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fael Di Zeo 연대기

La12 시리즈 ep5|Rafael Di Zeo 연대기

La12 시리즈 ep1|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의 탄생 이야기
La12 시리즈 ep2|Victoriano Caffarena와 ’12번째 선수’의 탄생
La12 시리즈 ep3|Enrique Ocampo와 초기 La12의 탄생
La12 시리즈 ep4|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

La12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로 만든 남자

아르헨티나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 있다.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

그는 보카 주니어스의 바라브라바 La12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세계 축구 팬 문화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바라브라바 리더 가운데 한 명이다.

수십 년 동안 La12를 이끌며 수많은 논란과 사건의 중심에 섰고, 그의 이름은 보카 주니어스의 응원 문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라파엘 디 제오는 처음부터 La12의 리더였던 것은 아니었다.

호세 바리타 시대에서 성장하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La12는 ‘대부(El Abuelo)’로 불리던 남자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의 시대였다.

호세 바리타는 La12를 현대적인 바라브라바 조직으로 성장시켰고, 라파엘 디 제오는 이 시기 핵심 멤버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며 조직 운영을 경험했다.

바리타가 구축한 조직 구조와 응원 문화는 훗날 디 제오가 La12를 이끌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1990년대 중반 호세 바리타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La12 내부에는 권력 재편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라파엘 디 제오는 점차 조직의 중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가 이끌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보카 주니어스의 황금기와 겹친다.

‘카를로스 비안치(Carlos Bianchi)’ 감독이 팀을 이끌었고, ‘리켈메(Juan Román Riquelme)’, ‘팔레르모(Martín Palermo)’, ‘에스켈로토(Guillermo Barros Schelotto)’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활약하며 보카 주니어스는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을 잇달아 제패했다.

‘라 봄보네라(La Bombonera)’의 응원 역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중석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라파엘 디 제가 있었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La12

디 제오 시대의 La12는 이전보다 훨씬 큰 규모로 성장했다.

수백 명에 달하는 조직원들이 원정 경기를 함께했고, 대형 깃발과 수많은 현수막, 트럼펫과 북으로 만들어낸 응원은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해외 언론은 La12를 세계 최고의 응원 문화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기도 했고, 많은 축구 다큐멘터리와 방송 프로그램이 La Bombonera와 La12를 취재했다.

이 시기 La12는 단순한 바라브라바를 넘어 보카 주니어스의 상징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명성과 함께 커진 논란

그러나 디 제오 시대는 화려한 응원 문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La12는 폭력 사건과 조직 내부 갈등, 법적 분쟁으로도 끊임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다른 클럽 바라브라바와의 충돌, 경기장 내외의 폭력, 조직 운영을 둘러싼 여러 사건은 La12를 아르헨티나 사회의 대표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또한 일부 언론은 입장권 배분, 원정 운영, 각종 경제적 이해관계에 La12가 관여했다고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다만 이러한 내용 가운데는 법원 판결로 확인된 사실과 언론 보도 및 증언에 기반한 의혹이 함께 존재하므로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수감과 경기장 출입 금지

2007년 라파엘 디 제오는 폭력 사건과 관련된 판결을 받으며 수감되었고, 일정 기간 경기장 출입도 금지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La12는 사라지지 않았다.

조직 내부에서는 ‘마우로 마르틴(Mauro Martín)’을 비롯한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고, 이후 수년 동안 치열한 권력 다툼이 이어졌다.

끝나지 않은 권력 투쟁

2010년대 초반 La12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었다.

라파엘 디 제오(La barra de Rafa) 측과 마우로 마르틴(La barra de Mauro) 측은 조직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했고, 갈등은 경기장 밖에서도 이어졌다.

이 시기의 La12는 보카 주니어스보다 내부 권력 다툼이 더 큰 뉴스가 될 정도였다.

이후 여러 변화 끝에 디 제는 다시 조직의 중심으로 복귀했고, 현재까지도 La12를 대표하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왜 라파엘 디 제오가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 리더일까

호세 바리타가 현대 La12의 기반을 만들었다면, 라파엘 디 제오는 그 기반을 세계적으로 알려진 브랜드로 성장시킨 인물이었다.

인터넷과 위성 방송이 급속도로 보급되던 시기에 라 봄보네라의 응원 문화가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그 중심에 항상 라파엘 디 제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보카 주니어스를 넘어 ‘바라브라바(Barra Brava)’라는 단어 자체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Rafael Di Zeo가 남긴 유산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는 La12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리더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논란이 많은 리더이기도 하다.

그의 시대에 La12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폭력과 범죄, 조직 내부 갈등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남겼다.

따라서 라파엘 디 제오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를 아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아르헨티나 바라브라바 문화가 어떻게 발전했고, 왜 오늘날까지도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정부로부터 경기장 입장을 제지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 봄보네라 안팎에서의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건재한 것으로 보인다.

La12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개념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아구안떼(Aguante)’.

남미 축구 팬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이 단어는 단순히 ‘열정적인 응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는 아구안떼가 무엇이며, 왜 바라브라바 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개념인지 살펴본다.

참고 자료 :
Gustavo Grabia, La Doce: La verdadera historia de la barra brava más famosa del mundo
TyC Sports, Rafael Di Zeo 관련 기사
Infobae, Rafael Di Zeo 및 La12 관련 기사
Olé, Boca Juniors 및 La12 관련 보도
La12 관련 공개 기록 및 아르헨티나 언론 자료

La12 시리즈 ep1|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의 탄생 이야기
La12 시리즈 ep2|Victoriano Caffarena와 ’12번째 선수’의 탄생
La12 시리즈 ep3|Enrique Ocampo와 초기 La12의 탄생
La12 시리즈 ep4|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