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Doce – die wahre Geschichte der barra brava von Boca>
<라 도세(La12) – 보카 바라브라바의 진짜 이야기>는 2021년에 출간되었다. 저자 ‘구스타보 그라비아(Gustavo Grabia)’는 탁월한 전문성과 치밀한 디테일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클럽인 보카 주니어스의 바라브라바가 살아온 비범하고 때로는 충격적인 광기 어린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는 총격전,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거리 난투, 불법 사업, 그리고 배신과 복수는 물론, 사법 당국·노동조합·정치 권력과의 광범위한 연결고리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마피아 사가를 복원해낸다.
이 책에서 서술되는 사건들과 음모는 단순히 팬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응원석의 화려한 모습만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을 때로는 광기처럼 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그리고 수많은 의문과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복잡한 아르헨티나의 일상 한 단면을 독자에게 가까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질문들에 대해 ‘La Doce’는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에를레브니스 푸스발(Erlebnis Fußball)’ 온라인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 구스타보와의 인터뷰 일부를 소개한다. 전체 인터뷰는 에를레브니스 푸스발 84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F : 당신은 보카의 바라브라바인 ‘La12’가 세계에서 가장 큰 바라라고 말했습니다. 남미 안에서 보카는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나요?

GG : 나는 보카가 의심의 여지 없이 남미에서 가장 위대한 클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보카가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클럽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인구 규모가 전혀 다른 브라질에 가면 플라멩구 팬이 보카 팬보다 더 많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어떤 도시보다도 인구가 많은 상파울루에 가면, 숫자상으로는 상파울루 FC 팬이 보카 팬보다 훨씬 많죠.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 어디에서도, 다른 나라에서 보카가 불러일으키는 그 매혹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내 책의 제목은 <라 도세 – 보카 바라브라바의 진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포르투갈어로도 번역되었고, 브라질에서 매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습니다.
코린치안스, 보타포구, 플라멩구, 상파울루, 혹은 포루투알레그리의 인테르 같은 브라질의 대형 클럽들의 바라브라바 이야기라 하더라도, 이런 관심을 불러일으키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아르헨티나에서뿐만 아니라, 이 대륙 어디에서도 이 정도의 관심을 끌어내는 클럽은 없습니다.
브라질을 예로 든 것은 포르투갈어 번역판이 나왔기 때문이지만,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판매되었습니다.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같은 나라들에서도 판권이 계약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보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혹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에 이것은 ‘보카의 인차(Hinchada BOca)’와 ‘라 봄보네라(La Bombonera)’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움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에게 “어디에서 뛰고 싶으냐, 한 번 꼭 뛰어보고 싶은 경기가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많은 이들이 “아르헨티나의 수페르클라시코, 보카 vs 리베르, 그리고 장소는 라 봄보네라”라고 답합니다. 나는 이 말을 ‘지단(Zidane)’을 비롯해 세계적인 선수들의 입에서 직접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홀란드(Haaland)’ 조차도 자신이 보카 팬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보카 팬이라고 밝혔고, 보카 유니폼을 입은 채 그렇게 말했습니다. 보카는 바로 그런 것을 불러일으킵니다. 거의 비이성적이라고 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현상과도 같은 반응을 만들어 냅니다.
월드컵에 가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국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보카 팬들은 보카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그만큼 강한 소속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클럽의 팬이든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보카는 그와는 또 다른 차원의, 어떤 특별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듯합니다.
여기에 더해 ‘마라도나(Maradona)’가 보카 출신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그는 유소년 시절을 보카에서 보내지는 않았지만, 보카 팬이었고 아르헨티나에서 보카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보카의 대사와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보카의 전설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EF : 그렇다면 이 주제에 대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뭔가요?

GG : 나는 1996년, 신문 <올레(Olé)>가 창간되었을 당시부터 ‘바라브라바(Barra Brava)’를 주제로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이 현상에 대해 10년 넘게 보도해온 뒤였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모든 바라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통합된 서사가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현재의 사건들을 다뤘습니다. 바라들과 정치인들의 관계, 어떤 일이 왜 벌어졌는지, 왜 한 바라가 다른 바라와 충돌했는지 등 동시대의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리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같은 바라 내부에서 벌어지는 싸움의 배경,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죽이기까지 하는 일들 말입니다.
오늘날 아르헨티나에서는 보카와 리베르 같은 서로 다른 클럽의 바라 사이의 충돌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내부 투쟁이 벌어집니다. 그것은 내가 앞서 말했듯이, 기업·정치인·노동조합의 이해관계가 얽힌 거대한 사업 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바라브라바는 거대한 기업과도 같습니다. 단순히 팀을 응원하는 팬 집단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현재를 보도해왔을 뿐, 역사는 1996년 내 취재와 함께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아르헨티나 축구의 폭력은 축구가 이 땅에 들어온 거의 그때부터 존재해왔고, 물론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역사를 정리해보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아르헨티나 축구 폭력의 전체 역사를 모두 다루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오만해 보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방대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좋아, 내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큰 바라브라바라고 여기는 집단에 집중하자. 사실상 모든 바라들이 본보기로 삼아온 바로 그 집단 말이다. 그것은 보카의 바라브라바다.”
그렇게 해서 나는 보카 바라브라바의 역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기로 했고, 그 과정에서 아르헨티나 축구 폭력의 역사와 발전 과정 또한 함께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아르헨티나 축구의 폭력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델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정말 어디에도 없어요. 그것은 훌리건이나 울트라스 조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칠리아식 마피아 조직에 훨씬 더 가까운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EF : 책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까?

GG : 나는 2004년에서 2005년 사이에 이 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조사에만 꼬박 3년이 걸렸습니다.
우선, 취재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구체적인 문서들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바라브라바는 많은 경우 ‘도시 전설’처럼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른 클럽과의 싸움에 대해 수많은 전설을 만들어내고 스스로를 신화화합니다.
예를 들어, 보카 바라의 리더에게 물으면 “우리는 100번 싸워서 110번 이겼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리베르 바라의 리더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 100번 중 50번이 보카와 리베르 간의 싸움”이었다고 가정하곤 합니다. 같은 질문에 보카 쪽은 “50번 모두 우리가 이겼다”고 하고, 리베르 쪽 역시 “우리가 이겼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전설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축구 폭력과 관련된 모든 사법 사건들을 찾아 나섰고, 특히 보카 바라브라바와 관련된 사건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디지털화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사법 자료의 디지털화 측면에서는 상당히 뒤처져 있습니다.
게다가 사건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보카 바라브라바는 가는 곳마다 폭력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멘도사(Mendoza)’로 가서 그 지역의 재판 기록을 직접 확인해야 했고, 같은 이유로 ‘살타(Salta)’에도 가야 했습니다.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관련 판사들과 검사들을 직접 접촉했습니다.
이렇게 방대한 법원 자료를 모으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구성한 뒤에는,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초기 시기의 인물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자녀나 후손을 찾아 부모와 조부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국회 기록 보관소와, 내가 당시 근무하던 신문사(클라린 그룹 소속)의 아카이브도 조사했습니다.
이 모든 자료와 함께, 직접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 혹은 추가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이들과 수많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것이 작업의 1부를 형성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현재 인물들과의 장시간 인터뷰가 이어졌습니다. 지금도 보카 바라브라바를 이끄는 인물들, 예를 들어 ‘디 제오 형제(Di Zeo)’나 ‘마우로 마르틴(Mauro Martín)’과 같은 사람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일종의 ‘이중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들 중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뱀술사’와 같은 설득력을 지녔고,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상당한 명성을 얻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한 가지 일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활동하는지 보기 위해 보카 바라와 함께 원정을 다녔습니다. ‘코르도바(Córdoba)’에서 열린 한 경기 후, 당시 바라브라바의 리더였던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가 보카의 역대 최다 득점자 ‘마르틴 팔레르모(Martín Palermo)’보다 더 많은 사인을 해주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이런 디테일을 보면, 바라가 단순히 권력의 지원에 기대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인기와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세계 다른 지역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EF : 디 제오를 언급하셨는데, 바라브라바 인물들이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모두 털어놓았습니까?

GG : 나는 그들에게 내가 책을 쓸 것이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올레(Olé)’에서 일하며 바라와 관련된 모든 사안을 기사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분명했을 것입니다. 나는 단순히 기사 하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바라에게 “이야기 하나 해달라”고 하면, 그들은 자랑부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범죄 행위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범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긍정적인 일, 영웅적인 행동으로 여깁니다.
예를 들어 리버 플레이트의 바라와 싸워서 깃발을 빼앗은 일, 또는 라싱 팬들을 ‘푸에이레돈(Pueyrredón)’ 다리에서 밀어 떨어뜨렸던 일을 말입니다. 그 다리는 라싱의 연고지인 ‘아베야네다(Avellaneda)’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결하며, 보카 주니어스의 홈인 ‘라 보카(La Boca)’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대단한 업적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자랑스럽게 떠벌렸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나에게 들려주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말하기 꺼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법원 기록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들에 대해서도 직접 질문했고, 그들로부터 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책이 출간된 뒤에는 그들과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결국 그것이 책이 될 줄은 그들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제 와서는 몇몇 장면에서 자신들이 스스로를 ‘자기 혐의 입증’한 셈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단순히 한 축구 팬 집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마피아의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보카 주니어스의 색깔을 두른 마피아의 이야기입니다.
다행히도 당시 주요 인물들 대부분은 수감 중이었습니다. 지도부에 변화가 있었고, 많은 이들이 감옥에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출소한 사람은 디 세오 형제 중 한 명인 ‘페르난도 디 제오(Fernando Di Zeo)’였습니다. 그는 옛 세대 바라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일종의 ‘명예 규범’을 알고 있던 사람, “여기서 누가 대장인가?” 같은 감각을 가진 인물이었죠.
책이 출간되자마자 그는 감옥에서 나와 나를 비밀 장소로 불러냈습니다. 내가 도착하자 그는 매우 공격적인 태도로 말을 걸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과거 내 경력 중, 보카 바라를 변호하는 취지의 기사들을 쓴 적이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경찰이 바라가 하지도 않은 폭동이나 절도, 기타 범죄를 뒤집어씌워 다음 경기에서 더 많은 경찰 병력을 배치하고 예산을 더 받아낸 뒤 실제로는 적은 인원을 보내고 돈을 나눠 갖는 식의 부패 사례를 폭로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은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정기적으로 벌어집니다.
나는 그에게 그런 기사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나는 이미 여러 경로에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게 된 재판에서, 판결 선고까지 5일이 남은 시점에 두 가지 일이 벌어졌습니다. 첫째, 검사가 모든 피고 바라를 즉시 구속하라고 요구했고, 그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150명이 넘는 인원을 봄보까지 동원해 사법궁으로 몰려왔습니다.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 재판의 모든 공판에 참석한 유일한 기자였습니다. 어느 날 한 바라가 나에게 와서 “왜 이렇게 태연하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너희 변호사들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새로 통과된 법령에 따라, 판결 선고 전에는 구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변호사들은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나는 집요하게 관련 법령을 모두 읽어봤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말한 대로 흘러갔고, 그 일로 나는 그들의 존중을 얻게 되었습니다.
재판이 끝날 때마다 나는 그들과 만나 당일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기사 작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입장을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들은 값비싼 수입 샴페인을 여러 병 마시며 변호사들과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도 마시겠냐고 묻기에 나는 “마시긴 하겠지만, 무엇을 축하하는지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각자의 예상 형량을 정확히 말해주었습니다. “너는 3년 6개월, 너는 4년 7개월…”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들은 얼굴이 빨개져 내가 농담이라고 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나는 “3일 후에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3일 뒤, 판결은 내가 말한 그대로 나왔습니다. 나는 판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필요한 정보들을 교환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날 매우 흥분해 있던 페르난도 디 세오에게 나는 이 모든 일을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도망칠 수 있는 사흘의 시간을 줬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도망쳐라’고 한 것은 아니고, 당신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을 뿐이다. 당신이 변호사들을 믿었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당신 문제다.”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자 그는 대립적인 태도를 조금 누그러뜨렸습니다.
물론 몇몇 인물들과는 실제로 문제가 있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더 심했고, 어떤 경우에는 덜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정리가 됩니다.
EF : 당신은 바라브라바와 구단 수뇌부, 정치인, 경찰 사이의 관계와 유착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세력으로부터의 위협도 있었습니까?

GG : 나는 자주 협박을 받았습니다.
바라브라바와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바라 구성원들은 미결 재판을 안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조율이 가능합니다. 나는 그들의 변호사들과도 연락을 유지했고, 바라들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하면 그 통화를 녹음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죠.
“이걸 법원에 가져가서 협박으로 고소하면, 지금 가석방 상태인 이 사람은 다시 감옥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면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 경찰, 노동조합과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나는 특히 세 건의 매우 복잡한 사건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는, ‘연방경찰(Policía Federal)’ 내 어떤 부서가 ‘해방 구역(경찰이 개입하지 않는 구역)’을 만들어 바라브라바들끼리 충돌하도록 방조했고, 왜 그런지, 그리고 그 대가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내가 폭로했을 때였습니다. 나는 이를 입증하는 내부 경찰 녹취 자료도 확보했습니다.
내 기사가 신문 1면에 크게 실렸고, 곧바로 의회는 양원 합동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해당 경찰 부서는 해체되었고, 한동안 그 사업은 중단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전체 구조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채, 어쩌면 순진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특정 경찰관 몇 명의 문제를 밝히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돈은 언제나 위로 흘러 올라갑니다. 나는 권력의 정점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사업 구조를 건드린 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협박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그들은 내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 아이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내 어머니의 위치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진지하게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신문사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려 했지만 로그인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아르헨티나 최대 언론 그룹인 ‘클라린(Clarín)’ 그룹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모든 이메일 계정이 해킹되어 있었습니다.
신문사 책임자들과 논의했고, IT 부서는 외부 공격이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결국 클라린의 최고위 인사 두 명, 당시 내무장관 ‘아니발 페르난데스(Aníbal Fernández)’, 연방경찰청장, 그리고 내가 함께 회의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몇 가지 사안이 정리되었고, 경찰청장은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심지어 나에게 경찰 경호를 제공하겠다고까지 했습니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가해자인데, 내가 왜 경찰 경호가 필요합니까?”
그 이후로 그 문제는 멈췄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경찰 내부감찰부로 호출되었습니다. 명목상으로는 비리 경찰을 조사하는 부서였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여러 문제를 폭로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나는 마치 피의자처럼 취급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조사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들이 알고 싶은 건, 내가 경찰 내부에서 어떤 정보원을 갖고 있는지뿐이다.”
그 일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한 번은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Casa Rosada)’로 불려갔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떤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나는 당시 바라와 마약 조직(나르코스) 간의 연결고리까지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거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정부 인사, 어느 내각 구성원이 어떤 바라와, 어떤 마약 조직과 연결되어 있는지까지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날 나는 카사 로사다의 주요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고, 그 대화는 지금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묘한 위협의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전체 인터뷰는 ‘EF 84’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라브라바(Barra brava), 아르헨티나 축구를 지배하는 자들> Click
<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 이야기>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