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La12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가 되었나

La12 시리즈 ep7|왜 La12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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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12 시리즈 ep1|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의 탄생 이야기
La12 시리즈 ep2|Victoriano Caffarena와 ’12번째 선수’의 탄생
La12 시리즈 ep3|Enrique Ocampo와 초기 La12의 탄생
La12 시리즈 ep4|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
La12 시리즈 ep5|Rafael Di Zeo 연대기
La12 시리즈 ep6|Aguante란 무엇인가? 남미 축구 팬 문화의 핵심

La12는 단순한 응원단이 아니다

보카 주니어스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세 가지를 떠올린다.

라 봄보네라(La Bombonera), 파란색과 노란색 유니폼, 그리고 La12.

오늘날 La12는 아르헨티나를 넘어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로 알려져 있다. 축구 팬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고, 보카 주니어스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관중석을 뒤덮은 거대한 깃발과 90분 내내 이어지는 응원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수많은 바라브라바 가운데 하필 La12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조직이 되었을까?

단순히 보카 주니어스가 유명한 클럽이기 때문일까. 응원이 열정적이어서일까. 아니면 Rafael Di Zeo라는 유명한 리더가 있었기 때문일까. 답은 그 어느 하나도 아니다. La12의 명성은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 없다.

약 100년에 걸쳐 축적된 역사와 문화, 도시의 정체성, 경기장의 구조, 팬 문화, 미디어, 국제대회의 성공이 모두 맞물리며 지금의 La12를 만들었다.

이번 글에서는 지금까지 La12 시리즈에서 다루었던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하며, 왜 La12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가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La12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La12를 ‘라파엘 디 제오(Rafael Di Zeo)’의 조직으로 기억한다. 조금 더 관심 있는 사람들은 ‘호세 바리타(José Barrita)’를 떠올린다. 하지만 La12의 역사는 특정 리더 한 사람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1925년. 보카 주니어스는 아르헨티나 클럽 최초로 유럽 원정을 떠났다. 그리고 그 원정에는 한 명의 열성적인 팬이 동행했다.

‘빅토리아노 카파레나(Victoriano Caffarena).

그는 선수도, 감독도 아니었다. 하지만 선수단을 헌신적으로 도왔고, 보카 선수들은 그를 “Jugador Número 12”, 즉 12번째 선수라고 불렀다. 이 작은 별명이 훗날 La12라는 이름의 출발점이 된다.

처음에는 단 한 사람을 의미했던 “12번째 선수”는 시간이 흐르며 보카 팬 전체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발전했고, 1960년대 이후에는 La12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처럼 La12의 시작은 폭력도, 조직도 아니었다. 한 명의 팬이 보여준 헌신과 공동체 의식이었다.

상징은 조직으로 발전하다

1960~70년대. 아르헨티나 축구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노동자 계층과 지역 공동체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고, 응원 역시 조직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보카 주니어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엔리케 오캄포(Enrique Ocampo)’는 흩어져 있던 팬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했고, 원정 응원을 조직하고, 응원 도구를 준비하며, La12를 하나의 응원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중요한 점은 이 시기의 La12가 아직 오늘날처럼 거대한 바라브라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만들어진 조직 문화는 이후 모든 세대의 기반이 된다.

즉, 빅토리아노 카파레나가 12번째 선수라는 상징을 만들었다면, 엔리케 오캄포는 조직의 형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대 La12를 만든 사람들

1980년대 이후 호세 바리타가 등장하면서 La12는 또 한 번 변화를 맞는다. 그는 단순한 응원 조직이었던 La12를 훨씬 체계적인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조직 내부에는 명확한 위계가 생겼고, 원정 응원은 더욱 규모가 커졌으며, 경기장 안팎에서 La12의 영향력도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직이 커질수록 폭력과 갈등, 사회적 논란도 함께 커졌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바리타 시대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La12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토대 위에서 라파엘 디 제오가 등장한다. 디 제오는 바리타가 만든 조직을 세계적인 상징으로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인터넷과 위성방송이 보급되던 시기, 보카 주니어스는 남미를 넘어 세계적인 명문 클럽으로 성장했고, 라 봄보네라의 응원은 전 세계 축구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 중심에는 La12가 있었다.

그렇다면 왜 La12만 특별했을까?

아르헨티나에는 La12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리버 플레이트에는 Los Borrachos del Tablón이 있고, 산 로렌소에는 La Butteler, 라싱 클럽에는 La Guardia Imperial, 인디펜디엔테에는 La Barra del Rojo가 있다.

남미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칠레의 Garra Blanca, 브라질의 Torcida Organizada, 우루과이의 Barra Amsterdam과 같은 강력한 응원 조직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세계 축구 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은 여전히 La12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응원을 잘해서’가 아니다. La12가 세계적인 상징이 된 배경에는 여러 요소가 동시에 작용했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이유 : 보카 주니어스라는 세계적인 브랜드

La12가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보카 주니어스라는 클럽의 영향력이다.

아무리 뛰어난 응원 문화를 가진 조직이라도, 세계적인 무대에서 주목받는 클럽이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보카 주니어스는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뿐 아니라 코파 리베르타도레스와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수차례 정상에 오르며 세계적인 명문 구단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0년과 2003년 인터컨티넨탈컵 우승은 유럽 축구 팬들에게도 보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클럽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수록, 관중석의 La12 역시 자연스럽게 전 세계 카메라에 비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La12는 보카 주니어스라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함께 성장했다.

이는 La12가 다른 바라브라바보다 훨씬 빠르게 국제적인 인지도를 확보한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보카라는 이름만으로는 지금의 La12를 설명할 수 없다.

두 번째 이유 : La Bombonera라는 ‘무대’

La12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가 있다. 바로 ‘라 봄보네라(La Bombonera)’다.

많은 사람들은 La12가 유명해서 라 봄보네라가 유명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켰다.

라 봄보네라는 일반적인 축구 경기장과 구조부터 다르다. 관중석은 경기장과 매우 가까우며, 수직으로 높게 쌓인 스탠드는 응원 소리를 경기장 안으로 집중시키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보카 팬들은 흔히 “La Bombonera no tiembla. Late.” 즉, “라 봄보네라는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 쉰다.”라고 말한다.

수만 명의 팬이 동시에 뛰고 노래하면 경기장이 실제로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독특한 공간은 La12의 응원을 단순한 ‘소리’가 아닌 하나의 체험으로 만들었다.

전 세계 방송 카메라는 선수뿐 아니라 관중석도 함께 비추기 시작했고, 라 봄보네라와 La12는 하나의 브랜드처럼 기억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이유 : Aguante라는 문화

응원을 크게 하는 팬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Aguante(아구안떼)’는 남미만의 문화다.

La12가 다른 서포터 조직과 가장 크게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La12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응원했는가, 얼마나 많은 원정을 갔는가, 얼마나 팀과 함께했는가였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는 것. 비가 와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것. 패배해도 선수보다 먼저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않는 것.

이러한 행동은 모두 Aguante를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La12의 응원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의식에 가까웠다. 이러한 문화는 세계 여러 축구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네 번째 이유 : 보카 주니어스의 국제적 성공

아무리 훌륭한 응원 문화라도, 세계적인 무대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알려질 수 없다.

1998년부터 ‘카를로스 비안치(Carlos Bianchi)’ 감독이 이끈 보카 주니어스는 황금기를 맞이한다.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 남미 정상. 그리고 인터컨티넨탈컵에서 유럽 챔피언을 꺾으며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이 과정에서 ‘리켈메(Juan Román Riquelme)’, ‘팔레르모(Martín Palermo)’, ‘셸로토(Guillermo Barros Schelotto), ‘테베스(Carlos Tévez)’와 같은 스타들이 등장했다.

세계 언론은 보카를 취재했고,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라 봄보네라의 관중석을 비췄다.

결국 La12는 세계 최고 클럽과 함께 성장한 응원 문화가 되었다.

다섯 번째 이유 : 다큐멘터리와 미디어

1990년대까지만 해도 La12는 아르헨티나 밖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위성 방송과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유럽 방송사들은 라 봄보네라를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기장’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다큐멘터리, 유튜브 영상, 축구 전문 프로그램, 여행 콘텐츠가 La12를 반복적으로 다루었다.

흥미로운 점은 대부분의 콘텐츠가 경기보다 관중석을 먼저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세계 팬들은 “보카라는 팀”보다 “La12의 응원”을 먼저 기억하게 되었다.

여섯 번째 이유 : 인터넷과 SNS 시대

오늘날 La12의 영상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X(옛 트위터) 등 수많은 플랫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90분 내내 이어지는 응원. 수천 장의 깃발. 응원가를 따라 부르는 관중.

이러한 장면은 짧은 영상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특히 스마트폰 시대 이후 라 봄보네라 영상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축구 경기장’ 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La12를 더 이상 아르헨티나만의 문화가 아닌, 세계 축구 팬 문화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일곱 번째 이유 : 다른 바라브라바와 무엇이 달랐을까?

사실 조직의 규모만 놓고 보면 La12보다 큰 바라브라바도 존재한다.

응원의 열기 역시 리버 플레이트의 Los Borrachos del Tablón, 칠레의 Garra Blanca, 브라질의 Torcida Organizada, 세르비아의 Delije, 그리스의 Gate 13 등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La12가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이유는 ‘모든 요소가 한곳에 모였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명문 클럽. 독특한 경기장. 100년에 가까운 역사. Aguante라는 문화. 국제대회의 성공. 미디어 노출. 인터넷 시대.

이 모든 요소가 동시에 존재했던 사례는 매우 드물다.

La12는 단순히 응원을 잘하는 조직이 아니라, 축구 문화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성장한 것이다.

세계 축구 팬들이 기억하는 La12

오늘날 해외 팬들에게 ‘Barra Brava’라는 단어를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이 La12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La12를 통해 처음으로 바라브라바라는 문화를 접한 사람도 적지 않다.

이는 La12가 단순한 한 클럽의 응원 조직을 넘어, 남미 축구 팬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사실이 곧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La12의 역사에는 열정적인 응원 문화뿐 아니라 폭력, 갈등, 범죄라는 어두운 측면도 함께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La12를 이해할 때는 명성과 문제점을 함께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La12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La12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종종 두 가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한쪽에서는 “세계 최고의 응원 문화”라고 말한다.

반대로 다른 한쪽에서는 “폭력적인 축구 훌리건”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두 설명 모두 La12의 역사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La12는 단순한 응원단도 아니고, 단순한 범죄 조직도 아니다.

약 100년에 걸쳐 형성된 아르헨티나 축구 문화와 사회, 정치, 지역 공동체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역사적 산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La12를 이해하려면 찬양도, 비난도 아닌 맥락의 이해가 필요하다.

응원 문화가 남긴 유산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La12는 현대 축구 응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거대한 깃발. 관중석을 가득 메우는 현수막. 브라스 밴드. 90분 내내 이어지는 응원가. 끊임없이 뛰는 관중.

오늘날 남미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볼 수 있는 응원 방식 가운데 상당수는 아르헨티나 바라브라바 문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물론 각 나라와 클럽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이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La12는 이러한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전 세계 축구 팬들이 라 봄보네라를 ‘죽기 전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경기장’으로 꼽는 이유 역시 이러한 응원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동시에 남겨진 그림자

그러나 문화적 영향력과 별개로, La12의 역사에는 분명한 어두운 측면도 존재한다.

1960년대 이후 일부 바라브라바는 폭력과 충돌을 자신들의 정체성 일부로 받아들였고,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치며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La12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조직 내부의 권력 다툼, 다른 바라브라바와의 충돌, 경기장 안팎에서 발생한 폭력 사건, 경제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각종 논란은 오랫동안 아르헨티나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이러한 사건들은 법원 판결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된 사례들도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바라브라바 문제는 아르헨티나 축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La12를 이야기할 때는 화려한 응원만을 소비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폭력만으로 모든 역사를 설명해서도 안 된다.

La12는 ‘좋다’ 또는 ‘나쁘다’로 설명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La12에 대해 명확한 평가를 원한다.

하지만 역사에는 단순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La12는 한편으로는 세계 축구 팬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상징적인 응원 조직이었다.

동시에 여러 시기에 걸쳐 사회적 논란과 범죄 문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 두 모습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역사 속에서 함께 존재했던 현실이다.

바라브라바를 연구하는 학자들 역시 이러한 복합성을 강조한다.

즉, La12는 ‘응원 문화’와 ‘사회 문제’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조직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 지금도 La12를 연구하는가

그렇다면 왜 지금도 수많은 연구자와 언론은 La12를 다루는 것일까.

그 이유는 La12가 단순한 축구 응원단이 아니라, 현대 아르헨티나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창이기 때문이다.

La12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동자 계층의 문화, 지역 공동체의 형성, 축구와 정치의 관계, 미디어의 발전, 그리고 상업화된 현대 축구까지 연결된다.

즉, La12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보카 주니어스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가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바라브라바365가 La12를 다루는 이유

이번 La12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라브라바365는 바라브라바를 미화하거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반대로 선정적인 사건만을 소비하기 위한 공간도 아니다.

우리가 기록하고 싶은 것은 축구 팬 문화의 역사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팀에 바치는가. 왜 원정을 떠나는가. 왜 경기장에는 거대한 깃발이 등장하는가. 왜 어떤 응원 문화는 세대를 넘어 전통으로 이어지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La12를 비롯한 다양한 팬 문화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라브라바365는 앞으로도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 각국의 축구 팬 문화를 기록해 나갈 것이다.

La12 시리즈를 마치며

1925년. 빅토리아노 카파레나 라는 한 명의 팬이 ’12번째 선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0년대. 엔리케 오캄포는 그 상징을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1980년대. 호세 바리타는 현대적인 La12의 기반을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 라파엘 디 제오는 La12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 가운데 하나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Aguante라는 문화가 존재했다.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La12는 단순한 보카 주니어스의 응원단이 아니다.

그들은 축구 팬 문화의 역사 속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상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물론 그 역사에는 환호도 있었고, 논란도 있었으며, 열정도 있었고, 폭력도 존재했다.

La12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 모든 역사를 함께 이해하는 일이다.

바라브라바365를 구독해야 하는 이유

La12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바라브라바일지 모른다.

하지만 유일한 바라브라바는 아니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La12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리버 플레이트의 바라브라바 ‘Los Borrachos del Tablón(LBDT)’, 일명 ‘테라스의 취객들’의 역사를 따라가 본다.

La12와는 어떻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 그리고 왜 두 조직은 지금도 아르헨티나 축구를 대표하는 라이벌로 남아 있는지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전 세계 축구 팬 문화와 역사, 조직, 사회·정치적 영향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국내 최초 서포터 전문 웹진 바라브라바365에서 계속 이어진다.

참고 자료 :
Gustavo Grabia, La Doce: La verdadera historia de la barra brava más famosa del mundo
Pablo Alabarces, Fútbol y Patria, Crónicas del Aguante
Eduardo P. Archetti, Masculinities: Football, Polo and the Tango in Argentina
아르헨티나 언론(Olé, TyC Sports, Infobae, Clarín)의 La12 관련 보도
보카 주니어스 공개 역사 자료 및 학술 연구

La12 시리즈 ep1|보카 주니어스 바라브라바 La12의 탄생 이야기
La12 시리즈 ep2|Victoriano Caffarena와 ’12번째 선수’의 탄생
La12 시리즈 ep3|Enrique Ocampo와 초기 La12의 탄생
La12 시리즈 ep4|José Barrita, 현대 La12를 만든 남자
La12 시리즈 ep5|Rafael Di Zeo 연대기
La12 시리즈 ep6|Aguante란 무엇인가? 남미 축구 팬 문화의 핵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