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

La12 시리즈 ep4|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

La12 시리즈 ep1|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의 탄생 이야기
La12 시리즈 ep2|Victoriano Caffarena와 ’12번째 선수’의 탄생
La12 시리즈 ep3|Enrique Ocampo와 초기 La12의 탄생

La12는 언제부터 ‘현대적 바라브라바’가 되었을까

보카 주니어스의 La12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거대한 바라브라바 조직은 아니었다.

1925년 ‘빅토리아노 카파레나(Victoriano Caffarena)’와 함께 탄생한 ‘12번째 선수’라는 상징은 오랫동안 보카 팬 공동체를 대표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엔리케 오캄포(Enrique Ocampo)’ 시대를 거치며 La12는 점차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La12의 모습, 즉 원정 응원을 조직하고, 관중석을 장악하며, 경제적 이해관계까지 가진 강력한 바라브라바로 변화한 시기는 1980년대 이후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

별명은 ‘El Abuelo’, 한국어로 옮기면 ‘대부’에 가까운 인물이다.

José Barrita는 누구였나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라 보카 지역으로 이주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보카 주니어스의 열성적인 팬 문화 안에서 활동했고, 시간이 지나며 La12 내부에서 영향력을 키워갔다.

호세 바리타가 등장하기 전 La12의 중심 인물은 엔리케 오캄포였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La12 내부에서는 갈등이 발생했고, 1981년을 전후해 조직의 권력 구조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바리타는 기존 리더였던 오캄포를 밀어내고 La12의 새로운 수장으로 떠올랐다.

이 시점부터 La12는 이전과 전혀 다른 단계로 접어든다.

‘La Barra del Abuelo’의 시대

호세 바리타가 La12를 장악한 뒤, 사람들은 그의 시대를 ‘La Barra del Abuelo’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응원석을 이끄는 인물이 아니었다.

바리타는 La12의 규모를 키웠고, 더 많은 팬들을 조직 안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원정 응원과 경기장 응원 체계를 보다 강하게 통제하며 La12를 보카 팬 문화의 중심 세력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 La12는 더 이상 자발적으로 모인 팬들의 집단에만 머물지 않았다.

조직 내부에는 위계가 생겼고, 리더와 핵심 멤버들이 등장했으며, 경기장 안팎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현대적 의미의 La12는 바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금 구조의 변화

호세 바리타 시대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자금 구조였다.

초기 La12가 복권 판매나 팬들의 모금, 일부 지원금에 의존했다면, 바리타 시대의 La12는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언론과 관련 기록에서는 La12가 경기장 주변 주차 요금, 입장권 문제, 원정 비용, 선수단과의 관계, 각종 행사 참여 등을 통해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고 설명한다.

물론 이 가운데 일부는 법적으로 확인된 사건이고, 일부는 언론 보도와 증언을 통해 알려진 의혹에 가깝다.

중요한 점은 호세 바리타 시대를 거치며 La12가 단순 응원 조직을 넘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이 변화는 이후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 시대에 더욱 노골적으로 확대된다.

Fundación Jugador Número Doce

호세 바리타 시대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Fundación Jugador Número Doce’.

한국어로 옮기면 ‘12번째 선수 재단’ 정도로 볼 수 있다.

겉으로는 보카 팬 문화와 자선 활동을 위한 조직처럼 보였지만, 여러 보도와 연구에서는 이 재단이 La12의 원정 비용, 티켓, 조직 운영비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 재단은 La12가 단순한 거리의 팬 조직이 아니라, 이름과 형식을 갖춘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12번째 선수’라는 낭만적인 표현은 이 시기부터 점점 더 복잡한 의미를 갖게 된다.

그것은 보카 팬의 헌신을 뜻하는 상징이었지만, 동시에 바라브라바 조직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영향력을 정당화하는 이름이 되기도 했다.

폭력과 공포의 이미지

호세 바리타 시대의 La12는 강력한 조직력을 갖춘 동시에, 폭력 사건으로도 악명을 얻었다.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바라브라바 간 충돌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더욱 심각해졌고, La12 역시 그 중심에 있었다.

다른 클럽의 바라브라바와의 충돌, 경기장 안팎의 폭력, 내부 권력 다툼은 La12의 이미지를 점점 더 어둡게 만들었다.

특히 1994년 리버 플레이트 팬 2명이 사망한 사건은 호세 바리타 시대 La12를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호세 바리타와 La12 핵심 멤버들은 법적 문제에 휘말렸고, 조직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La12의 역사에서 호세 바리타는 조직을 성장시킨 인물이지만, 동시에 폭력과 범죄의 이미지를 강하게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현대 La12의 구조를 만든 인물

그렇다면 왜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를 ‘현대 La12를 만든 남자’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La12를 단순한 응원 집단에서 벗어나, 조직화된 바라브라바로 바꾸었다.

호세 바리타 시대에 La12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되었다.

첫째, 강력한 리더십 구조.

둘째, 원정과 응원석을 통제하는 조직력.

셋째, 경기장 주변과 구단 내부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이해관계.

넷째, 다른 바라브라바와의 충돌 속에서 형성된 폭력적 명성.

다섯째, ‘12번째 선수’라는 상징을 조직의 정체성으로 활용하는 방식.

이 요소들은 이후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 시대 La12의 기반이 된다.

즉, 디 제오가 La12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라브라바로 만들었다면, 바리타는 그 토대를 만든 인물이었다.

몰락과 죽음

1994년 사건 이후 호세 바리타의 영향력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불법 단체 결성, 공갈, 폭력 사건 등 여러 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았고, 말년에는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2001년, 호세 바리타는 4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 이후에도 La12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그 중심에는 호세 바리타 시대에 성장한 라파엘 디 제오가 있었다.

José Barrita가 남긴 유산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는 La12 역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보카 팬 문화의 상징이었던 La12를 강력한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La12가 폭력, 이권, 범죄와 연결된 바라브라바로 인식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호세 바리타를 단순히 전설적인 리더로 소비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La12를 낭만적인 팬 문화에서 현대적 바라브라바 조직으로 바꾼 핵심 인물이기 때문이다.

La12의 역사는 그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동시에 아르헨티나 축구가 바라브라바 문제와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호세 바리타 이후 La12는 또 한 번 거대한 변화를 맞이한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

그는 호세 바리타시대의 구조를 이어받아 La12를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 중 하나로 만든다.

다음 편에서는 라파엘 디 제오의 등장과 La12의 전성기, 그리고 끝없는 논란의 역사를 다루고자 한다.

참고 자료 :
Gustavo Grabia, La Doce: La verdadera historia de la barra brava más famosa del mundo
Infobae, José Barrita 관련 기사
TyC Sports, La12 및 José Barrita 관련 기사
La12 관련 공개 기록
아르헨티나 바라브라바 관련 공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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