구단을 조롱하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Torcida는 1995년 하이두크와 아약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맞대결 당시에도 유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으며, 이번 행진에서 31년 전의 장면을 재현했다.
행진 참가자들은 이후 아약스의 이름이 적힌 관 모형을 파손했다. 그러나 이날 행진은 이러한 상대 구단 조롱을 넘어, 반유대주의 및 나치 찬양 구호가 등장하면서 논란으로 확대됐다.
“아우슈비츠, 히틀러”…Torcida 행진에서 등장한 구호
크로아티아 공영방송 HRT와 현지 언론이 확인한 영상에서는 행진 참가자 일부가 유대인을 향한 폭력을 선동하거나 나치 독일을 찬양하는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확인됐다.
현장에서 확인된 대표적인 구호는 다음과 같다.
- Gazi, gazi, gazi Židove – 유대인들을 짓밟아라
- Auschwitz, Auschwitz –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 Ustaj, Adolfe – 일어나라, 아돌프
- Ajmo, ajmo, ustaše – 가자, 가자, 우스타샤
여기서 ‘우스타샤(Ustaše)’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및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협력했던 크로아티아의 극우 파시스트 운동과 그 조직을 의미한다.
우스타샤 정권은 전쟁 기간 세르비아인, 유대인, 로마인 등을 대규모로 박해하고 학살했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구호들은 단순히 상대팀을 조롱하는 축구 응원가가 아니라, 특정 민족에 대한 폭력과 역사적 학살을 찬양하는 표현이었다.
경찰은 영상에 나타난 참가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왜 아약스를 상대로 반유대주의 구호가 등장했을까?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약스와 유대인 정체성 사이의 역사적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아약스는 오랫동안 유대인과 연관된 축구클럽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과거 암스테르담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거주했으며, 아약스의 초기 홈구장 주변과 주요 서포터층에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반영됐다.
이후 아약스의 일부 서포터들은 스스로를 ‘유대인’ 또는 ‘Super Joden(슈퍼 유대인)’이라고 부르며 유대교와 관련된 상징을 응원 문화에 활용했다.
이스라엘 국기와 다윗의 별 역시 일부 아약스 서포터 문화에서 사용됐다.
그러나 아약스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단 자체를 유대인 클럽으로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정체성은 주로 일부 서포터들의 문화에서 형성됐다는 것이다.
아약스는 상대 서포터들이 구단을 향해 사용하는 반유대주의 구호 역시 명확히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아약스의 실제 선수단이나 팬 전체가 유대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부 서포터 문화에서 형성된 유대인 정체성이 상대 팬들의 혐오 표현에 이용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경기 도중 대규모 홍염…약 12분간 경기 중단
경기장 안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10월 15일 폴류드 경기장에서는 총 31,273명의 관중이 경기를 관람했으며, 이 가운데 아약스 원정 팬은 약 1,413명이었다.
경기 후반 77분경 하이두크 서포터들이 북쪽 관중석에서 대량의 홍염을 점화하면서 짙은 연기가 경기장을 뒤덮었다.
심판은 경기를 중단했고 선수들은 일시적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경기는 약 12분이 지난 뒤 재개됐다. 최종 결과는 하이두크의 2-1 승리였다.
한편 크로아티아 경찰은 경기 당일 보안 활동 중 홈팀 팬 28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했다. 주요 사유는 화약류, 복면, 마우스피스 등 위험물품 소지 및 기타 위반행위였다.
경찰은 경기장에서 양측 팬 사이의 폭력 사건은 기록되지 않았으며, 경기 종료 이후 아약스 원정 팬들의 이동도 별다른 사건 없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크로아티아 정부와 축구협회의 비판
Torcida 일부 참가자의 반유대주의 구호는 크로아티아 정부와 축구계의 공식적인 비판으로 이어졌다.
조란 밀라노비치(Zoran Milanović) 크로아티아 대통령은 10월 16일 해당 사건을 용납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사회에서 나치즘과 우스타샤 이념을 찬양하는 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드레이 플렌코비치(Andrej Plenković) 총리도 반유대주의 메시지가 크로아티아 사회의 가치에 반한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대사관 역시 공식 입장을 통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크로아티아 축구협회(HNS)는 이번 사건이 자국 축구의 이미지를 훼손했으며 스포츠의 기본 가치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밝혔다.

하이두크 구단 공식 사과…UEFA 징계 가능성
하이두크 구단도 경기 종료 이후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구단은 서포터들의 지속적인 지지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이번 경기에서 발생한 상황에 대해서는 사과의 뜻을 밝혔다.
특히 경기장을 찾은 관중과 UEFA, 아약스 관계자 및 선수단을 향해 유감을 표명했다.
구단은 UEFA 규정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했지만 결과적으로 불미스러운 상황을 막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구단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책임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으로 하이두크가 UEFA의 추가 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2026년 10월 20일 기준, 이번 아약스전과 관련해 UEFA가 하이두크에 최종적으로 부과한 구체적인 징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수사 확대…10월 19일 기준 23명 혐의 확인
경기 이후 크로아티아 경찰은 반유대주의 구호 사건에 대한 수사를 확대했다.
10월 19일 스플리트-달마티아 경찰청 공식 발표에 따르면, 경찰은 당시 행진에서 공공연한 폭력 및 증오 선동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는 인물 총 23명을 확인했다.
이들은 크로아티아 형법 제325조에 따른 수사 대상이다. 경찰 발표 당시 6명이 수감돼 있었으며, 다른 피의자에 대한 조사와 신병 확보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수사 대상에는 미성년자도 포함됐다. 법원은 해당 미성년자의 구속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이두크 경기 관람 금지 조치를 내렸다.
다만 경찰이 확인한 23명 전원이 체포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 경찰은 영상 분석과 추가 용의자 식별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1950년 창설된 Torcida, 역사적인 서포터 조직의 논란
Torcida Split는 유럽 축구 서포터 문화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조직이다.
1950년 10월 28일 창설됐으며, 하이두크 공식 홈페이지는 Torcida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 서포터 그룹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Torcida의 탄생에는 남미의 축구 응원 문화가 영향을 미쳤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나타난 브라질 토르치다(Torcida)의 집단 응원 방식에 영감을 받은 하이두크 팬들이 조직적인 응원 집단을 결성한 것이 출발점이다.
또한 하이두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반파시스트 저항운동에 참여한 역사도 가진 구단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에서 일부 서포터가 나치즘과 우스타샤를 찬양한 것은 구단의 역사와도 대비되는 장면이다.
다만 이번 사건의 혐의는 개별 참가자의 구체적인 행위를 중심으로 수사되고 있으므로, Torcida 전체 구성원이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서포터 조직 중 하나인 Torcida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축구 팬 문화와 극단주의적 혐오 표현 사이의 문제를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됐다.
[ 후트니크 크라쿠프 팬 사망|비스와 연계 ‘Młoda Ferajna’ 관련자 5명 체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