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ICF)’은 잉글랜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훌리건 그룹이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영국,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그 시절 축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관람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노동 계급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전장이었고, 그 중심에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인터 시티 펌’이 있었다.
이 그룹은 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룹의 이름은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할 때 ‘Inter City’ 열차를 자주 이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1985년 템스 텔레비전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훌리건(Hooligan)’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대처주의와 실업, 그리고 분노의 배출구
ICF가 결성된 1970년대 후반, 영국은 마거릿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산업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다. 웨스트햄의 기반인 동부 런던의 부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희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축구는 유일한 정체성이자 ‘전쟁’이 되었다.
이들에게 ‘우리 팀’을 지키는 것은 마치 무너져가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혼란과 당시 젊은 세대에서 퍼져나간 다양한 하위문화가 결합되어 웨스트햄의 테라스에 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1970년대, 웨스트햄에는 ‘마일 엔드 보이즈(Mile End Boys)’, ‘에섹스 이스트 런던 펌(Essex East London Firm)’을 비롯한 여러 캐주얼 & 훌리건 그룹들이 있었다. 이 그룹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것이 바로 1977/78시즌 결성된 ‘ICF’이다.

인터 시티 펌과 캐주얼 패션
흔히 훌리건이라고 하면 가죽 자켓에 닥터마틴 부츠를 신은 스킨헤드를 떠올리지만, 당시 ICF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것은 바로 현대 축구 팬 패션의 시초인 ‘캐주얼(Casuals)’ 문화이다.
캐주얼이 인터 시티 펌의 독자적인 문화는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 영국 전역의 축구장에서 볼 수 있었던 패션이자 문화의 한 형태였고, 캐주얼 안에서도 지역별로 추구하는 브랜드 또는 스타일이 저마다 달랐다.
당시 영국의 젊은 축구 훌리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곤 했다. 80년대 초, 경찰은 전형적인 훌리건 복장을 한 이들을 집중 단속했다. ICF는 이를 피하기 위해 팀 유니폼이나 스카프를 버리고, 당시 테니스 선수들이 입던 ‘세르지오 타키니(Sergio Tacchini)’, ‘필라(Fila)’, ‘프레드 페리(Fred Perry)’를 입었다.
어느 순간 고가의 이탈리아/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를 착용하고 축구장에 오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이 같은 유행은 당시 유럽 토너먼트에서 활약한 영국 팀들이 많아지면서, 팬들이 원정 응원에 참여해 현지 패션 브랜드의 옷을 더 쉽게 쇼핑할 수 있게 되면서 확산되었다.
캐주얼은 단순히 갖춰 입는 것은 떠나, “우리는 너희(경찰)보다 잘 입고, 너희 보다 영리해”라는 뉘앙스가 있었다. 또한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상대 팀보다 더 비싸고 귀한 옷을 입는 것이 훌리건들 사이의 새로운 경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 경쟁은 같은 클럽, 그룹의 멤버들 사이에서도 생겨났다.

전설적인 인물들 : 카스 페넌트와 빌 가드너
ICF와 관련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카스 페넌트(Cass Pennant)’이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축구 훌리건주의에 관한 글을 썼다. 흑인으로서, 런던 시민으로 살아가던 페넌트는 자신의 저서 <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에서 ICF가 인종차별적이거나 우익 성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마일 엔드 보이즈’의 멤버였던 ‘빌 가드너(Bill Gardner)’는 이 책의 초판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

‘카스 페넌트(Cass Pennant)’는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백인 위주의 ICF 리더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훌리건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며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기도 했다. 그리고 출소 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를 통해 훌리건 문화를 세상에 알렸다.
‘빌 가드너(Bill Gardner)’는 ICF의 ‘제너럴(General)’로 불리며 가장 두려운 파이터로 꼽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당시 상대 훌리건이 던진 뜨거운 보브릴을 맞고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적진으로 돌격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훗날 “우리는 단순한 폭도가 아니라, 우정과 신뢰로 뭉친 형제였다”라고 회상했다.

영화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Rise of the Footsoldier)’의 주인공인 ‘칼튼 리치(Carlton Leach)’ 또한 이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 그를 포함해 ‘팻 테이트(Pat Tate)’, ‘토니 터커(Tony Tucker)’, ‘크레이그 롤프(Craig Rolfe)’는 이후 런던과 에섹스의 범죄 지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축구 싸움의 위험에서 벗어나 마약 판매와 마약상 갈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테이트, 터커, 롤프는 에섹스에서 발생한 ‘레텐던 살인 사건(Rettendon murders)’을 통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유명한 사건 사고
1978년 업튼 파크 충돌 사건
ICF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1978년 업튼 파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밀월과의 충돌이다. 양측 집단이 경기 전부터 서로를 도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스타디움 주변 거리 등지는 난투극의 장이 되었으며, 팬들은 맨주먹과 급조한 무기를 들고 싸웠다. 경찰은 상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으며,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1982년 하이버리의 난
ICF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 중 하나는 1982년 5월 1일, 아스널과의 런던 더비에서 발생했다. ICF는 아스널의 상징적인 테라스 구역인 ‘노스 뱅크(North Bank)’를 점령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부터 치밀하게 잠입했다. 그곳은 아스널 훌리건들이 모이던 장소였다.
오렌지색 연막탄이 터지며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관중석 내부에서 처절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경기장 밖으로까지 번져 아스널 팬 한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 이후 영국 축구계는 관중석 분리 및 보안 강화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8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충돌 사건
ICF의 가장 기억에 남는 충돌 중 하나는 ‘레드 아미(Red Army)’로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과의 대결이다. 1985년 3월 9일, ICF 조직원들은 경찰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런던의 한 기차역에서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치열한 난투극 끝에 수십 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사건은 전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ICF는 잘 조직된 행동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들은 종종 철도망을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신속하게 이동하곤 했다.

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
ICF는 타팀의 훌리건과 싸워 이긴 후, 명함을 쓰러진 상대방 몸 위나, 습격한 관중석과 거리 곳곳에 남기는 방식을 개척했다. 그 명함에는 “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러한 명함을 남기는 행위는 이후 다른 축구 클럽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
카스 페넌트는 명함을 남기는 행위에 대해 ‘훌리건 간의 서열’을 정리하는 도구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다른 구단의 훌리건들은 단순히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수준이었지만, ICF가 명함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진짜 ‘펌(Firm)’임을 과시했다.
그는 이 명함 덕분에서 ICF가 영국 전역에서 “가장 세련되면서도 가장 위험한 그룹”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 방식은 첼시의 ‘헤드헌터스’ 등 다른 그룹들이 벤치마킹하는 시초가 되었다.
때로는 경찰을 조롱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찰이 훌리건 단속을 위해 잠복근무를 할 때, ICF 멤버들은 경찰의 차량 와이퍼에 이 명함을 끼워 두거나 경찰서 근처에 뿌리기도 했다. 이는 “너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의미였다.

모티브가 되다
웨스트햄의 훌리건 그룹 Inter City Firm은 종종 영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마치 ‘앨런 클라크(Alan Clarke)’의 1988년 영화 ‘더 펌(The Firm)’ 처럼.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은 ‘ICC(Inter City Crew)’의 리더인 ‘벡스 비셀(Bex Bissell)’ 역을 맡았으며, ICF 단원들이 이 영화의 고문으로 참여했다.
더 펌에서도 나온 ICF를 모델로 한 주인공들이 상대 진영을 초토화 시킨 뒤 명함을 남기는 장면은 훌리건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영화는 2009년 리메이크 되었다.
2005년 영화 ‘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와 그 후속작들 역시 ICF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작중에서는 ‘GSE(Green Street Elite)’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ICF는 ‘어빈 웰시(Irvine Welsh)’의 소설 ‘엑스터시(Ecstasy : Three Tales of Chemical Romance)’에도 등장한다.
앞서 소개한 카스 페넌트의 자서전 ‘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하위문화의 바이블이 되기도 했다.

인터 시티 펌의 라이벌들
밀월 : 부시워커스(Bushwackers)
웨스트햄과 밀월의 라이벌 관계는 영국 축구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격렬한 관계 중 하나다. 이들의 적대 관계는 산업혁명 시기, 런던 동부 부두에서 일하던 두 노동자 집단이 서로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그룹 간의 가장 유명한 충돌은 1989년 3월 13일 FA컵 8강전 당시 발생했다. 싸움은 경기장 밖에서 시작되었으며, 수백 명의 ICF와 부시워커스 팬들이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을 벌였다. 당시 경찰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많은 경찰관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첼시 : 헤드헌터스(Headhunters)
웨스트햄과 첼시의 경기는 언제나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 첼시의 헤드헌터스 또한 런던에서 가장 잔인한 집단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다. 1984년 워털루(Waterloo)역에서는 ICF와 헤드헌터스 사이에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져 수십 명의 팬과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양측 간의 이 계획된 충돌은 첼시 측이 웨스트햄 팬들을 겨냥해 조직적인 공격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발생했다.
토트넘 : 이드 아미(Yid Army)
웨스트햄과 토트넘 사이의 긴장 관계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6년 두 팀의 경기가 끝난 후, ICF 조직원들이 런던 동부에서 토트넘 팬들이 탄 버스를 공격했다. 이 사건은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졌으며, ICF 지도부 중 일부가 체포되는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후반, ICF는 창립자인 ‘앤디 스왈로우(Andy Swallow)’를 통해 영국의 해적 방송국인 ‘센터포스(Centreforce)’와 정기적으로 연계되었다. 스왈로우 역시 한때 ‘에섹스 이스트 런던 펌’의 멤버였다.
ICF는 2018년 전직 멤들이 ‘리얼 웨스트햄 팬 액션 그룹(Real West Ham Fans Action Group)’으로 재결집하여 구단 이사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웨스트햄의 ICF는 폭력이라는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영국 노동계급의 하위문화와 패션, 그리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긴 “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라는 명함은 오늘날에도 축구 팬 문화의 강렬했던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참고 자료 :
<Inter City Firm – WIKIPEDIA>
<InterCity Days – INDEPENDENT>
<Millwall vs West Ham – England’s Most Violent Football Rivalry – YOUTUBE>
<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 (Cass Pennant 저)>
<Hooligan: Inter City Firm (Thames TV, 1985)>
<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캐주얼’ 패션의 짧은 역사>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