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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럽 &#8211; barrabrava365</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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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국경을 넘어, 전 세계 축구 팬들의 열정이 이곳에 있습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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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톤 아일랜드의 부상 : 훌리건에서 하이 패션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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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18 Apr 2026 13:37:44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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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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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스톤 아일랜드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디자인이 깃든 브랜드이다. 소재에 대한 실험 정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진정한 서브컬처와 스트릿 스타일의 중심이기도 하다. 1982년 이탈리아 북부 마을 &#8216;라바리노(Ravarino)&#8217;에서 설립된 스톤 아일랜드는 볼로냐 출신의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의류 공학자인 &#8216;마시모 오스티(Massimo Osti)&#8217;의 역작이다. &#8216;조셉 콘래드(Joseph Conrad)&#8217;의 해양 소설에서 이름을 따온 이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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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스톤 아일랜드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뛰어난 디자인이 깃든 브랜드이다. 소재에 대한 실험 정신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의 진정한 서브컬처와 스트릿 스타일의 중심이기도 하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o4d3vas-yomsmc"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fetchpriority="high"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1024x683.webp" alt="" class="wp-image-281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1024x683.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300x200.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768x512.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1536x1024.webp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NE-ISLAND-FEATURE-1920x1280-1.webp 1920w" sizes="(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1982년 이탈리아 북부 마을 &#8216;라바리노(Ravarino)&#8217;에서 설립된 스톤 아일랜드는 볼로냐 출신의 혁신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의류 공학자인 &#8216;마시모 오스티(Massimo Osti)&#8217;의 역작이다. &#8216;조셉 콘래드(Joseph Conrad)&#8217;의 해양 소설에서 이름을 따온 이 브랜드는 연구, 실험, 그리고 기능성이라는 깊은 철학을 바탕으로 탄생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오스티는 단순히 패션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 설계했다. 그는 수천 가지의 새로운 원단, 가공법, 염색 공정을 개발하며 의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했다. 이 브랜드는 온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8216;열민감 스웨터&#8217;와 수작업으로 표면에 칠해진 뒤 오븐에서 건조된 미세한 유리 구슬들이 빛을 반사하는 &#8216;리퀴드 리플렛티브 재킷&#8217;을 출시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o4d42b3-6bx1az"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819"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2-819x1024.webp" alt="" class="wp-image-281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2-819x1024.webp 81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2-240x300.webp 2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2-768x960.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2.webp 1080w" sizes="(max-width: 819px) 100vw, 81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의류의 혁신만큼이나 흥미로운 점은 80년대 영국 축구 경기장의 테라스 문화의 일부로서 스톤 아일랜드가 지니는 서브컬처적 중요성이다. 당시 영구 축구팀들이 유럽 대회에서 지속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시작하면서, 열혈 젊은 팬들이 유럽 전역의 생소한 원정지로 정기적인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여행을 다니는 동안 그들은 현지 청년들이 입은 색다른 스타일을 접하게 되었고, 아직 영국 경기장까지는 전해지지 않았던 희귀한 브랜드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스톤 아일랜드, 세르지오 타키니, 휠라, 라코스테 같은 하이엔드 유럽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o4d6l50-zq2kav"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decoding="async" width="819"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4-819x1024.webp" alt="" class="wp-image-281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4-819x1024.webp 81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4-240x300.webp 2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4-768x960.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4.webp 1080w" sizes="(max-width: 819px) 100vw, 81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초창기 스톤 아일랜드의 열성 팬들은 80년대 밀라노의 스타일 중심적인 집단 &#8216;파니나로(Paninaro)&#8217;였다. 이들은 고향인 밀라노에서 자주 모이던 &#8216;파니니 바&#8217;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의 스타일은 50년대의 &#8216;아메리카나(Americana)&#8217;와 60년대 &#8216;모드(Mod)&#8217; 문화가 묘하게 뒤섞인 형태였으며, 여기에 스포티한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더해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영국 축구의 열혈 팬들이 영국으로 가져와 자신들만의 서브컬처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이 &#8216;파니나로&#8217; 룩이었으며, 이는 후에 &#8216;테라스 캐주얼(Terrace Casuals)&#8217; 운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o4dabdz-buqbaf"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819"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3-819x1024.webp" alt="" class="wp-image-281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3-819x1024.webp 81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3-240x300.webp 2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3-768x960.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3.webp 1080w" sizes="auto, (max-width: 819px) 100vw, 81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전설에 따르면, 1992년에 이르러 스톤 아일랜드는 테라스 캐주얼 스타일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가장 핵심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스웨덴에서 열린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 1992) 조별 리그에서 영국이 탈란학 후, 팬들이 &#8216;지니어스(Genius)&#8217;라는 스웨덴 의류 아울렛을 약탈하여 훔친 &#8216;스토니(Stoney·스톤 아일랜드의 애칭)&#8217; 제품들을 대거 본국으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사건이 스톤 아일랜드를 캐주얼 문화의 기둥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만든 결정적인 계기라고 일컬어진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o4dd0hp-caaa6j"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819"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5-819x1024.webp" alt="" class="wp-image-281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5-819x1024.webp 81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5-240x300.webp 2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5-768x960.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stoe-island-web-5.webp 1080w" sizes="auto, (max-width: 819px) 100vw, 81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시간이 흐르고 서브컬처가 변화하는 동안에도 스톤 아일랜드는 &#8216;애시드 하우스(Acid House)&#8217;와 &#8216;레이브(Rave)&#8217; 씬 같은 흐름 속에서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 브랜드를 대서양 건너 미국 시장과 주류 패션계로 급부상시킨 결정적인 계기는 2014년 미국 스트릿 패션의 거물 &#8216;슈프림(Supreme)&#8217;과의 협업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8216;에이셉 내스트(A$AP Nast)&#8217;와 &#8216;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8217;, &#8216;드레이크(Drake)&#8217; 같은 래퍼들이 왼쪽 소매에 상징적인 나침반 와펜이 달린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스톤 아일랜드는 특정 서브컬처의 전유물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 되었다. 셀러브리티들은 서로 누가 먼저 &#8216;스토니&#8217;를 발견했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영국 &#8216;그라임(Grime)&#8217; 음악의 부상은 브랜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만들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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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스톤 아일랜드는 그 역사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상징해 왔다. 소재 실험의 장이자, 열혈 축구 팬들의 서브컬처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의 하이엔드 럭셔리 패션 레이블로서 말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처럼 보편적인 사랑을 받으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능력이야말로 스톤 아일랜드를 전 세계에서 가장 선망받는 패션 브랜드 중 하나로 만드는 차별점이다. 기술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스톤 아일랜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끊임없는 진화에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출처 : https://culted.com/</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lt;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캐주얼’ 패션의 짧은 역사> Click</a></strong></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wp-embed is-provider-barrabrava-365 wp-block-embed-barrabrava-365"><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blockquote class="wp-embedded-content" data-secret="Nae3itTNZ4"><a href="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8216;캐주얼&#8217; 패션의 짧은 역사</a></blockquote><iframe loading="lazy" class="wp-embedded-content" sandbox="allow-scripts" security="restricted"  title="&#8220;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8216;캐주얼&#8217; 패션의 짧은 역사&#8221; &#8212; barrabrava365" src="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embed/#?secret=rOHm5kiCBw#?secret=Nae3itTNZ4" data-secret="Nae3itTNZ4" width="600" height="338"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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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 경계의 재구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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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Sat, 04 Apr 2026 15:03:20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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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축구 경기장 관중석을 지배하는 두 개의 거대한 핵심 세력인 축구 &#8216;울트라스(Ultras)&#8217;와 &#8216;훌리건(Hooligans)&#8217;. 이 두 집단은 불투명한 경계선과 외형적 유사성 때문에 대중에게 흔히 혼용되곤 하지만, 사회학적·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그 기원과 존재 목적은 분명하게 구분된다.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의 결정적 차이 유럽이나 남미의 뜨거운 축구 중계를 보다 보면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화려한 홍염의 불꽃과 거대한 현수막, 그리고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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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경기장 관중석을 지배하는 두 개의 거대한 핵심 세력인 축구 &#8216;울트라스(Ultras)&#8217;와 &#8216;훌리건(Hooligans)&#8217;. 이 두 집단은 불투명한 경계선과 외형적 유사성 때문에 대중에게 흔히 혼용되곤 하지만, 사회학적·문화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그 기원과 존재 목적은 분명하게 구분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fj7lx-qxbvjc"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86" height="38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vs-hooligas.webp" alt="" class="wp-image-276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vs-hooligas.webp 68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vs-hooligas-300x169.webp 300w" sizes="auto, (max-width: 686px) 100vw, 686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의 결정적 차이</h2>



<p class="wp-block-paragraph">유럽이나 남미의 뜨거운 축구 중계를 보다 보면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화려한 홍염의 불꽃과 거대한 현수막,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충돌 소식을 동시에 접하곤 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보통 미디어에서는 이들을 통칭하여 &#8216;훌리건&#8217;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부르곤 하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이라는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복잡하게 공존하고 있다. 오늘은 이 두 집단의 명확한 정의와 실질적인 차이점을 심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p>



<h2 class="wp-block-heading">울트라스(Ultras)의 세계</h2>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울트라스는 경기 시작부터 종료까지 90분 내내 쉬지 않고 노래하며 팀을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강성 서포터즈 집단을 일컫는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태동한 이 독특한 응원 문화는 이제 현대 축구장의 전 세계적인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의 활동은 매우 조직적이다. 대규모 카드 섹션으로 장관을 이루는 &#8216;티포(Tifo)&#8217;, 구단의 역사를 담은 대형 깃발, 강렬한 홍염의 사용, 그리고 마치 군가처럼 절도 있는 구호와 노래까지. 이들은 &#8216;꾸르바(Curva)&#8217;라고 불리는 경기장 골대 뒤편 특정 구역에 결집하며, 팀의 상징색을 입거나 단체 의류인 마테리얼을 착용해 자신들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최고의 자부심으로 여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fk3qc-arpq4d"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pic-1024x576.webp" alt="" class="wp-image-276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pic-1024x576.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pic-300x169.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pic-768x432.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ltras-pic.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특히 축구 울트라스는 클럽의 전통 수호와 압도적인 응원 퍼포먼스를 집단의 핵심 가치로 삼는다. 때로는 내부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단순한 응원을 넘어 사회 활동, 자선 사업, 지역 사회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양면성을 띤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축구 울트라스 그룹은 자신들의 거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정치적·사회적 메시지를 전파하는 장으로 경기장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들 역시 물리적 충돌과 완전히 결별한 존재는 아니지만, 본질적으로는 화려한 시각적·청각적 퍼포먼스에 초점을 둔 &#8216;서포팅&#8217; 집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p>



<h2 class="wp-block-heading">훌리건(Hooligans)의 세계</h2>



<p class="wp-block-paragraph">반면 훌리건은 앞서 언급한 축구 울트라스와 달리 경기 자체의 흐름보다는 상대 팀 팬과의 물리적 충돌과 난동 그 자체에 더 큰 목적을 둔 집단으로 정의된다. 1970~80년대 영국에서 극심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며 &#8216;잉글리시 병(English Disease)&#8217;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던 이들은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감을 증명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은 시합 중 경기장 내에서 난입이나 싸움을 벌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감시가 느슨한 경기장 밖 거리나 펍(Pub)에서 집단 패싸움, 기물 파손, 상대 진영 습격 등을 주도한다. 2000년대 초중반에 들어서며 러시아와 동유럽 지역에서는 두 훌리건 그룹이 사전에 은밀히 약속한 뒤 공터나 숲속 같은 비밀 장소에 집결하여 10 vs 10 혹은 50 vs 50 형식의 집단 격투를 펼치는 이른바 &#8216;셋 업(Set-up)&#8217; 스타일이 확산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fx834-q7g9ga"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hooligans-russians-style-1024x577.webp" alt="" class="wp-image-276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hooligans-russians-style-1024x577.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hooligans-russians-style-300x169.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hooligans-russians-style-768x433.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hooligans-russians-style.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또한 이들은 공권력의 감시를 피하고자 팀 유니폼을 입지 않는 전통이 있다. 대신 고가의 캐주얼 브랜드, 예를 들어 스톤 아일랜드(Stone Island)나 CP 컴퍼니 등을 착용하는 &#8216;캐주얼(Casuals)&#8217; 문화를 발전시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최근에 와서는 이러한 스타일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순수한 실전 격투를 추구하는 하드코어 훌리건들 사이에서는 &#8220;캐주얼이 알맹이 없는 패션쇼가 되었다&#8221;며 오히려 기피 대상으로 여기는 현상도 나타난다. 이들은 철저히 신분을 숨기기 위해 마스크나 복면을 착용하는데, 이는 CCTV와 공권력의 감시망을 피함과 동시에 적대 세력이나 범죄 조직으로부터의 보복이나 암살을 방지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p>



<h2 class="wp-block-heading">두 집단 사이의 미묘한 교집합</h2>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은 모두 자신이 응원하는 클럽에 비정상적일 만큼 열정적인 팬이지만, 축구 팬덤의 전혀 다른 단면을 상징한다. 축구 울트라스가 조직적인 응원과 공동체 정신으로 특징지어진다면, 훌리건은 무질서와 폭력, 그리고 범죄 행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대부분의 축구 울트라스 그룹은 자신들이 &#8216;훌리건&#8217;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매우 불쾌하게 여긴다. 울트라스에게 폭력이란 자신들의 자부심과 성역인 구역을 지키기 위한 부수적인 방어 수단일 뿐이지만, 훌리건에게 폭력은 집단이 존재하는 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g9qux-jamb5a"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7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curva-nord-inter-inchiesta-ultra-comunicato-1024x675.webp" alt="" class="wp-image-277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curva-nord-inter-inchiesta-ultra-comunicato-1024x675.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curva-nord-inter-inchiesta-ultra-comunicato-300x198.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curva-nord-inter-inchiesta-ultra-comunicato-768x506.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curva-nord-inter-inchiesta-ultra-comunicato.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다만 현실적으로 이 둘 사이에는 부정할 수 없는 교집합이 존재한다. 가령 거대한 훌리건 그룹이 외형적으로는 축구 울트라스를 표방하는 공식 서포터즈 연대의 핵심 실행 세력으로 활동하는 경우다. 반대로 평소에는 응원 퍼포먼스를 기획하던 울트라스 멤버가 특정 날에는 훌리건의 패싸움 현장에 투입되기도 한다. 일례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악명 높은 훌리건 그룹인 &#8216;글래디에이터 펌&#8217;의 멤버 일부는 응원 중심의 활동을 펼치는 공식 서포터즈 &#8216;프라티아&#8217;에 소속되어 활동하며 두 세계를 넘나든다.</p>



<p class="wp-block-paragraph">또한 훌리건 그룹들이 단순히 경기장 안팎의 싸움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지역 마피아와 연계되어 마약 밀매나 청부 폭력 등 중범죄에 가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는 축구 울트라스 역시 자유롭지 못한 부분이다. 밀라노의 두 명문인 AC 밀란과 인테르의 꾸르바를 장악한 핵심 울트라스 멤버들이 마피아 세력과 결탁해 이권을 챙긴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g2wbx-tc859l"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00" height="54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Gustaf-Cedermalm-King-of-the-Streets.webp" alt="" class="wp-image-276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Gustaf-Cedermalm-King-of-the-Streets.webp 10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Gustaf-Cedermalm-King-of-the-Streets-300x164.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Gustaf-Cedermalm-King-of-the-Streets-768x420.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00px) 100vw, 100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의 관계를 상호 보완적인 공생 관계로 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울트라스는 자신의 구역을 지키기 위해 싸움에 능숙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며, 훌리건 역시 자신이 속한 지역 사회나 갱단 활동에 헌신하는 것이 집단의 규칙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울트라스의 기원지인 이탈리아의 경우, 동유럽처럼 숲속에서 격투를 벌이는 문화는 드물지만 경기장 내외의 폭력은 아주 오랜 시간 만연해 왔다. &#8216;울트라(Ultra)&#8217;라는 단어의 어원 자체가 20세기 이탈리아 언론과 정치인들이 극단주의 정치 집단을 비난하기 위해 사용했던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용어는 탄생부터 어느 정도의 급진성과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g6m4g-bzm4dk"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5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milan-derby-1024x657.webp" alt="" class="wp-image-277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milan-derby-1024x657.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milan-derby-300x193.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milan-derby-768x493.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milan-derby.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차이점은 정치적 지향성이다. 훌리건 그룹의 95% 이상은 극우 성향을 띠며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있다. 반면 축구 울트라스는 팀과 지역에 따라 극좌부터 극우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좌파 성향이 강한 축구 울트라스 그룹과 같은 팀을 응원하는 우파 훌리건 그룹이 내부적으로 충돌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폴란드처럼 두 집단이 같은 정치적 지향점을 공유하는 국가도 있지만, 정치적 유연성 면에서 울트라스는 훌리건과 확실히 궤를 달리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는 단순한 공놀이를 넘어 거대한 사회적 현상이자 인류학적 연구 대상이다.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의 개념적 차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얽힌 복잡한 공통점을 이해하는 것은 현대 축구의 이면에 숨겨진 뜨거운 열정과 어두운 그늘을 동시에 직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참고 자료 :<br>The Auardian &#8211; How fan violence became a political football<br>Football Collective &#8211; Football Collective Ultras vs Hooligans terminology<br>Youtube &#8211; HOOLIGANS vs ULTRAS, quelles différence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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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바꾼 축구 울트라스 훌리건 씬</title>
		<link>https://barrabrava365.com/ukraine-russia-football-hooligans/</link>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Sat, 04 Apr 2026 09:31:53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category><![CDATA[Sect 82]]></category>
		<category><![CDATA[러시아 울트라스]]></category>
		<category><![CDATA[러시아 자원군단]]></category>
		<category><![CDATA[러시아 훌리건]]></category>
		<category><![CDATA[아조우]]></category>
		<category><![CDATA[에스파뇰라]]></category>
		<category><![CDATA[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category>
		<category><![CDATA[우크라이나 울트라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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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의 라이벌 울트라스는 공동 행동에 나섰고, 일부 축구팬은 실제 전쟁에 참여했다. 아조우와 러시아 자원군단, 러시아의 훌리건 기반 부대 에스파뇰라를 통해 축구 하위문화와 군사 동원, 극우 정치의 관계를 살펴본다.]]></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본 콘텐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 있어 특정 국가를 옹호하거나 정치적으로 미화할 목적이 없음을 밝힙니다. 단지 전쟁의 군사적 양상보다는 축구 하위문화가 실제 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현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작성된 내용은 전 세계 공신력 있는 언론 보도, 학술 논문 및 오픈 소스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다만, 전시 상황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지 편향적이거나 민감한 정보가 포함될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비극적인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며, 모든 희생자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k37mk1-cb6a17"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42" height="74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krainian-football-hooligans-who-volunteered-for-the-army-v0-9v7gnppq91k81.webp" alt="" class="wp-image-274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krainian-football-hooligans-who-volunteered-for-the-army-v0-9v7gnppq91k81.webp 942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krainian-football-hooligans-who-volunteered-for-the-army-v0-9v7gnppq91k81-300x236.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ukrainian-football-hooligans-who-volunteered-for-the-army-v0-9v7gnppq91k81-768x605.webp 768w" sizes="auto, (max-width: 942px) 100vw, 942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장에서 서로 충돌하던 라이벌 팬들이 같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협력하고, 축구 하위문화에서 활동하던 인물들이 실제 무장조직을 결성해 전쟁에 참여했다. 2014년부터 이어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양국의 축구 팬 문화에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에서는 디나모 키이우, 샤흐타르 도네츠크,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등 오랜 라이벌 관계에 있던 팬 집단들이 충돌을 줄이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구성원은 군에 입대하거나 자원부대에 합류했고, 경기장 밖에서는 모금과 보급 활동을 조직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 측에서도 축구 훌리건 출신 인원들이 전쟁에 동원됐다. 일부는 러시아군과 연계된 준군사조직을 구성했고, 반대로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러시아인들은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러시아군과 싸웠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과정은 축구 팬 문화가 국가적 위기 속에서 연대와 저항의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동시에 폭력적 하위문화와 극우 정치, 국가의 군사 동원이 결합할 때 발생하는 위험도 드러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은 우크라이나 러시아 축구 훌리건 문화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다. 대신 경기장에서 형성된 인간관계와 조직력, 폭력과 명예의 규범을 실제 전쟁의 동원 체계 안으로 이동시켰다.</p>



<h2 class="wp-block-heading">울트라스와 훌리건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h2>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축구 팬 문화를 설명하기 전에 울트라스와 훌리건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문화는 한 조직 안에서 겹칠 수 있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p>



<h3 class="wp-block-heading">울트라스란 무엇인가</h3>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Ultras)는 조직적인 응원과 원정, 티포, 배너, 응원가, 그룹의 자율성과 집단 정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팬 문화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 그룹 안에는 폭력에 반대하는 구성원도 있고,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조직도 있다.</p>



<h3 class="wp-block-heading">훌리건이란 무엇인가</h3>



<p class="wp-block-paragraph">훌리건(Hooligan)은 축구와 관련된 계획적 또는 집단적 폭력에 가담하는 개인과 집단, 또는 그 현상을 가리킨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훌리건 집단은 경기장 응원보다 상대 조직과의 충돌, 지역과 조직의 명예, 신체적 우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여한 축구 팬 전체를 ‘훌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울트라스, 일반 서포터, 자원봉사자와 군인도 포함돼 있었다. 특정 인물이나 조직이 축구 폭력 하위문화에서 활동한 이력이 확인될 때에만 훌리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a%b8%ed%8a%b8%eb%9d%bc%ec%8a%a4%ec%99%80-%ed%9b%8c%eb%a6%ac%ea%b1%b4-%ea%b7%b8-%ea%b2%bd%ea%b3%84%ec%9d%98-%ec%9e%ac%ea%b5%ac%ec%84%b1/">[ 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 경계의 재구성 ]</a></strong></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wp-embed is-provider-barrabrava-365 wp-block-embed-barrabrava-365"><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blockquote class="wp-embedded-content" data-secret="8y0TM8fm18"><a href="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a%b8%ed%8a%b8%eb%9d%bc%ec%8a%a4%ec%99%80-%ed%9b%8c%eb%a6%ac%ea%b1%b4-%ea%b7%b8-%ea%b2%bd%ea%b3%84%ec%9d%98-%ec%9e%ac%ea%b5%ac%ec%84%b1/">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 경계의 재구성</a></blockquote><iframe loading="lazy" class="wp-embedded-content" sandbox="allow-scripts" security="restricted"  title="“축구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 경계의 재구성” — barrabrava365" src="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a%b8%ed%8a%b8%eb%9d%bc%ec%8a%a4%ec%99%80-%ed%9b%8c%eb%a6%ac%ea%b1%b4-%ea%b7%b8-%ea%b2%bd%ea%b3%84%ec%9d%98-%ec%9e%ac%ea%b5%ac%ec%84%b1/embed/#?secret=VgisQq5fPd#?secret=8y0TM8fm18" data-secret="8y0TM8fm18" width="600" height="338"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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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wp-block-heading">2014년, 우크라이나 축구 팬 문화의 변곡점</h2>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 팬 문화의 변화는 2022년 전면 침공이 아니라 2013년 말부터 2014년 사이에 본격적으로 시작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유로마이단 시위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붕괴,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및 병합,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분리주의 무장 충돌은 축구 팬 집단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e8pr-qsbb9t"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45" height="49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전쟁에-참전한-울트라스-훌리건.webp" alt="" class="wp-image-312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전쟁에-참전한-울트라스-훌리건.webp 945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전쟁에-참전한-울트라스-훌리건-300x157.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전쟁에-참전한-울트라스-훌리건-768x403.webp 768w" sizes="auto, (max-width: 945px) 100vw, 945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라이벌 울트라스 사이에 확산된 휴전</h3>



<p class="wp-block-paragraph">2014년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의 라이벌 울트라스들은 기존의 충돌을 중단하고 친우크라이나 공동 행진과 집회, 친선경기 등에 참여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는 모든 조직의 대표가 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공식 문서에 서명한 중앙집중적 협정이라기보다, 여러 지역과 구단 팬 집단 사이에서 확산된 광범위한 휴전 운동에 가까웠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당시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디나모 키이우, 샤흐타르 도네츠크,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드니프로 등 서로 적대적이었던 팬들이 우크라이나의 통합과 영토 보전을 지지하는 공동 활동에 참여했다고 보도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경기장과 거리에서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등장했다.</p>



<ul class="wp-block-list">
<li>우크라이나의 통합 지지</li>



<li>친러 분리주의 반대</li>



<li>기존 팬 조직 사이의 충돌 중단</li>



<li>정치적 위기 상황에서의 공동 행동</li>
</ul>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이 휴전이 모든 팬 조직의 적대감을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지역별 정치 성향과 언어, 구단 및 조직 사이의 갈등은 계속 존재했다. 그럼에도 2014년은 우크라이나 축구 팬 집단이 국내 라이벌 관계보다 국가적 위기를 우선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e3c3-gclae0"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40" height="25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webp" alt="" class="wp-image-312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webp 5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러시아-전쟁-300x140.webp 300w" sizes="auto, (max-width: 540px) 100vw, 54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유로마이단에서 전쟁까지</h2>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의 일부 울트라스는 유로마이단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은 시위대 보호, 바리케이드 관리, 현장 경비와 충돌 대응에 관여했다. 축구장에서 형성된 인간관계와 신속한 동원 체계가 거리 시위에서 활용된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이를 모든 우크라이나 울트라스가 동일한 정치적 입장을 가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 그룹 내부에는 민족주의자와 극우 활동가뿐 아니라 자유주의자, 정치적 무관심층, 일반 축구팬도 함께 존재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4년 돈바스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일부 팬은 우크라이나 정규군과 국가방위군, 자원봉사 부대에 합류했다. 다른 팬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는 대신 다음과 같은 활동을 수행했다.</p>



<ul class="wp-block-list">
<li>전투 장비와 의료품 모금</li>



<li>차량과 드론 구매 지원</li>



<li>군복과 방한용품 전달</li>



<li>부상병과 피란민 지원</li>



<li>전사한 팬의 가족 지원</li>



<li>해외 축구 팬 네트워크를 통한 모금</li>
</ul>



<p class="wp-block-paragraph">AP는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라이벌 팬 집단들이 전투 참여뿐 아니라 모금과 구호 활동에서도 협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팬 네트워크가 국가의 보급체계를 대신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기존 팬 조직의 인간관계와 동원력이 군인과 민간인 지원에 실질적으로 활용됐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erpy-dq5kqi"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40" height="3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축구팬.webp" alt="" class="wp-image-312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축구팬.webp 5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축구팬-300x189.webp 300w" sizes="auto, (max-width: 540px) 100vw, 540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evjv-csi246"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40" height="31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훌리건-울트라스-참전.webp" alt="" class="wp-image-312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훌리건-울트라스-참전.webp 5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훌리건-울트라스-참전-300x174.webp 300w" sizes="auto, (max-width: 540px) 100vw, 54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전쟁 속에서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축구</h2>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의 전면 침공 이후 중단됐던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는 2022년 8월 관중 없이 재개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후 일부 경기에서는 제한적인 관중 입장이 허용됐다. 입장 가능 인원은 경기장 인근 방공호의 수용 능력과 지역의 보안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p>



<h3 class="wp-block-heading">공습경보가 울리면 경기는 중단된다</h3>



<p class="wp-block-paragraph">전시 체제 아래에서도 경기가 계속되지만 공습경보가 울리는 동안 축구가 그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경보가 발생하면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와 심판, 관중은 지정된 방공시설로 대피한다. 경보가 장시간 지속되면 경기가 수 시간 지연되거나 다른 날짜로 연기되기도 한다. AP는 전시 리그의 경기 도중 공습경보가 울리면 선수와 관중이 방공호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p>



<h3 class="wp-block-heading">경기장에 등장한 추모 문화</h3>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구단과 팬 조직은 전쟁에서 사망하거나 실종된 서포터를 추모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p>



<ul class="wp-block-list">
<li>전사자 사진과 추모 배너 게시</li>



<li>경기 전 묵념</li>



<li>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트라포 설치</li>



<li>가족과 동료를 위한 모금</li>



<li>군 복무 중인 팬을 위한 응원가와 메시지</li>
</ul>



<p class="wp-block-paragraph">다만 이를 모든 구단과 경기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에 참여한 팬이 많았던 구단과 지역을 중심으로 추모 활동이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fsts-8cavgh"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93" height="48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webp" alt="" class="wp-image-313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webp 69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300x210.webp 300w" sizes="auto, (max-width: 693px) 100vw, 693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축구 하위문화는 군사조직으로 어떻게 이어졌나</h2>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장에서 형성된 집단이 군사조직으로 전환된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그룹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p>



<ul class="wp-block-list">
<li>장기간 유지된 인적 네트워크</li>



<li>지역 단위의 신속한 인원 동원</li>



<li>원정과 단체 이동 경험</li>



<li>집단 내 위계와 역할 분담</li>



<li>신체훈련과 격투 경험</li>



<li>강한 내부 결속</li>



<li>민족주의 또는 극우 정치와의 연계</li>
</ul>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특징은 자원병 모집과 지원 활동에 활용될 수 있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축구장에서의 조직력이나 신체적 강인함이 곧바로 전문적인 전투 능력으로 이어졌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p>



<p class="wp-block-paragraph">현대전에서는 지휘통제, 무기 운용, 통신, 정보, 공병, 포병 및 드론과 같은 전문 훈련이 필요하다. 축구 하위문화의 네트워크는 초기 동원에 기여할 수 있지만, 군사적 효율성은 이후의 교육과 지휘 체계에 더 크게 좌우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gdxf-3a2aio"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14" height="6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영국-총리와-우크라이나-아조우-부대.webp" alt="" class="wp-image-313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영국-총리와-우크라이나-아조우-부대.webp 101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영국-총리와-우크라이나-아조우-부대-300x200.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영국-총리와-우크라이나-아조우-부대-768x51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14px) 100vw, 101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아조우와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Sect 82</h2>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하위문화와 우크라이나 군사조직의 관계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조직이 아조우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 초기 구성에는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극우 성향 울트라스 그룹 Sect 82 출신 인원들이 참여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아조우를 Sect 82가 단독으로 창설한 부대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의 초기 인적 기반에는 다음과 같은 세력이 함께 존재했다.</p>



<ul class="wp-block-list">
<li>Sect 82 등 축구 울트라스 출신</li>



<li>우크라이나 민족주의 활동가</li>



<li>Patriot of Ukraine 관계자</li>



<li>Social-National Assembly 관계자</li>



<li>기타 자원병과 지역 자위대원</li>
</ul>



<p class="wp-block-paragraph">관련 연구는 아조우 초기 문화가 메탈리스트 하르키우의 울트라스 환경과 여러 극우 민족주의 조직의 결합을 통해 형성됐다고 분석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ffq7-aauy7i"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3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아조우-연대Azov-Brigade.webp" alt="" class="wp-image-312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아조우-연대Azov-Brigade.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아조우-연대Azov-Brigade-300x158.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아조우-연대Azov-Brigade-768x404.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2014년 자원대대에서 국가방위군으로</h3>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 대대는 2014년 친러 분리주의 무장세력과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자원부대 가운데 하나였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는 2014년 6월 우크라이나 정부군, 국가방위군과 다른 자원부대가 함께 수행한 마리우폴 탈환 작전에 참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가 단독으로 소수의 병력만을 이끌고 마리우폴을 탈환했다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4년 11월 아조우는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 국가방위군의 정식 편제로 편입됐다. 이후 병력과 장비, 훈련 체계가 확대되면서 민병대 성격의 대대에서 정규 국가방위군 부대로 전환됐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fk1n-40624y"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6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연대.webp" alt="" class="wp-image-313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연대.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연대-300x225.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우크라이나-아조우-연대-768x576.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2022년 마리우폴과 아조우스탈 전투</h2>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22년 러시아의 전면 침공과 마리우폴 전투였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를 포함한 우크라이나군과 국가방위군, 해병대, 경찰 및 국경수비대는 포위된 마리우폴에서 러시아군에 저항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 수비대는 전투 후반부에 아조우스탈 제철소로 이동해 방어를 계속했다. 2022년 5월 우크라이나 수비대가 투항하면서 다수의 병력이 러시아의 포로가 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가 마리우폴 방어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리우폴 방어군 전체를 아조우 하나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전투에는 여러 우크라이나 군·경 조직이 함께 참여했다.</p>



<h2 class="wp-block-heading">현재 아조우는 어떤 조직인가</h2>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는 현재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소속의 제12특수목적여단 아조우로 운영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25년에는 제12여단의 지휘 인력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가 창설됐다. 제1군단은 제12특수목적여단을 포함한 여러 여단과 포병·무인체계 부대로 구성된다. 아조우 측 공식 자료도 제12여단이 제1군단 창설의 기반이 됐다고 설명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현재의 아조우를 단순히 ‘아조우 연대’라고만 부르는 것은 편제상 정확하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p>



<ul class="wp-block-list">
<li>2014년 : 아조우 대대</li>



<li>이후 : 아조우 연대</li>



<li>현재 : 제12특수목적여단 아조우</li>



<li>상위 편제 :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li>
</ul>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hf89-0l3wub"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젤렌스키-대통령과-아조우.webp" alt="" class="wp-image-313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젤렌스키-대통령과-아조우.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젤렌스키-대통령과-아조우-300x200.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젤렌스키-대통령과-아조우-768x51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아조우의 극우 논란은 끝났는가</h2>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의 초기 구성원 일부가 극우·백인민족주의 이념과 연계됐고, 나치 및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상징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여러 국제 보도와 연구에서 지적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특히 초기 아조우 지도자였던 안드리 빌레츠키와 일부 창설 멤버의 정치적 이력, 부대 상징의 의미는 오랫동안 논란이 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우크라이나 전체가 나치 세력에 지배되고 있다는 주장으로 확대해 전면 침공의 명분 가운데 하나로 이용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아조우의 초기 극우 인적 기반이 우크라이나 정부 전체의 성격을 대표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p>



<h3 class="wp-block-heading">정규군 편입 이후의 변화</h3>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는 국가방위군 편입과 병력 확대를 거치면서 초기 자원대대보다 규모와 구성원이 크게 달라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현재 아조우 측은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문 군사조직이라고 주장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근거로 아조우의 이념적 성격이 약화됐다고 평가한다.</p>



<ul class="wp-block-list">
<li>국가방위군 지휘 체계 편입</li>



<li>공개 모집을 통한 병력 확대</li>



<li>초기 창설자들의 이탈</li>



<li>전문 군사교육 강화</li>



<li>다양한 지역과 배경의 인원 합류</li>
</ul>



<p class="wp-block-paragraph">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아조우 운동과 초기 조직 사이의 인적·상징적 연결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아조우의 정치적 편향성이 완전히 제거됐다”거나 “현재도 전체 조직이 네오나치 부대다”라는 두 가지 극단적 설명은 모두 주의해야 한다.</p>



<h3 class="wp-block-heading">미국의 리히법 심사</h3>



<p class="wp-block-paragraph">미국 국무부는 2024년 아조우 제12여단에 대한 리히법 심사를 완료하고 미국산 무기와 훈련 지원을 허용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리히법은 중대한 인권침해에 관여한 외국 군부대에 미국의 지원을 제한하는 제도다. 미국 정부는 심사 과정에서 현재 아조우 여단의 중대한 인권침해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다만 이 결정은 아조우와 극우 정치 사이의 모든 역사적·이념적 논란이 해소됐다는 의미가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미국 정부의 판단은 군사 지원을 위한 인권심사 결과이지, 조직의 모든 구성원과 상징, 정치적 연계를 포괄적으로 인증한 것이 아니다.</p>



<h2 class="wp-block-heading">우크라이나 편에서 싸우는 러시아인: 러시아 자원군단</h2>



<p class="wp-block-paragraph">이 전쟁에서는 러시아의 극우·훌리건 하위문화 출신 인물이 우크라이나 측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는 역설적인 사례도 나타났다.</p>



<p class="wp-block-paragraph">대표적인 인물이 데니스 카푸스틴(Denis Kapustin)​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데니스 니키틴이라는 이름과 화이트 렉스(White Rex)​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hlq3-nr0x0c"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데니스-카푸스틴.webp" alt="" class="wp-image-313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데니스-카푸스틴.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데니스-카푸스틴-300x169.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데니스-카푸스틴-768x43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데니스 카푸스틴의 훌리건·극우 이력</h3>



<p class="wp-block-paragraph">카푸스틴은 러시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독일로 이주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유럽의 축구 훌리건과 격투기, 백인민족주의 하위문화에서 활동했고, White Rex라는 의류 및 격투기 브랜드를 운영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의 브랜드와 행사는 유럽 극우 활동가와 훌리건 네트워크의 연결 지점 가운데 하나로 지적돼 왔다.</p>



<p class="wp-block-paragraph">카푸스틴은 단순한 반푸틴 민주화 운동가가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면서도 극우 민족주의와 백인 우월주의 성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인물로 평가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jirf-4ks6ra"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0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훌리건-격투기-대회.webp" alt="" class="wp-image-313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훌리건-격투기-대회.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훌리건-격투기-대회-300x206.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훌리건-격투기-대회-768x527.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러시아 자원군단</h3>



<p class="wp-block-paragraph">카푸스틴은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러시아 자원군단(Russian Volunteer Corps·RVC)​의 창설자이자 지도자다.</p>



<p class="wp-block-paragraph">RVC는 자신들을 러시아인 중심의 반크렘린 무장조직으로 규정하며, 러시아 푸틴 정권과의 무장투쟁을 주장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RVC는 자유 러시아 군단, 시베리아 대대 등 다른 반크렘린 러시아인 조직과 함께 러시아 벨고로드와 쿠르스크 접경 지역에서 국경 침투 작전을 벌였다고 발표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로이터는 RVC가 우크라이나 측으로부터 정보·물류·탄약과 의료 후송 지원을 받는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했다. 다만 해당 조직의 전과와 작전 주장은 독립적으로 모두 검증되지 않았으며, 우크라이나 정규군과의 정확한 지휘 관계도 공개적으로 명확하지 않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jloq-p3tlmb"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webp" alt="" class="wp-image-314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300x169.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화이트-렉스-768x43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반푸틴이라고 해서 자유주의 세력은 아니다</h3>



<p class="wp-block-paragraph">RVC의 사례는 ‘러시아 정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민주주의 또는 자유주의 세력’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p>



<p class="wp-block-paragraph">카푸스틴과 RVC의 일부 구성원은 푸틴 정권에 반대하지만 동시에 극우 민족주의 이념을 유지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러시아 내부를 공격할 수 있는 전력을 활용하는 군사적 이익이 존재한다. 그러나 극우 이력이 명확한 조직과의 협력은 정치적·외교적 부담을 동반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huet-ykdxvm"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0" height="51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자원군-RVC.webp" alt="" class="wp-image-313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자원군-RVC.webp 77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자원군-RVC-300x200.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자원군-RVC-768x51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770px) 100vw, 77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러시아 측 훌리건 기반 부대 에스파뇰라</h2>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 측에서는 축구 훌리건 출신 인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무장조직 에스파뇰라(Española)​가 등장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는 러시아 여러 구단의 강성 팬과 훌리건을 모집한 조직으로 알려졌다.</p>



<h3 class="wp-block-heading">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와 CSKA 훌리건 문화</h3>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의 창설자이자 지휘자는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Stanislav Orlov)​였다.</p>



<p class="wp-block-paragraph">오를로프는 ‘이스파네츠’ 또는 ‘스파니어드’라는 별칭으로 알려졌으며, CSKA 모스크바의 훌리건 조직인 Red-Blue Warriors 출신으로 소개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무장세력 편에서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고, 2022년 전면 침공 이후 여러 러시아 구단의 훌리건을 모아 에스파뇰라를 확대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i1qi-0ee3c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6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스타니슬라프-오를로프의-에스파뇰라.webp" alt="" class="wp-image-313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스타니슬라프-오를로프의-에스파뇰라.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스타니슬라프-오를로프의-에스파뇰라-300x166.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스타니슬라프-오를로프의-에스파뇰라-768x425.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다양한 구단의 팬을 하나의 부대로 모집하다</h3>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에는 다음과 같은 러시아 구단의 강성 팬 출신이 참여한 것으로 보도됐다.</p>



<ul class="wp-block-list">
<li>CSKA 모스크바</li>



<li>스파르타크 모스크바</li>



<li>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li>



<li>로코모티프 모스크바</li>



<li>기타 러시아 프로구단</li>
</ul>



<p class="wp-block-paragraph">평소에는 라이벌 관계인 팬들이 전쟁에서는 러시아 민족주의와 친정부 전쟁 목표 아래 하나의 부대로 모인 것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점에서 에스파뇰라는 2014년 이후 라이벌 관계를 중단한 우크라이나 울트라스와 외형적으로 유사한 현상을 보여준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조직이 결합한 정치적 목표와 국가 권력과의 관계는 서로 다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i7yw-fzfu72"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1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훌리건-부대-에스파뇰라.webp" alt="" class="wp-image-313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훌리건-부대-에스파뇰라.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훌리건-부대-에스파뇰라-300x181.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러시아-훌리건-부대-에스파뇰라-768x464.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3 class="wp-block-heading">정확한 법적·지휘 구조는 불투명했다</h3>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는 러시아 국방·정보기관 및 국가 권력과 연계된 친러시아 준군사조직으로 활동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다만 이를 단순히 ‘러시아 국방부 정규 특수부대’ 또는 ‘독립 PMC’로 확정하기는 어렵다.</p>



<p class="wp-block-paragraph">시기에 따라 후원 세력과 계약 구조, 지휘 관계가 다르게 설명됐기 때문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에스파뇰라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는 것이 안전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8220;<strong>러시아의 축구 훌리건과 극우 민족주의 인원을 중심으로 구성돼 러시아 국가기관과 연계된 형태로 활동한 준군사조직</strong>&#8220;</p>



<h3 class="wp-block-heading">선전과 모집 활동</h3>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는 축구 팬 문화의 이미지와 상징을 병력 모집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조직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음과 같은 요소를 강조했다.</p>



<ul class="wp-block-list">
<li>축구 구단과 팬 조직의 정체성</li>



<li>전우애와 남성성</li>



<li>러시아 민족주의</li>



<li>군사훈련과 전투 장면</li>



<li>드론과 저격 등 전문 분야</li>



<li>훌리건 출신 인원의 단결</li>
</ul>



<p class="wp-block-paragraph">여성 대원을 모집해 드론과 저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홍보하기도 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각에서는 전쟁에 참전한 남성들의 부인이거나 연인들이 상당수 자원했다는 주장이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여성 부대의 실제 규모와 전선 배치, 개별 전과는 독립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rykiqls-6uj3p3"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에스파뇰라-패치.webp" alt="" class="wp-image-313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에스파뇰라-패치.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에스파뇰라-패치-300x200.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4/에스파뇰라-패치-768x512.webp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에스파뇰라는 2025년 해체·재편됐다</h2>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를 2026년 현재 기존 형태로 활동하는 부대라고 설명해서는 안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에스파뇰라는 2025년 10월 기존 조직의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같은 해 12월에는 조직이 더 이상 통합된 단일 전투부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해상·의료 부대와 정찰조직, 일부 공격부대는 별도의 조직으로 재편되거나 러시아 국방·치안 체계의 다른 구조로 이동한 것으로 보도됐다.</p>



<h3 class="wp-block-heading">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의 사망</h3>



<p class="wp-block-paragraph">오를로프는 2025년 12월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세바스토폴에서 사망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 독립매체 보도에 따르면 그는 자택에서 총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망 경위와 배후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에스파뇰라는 이후 그의 장례 일정을 공식 채널을 통해 발표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에스파뇰라의 현재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p>



<ul class="wp-block-list">
<li>기존 에스파뇰라 부대는 2025년 해체·재편</li>



<li>일부 인원과 하위 조직은 다른 편제로 이동</li>



<li>창설자 오를로프는 2025년 12월 사망</li>



<li>정확한 해체 배경과 후속 조직의 지휘 구조는 충분히 공개되지 않음</li>
</ul>



<h2 class="wp-block-heading">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실제로 맞붙었나</h2>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각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측에서 전쟁에 참여한 축구 하위문화 기반 조직이라는 점 때문에 자주 비교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양측 모두 마리우폴과 돈바스 지역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두 조직이 지속적으로 직접 교전했다거나 ‘훌리건 대 훌리건’의 전투가 반복됐다고 단정할 수 있는 공개 자료는 부족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개별 전투 지역이 겹쳤다고 해서 특정 부대끼리 직접 맞붙었다는 의미는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따라서 두 조직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8220;아조우와 에스파뇰라는 서로 반대편에서 전쟁에 참여한 축구 하위문화 기반 조직으로 비교됐지만, 양측이 반복적으로 직접 교전했다는 주장은 구체적인 전투 기록을 통해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8221;</strong></p>



<h2 class="wp-block-heading">전쟁은 훌리건을 영웅으로 바꿨는가</h2>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에서 일부 울트라스와 훌리건 구성원이 군 복무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이전과 다른 사회적 평가를 받은 것은 사실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에서 사망한 팬은 구단과 지역사회에서 추모됐고, 생존한 참전자는 국가 방어에 기여한 군인으로 존중받기도 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하지만 이를 다음과 같이 단정해서는 안 된다.</p>



<ul class="wp-block-list">
<li>과거의 폭력 문제가 완전히 사라졌다.</li>



<li>훌리건 전체가 국민적 영웅이 됐다.</li>



<li>폭력적 팬 문화가 애국심으로 정화됐다.</li>



<li>전쟁 참여가 기존의 극우성과 범죄를 모두 정당화한다.</li>
</ul>



<p class="wp-block-paragraph">군 복무와 민간 지원은 평가할 수 있지만, 과거의 폭력과 극우 정치, 차별적 이념은 별개의 문제로 검토해야 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한 개인이 국가 방어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과거 극우 활동에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p>



<h2 class="wp-block-heading">국가가 축구 하위문화를 이용하는 방법</h2>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에서 축구 팬 조직은 국가와 군사조직에 유용한 동원 기반이 될 수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 팬 조직은 이미 다음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p>



<ul class="wp-block-list">
<li>젊고 신체적으로 활동적인 인원</li>



<li>지역별 네트워크</li>



<li>강한 집단 정체성</li>



<li>이동과 원정 경험</li>



<li>조직 지도부</li>



<li>홍보 채널과 상징</li>



<li>라이벌과 적을 구분하는 문화</li>



<li>위험을 감수하는 명예 규범</li>
</ul>



<p class="wp-block-paragraph">국가는 이러한 구조를 군사 모집, 선전, 모금과 사회적 결속에 활용할 수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반대로 팬 조직은 전쟁 참여를 통해 다음을 얻을 수 있다.</p>



<ul class="wp-block-list">
<li>합법적인 무장과 훈련</li>



<li>사회적 인정</li>



<li>정치적 영향력</li>



<li>조직의 지위 상승</li>



<li>국가기관과의 관계</li>



<li>새로운 인적·경제적 자원</li>
</ul>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상호관계는 위험성도 갖는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이 끝난 뒤 무장 경험과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조직이 민간사회로 복귀할 때, 기존의 폭력적 문화가 정치와 사회 갈등에 전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p>



<h2 class="wp-block-heading">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례의 공통점과 차이</h2>



<h3 class="wp-block-heading">공통점</h3>



<p class="wp-block-paragraph">양국의 사례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p>



<ul class="wp-block-list">
<li>라이벌 구단 팬들이 국가적·정치적 목표 아래 협력했다.</li>



<li>축구장에서 형성된 네트워크가 전쟁 동원에 활용됐다.</li>



<li>강한 민족주의가 중요한 결합 요소로 작용했다.</li>



<li>훌리건 문화의 남성성과 전투성이 군사 선전에 사용됐다.</li>



<li>팬 조직의 상징과 명칭이 부대 정체성에 반영됐다.</li>
</ul>



<h3 class="wp-block-heading">차이</h3>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조직의 형성과 국가와의 관계는 동일하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에서는 2014년 국가의 군사력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양한 자원부대가 만들어졌고, 일부는 이후 국가방위군과 정규 군사체계에 편입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의 에스파뇰라는 이미 대규모 정규군을 보유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훌리건과 극우 네트워크를 별도의 준군사조직으로 모집하고 활용한 사례에 가깝다.</p>



<p class="wp-block-paragraph">RVC는 또 다른 유형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인 극우 활동가들이 자국 정부에 반대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지원을 받아 러시아 영토를 공격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군이나 에스파뇰라와도 다른 위치를 가진다.</p>



<h2 class="wp-block-heading">러시아의 침공 책임과 조직 분석은 구분해야 한다</h2>



<p class="wp-block-paragraph">이 콘텐츠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의 극우·훌리건 조직을 함께 다룬다고 해서 전쟁의 책임이 대칭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면서 현재의 대규모 전쟁이 시작됐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러시아의 침공 책임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것과 우크라이나 측 무장조직의 역사와 극우 논란을 검증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전쟁 연구와 축구 하위문화 분석에서는 다음 두 원칙이 함께 유지돼야 한다.</p>



<ol class="wp-block-list">
<li>침략과 방어의 법적·정치적 차이를 혼동하지 않는다.</li>



<li>어느 편에 속했는지와 무관하게 모든 조직의 역사와 이념, 폭력성을 같은 기준으로 검증한다.</li>
</ol>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 측 조직을 무조건 영웅화하거나 러시아 측 조직을 근거 없이 악마화하는 방식은 정확한 분석을 방해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각 조직의 실제 행위와 지휘 구조, 정치적 성향, 검증 가능한 기록을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p>



<h2 class="wp-block-heading">축구장의 전쟁은 실제 전쟁으로 이동했는가</h2>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축구 팬 문화를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바꾸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우크라이나에서는 라이벌 울트라스들이 국가적 위기 속에서 충돌을 줄이고 공동 행동에 나섰다. 일부 팬은 군에 입대했고, 다른 팬은 보급과 모금, 피란민 지원을 담당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의 초기 역사에는 축구 울트라스와 극우 민족주의 조직이 함께 존재했다. 이후 아조우는 국가방위군의 정규 편제로 확대됐지만, 초기 극우성과 현재 조직 사이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 측에서는 훌리건을 기반으로 한 에스파뇰라가 만들어졌지만, 이 조직은 2025년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다. 창설자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도 같은 해 사망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러시아의 극우 훌리건 출신인 데니스 카푸스틴은 반대로 우크라이나 측에서 RVC를 지휘하며 러시아 정부에 맞서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사례들은 축구 하위문화가 하나의 고정된 정치 성향을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



<p class="wp-block-paragraph">훌리건과 울트라스의 조직력은 국가 방어와 민간 지원에 활용될 수 있다. 동시에 극우 이념, 정치적 폭력과 국가의 군사 선전에 동원될 수도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결국 전쟁이 바꾼 것은 축구 팬들의 열정 자체가 아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경기장에서 형성된 충성, 명예, 집단 정체성과 폭력의 규범이 더 이상 경기장 안에 머물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video is-provider-youtube wp-block-embed-youtube wp-embed-aspect-16-9 wp-has-aspect-ratio"><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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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자주 묻는 질문</h2>



<h3 class="wp-block-heading">우크라이나의 라이벌 축구 팬들은 실제로 휴전했나?</h3>



<p class="wp-block-paragraph">2013~2014년 유로마이단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 전후로 여러 우크라이나 라이벌 울트라스 및 훌리건 그룹이 충돌을 중단하고 공동 행진과 친우크라이나 활동에 참여했다. 다만 모든 조직이 한 장소에서 하나의 공식 협정에 서명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p>



<h3 class="wp-block-heading">우크라이나에서는 공습경보 중에도 축구 경기가 계속되나?</h3>



<p class="wp-block-paragraph">아니다. 공습경보가 발생하면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와 관중은 방공시설로 대피한다. 경보가 장시간 계속되면 경기 재개가 지연되거나 일정이 변경될 수 있다.</p>



<h3 class="wp-block-heading">아조우는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훌리건이 만든 부대인가?</h3>



<p class="wp-block-paragraph">Sect 82 등 메탈리스트 하르키우 울트라스 출신이 아조우 초기 구성에 참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조우는 축구 팬뿐 아니라 여러 극우 민족주의 활동가와 자원병이 함께 만든 조직이므로 Sect 82의 단독 후신으로 볼 수 없다.</p>



<h3 class="wp-block-heading">현재 아조우는 네오나치 조직인가?</h3>



<p class="wp-block-paragraph">아조우의 초기 구성원 일부와 창설 지도부가 극우·네오나치 성향과 연결된 것은 확인된다. 이후 국가방위군 편입과 병력 확대를 통해 조직 구성이 변화했지만, 초기 극우 운동과의 인적·상징적 연계가 완전히 해소됐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p>



<h3 class="wp-block-heading">러시아 자원군단은 우크라이나군 소속인가?</h3>



<p class="wp-block-paragraph">RVC는 우크라이나를 거점으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 측의 정보·물류·탄약 및 의료 후송 지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 정규군과의 정확한 지휘 관계는 공개적으로 명확하지 않다.</p>



<h3 class="wp-block-heading">러시아 훌리건 부대 에스파뇰라는 현재도 활동하나?</h3>



<p class="wp-block-paragraph">기존 에스파뇰라 조직은 2025년 10월 해체와 재편을 발표했고, 같은 해 12월 단일 전투부대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부 인력과 하위 조직은 다른 러시아 군사·치안 조직으로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p>



<p class="wp-block-paragraph">참고 자료 :<br>Associated Press, 전시 체제 아래 우크라이나 리그와 라이벌 팬 연대에 관한 보도<br>The Guardian, 2014년 우크라이나 라이벌 울트라스의 공동 행동 관련 보도<br>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제1군단 아조우 공식 편제 자료<br>Reuters, 미국의 아조우 여단 리히법 심사 및 지원 제한 해제<br>Associated Press, 아조우의 극우 기원과 미국의 무기 지원<br>아조우 초기 구성과 Sect 82의 관계를 다룬 연구자료<br>Reuters, RVC의 러시아 접경 작전과 우크라이나 측 지원 관계<br>The Insider, 에스파뇰라 해체와 스타니슬라프 오를로프 사망<br>Ukrainska Pravda, 오를로프 사망 경위 관련 보도<br>에스파뇰라의 2025년 조직 재편 관련 공개자료</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ed%8f%b4%eb%9e%80%eb%93%9c-%eb%8c%80%ec%84%a0-%ec%86%8c%ec%8b%9d-%ed%9b%8c%eb%a6%ac%ea%b1%b4-%ec%b6%9c%ec%8b%a0-%eb%82%98%eb%b8%8c%eb%a1%9c%ec%b8%a0%ed%82%a4-%eb%8c%80%ed%86%b5%eb%a0%b9/">&lt;폴란드 대선 소식, 훌리건 출신 ‘나브로츠키’ 대통령 당선&gt; Click</a></strong></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wp-embed is-provider-barrabrava-365 wp-block-embed-barrabrava-365"><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blockquote class="wp-embedded-content" data-secret="0g8hT6bcRE"><a href="https://barrabrava365.com/%ed%8f%b4%eb%9e%80%eb%93%9c-%eb%8c%80%ec%84%a0-%ec%86%8c%ec%8b%9d-%ed%9b%8c%eb%a6%ac%ea%b1%b4-%ec%b6%9c%ec%8b%a0-%eb%82%98%eb%b8%8c%eb%a1%9c%ec%b8%a0%ed%82%a4-%eb%8c%80%ed%86%b5%eb%a0%b9/">폴란드 대선 소식, 훌리건 출신 &#8216;나브로츠키&#8217; 대통령 당선</a></blockquote><iframe loading="lazy" class="wp-embedded-content" sandbox="allow-scripts" security="restricted"  title="&#8220;폴란드 대선 소식, 훌리건 출신 &#8216;나브로츠키&#8217; 대통령 당선&#8221; &#8212; barrabrava365" src="https://barrabrava365.com/%ed%8f%b4%eb%9e%80%eb%93%9c-%eb%8c%80%ec%84%a0-%ec%86%8c%ec%8b%9d-%ed%9b%8c%eb%a6%ac%ea%b1%b4-%ec%b6%9c%ec%8b%a0-%eb%82%98%eb%b8%8c%eb%a1%9c%ec%b8%a0%ed%82%a4-%eb%8c%80%ed%86%b5%eb%a0%b9/embed/#?secret=CfwQJJMYwL#?secret=0g8hT6bcRE" data-secret="0g8hT6bcRE" width="600" height="338"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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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런던과 로마의 위험한 우정 : 웨스트햄 ICF &#038; 라치오 이리두치빌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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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Tue, 31 Mar 2026 09:24:29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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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영국 런던의 웨스트햄을 상징하는 &#8216;인터 시티 펌(ICF·Inter City Firm)&#8217;과 이탈리아 로마의 라치오를 상징하는 &#8216;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8217; 사이의 유대 관계는 유럽 울트라스 문화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8216;형제적 관계&#8217; 중 하나이다. 서로의 국가도, 응원하는 팀도, 스타일도 달랐던 그들. 이 유대 관계는 단순한 팬들 간의 교류를 넘어, 두 그룹이 공유하는 정치적 성향과 서포터 철학이 맞물려 형성된 특별한 우정이다. 인터 시티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영국 런던의 웨스트햄을 상징하는 &#8216;인터 시티 펌(ICF·Inter City Firm)&#8217;과 이탈리아 로마의 라치오를 상징하는 &#8216;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8217; 사이의 유대 관계는 유럽 울트라스 문화 내에서도 매우 유명한 &#8216;형제적 관계&#8217; 중 하나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서로의 국가도, 응원하는 팀도, 스타일도 달랐던 그들. 이 유대 관계는 단순한 팬들 간의 교류를 넘어, 두 그룹이 공유하는 정치적 성향과 서포터 철학이 맞물려 형성된 특별한 우정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cjt1-tx2ui8"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40" height="48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IRRIDUCIBILI.jpg" alt="" class="wp-image-269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IRRIDUCIBILI.jpg 6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IRRIDUCIBILI-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인터 시티 펌 &amp; 이리두치빌리 : 제멜라조의 핵심 배경</h2>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그룹의 연결 고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웨스트햄 ICF의 전설적인 멤버이자 작가이기도 한 &#8216;카스 페넌트(Cass Pennant)&#8217;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그룹 모두 우익 성향이 강한 서포터즈로 분류되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카스 페넌트는 흑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우정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8216;안티 에스타블리시먼트&#8217;, 즉 &#8216;기득권 반대&#8217; 정서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페넌트는 영국을 넘어 유럽에서 인정받는 거물급 훌리건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교류의 시작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유럽 대항전이나 양측 멤버들 사이의 개인적인 방문을 통해 교류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라치오의 이리두치빌리는 영국의 &#8216;캐주얼(Casuals)&#8217;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이때 ICF가 그들의 롤모델 역할을 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d4lr-13huck"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77" height="43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di-canio-cass.jpg" alt="" class="wp-image-269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di-canio-cass.jpg 577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di-canio-cass-300x226.jpg 300w" sizes="auto, (max-width: 577px) 100vw, 577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거기에 양 팀 모두에서 뛰었던 &#8216;파올로 디 카니오(Paolo Di Canio)&#8217;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디 카니오는 이리두치빌리의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정서적으로 스스로를 이리두치빌리의 일원이자 울트라스라고 생각했던 인물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웨스트햄 현역 시절 ICF와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이 우정의 &#8216;살아있는 상징&#8217; 역할을 했고, 그가 웨스트햄에서 활약할 때 이리두치빌리는 물론 일반 라치오 팬들도 런던을 방문해 응원하는 일이 잦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라치오의 홈 경기장인 스타디오 올림피코의 꾸르바에는 종종 &#8216;ICF&#8217;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나 웨스트햄의 상징인 &#8216;해머(Hammers)&#8217; 문양이 등장한다. 반대로 웨스트햄 경기장에서도 라치오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을 볼 수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그룹은 서로의 로고가 합쳐진 스카프나 티셔츠를 제작해 입기도 하며, 이는 유럽 울트라스들 사이에서 매우 깊은 유대감을 뜻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p>



<h2 class="wp-block-heading">CN SSL &amp; ICF WEST HAM 그리고 파올로 디 카니오</h2>



<p class="wp-block-paragraph">&#8216;파올로 디 카니오(Paolo Di Canio)&#8217;는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글랜드의 울트라 스타일(Ultra style)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라치오의 티포시(Tifosi)들이 이탈리아에 잉글랜드 스타일을 가장 먼저 도입했습니다. 원래 &#8216;이글스(Eagles)&#8217;가 이 방식을 정립했고, 이후 &#8216;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8217;가 이를 이어받아 재정의했죠. &#8216;폴 개스코인(Paul Gascoigne)&#8217;이 라치오에 왔을 때 잉글랜드 스타일이 더욱 강조되긴 했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이 스타일은 그가 오기 전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저는 팀을 응원하는 잉글랜드의 방식을 깊이 존경합니다. 그들이 경기장에서 만들어내는 분위기, 찬트(응원가)의 어조와 리듬은 제게 있어 세계 최고입니다. 물론 이탈리아 울트라들이 찬트의 창의성과 다양성 면에서는 더 뛰어날지 모르지만, 잉글랜드 팬들이 뿜어내는 그 특유의 강렬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e9pp-eyv9p4"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40" height="481"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di-canio-shirt-1.jpg" alt="" class="wp-image-269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di-canio-shirt-1.jpg 6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di-canio-shirt-1-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웨스트햄에 대해 이야기해 보죠.</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이적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웨스트햄에서 저는 주장이자 아이돌이었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웨스트햄의 팬들은 노동계층이며, 승리에 굶주려 있습니다. 비록 우승을 많이 해본 팀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이 팀은 사회적인 가치를 지닙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8216;해머스(Hammers, 웨스트햄의 별칭)&#8217;는 70년대와 80년대부터 잉글랜드에서 가장 열기 넘치는 팬층 중 하나였으며, 특히 &#8216;인터 시티 펌(ICF)&#8217;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인터시티 열차를 타고 경기를 보러 다니곤 했죠. 관중석에서 팬들은 저를 위한 찬트를 불러주었는데, 특히 베르디 오페라의 선율을 딴 곡이 기억에 남습니다. &#8220;파올로 디 카니오, 파올로 디 카니오!&#8221;</p>



<p class="wp-block-paragraph">&#8216;업튼 파크(Upton Park)&#8217;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는 메인 스탠드와 웨스트 이스트 엔드 구역 사이의 코너 쪽이었습니다. 그곳이 경기장에서 가장 뜨거운 구역이었고, 저는 골을 넣을 때마다 팬들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가 세리머니를 하곤 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의류 스타일에 대하여.</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저는 너무 정형화되거나 최신 유행만을 쫓기보다는 자유롭게 입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현재 무엇이 유행하는지에 대해서는 늘 관심을 두려 노력합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eswf-cnlzm5"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20" height="5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ammers.jpg" alt="" class="wp-image-269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ammers.jpg 72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ammers-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720px) 100vw, 72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에 대하여.</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나는 &#8216;꾸르바 노르드(Curva Nord)&#8217;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8216;디아볼릭(Diabolik)&#8217;, &#8216;유리(Yuri)&#8217;, &#8216;게포(Geppo)&#8217; 같은 친구들을 잘 알고 지냈습니다. 이리두치빌리는 지난 수십 년간 라치오에서 가장 상징적인 그룹 중 하나였습니다. 나는 공식적으로 그들의 크루에 속하지는 않았고 독립적으로 남기를 선호했지만, 그들의 정신세계와는 항상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짧은 기간 동안 &#8216;이글스(Eagles)&#8217;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이글스 시대에는 &#8216;조벤투 비안카주라(Gioventù Biancazzurra)&#8217;, &#8216;바이킹(Viking)&#8217;, &#8216;비질란테스(Vigilantes)&#8217; 같은 다른 그룹들도 존재했습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글스가 좀 더 대중 기반의 그룹이었다면, 이리두치빌리는 원래 소수 정예 크루로 시작되어 새롭고 독창적인 정신을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이후 그들은 꾸르바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운동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퍼포먼스 측면에서 라치오 팬들은 항상 모델로 여겨졌습니다. 이글스가 선보였던 그 유명한 &#8220;라치오 넬 쿠오레(Lazio nel cuore, 마음속의 라치오)&#8221; 카드 섹션을 떠올려 보세요.</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g1ux-xdofo2"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480" height="36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jpg" alt="" class="wp-image-269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jpg 48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paolo-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480px) 100vw, 48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디 카니오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다.</h2>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불과 14살 때부터 라치오를 응원하기 위해 꾸르바 노르드에 나가기 시작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울트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팀을 응원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천성적으로 그는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표현력이 풍부한 사람이었고, 그것이 울트라들이 그를 사랑하는 이유다. 그가 현역 선수로 뛰고 있을 때도 울트라들은 종종 그를 자신들의 모임에 초대하곤 했다. 파올로는 축구계 밖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아주 많은 것을 알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리두치빌리는 디 카니오를 단순한 스타 플레이어가 아니라 &#8216;우리 중 한 명(One of us)&#8217;으로 대우했다. 그가 골을 넣고 관중석으로 달려가 경례를 하거나, 그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발언을 할 때마다 결속력은 더욱 강해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디 카니오의 영향력은 런던까지 이어졌다. 그는 ICF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8216;충성심&#8217; 그리고 &#8216;쇼맨쉽&#8217;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다. ICF의 핵심 멤버들은 디 카니오를 위한 응원가를 만들었고, 그가 골을 넣으면 경기장 근처 펍에서 &#8220;라치오에서 온 우리 형제&#8221;라는 찬사를 보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런 연관성으로, ICF는 이탈리아 울트라스의 화려한 티포와 조직력을 배웠고, 이리두치빌리는 영국의 &#8216;캐주얼 패션&#8217;과 &#8216;테라스 문화&#8217;를 흡수했다. 그 중심에는 두 그룹 모두로부터 &#8216;패밀리&#8217;로 인정받는 유일한 인물, 디 카니오가 있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g91s-10pw1l"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40" height="48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ooligan-ultras-friendship.jpg" alt="" class="wp-image-269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ooligan-ultras-friendship.jpg 6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hooligan-ultras-friendship-300x226.jpg 30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카스 펜넌트의 인터뷰</h2>



<p class="wp-block-paragraph">ICF의 리더 카스 페넌트는 자신의 유튜브나 인터뷰에서 라치오 울트라스와의 관계에 대해 종종 언급한다. 그는 이리두치빌리를 향해 &#8220;유럽에서 우리와 가장 닮은 이들은 로마의 라치오 팬들이다&#8221;라고 말하기도 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두 그룹은 공식적인 경기 일정이 없어도 서로의 도시를 방문해 동맹으로서 역할을 한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웨스트햄의 ICF 핵심 멤버들이 스타디오 올림피코의 꾸르바에서 이리두치빌리와 서로의 스카프를 교환하며 경기를 관람한 기록이 많다.</p>



<p class="wp-block-paragraph">라치오의 팬들은 영국 훌리건의 &#8216;터프함&#8217;과 &#8216;캐주얼 패션&#8217;을 동경했고, 웨스트햄의 팬들은 이탈리아 울트라스의 조직적인 &#8216;티포&#8217;와 &#8216;대규모 화력&#8217;을 높게 평가하며 서로를 &#8220;유럽에서 가장 진실된 그룹&#8221;으로 인정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특히 두 그룹은 사회 시스템과 공권력에 저항하는 &#8216;우익 성향의 저항 의식&#8217;을 공유하며 결속했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나 구단의 상업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때, 두 그룹은 서로의 구호를 인용하거나 지지 성명을 내기도 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nlvmu-blj41z"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6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lazio-1024x768.webp" alt="" class="wp-image-270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lazio-1024x768.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lazio-300x225.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lazio-768x576.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lazio.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gh4g-vbaoj4"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34" height="70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irriducibili.jpg" alt="" class="wp-image-269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irriducibili.jpg 93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irriducibili-300x225.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irriducibili-768x577.jpg 768w" sizes="auto, (max-width: 934px) 100vw, 93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eegvuu-bsg7t6"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40" height="48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ss-lazio-west-ham.jpg" alt="" class="wp-image-269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ss-lazio-west-ham.jpg 6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ss-lazio-west-ham-300x226.jpg 300w" sizes="auto, (max-width: 640px) 100vw, 64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참고 자료 :<br>&lt;Interview &#8211; Cass Pennant, Lazio Irriducibili connection&gt;<br>&lt;The Guardian &#8211; &#8220;The Extremists&#8221;&gt;<br>&lt;The Real Football Factories&gt;<br>&lt;Ultras-Tifo.net Forum&gt;</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ss-%eb%9d%bc%ec%b9%98%ec%98%a4-%ec%9a%b8%ed%8a%b8%eb%9d%bc%ec%8a%a4-irriducibili-%ec%9d%b4%ec%95%bc%ea%b8%b0/">&lt;SS 라치오 울트라스 Irriducibili 이야기&gt; Click</a></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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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웨스트햄 훌리건 Inter City Firm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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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Mon, 30 Mar 2026 14:52:11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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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ICF)&#8217;은 잉글랜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훌리건 그룹이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영국,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그 시절 축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관람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노동 계급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전장이었고, 그 중심에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8216;인터 시티 펌&#8217;이 있었다. 이 그룹은 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룹의 이름은 원정 경기를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8216;인터 시티 펌(Inter City Firm·ICF)&#8217;은 잉글랜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훌리건 그룹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47sq-dgt8o9"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860" height="48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west-ham.jpeg" alt="" class="wp-image-266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west-ham.jpeg 86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west-ham-300x168.jpe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nter-city-firm-west-ham-768x431.jpeg 768w" sizes="auto, (max-width: 860px) 100vw, 86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영국,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그 시절 축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관람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노동 계급 청년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전장이었고, 그 중심에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8216;인터 시티 펌&#8217;이 있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그룹은 주로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룹의 이름은 원정 경기를 위해 이동할 때 &#8216;Inter City&#8217; 열차를 자주 이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1985년 템스 텔레비전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8216;훌리건(Hooligan)&#8217;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p>



<h2 class="wp-block-heading">대처주의와 실업, 그리고 분노의 배출구</h2>



<p class="wp-block-paragraph">ICF가 결성된 1970년대 후반, 영국은 마거릿 대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산업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다. 웨스트햄의 기반인 동부 런던의 부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고, 희망을 잃은 청년들에게 축구는 유일한 정체성이자 &#8216;전쟁&#8217;이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에게 &#8216;우리 팀&#8217;을 지키는 것은 마치 무너져가는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한 사회적 혼란과 당시 젊은 세대에서 퍼져나간 다양한 하위문화가 결합되어 웨스트햄의 테라스에 혈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1970년대, 웨스트햄에는 &#8216;마일 엔드 보이즈(Mile End Boys)&#8217;, &#8216;에섹스 이스트 런던 펌(Essex East London Firm)&#8217;을 비롯한 여러 캐주얼 &amp; 훌리건 그룹들이 있었다. 이 그룹들이 하나 둘 모여 만든 것이 바로 1977/78시즌 결성된 &#8216;ICF&#8217;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6113-ack0y3"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20" height="5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west-ham-icf-inter.jpg" alt="" class="wp-image-266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west-ham-icf-inter.jpg 72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west-ham-icf-inter-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720px) 100vw, 72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인터 시티 펌과 캐주얼 패션 </h2>



<p class="wp-block-paragraph">흔히 훌리건이라고 하면 가죽 자켓에 닥터마틴 부츠를 신은 스킨헤드를 떠올리지만, 당시 ICF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그것은 바로 현대 축구 팬 패션의 시초인 &#8216;캐주얼(Casuals)&#8217; 문화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캐주얼이 인터 시티 펌의 독자적인 문화는 아니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 영국 전역의 축구장에서 볼 수 있었던 패션이자 문화의 한 형태였고, 캐주얼 안에서도 지역별로 추구하는 브랜드 또는 스타일이 저마다 달랐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당시 영국의 젊은 축구 훌리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명품 브랜드 옷을 입곤 했다. 80년대 초, 경찰은 전형적인 훌리건 복장을 한 이들을 집중 단속했다. ICF는 이를 피하기 위해 팀 유니폼이나 스카프를 버리고, 당시 테니스 선수들이 입던 &#8216;세르지오 타키니(Sergio Tacchini)&#8217;, &#8216;필라(Fila)&#8217;, &#8216;프레드 페리(Fred Perry)&#8217;를 입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어느 순간 고가의 이탈리아/프랑스 디자이너 브랜드를 착용하고 축구장에 오는 것은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이 같은 유행은 당시 유럽 토너먼트에서 활약한 영국 팀들이 많아지면서, 팬들이 원정 응원에 참여해 현지 패션 브랜드의 옷을 더 쉽게 쇼핑할 수 있게 되면서 확산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캐주얼은 단순히 갖춰 입는 것은 떠나, &#8220;우리는 너희(경찰)보다 잘 입고, 너희 보다 영리해&#8221;라는 뉘앙스가 있었다. 또한 원정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상대 팀보다 더 비싸고 귀한 옷을 입는 것이 훌리건들 사이의 새로운 경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 경쟁은 같은 클럽, 그룹의 멤버들 사이에서도 생겨났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737h-5udu74"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3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uals-west-ham-1024x734.webp" alt="" class="wp-image-267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uals-west-ham-1024x734.webp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uals-west-ham-300x215.webp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uals-west-ham-768x550.webp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uals-west-ham.webp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전설적인 인물들 : 카스 페넌트와 빌 가드너</h2>



<p class="wp-block-paragraph">ICF와 관련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은 &#8216;카스 페넌트(Cass Pennant)&#8217;이다. 그는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축구 훌리건주의에 관한 글을 썼다. 흑인으로서, 런던 시민으로 살아가던 페넌트는 자신의 저서 &lt;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gt;에서 ICF가 인종차별적이거나 우익 성향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8216;마일 엔드 보이즈&#8217;의 멤버였던 &#8216;빌 가드너(Bill Gardner)&#8217;는 이 책의 초판 표지에 등장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9iy6-c7ko7y"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50" height="5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pennant.jpeg" alt="" class="wp-image-267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pennant.jpeg 75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ass-pennant-300x200.jpeg 300w" sizes="auto, (max-width: 750px) 100vw, 75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8216;카스 페넌트(Cass Pennant)&#8217;는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백인 위주의 ICF 리더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훌리건 그룹의 리더로 활동하며 4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기도 했다. 그리고 출소 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저서를 통해 훌리건 문화를 세상에 알렸다.</p>



<p class="wp-block-paragraph">&#8216;빌 가드너(Bill Gardner)&#8217;는 ICF의 &#8216;제너럴(General)&#8217;로 불리며 가장 두려운 파이터로 꼽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 당시 상대 훌리건이 던진 뜨거운 보브릴을 맞고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적진으로 돌격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훗날 &#8220;우리는 단순한 폭도가 아니라, 우정과 신뢰로 뭉친 형제였다&#8221;라고 회상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bese-ulctak"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60" height="10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ill-Gardner.jpg" alt="" class="wp-image-267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ill-Gardner.jpg 66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ill-Gardner-198x300.jpg 198w" sizes="auto, (max-width: 660px) 100vw, 66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영화 &#8216;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Rise of the Footsoldier)&#8217;의 주인공인 &#8216;칼튼 리치(Carlton Leach)&#8217; 또한 이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 그를 포함해 &#8216;팻 테이트(Pat Tate)&#8217;, &#8216;토니 터커(Tony Tucker)&#8217;, &#8216;크레이그 롤프(Craig Rolfe)&#8217;는 이후 런던과 에섹스의 범죄 지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d7m96-b5bscm"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1024x1024.jpeg" alt="" class="wp-image-268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1024x1024.jpe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300x300.jpe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150x150.jpeg 15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768x768.jpe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1536x1536.jpe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MG_9754.jpeg 18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은 축구 싸움의 위험에서 벗어나 마약 판매와 마약상 갈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테이트, 터커, 롤프는 에섹스에서 발생한 &#8216;레텐던 살인 사건(Rettendon murders)&#8217;을 통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p>



<h2 class="wp-block-heading">유명한 사건 사고</h2>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1978년 업튼 파크 충돌 사건</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ICF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1978년 업튼 파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밀월과의 충돌이다. 양측 집단이 경기 전부터 서로를 도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스타디움 주변 거리 등지는 난투극의 장이 되었으며, 팬들은 맨주먹과 급조한 무기를 들고 싸웠다. 경찰은 상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으며,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1982년 하이버리의 난</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ICF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 중 하나는 1982년 5월 1일, 아스널과의 런던 더비에서 발생했다. ICF는 아스널의 상징적인 테라스 구역인 &#8216;노스 뱅크(North Bank)&#8217;를 점령하기 위해 경기 시작 전부터 치밀하게 잠입했다. 그곳은 아스널 훌리건들이 모이던 장소였다.</p>



<p class="wp-block-paragraph">오렌지색 연막탄이 터지며 경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관중석 내부에서 처절한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경기장 밖으로까지 번져 아스널 팬 한 명이 목숨을 잃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이 사건 이후 영국 축구계는 관중석 분리 및 보안 강화라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198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충돌 사건</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ICF의 가장 기억에 남는 충돌 중 하나는 &#8216;레드 아미(Red Army)&#8217;로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과의 대결이다. 1985년 3월 9일, ICF 조직원들은 경찰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런던의 한 기차역에서 매복 공격을 감행했다. 치열한 난투극 끝에 수십 명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이 사건은 전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ICF는 잘 조직된 행동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이들은 종종 철도망을 이용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며 신속하게 이동하곤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c40m-qlrw1a"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423" height="64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west-ham.jpg" alt="" class="wp-image-267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west-ham.jpg 42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icf-west-ham-196x300.jpg 196w" sizes="auto, (max-width: 423px) 100vw, 423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h2>



<p class="wp-block-paragraph">ICF는 타팀의 훌리건과 싸워 이긴 후, 명함을 쓰러진 상대방 몸 위나, 습격한 관중석과 거리 곳곳에 남기는 방식을 개척했다. 그 명함에는 &#8220;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8221;라고 적혀 있었다. 이러한 명함을 남기는 행위는 이후 다른 축구 클럽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게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카스 페넌트는 명함을 남기는 행위에 대해 &#8216;훌리건 간의 서열&#8217;을 정리하는 도구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다른 구단의 훌리건들은 단순히 소리를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수준이었지만, ICF가 명함을 사용함으로써 자신들이 진짜 &#8216;펌(Firm)&#8217;임을 과시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이 명함 덕분에서 ICF가 영국 전역에서 &#8220;가장 세련되면서도 가장 위험한 그룹&#8221;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이 방식은 첼시의 &#8216;헤드헌터스&#8217; 등 다른 그룹들이 벤치마킹하는 시초가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때로는 경찰을 조롱하는 용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경찰이 훌리건 단속을 위해 잠복근무를 할 때, ICF 멤버들은 경찰의 차량 와이퍼에 이 명함을 끼워 두거나 경찰서 근처에 뿌리기도 했다. 이는 &#8220;너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8221;라는 의미였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d42u-b1iluc"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60" height="5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ongratulations-You-Have-Just-Met-the-ICF.jpg" alt="" class="wp-image-267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ongratulations-You-Have-Just-Met-the-ICF.jpg 96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ongratulations-You-Have-Just-Met-the-ICF-300x169.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Congratulations-You-Have-Just-Met-the-ICF-768x432.jpg 768w" sizes="auto, (max-width: 960px) 100vw, 960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모티브가 되다</h2>



<p class="wp-block-paragraph">웨스트햄의 훌리건 그룹 Inter City Firm은 종종 영화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마치 &#8216;앨런 클라크(Alan Clarke)&#8217;의 1988년 영화 &#8216;더 펌(The Firm)&#8217; 처럼. &#8216;게리 올드만(Gary Oldman)&#8217;은 &#8216;ICC(Inter City Crew)&#8217;의 리더인 &#8216;벡스 비셀(Bex Bissell)&#8217; 역을 맡았으며, ICF 단원들이 이 영화의 고문으로 참여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더 펌에서도 나온 ICF를 모델로 한 주인공들이 상대 진영을 초토화 시킨 뒤 명함을 남기는 장면은 훌리건 영화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영화는 2009년 리메이크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05년 영화 &#8216;그린 스트리트(Green Street)&#8217;와 그 후속작들 역시 ICF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작중에서는 &#8216;GSE(Green Street Elite)&#8217;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ICF는 &#8216;어빈 웰시(Irvine Welsh)&#8217;의 소설 &#8216;엑스터시(Ecstasy : Three Tales of Chemical Romance)&#8217;에도 등장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앞서 소개한 카스 페넌트의 자서전 &#8216;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8217;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며 하위문화의 바이블이 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eu7d-f06fwd"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2" height="28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the-firm-1.jpg" alt="" class="wp-image-267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the-firm-1.jpg 512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the-firm-1-300x169.jpg 300w" sizes="auto, (max-width: 512px) 100vw, 512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인터 시티 펌의 라이벌들</h2>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밀월 : 부시워커스(Bushwackers)</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웨스트햄과 밀월의 라이벌 관계는 영국 축구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격렬한 관계 중 하나다. 이들의 적대 관계는 산업혁명 시기, 런던 동부 부두에서 일하던 두 노동자 집단이 서로 대립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그룹 간의 가장 유명한 충돌은 1989년 3월 13일 FA컵 8강전 당시 발생했다. 싸움은 경기장 밖에서 시작되었으며, 수백 명의 ICF와 부시워커스 팬들이 피비린내 나는 난투극을 벌였다. 당시 경찰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며, 많은 경찰관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첼시 : 헤드헌터스(Headhunters)</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웨스트햄과 첼시의 경기는 언제나 폭력으로 얼룩져 왔다. 첼시의 헤드헌터스 또한 런던에서 가장 잔인한 집단 중 하나로 명성이 자자하다. 1984년 워털루(Waterloo)역에서는 ICF와 헤드헌터스 사이에 대규모 패싸움이 벌어져 수십 명의 팬과 경찰이 부상을 입었다. 양측 간의 이 계획된 충돌은 첼시 측이 웨스트햄 팬들을 겨냥해 조직적인 공격을 준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발생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토트넘 : 이드 아미(Yid Army)</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웨스트햄과 토트넘 사이의 긴장 관계 또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76년 두 팀의 경기가 끝난 후, ICF 조직원들이 런던 동부에서 토트넘 팬들이 탄 버스를 공격했다. 이 사건은 대대적인 수사로 이어졌으며, ICF 지도부 중 일부가 체포되는 결과를 낳았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ndchtw2-1iqvcq"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19" height="5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95401455_1183709416886894_1162241450715538496_n.jpg" alt="" class="wp-image-267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95401455_1183709416886894_1162241450715538496_n.jpg 71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95401455_1183709416886894_1162241450715538496_n-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719px) 100vw, 71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1980년대 후반, ICF는 창립자인 &#8216;앤디 스왈로우(Andy Swallow)&#8217;를 통해 영국의 해적 방송국인 &#8216;센터포스(Centreforce)&#8217;와 정기적으로 연계되었다. 스왈로우 역시 한때 &#8216;에섹스 이스트 런던 펌&#8217;의 멤버였다.</p>



<p class="wp-block-paragraph">ICF는 2018년 전직 멤들이 &#8216;리얼 웨스트햄 팬 액션 그룹(Real West Ham Fans Action Group)&#8217;으로 재결집하여 구단 이사회에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하면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웨스트햄의 ICF는 폭력이라는 어두운 이면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영국 노동계급의 하위문화와 패션, 그리고 끈끈한 공동체 의식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긴 &#8220;축하한다, 너는 방금 ICF를 만났다&#8221;라는 명함은 오늘날에도 축구 팬 문화의 강렬했던 한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참고 자료 :<br>&lt;Inter City Firm &#8211; WIKIPEDIA&gt;<br>&lt;InterCity Days &#8211; INDEPENDENT&gt;<br>&lt;Millwall vs West Ham &#8211; England’s Most Violent Football Rivalry &#8211; YOUTUBE&gt;<br>&lt;Congratulations You Have Just Met the ICF (Cass Pennant 저)&gt;<br>&lt;Hooligan: Inter City Firm (Thames TV, 1985)&gt;</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lt;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캐주얼’ 패션의 짧은 역사&gt; Click</a></strong></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wp-embed is-provider-barrabrava-365 wp-block-embed-barrabrava-365"><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blockquote class="wp-embedded-content" data-secret="TfkLnot28g"><a href="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8216;캐주얼&#8217; 패션의 짧은 역사</a></blockquote><iframe loading="lazy" class="wp-embedded-content" sandbox="allow-scripts" security="restricted"  title="&#8220;세르지오 타키니부터 스톤 아일랜드까지, &#8216;캐주얼&#8217; 패션의 짧은 역사&#8221; &#8212; barrabrava365" src="https://barrabrava365.com/%ec%84%b8%eb%a5%b4%ec%a7%80%ec%98%a4-%ed%83%80%ed%82%a4%eb%8b%88%eb%b6%80%ed%84%b0-%ec%8a%a4%ed%86%a4-%ec%95%84%ec%9d%bc%eb%9e%9c%eb%93%9c%ea%b9%8c%ec%a7%80-%ec%ba%90%ec%a3%bc%ec%96%bc-%ed%8c%a8/embed/#?secret=vQk3Si3mNo#?secret=TfkLnot28g" data-secret="TfkLnot28g" width="600" height="338"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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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울트라스는 공권력과 싸우는가? 골대 뒤의 숫자 &#8216;1312&#8217;</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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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Fri, 20 Mar 2026 08:14:01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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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축구장 곳곳에 새겨진 기묘한 숫자. 전 세계 축구장의 골대 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의 거친 함성 사이로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8216;1312&#8217;이다. 이 숫자는 현수막에, 때로는 경기장 인근의 그래피티로, 심지어는 축구 서포터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지기도 한다. 이 네 자리 숫자는 유럽의 &#8216;울트라스(Ultras)&#8217;와 남미의 &#8216;바라브라바(Barra brava)&#8217;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물 중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축구장 곳곳에 새겨진 기묘한 숫자. 전 세계 축구장의 골대 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의 거친 함성 사이로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숫자가 있다. 그것은 바로 &#8216;1312&#8217;이다. 이 숫자는 현수막에, 때로는 경기장 인근의 그래피티로, 심지어는 축구 서포터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지기도 한다. 이 네 자리 숫자는 유럽의 &#8216;울트라스(Ultras)&#8217;와 남미의 &#8216;바라브라바(Barra brava)&#8217;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물 중 하나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ym86cw-1qyhog"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68" height="96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1.jpg" alt="" class="wp-image-260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1.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1-240x300.jpg 240w" sizes="auto, (max-width: 768px) 100vw, 768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단순히 경찰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일까, 아니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저항의 역사일까?</p>



<h2 class="wp-block-heading">1312 &amp; A·C·A·<strong>B</strong> : 암호화된 선전포고</h2>



<p class="wp-block-paragraph">알파벳 순서에 따라 숫자를 치환하면 답은 명확해진다. A(1), C(3), A(1), B(2). 이는 &#8216;All Cops Are Bastards(모든 경찰은 머저리다)&#8217;의 약어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문구의 기원은 1920년대 영국 노동자 계급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를 전 세계 축구 하위문화의 보편적 언어로 만든 것은 1970 ~ 80년대 유럽의 울트라스들이었다. 그들에게 이 숫자는 특정 경찰관 개인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이는 자신들의 자유로운 응원 문화를 탄압하고 감시하는 &#8216;국가 시스템과 공권력 전체&#8217;에 던지는 일종의 선전포고와도 같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ym3twd-t796bu"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94" height="55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acab-3.jpg" alt="" class="wp-image-260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acab-3.jpg 99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acab-3-300x168.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acab-3-768x431.jpg 768w" sizes="auto, (max-width: 994px) 100vw, 99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그렇다면 왜 그들은 공권력을 &#8216;공동의 적&#8217;으로 규정하는 걸까?</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8216;울트라스(Ultras)&#8217;에게 경기장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는 유일한 &#8216;성소&#8217;로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 축구가 거대 자본과 결탁하며 &#8216;상업화&#8217;되는 과정에서 경기장 안팎의 풍경은 바뀌었다.</p>



<ul class="wp-block-list">
<li><strong>과도한 감시 :</strong> 고성능 CCTV, 무분별한 소지품 검사, 이동 경로 제한</li>



<li><strong>문화의 박제화 :</strong> 홍염 사용 금지, 현수막 검열 등 울트라스 고유의 시각적 문화를 범죄화하는 시도</li>



<li><strong>차별적 법 진행 :</strong> 일반 관중보다 &#8216;꾸르바(Curva·서포터즈 구역)&#8217;에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공권력의 태도</li>
</ul>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압박 속에서 울트라스는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결속했고, &#8216;1312&#8217;라는 코드를 통해 &#8216;우리는 통제 당하지 않겠다&#8217;는 의지를 다지게 된 것이다.</p>



<h2 class="wp-block-heading">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A·C·A<strong>·</strong>B의 어원</h2>



<p class="wp-block-paragraph">이 문구의 시작은 축구장이 아닌 &#8216;영국의 거리와 감옥&#8217;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기원을 따지자면, 1920년대 영국 노동자 계층과 범죄 조직 사이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공권력과 대립하던 이들이 서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사용하던 은어였다. 그리고 1940년대 영국 교도소 수감자들이 벽에 이 문구를 낙서로 새기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 다음에는 대중 문화로 연결된다. 바로 1980년대 영국 펑크 록 밴드이 &#8216;4-Skins&#8217;가 &#8216;A.C.A.B.&#8217;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는 기성세대의 권위에 저항하는 당시의 청년 하위문화였던 스킨해드, 펑크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 잡은 계기가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월이 흘러 ACAB는 숫자로 치환한 형태로 변화했다. 이는 알파벳 순서에 따라 &#8216;A=1, C=3, A=1, B=2&#8217;를 조합한 것이다. 그 이유는 경기장 내 보안 요원이나 경찰이 &#8216;ACAB&#8217;라는 직설적인 문구를 검열하거나 현수막을 압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들은 이를 교묘히 피하기 위해 숫자 암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이제 검열 회피 목적을 넘어, 전 세계 울트라스 그리고 바라브라바, 훌리건 등 축구 팬들이 공유하는 일종의 &#8216;글로벌 코드&#8217;가 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ym62hg-c17fha"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1024x1024.jpg" alt="" class="wp-image-260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1024x1024.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300x3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150x150.jpg 15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768x768.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1536x1536.jp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4_skins_acab.jpg 19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축구장으로 전파된 1312</h2>



<p class="wp-block-paragraph">1970~80년대 영국 훌리건들이 펑크 문화와 결합하면서 처음 이 문구를 경기장에 가져왔다. 이후 이탈리아의 울트라스들이 이를 체계적인 &#8216;기존 체제 거부(Anti-Establishment)&#8217; 정신으로 승화시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당시 이탈리아 내에서는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남북 지역 간 격차와 정치 견해 차이는 각 구단을 응원하는 울트라스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운동과 시위가 펼쳐졌다. 이러한 혼란이 공권력과의 대립으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남미에도 영향을 줬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의 경우 군부 독재 시절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맞서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기억과 결합하여 축구 인차, 바라브라바 또한 공권력에 대항하기도 했고, 그런 상황에서 1312 상징은 공격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현재 와서는 특정 경찰에 대한 증오보다는 축구의 상업화와 팬들에 대한 과도한 통제를 일삼는 &#8216;시스템에 대한 저항&#8217;을 뜻하는 기호로 쓰인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ym6a77-oai4k4"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37" height="63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oys-1.png" alt="" class="wp-image-260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oys-1.png 637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oys-1-300x300.pn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boys-1-150x150.png 150w" sizes="auto, (max-width: 637px) 100vw, 637px" /></figure>



<h2 class="wp-block-heading">축구장 밖에서 증명된 &#8216;저항의 힘&#8217;</h2>



<p class="wp-block-paragraph">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저항 정신이 단지 축구장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관련 사례로 전 세계 곳곳의 정치적 격변 속에 영향력을 주었던 축구 팬들, 즉 울트라스의 모습들이 알려져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2011년 이집트 혁명</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타흐리르 광장에서 경찰의 무력 진압에 맞서 시민들을 최전방에서 방어한 주역은 바로 카이로의 울트라스들이었다. 경기장에서 단련된 그들의 조직력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힘이 되었고, 영감을 받은 대중들을 혁명의 무대로 나서게 만들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터키 게지 공원 시위</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라이벌 구단이 공권력에 대항해 뭉쳤던 사례이다. 터키의 세 명문 베식타시, 페네르바체, 갈라타사라이의 서포터즈들이 &#8216;1312&#8217;의 깃발 아래 연합하여 정부의 권위주의에 맞선 사례는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ym8fsy-yp0nh6" class="wp-block-image size-large"><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_acab_all_cops_are_bastards-1-1024x683.jpg" alt="" class="wp-image-260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_acab_all_cops_are_bastards-1-1024x683.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_acab_all_cops_are_bastards-1-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_acab_all_cops_are_bastards-1-768x512.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3/1312_acab_all_cops_are_bastards-1.jpg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들에게 1312는 범죄자의 낙인이 아니라, 억압받는 계층을 대변하는 사회적 분노의 분출구이자 정체성이기도 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8216;1312&#8217; 정신이 때로는 극단적인 폭력으로 이어지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들이 외치는 저항의 밑바닥에는 &#8216;축구는 팬들의 것이며, 우리의 열정은 통제의 대상이 될 수 없다&#8217;는 순수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유럽의 울트라스부터 남미의 바라브라바까지, 이들이 흔드는 1312의 깃발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8220;당신에게 축구장은 단순한 관람석인가요, 아니면 자유를 노래하는 해방구인가요?&#8221;</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참고 자료 :<br>Book : James Montague, 1312: Among the Ultras, Ebury Press (2020)<br>Article : Tobias Jones, &#8220;What is an Ultra?&#8221;, The Guardian<br>Data : Ultras-Tifo, Global Ultras Movement Archive</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a href="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9%80-%ec%a0%95%ec%b9%98%ec%9d%98-%ec%97%b0%ea%b2%b0%ea%b3%a0%eb%a6%ac-%ec%b9%b4%ec%9d%b4%eb%a1%9c-%ec%9a%b8%ed%8a%b8%eb%9d%bc%ec%8a%a4%ec%9d%98-%ec%a7%a7%ec%a7%80%eb%a7%8c/">&lt;축구와 정치의 연결고리, 카이로 울트라스의 짧지만 의미 있는 역사&gt; Click</a></strong></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wp-embed is-provider-barrabrava-365 wp-block-embed-barrabrava-365"><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blockquote class="wp-embedded-content" data-secret="E0PFUdD5pX"><a href="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9%80-%ec%a0%95%ec%b9%98%ec%9d%98-%ec%97%b0%ea%b2%b0%ea%b3%a0%eb%a6%ac-%ec%b9%b4%ec%9d%b4%eb%a1%9c-%ec%9a%b8%ed%8a%b8%eb%9d%bc%ec%8a%a4%ec%9d%98-%ec%a7%a7%ec%a7%80%eb%a7%8c/">축구와 정치의 연결고리, 카이로 울트라스의 짧지만 의미 있는 역사</a></blockquote><iframe loading="lazy" class="wp-embedded-content" sandbox="allow-scripts" security="restricted"  title="&#8220;축구와 정치의 연결고리, 카이로 울트라스의 짧지만 의미 있는 역사&#8221; &#8212; barrabrava365" src="https://barrabrava365.com/%ec%b6%95%ea%b5%ac%ec%99%80-%ec%a0%95%ec%b9%98%ec%9d%98-%ec%97%b0%ea%b2%b0%ea%b3%a0%eb%a6%ac-%ec%b9%b4%ec%9d%b4%eb%a1%9c-%ec%9a%b8%ed%8a%b8%eb%9d%bc%ec%8a%a4%ec%9d%98-%ec%a7%a7%ec%a7%80%eb%a7%8c/embed/#?secret=xxTCaIJzeQ#?secret=E0PFUdD5pX" data-secret="E0PFUdD5pX" width="600" height="338"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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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이다 셀틱, UEFA의 벌금이 난민들을 위한 축구 아카데미 창설로 이어지기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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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Fri, 27 Feb 2026 14:38:24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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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2016년 8월 17일. 천천히 해가 지고 있던 어느 날,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8216;브렌던 로저스(Brendan Rodgers)&#8217;의 선수단이 셀틱 파크의 잔디를 밟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로저스는 셀틱의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한 만큼, 유럽 클럽 대항전 중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의 조별리그에 반드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2016년 여름, 셀틱 파크에 새롭게 합류한 것은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2016년 8월 17일. 천천히 해가 지고 있던 어느 날,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자 &#8216;브렌던 로저스(Brendan Rodgers)&#8217;의 선수단이 셀틱 파크의 잔디를 밟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로저스는 셀틱의 감독으로서 첫 시즌을 맞이한 만큼, 유럽 클럽 대항전 중 가장 권위 있는 이 대회의 조별리그에 반드시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tu6z-g34bxk"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51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jpg" alt="" class="wp-image-222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768x512.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2016년 여름, 셀틱 파크에 새롭게 합류한 것은 로저스뿐만이 아니었다. &#8216;파크헤드(Parkhead)&#8217;의 관중석에도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2016/17 시즌부터 경기장에 &#8216;세이프 스탠딩(Safe Standing)&#8217; 구역이 새롭게 도입된 것이다. 이 구역은 셀틱의 울트라스 그룹인 &#8216;그린 브리게이드(Green Brigade)&#8217;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곳은 열정적인 서포터들이 모여 안전한 환경에서 서서 응원할 수 있도록 마련된 구역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06년에 결성된 그린 브리게이드는 점차 자신들만의 독특한 응원 방식과 뚜렷한 정치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좌파적 시각과 전통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체성을 결합한 이 그룹은 이곳에서 정치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들만의 시각을 자주 표출하곤 했다.</p>



<h2 class="wp-block-heading">2016년, 셀틱 vs 하포엘 베르셰바</h2>



<p class="wp-block-paragraph">2016년 8월, 챔피언스리그 예선에서 이스라엘 팀 하포엘 베르셰바와 맞붙은 경기는 그린 브리게이드에게 아주 특별한 기회를 제공했다. 2006년 결성 이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항상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해 왔다. 그동안 셀틱 파크에는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조명하는 현수막, 깃발,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시위가 등장하곤 했다. 하지만 하포엘 베르셰바와의 경기는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집단행동의 무대가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린 브리게이드가 결성된 이후 셀틱이 이스라엘 팀을 상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9년, 셀틱은 유로파리그에서 하포엘 텔아비브와 맞붙은 바 있다. 당시 셀틱 파크에는 팔레스타인 국기가 일부 보이긴 했지만, 그날 밤 대규모 시위나 퍼포먼스는 없었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어쩌면 2009년에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2016년에 더욱 강한 동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셀틱이 하포엘 베르셰바와 맞붙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경기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형 퍼포먼스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셀틱 구단은 UEFA의 벌금을 우려했는지, 그린 브리게이드 측에 이러한 계획에 대해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usir-j4iob0"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38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Rodgers.jpg" alt="" class="wp-image-222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Rodgers.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Rodgers-300x15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Rodgers-768x384.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경기 당일, 두 차례의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킥오프 전 그린 브리게이드는 자신들의 구역에서 첫 번째 &#8216;티포(Tifo)&#8217;를 선보였다. 티포에는 셀틱의 감독 브렌던 로저스가 포커 플레이어로 묘사되었고, 그 아래에는 &#8220;Let’s go all in(전부 올인)&#8221;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퍼포먼스는 그날 경기의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관중석에서 곧 펼쳐질 일에 대한 암시를 상징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v4yw-j6qh64"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46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BeerSheva.jpg" alt="" class="wp-image-222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BeerSheva.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BeerSheva-300x18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ansPalestineBeerSheva-768x461.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직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두 번째 행동에 나섰다. 이번 퍼포먼스는 그날의 경기 자체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다. 순식간에 셀틱 파크의 꾸르바에는 팔레스타인 국기의 색상인 검정, 흰색, 녹색, 빨간색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린 브리게이드의 구성원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고, 그룹의 상징인 해골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8216;케피예(keffiyeh)&#8217;를 두른 모습의 배너까지 펼쳐졌다. 이 연대의 메시지는 90분 내내 이어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행동을 계획하면서, 그들은 UEFA로부터 구단이 제재를 받을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셀틱은 이미 과거에도 그린 브리게이드의 팔레스타인 지지 행동으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 2년 전, KR 레이캬비크와의 경기에서 이들이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구단은 벌금을 부과 받은 바 있다.</p>



<h2 class="wp-block-heading">팔레스타인을 위한 벌금 매칭 캠페인</h2>



<p class="wp-block-paragraph">예상대로 UEFA는 셀틱에게 10,0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며, 팔레스타인 국기를 &#8216;불법 배너(illicit banner)&#8217;로 규정했다. 모두가 그린 브리게이드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놀라운 일이 이어졌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vy40-by9cnt"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c-v-kilmarnock-fc-cinch-scottish-premiership-61-1024x682.jpeg" alt="" class="wp-image-222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c-v-kilmarnock-fc-cinch-scottish-premiership-61-1024x682.jpe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c-v-kilmarnock-fc-cinch-scottish-premiership-61-300x200.jpe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c-v-kilmarnock-fc-cinch-scottish-premiership-61-768x512.jpe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eltic-fc-v-kilmarnock-fc-cinch-scottish-premiership-61.jpeg 128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w33o-vh7c5o"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518" height="34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스크린샷_2025-07-15_222445.png" alt="" class="wp-image-222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스크린샷_2025-07-15_222445.png 51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스크린샷_2025-07-15_222445-300x199.png 300w" sizes="auto, (max-width: 518px) 100vw, 518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UEFA의 벌금 부과 이후, 그린 브리게이드는 팔레스타인 의료 지원 단체인 &#8216;Medical Aid Palestine&#8217;과 &#8216;아이다 난민촌(베들레헴)&#8217;에 있는 아동문화·스포츠 센터인 &#8216;Lajee Center&#8217;를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했다. &#8216;#MatchTheFineForPalestine(팔레스타인을 위한 벌금 매칭)&#8217;이라는 이름의 이 캠페인의 목표는 분명했다. UEFA의 벌금이 부당하다고 본 그린 브리게이드는, 자신들을 둘러싼 (대체로 부정적인) 언론의 관심을 선한 영향력으로 전환하고자 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모금은 거의 즉각적으로 시작되었고, 수많은 기부가 쏟아졌다. 최종적으로 이들이 두 팔레스타인 단체를 위해 모금한 금액은 약 175,000파운드, 한화로 약 2억 8천만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린 브리게이드가 보여준 연대는 아이다 캠프와 요르단강 서안 전역에 깊은 울림을 안겼다. 하포엘 베르셰바와의 경기 이후 몇 주 동안,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그린 브리게이드의 지지에 감사를 전하는 감동적인 영상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6년 8월의 경기는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수년간 이어져 온 지지 활동의 정점이었다. 이날 경기에서의 &#8216;#MatchTheFine&#8217; 캠페인을 계기로, 그린 브리게이드의 팔레스타인 연대는 한층 더 깊고 의미 있는 차원으로 도약했다.</p>



<h2 class="wp-block-heading">아이다 셀틱(Aida Celtic)</h2>



<p class="wp-block-paragraph">그린 브리게이드와 아이다 난민촌의 아동문화·스포츠 센터 &#8216;Lajee Center&#8217;의 인연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지만, 2016년 8월의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한층 더 견고해졌다. 그리고 이 연대는 결국 아이다 난민촌에 축구 아카데미인 &#8216;아이다 셀틱(Aida Celtic)&#8217;이 창설되는 결과로 이어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9년에 공식 출범한 아이다 셀틱의 핵심 목표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인다. 바로 팔레스타인 난민 청소년들에게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장비와 재정이 완비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결코 순탄치 않은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삶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공간 하나만으로도 일상 속 고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소중한 탈출구를 마련한 것이었다. 전 세계의 아마추어 클럽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다 셀틱 역시 유소년 팀과 시니어 팀으로 구성되어 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x3g6-xbye3y"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51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AidaCelticSquad.jpg" alt="" class="wp-image-223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AidaCelticSquad.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AidaCelticSquad-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AidaCelticSquad-768x512.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궁극적으로 아이다 셀틱의 성공을 좌우할 핵심 요소는 바로 &#8216;지원 네트워크&#8217;이다. 이 네트워크에는 유명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8216;anon(A Number of Names)&#8217;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브랜드는 아이다 셀틱의 첫 공식 유니폼 제작을 전액 후원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이름을 밝히지 않길 원하는 여러 유명 인사들의 기부도 있었고, 2016년 모금 캠페인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의 셀틱 팬들과 팔레스타인 지지자들의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코로나19가 확산되었던 시기, 셀틱은 아이다 셀틱을 영국으로 초청해 문화 및 스포츠 교류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팬데믹으로 연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틱 팬들의 아이다 셀틱에 대한 지지, 그리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연대는 멈추지 않는다. 아카데미는 걸음마 단계에 있지만 창립자들은 큰 비전을 품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앞으로 몇 시즌 동안 셀틱 파크의 세이프 스탠딩 구역에서는 정치적 메시지가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2016년 8월의 사건처럼 엄청난 반향을 일으킬 만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p>



<p class="wp-block-paragraph">※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br>※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35004853<br>※ 최초 작성일 : 2025. 07. 1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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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토티가 라치오의 꾸르바로부터 존경을 얻게 된 이야기</title>
		<link>https://barrabrava365.com/%ed%86%a0%ed%8b%b0%ea%b0%80-%eb%9d%bc%ec%b9%98%ec%98%a4%ec%9d%98-%ea%be%b8%eb%a5%b4%eb%b0%94%eb%a1%9c%eb%b6%80%ed%84%b0-%ec%a1%b4%ea%b2%bd%ec%9d%84-%ec%96%bb%ea%b2%8c-%eb%90%9c-%ec%9d%b4%ec%95%bc/</link>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Fri, 27 Feb 2026 14:32:36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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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어떤 축구 팬도 경기를 보러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팬 간의 폭력, 교통사고, 압사, 화재, 돌연사 등 다양한 이유로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나 경기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탈리아인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열정적인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축구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8216;가브리엘레 산드리(Gabriele Sandri)&#8217;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탈리아 축구에서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어떤 축구 팬도 경기를 보러 집을 나섰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팬 간의 폭력, 교통사고, 압사, 화재, 돌연사 등 다양한 이유로 경기장으로 가는 길이나 경기장에서 목숨을 잃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ned9-gbmgx9"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38" height="46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1.jpg" alt="" class="wp-image-221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1.jpg 73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1-300x188.jpg 300w" sizes="auto, (max-width: 738px) 100vw, 738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탈리아인들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열정적인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축구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8216;가브리엘레 산드리(Gabriele Sandri)&#8217;의 비극적인 죽음은 이탈리아 축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팬 그룹과 경찰 간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긴장된 갈등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p>



<h2 class="wp-block-heading">가브리엘레 산드리(Gabriele Sandri)의 죽음</h2>



<p class="wp-block-paragraph">상황을 설명하자면, 2007년 11월 11일 세리에 A 경기에서 인테르 밀란은 SS 라치오와 맞붙을 예정이었다. 수천 명의 라치오 팬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로마에서 북쪽 밀라노로 E35 고속도로를 따라 이동 중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주말과 마찬가지로, 팬들이 이탈리아 전역에서 원정 경기를 보기 위해 이동하는 상황이었다. 라치오 팬들 중 한 무리, 그중에는 가브리엘레 산드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은 아레초 지역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르마와의 경기를 보러 가던 유벤투스 팬들과 마주치게 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보도에 따르면 두 팬 그룹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이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 폭력이 격화되자 현장에 있던 경찰은 팬들을 떼어놓기 위한 시도로 공중에 실탄을 발사해 경고를 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혼란과 혼돈이 일어났고, 한 경찰관이 또 한 발의 실탄을 오발하게 되었는데, 그 총알은 가브리엘레 산드리의 목을 맞췄다. 이 총격은 치명적이었다. 가브리엘레 산드리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몇 년이 지난 후, 한 경찰관이 결국 가브리엘레 산드리의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 6년형을 선고받았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obj2-r7pq1i"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68"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1024x768.jpg" alt="" class="wp-image-221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1024x768.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300x225.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768x576.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1536x1152.jp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5803825_10156790342763810_4683318634041311232_n.jpg 1925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of26-66knqq"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416" height="3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3.jpg" alt="" class="wp-image-222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3.jpg 41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3-300x216.jpg 300w" sizes="auto, (max-width: 416px) 100vw, 416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당연히 인테르와 라치오 간의 경기는 산드리의 사망 소식이 확인되자마자 취소되었고, 로마에서 열릴 예정이던 로마와 칼리아리 간의 경기 역시 취소되었다. 산드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이탈리아 전역에 퍼지기 시작하자 대규모 항의와 시위가 이어졌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산드리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경기를 10분 지연해 시작하기로 했으며, 아탈란타와 AC 밀란 간의 세리에 A 경기는 산드리의 죽음으로 촉발된 폭동으로 인해 중단되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일부 팬들은 산드리의 죽음 이후에도 대부분의 경기가 정상적으로 진행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해 초, 팔레르모 FC와 칼초 카타니아 간의 시칠리아 더비 경기 전 한 경찰이 사망했을 당시에는 모든 경기 일정이 전면 취소되었었다. 이탈리아 전역의 팬들은 이탈리아 축구협회의 이러한 조치가 팬의 생명보다 경찰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긴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아탈란타와 밀란 간의 베르가모 경기 역시 이러한 이유로 중단되었는데, 아탈란타 팬들은 경기가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고 느껴 경기장을 점거하려 시도했고, 결국 경기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리고 4개월 뒤인 2008년 3월, 로마 올림피코 경기장에서 &#8216;데르비 델라 카피탈레(Derby della Capitale)&#8217;가 열렸다. 이는 산드리의 죽음 이후 처음 열리는 로마 더비였고, 경기 시작 전 벌어진 일들은 그야말로 강렬하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p>



<h2 class="wp-block-heading">프란체스코 토티 &amp; 꾸르바 노르드 라치오</h2>



<p class="wp-block-paragraph">경기 시작을 앞두고, 몇 명의 인물이 미디어와 사진기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라치오의 꾸르바 노르드 쪽 터치라인을 따라 걸어갔다. 양 구단의 대표자들도 함께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룹을 이끄는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로마의 주장 &#8216;프란체스코 토티(Francesco Totti)&#8217;, 라치오의 주장 &#8216;토마소 로키(Tommaso Rocchi)&#8217;, 가브리엘레 산드리의 형 &#8216;크리스티아노(Cristiano)&#8217;, 그리고 라치오와 로마 울트라 그룹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 한 명씩이었다.</p>



<figure class="wp-block-embed is-type-video is-provider-youtube wp-block-embed-youtube wp-embed-aspect-4-3 wp-has-aspect-ratio"><div class="wp-block-embed__wrapper">
<iframe loading="lazy" title="IN RICORDO DI GABRIELE SANDRI" width="1200" height="900" src="https://www.youtube.com/embed/XARWVjnBfcI?feature=oembed"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 referrerpolicy="strict-origin-when-cross-origin" allowfullscreen></iframe>
</div></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 다섯 명이 함께 모여 산드리의 사진 앞에 헌화를 하고 포옹하는 장면은, 가장 치열한 라이벌 사이에서도 가능한 단결과 연대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같은 시각 원정석에 모인 로마 팬들도 산드리와 라치오에 대한 연대를 표하며 슬픔과 존경의 마음을 담은 현수막을 펼쳤다. 영원한 증오를 잠시 접어두고 말이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8220;하늘색 하늘 아래, 하나의 별이 빛난다. 안녕 가브리엘레.&#8221;</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물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긴장감은 다시 살아났고, 이후로도 그 적대감은 계속되어왔다. 그러나 경기 시작 전 토티가 보여준 행동, 그리고 실제로 산드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실은 라치오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qanz-1wzozp"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251"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4.jpg" alt="" class="wp-image-222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4.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4-300x97.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TOTTI4-768x249.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2017년, 토티의 마지막 &#8216;데르비 델라 카피탈레&#8217;를 앞두고, 많은 이들의 놀라움 속에 라치오의 꾸르바 노르드는 이 로마 전설에게 경의를 표했다. 울트라 그룹 &#8216;이리두치빌리(Irriducibili)&#8217;의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p>



<p class="wp-block-paragraph"><strong>&#8220;영원한 적, 우리는 너를 경의로이 맞이한다. 프란체스코 토티.&#8221;</strong></p>



<p class="wp-block-paragraph">SS 라치오와 AS 로마는 항상 영원한 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프란체스코 토티는 로마의 최다 출장자이면서 최다 득점자이고 그리고 영원한 AS 로마의 전설이다. 동시에 그는 라이벌 라치오 팬들의 존경을 얻은 로마의 전설이기도 하다. 이처럼 어떤 것은 축구보다 더 위대하다.</p>



<p class="wp-block-paragraph">※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br>※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32374612<br>※ 최초 작성일 : 2025. 07.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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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레알 마드리드 울트라스 Ultras Sur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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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Fri, 27 Feb 2026 14:25:08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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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울트라스 수르(Ultras Sur)&#8217;는 1980년에 만들어졌으며,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극우 성향의 네오파시스트 울트라 그룹이다. 이 그룹은 1980년, 서포터 모임인 &#8216;Las banderas&#8217;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 모임에는 팀을 보다 열성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응원하던 젊은 팬들이 합류했다. 시간이 지나 이들은 기존 구성원들과의 충돌 끝에 모임에서 퇴출당했고, 이후 독립적인 울트라스 그룹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8230;]]]></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
<p class="wp-block-paragraph">&#8216;울트라스 수르(Ultras Sur)&#8217;는 1980년에 만들어졌으며, 스페인 명문 레알 마드리드를 응원하는 극우 성향의 네오파시스트 울트라 그룹이다. 이 그룹은 1980년, 서포터 모임인 &#8216;Las banderas&#8217;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이 모임에는 팀을 보다 열성적으로, 그리고 때로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응원하던 젊은 팬들이 합류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qfudy9-2iq38l"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44" height="49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ultras_sur.png" alt="" class="wp-image-256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ultras_sur.png 74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ultras_sur-300x198.png 300w" sizes="auto, (max-width: 744px) 100vw, 74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시간이 지나 이들은 기존 구성원들과의 충돌 끝에 모임에서 퇴출당했고, 이후 독립적인 울트라스 그룹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현재의 &#8216;울트라스 수르(Ultras Sur)&#8217;이다. 그룹의 오랜 리더였던 &#8216;호세 루이스 오차이타(José Luis Ochaíta)&#8217;는 수차례 충돌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여러 번 체포되어 경기장 출입이 금지된 인물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는 1998년 독일에서 나치 깃발을 흔들다가 체포된 전력이 있으며, 스페인에서는 심판을 폭행한 혐의로 3년간 경기장 출입이 금지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레알 마드리드 구단 내부와 일부 선수들로부터 환대를 받아왔고, 이는 여러 차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ce39-1q3swi"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51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GettyImages-51657861-2-e1696500028917.jpg" alt="" class="wp-image-220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GettyImages-51657861-2-e1696500028917.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GettyImages-51657861-2-e1696500028917-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GettyImages-51657861-2-e1696500028917-768x512.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2005년 5월, 울트라스 수르가 인종차별적인 배너를 들고 있던 경기가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의 흑인 풀백 &#8216;로베르토 카를로스(Roberto Carlos)&#8217;가 오차이타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건네는 장면이 포착되어 논란이 일었다. 이후 로베르토 카를로스는 해당 행동에 대해 사과했지만, 울트라스를 명확히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는 &#8220;그 순간 유니폼을 건넨 건 실수였다. 경기 중에 어떤 논란이 있었는지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8221;라고 해명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 수르는 응원 외에도 자주 폭력 행위에 연루되곤 했다. 특히 라이벌 팬들을 상대로 한 조직적인 공격이 흔했다. 이들의 폭력은 무차별적인 형태보다는 정치적 성향과 라이벌 구도에 따라 명확한 방향성을 지닌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스페인의 독재자였던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상징으로 여길 만큼 강한 우파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팀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한 것이 특징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cw4j-luumw6"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62" height="35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209.png" alt="" class="wp-image-220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209.png 762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209-300x141.png 300w" sizes="auto, (max-width: 762px) 100vw, 762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czf7-l7a916"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4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1515644.jpg_1-1024x744.jpg" alt="" class="wp-image-220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1515644.jpg_1-1024x744.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1515644.jpg_1-300x218.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1515644.jpg_1-768x558.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1515644.jpg_1.jpg 12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친 전력이 여러 차례 있지만, 그 편견은 대체로 자국팀 선수들보다는 상대 팀 선수들을 대상으로 나타난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소속 흑인 선수들에게까지 차별을 확장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울트라스 수르는 여러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왔지만, 그 강도나 조직력 측면에서는 이탈리아의 울트라 그룹들에 비하면 덜 체계적이고 규모도 제한적인 편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그룹은 역사적으로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과 몇 차례 충돌을 빚은 바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 원인 중 하나는 그룹이 자신들의 응원을 조건으로 경제적 지원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일부 선수들은 울트라스 수르를 향해 공개적으로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10시즌 동안 활약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전설적인 선수 &#8216;후아니토(Juanito)&#8217;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는 지금도 매 경기 7분이 되면 &#8220;Illa, illa, illa, Juanito maravilla&#8221;라는 구호로 그를 기리고 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qfwiez-5vlvue"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40" height="41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madrid_skins.jpg" alt="" class="wp-image-257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madrid_skins.jpg 74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madrid_skins-300x167.jpg 300w" sizes="auto, (max-width: 740px) 100vw, 740px" /><figcaption class="wp-element-caption">SERIE DE IÑAKI DOMINGUEZ. Macarras de esta semana. El punki ULTRASUR. Kino.</figcaption></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dsr2-povuzx"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97"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1024x697.jpg" alt="" class="wp-image-220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1024x697.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300x204.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768x522.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1536x1045.jp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Valencia-R.Madrid_82-83_01.jpg 204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그룹의 구성원들은 극우 이데올로기를 따르며, 과거에는 스킨헤드 스타일의 외형을 자주 보였지만 최근에는 캐주얼 패션이 더 주를 이루는 편이었다. 이 그룹은 폐쇄적인 성격 때문에 접근이 어렵기로 알려져 있지만, 몇몇 언론인과 수사관들이 잠입해 내부 실태를 밝힌 사례도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가명을 사용한 기자 &#8216;안토니오 살라스(Antonio Salas)&#8217;는 &#8216;스킨의 일기(Diario de un skin)&#8217;라는 책을 통해 경기장 안팎에서의 울트라스 수르의 행동과 그들이 네오나치 운동과 맺고 있는 관계를 폭로했다. 이와 유사하게 경찰관 &#8216;다비드 마드리드(David Madrid)&#8217;는 &#8216;울트라 관중석에 잠입한 경찰의 기록(Insider)&#8217;과 &#8216;도시 부족들(Tribus Urbanas)&#8217;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룹의 실태를 알렸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eadn-6evbz7"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86" height="45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612.png" alt="" class="wp-image-2209"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612.png 68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55612-300x199.png 300w" sizes="auto, (max-width: 686px) 100vw, 686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울트라스 수르가 일으킨 사건들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사례 중 하나는 1998년 4월 1일, UEFA 챔피언스리그 1997/98 시즌 준결승 1차전 도르트문트와의 홈경기에서 벌어졌다. 경기 시작 전, 약 100명의 울트라스 수르 일원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남쪽 스탠드의 철제 펜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 펜스에는 골대가 케이블로 고정되어 있었는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펜스가 무너지며 골대까지 함께 붕괴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경기는 75분 지연됐고, 레알 마드리드는 UEFA로부터 중징계를 받게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를 계기로 클럽은 울트라스 수르에 대한 제재 수위를 한층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룹은 3층 관중석으로 이동 조치된 후 다시 측면 하단 구역으로 밀려났고, 예전처럼 &#8216;Fondo Sur&#8217; 구역을 차지하던 약 2,000명의 회원 중 상당수가 떠나면서 그룹은 심각한 내부 위기를 겪게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레알 마드리드 회장을 맡았던 2000년부터 2006년 사이, 울트라스 수르는 제한된 구역인 남쪽 스탠드, 일명 &#8216;Fondo Sur&#8217;로 복귀했으며, 모든 회원은 반드시 28번 출입문을 통해 입장해야 했다. 이 시기 클럽은 더 이상 국내외 원정 비용을 지원하지 않았고, 그 결과 울트라스 수르가 연루된 사건 사고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후 2006년부터 2009년 초까지 회장을 맡은 라몬 칼데론 체제에서는 그룹이 클럽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2013/14 시즌에 들어 내부 지도부가 교체되면서 울트라스 수르에 내부적인 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결국 그룹 내부에서 폭력적인 충돌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레알 마드리드 구단은 울트라스 수르 구성원들을 경기장에서 퇴출시키는 조치를 취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또한 구단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남쪽 스탠드 응원석을 전면적으로 재편한다고 발표하며, 기존의 울트라스 수르와 맺고 있던 &#8216;공존 협약&#8217;을 사실상 파기했다. 그러나 퇴출된 지 한 달 반 만에 다시 입장이 허용되었고, 내부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일부는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f0pr-fzzf6k"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76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89833349_1159958289262007_3483648759914311303_n-1024x763.jpg" alt="" class="wp-image-221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89833349_1159958289262007_3483648759914311303_n-1024x763.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89833349_1159958289262007_3483648759914311303_n-300x224.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89833349_1159958289262007_3483648759914311303_n-768x572.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89833349_1159958289262007_3483648759914311303_n.jpg 108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f4ye-7xjl5e"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102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1024x1024.jpg" alt="" class="wp-image-221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1024x1024.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300x3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150x150.jpg 15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768x768.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1204521258.jpg.jpg 14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결국 2014/15 시즌이 시작되기 전 여름, 클럽은 울트라스 수르의 경기장 출입을 전면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조치는 경기장 내에서 울트라스 수르 관련 응원도구나 상징물을 반입하는 것조차 금지하는 수준으로 확대되었고, 이후 울트라스 수르는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과 공개적인 대립 관계에 돌입하게 된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9년, &#8216;스페인 국가 폭력 근절 위원회(Comisión Estatal contra la Violencia)&#8217;는 &#8216;울트라스 수르(Ultras Sur)&#8217;를 과격 폭력 집단으로 지정했으며, 이로 인해 스페인 전역의 축구 경기장에서 이들의 상징물과 깃발, 배너 등을 공개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금지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fs8n-f8vhy8"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386" height="254"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62775319_2417731941756184_4383890207710927563_n.png" alt="" class="wp-image-221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62775319_2417731941756184_4383890207710927563_n.png 38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462775319_2417731941756184_4383890207710927563_n-300x197.png 300w" sizes="auto, (max-width: 386px) 100vw, 386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fzju-breyo6"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386" height="29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Da2PlX_XUAAC-yW.jpg" alt="" class="wp-image-221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Da2PlX_XUAAC-yW.jpg 38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Da2PlX_XUAAC-yW-300x225.jpg 300w" sizes="auto, (max-width: 386px) 100vw, 386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 그룹은 1988년부터 RCD 에스파뇰의 울트라 그룹인 &#8216;Brigadas Blanquiazules&#8217;와 강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또한 레알 오비에도의 &#8216;Symmachiarii&#8217;, 유럽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위험한 울트라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는 라치오의 &#8216;Irriducibili&#8217;와도 긴밀한 연대를 맺고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외에도 프랑스 올랭피크 리옹의 &#8216;Bad Gones&#8217;와도 우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레알 마드리드 내부 팬 그룹 중에서는 &#8216;Orgullo Vikingo&#8217;와 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의 울트라스와도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 유럽 울트라스 씬 내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gle9-1zmcf0"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54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f.elconfidencial.com_original_816_f65_e7f_816f65e7f3806814836c3b972df7ddba.jpg" alt="" class="wp-image-221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f.elconfidencial.com_original_816_f65_e7f_816f65e7f3806814836c3b972df7ddba.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f.elconfidencial.com_original_816_f65_e7f_816f65e7f3806814836c3b972df7ddba-300x212.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f.elconfidencial.com_original_816_f65_e7f_816f65e7f3806814836c3b972df7ddba-768x541.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반면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8216;Frente Atlético&#8217;와는 적대 관계에 있다. 이는 두 클럽 간의 전통적인 더비 라이벌리티로 인한 것이며, 울트라스 수르와 프렌테 아틀레티코 간에는 수차례 충돌과 폭력 사건이 벌어졌다. 바르셀로나의 &#8216;Boixos Nois&#8217;도 주요한 라이벌 중 하나다. 두 그룹 모두 극우 성향을 공유하긴 하지만, 보이쇼스 노이스는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하는 반면 울트라스 수르는 스페인 국가주의 극우 성향을 갖고 있어 이념적 충돌이 존재한다. 다만, 이 두 그룹 간 직접적인 폭력 사건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p>



<p class="wp-block-paragraph">세비야 FC를 응원하는 극좌 성향의 울트라스 그룹 &#8216;Biris Norte&#8217;와도 뚜렷한 적대 관계를 갖고 있다. 이들의 적대 관계는 이념적 대립이 핵심 원인이다. 이들 사이의 직접적 충돌은 많지 않지만, 한차례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서 작은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렌시아 CF의 &#8216;Ultras Yomus&#8217;와도 심한 라이벌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양 팀 간의 전통적인 경쟁 구도에서 비롯된 감정적 대립이다.</p>



<p class="wp-block-paragraph">라요 바예카노의 &#8216;Bukaneros&#8217;와도 강한 적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지리적 인접성과 더불어 &#8216;극좌(Los Bukaneros) vs 극우(Ultras Sur)&#8217;라는 정치적 성향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들 사이에는 여러 차례 폭력 사건이 발생했으며, 그중 한 사건에서는 무려 12명이 체포되기도 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br>※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05944497<br>※ 최초 작성일 : 2025. 06.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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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C 바르셀로나 울트라스 Boixos Nois 이야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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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barrabrava365]]></dc:creator>
		<pubDate>Fri, 27 Feb 2026 14:13:04 +0000</pubDate>
				<category><![CDATA[아카이브]]></category>
		<category><![CDATA[유럽]]></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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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8216;보이쇼스 노이스(Boixos Nois)&#8217;는 1981년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팬클럽으로 창설되었다. &#8216;Boixos Nois&#8217;를 영어로 직역하면 &#8216;미친놈들(Crazy Boys)&#8217;라는 뜻이다. 사실 이 그룹명은 카탈루냐어 문법상 맞춤법 오류가 있으며, 고유명사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에서 비롯된 이름은 단순한 팬 그룹명을 넘어서, 하위문화적 정체성과 거리 문화적 뉘앙스를 담은 고유 브랜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그룹은 처음에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8230;]]]></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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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wp-block-paragraph">&#8216;보이쇼스 노이스(Boixos Nois)&#8217;는 1981년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팬클럽으로 창설되었다. &#8216;Boixos Nois&#8217;를 영어로 직역하면 &#8216;미친놈들(Crazy Boys)&#8217;라는 뜻이다. 사실 이 그룹명은 카탈루냐어 문법상 맞춤법 오류가 있으며, 고유명사로 굳어져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오류에서 비롯된 이름은 단순한 팬 그룹명을 넘어서, 하위문화적 정체성과 거리 문화적 뉘앙스를 담은 고유 브랜드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qfyiy4-bz7zaa"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45" height="59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oixos_nois.png" alt="" class="wp-image-257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oixos_nois.png 745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oixos_nois-300x238.png 300w" sizes="auto, (max-width: 745px) 100vw, 745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 그룹은 처음에는 50명도 채 되지 않는 소규모 집단이었으며, 카탈루냐 독립과 좌파 정치 성향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이들은 당시 구단 회장인 &#8216;호셉 누녜스(Josep Núñez)&#8217;를 권위주의적 인물로 간주하며, 구호와 현수막을 통해 공개적으로 그를 비판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보이쇼스 노이스는 불과 4년 만에, 누녜스 회장 재임 기간 동안 구성원 수가 700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당시 누녜스는 한편으론 유럽주의에 반대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이들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르셀로나에는 스킨헤드 문화가 퍼졌고, 일부는 극우 분리주의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물들이 보이쇼스 노이스에 합류하면서, 이 단체의 이념은 사회자유주의에서 파시즘으로 급격히 변모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x43d-x98p2t"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ulemaniacos_1759964_419572_1024x576.jpg" alt="" class="wp-image-2191"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ulemaniacos_1759964_419572_1024x576.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ulemaniacos_1759964_419572_1024x576-300x169.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culemaniacos_1759964_419572_1024x576-768x432.jpg 768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xbkq-bcz2i7"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76"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1024x576.jpg" alt="" class="wp-image-2192"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1024x576.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300x169.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768x432.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1536x864.jp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5094a28-0eed-4738-88df-42dbd64d60c4_16-9-aspect-ratio_default_0.jpg 160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xqjn-hqn9hw"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683"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PJI6c_XUAAjtdJ2_-1024x683.jpg" alt="" class="wp-image-2193"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PJI6c_XUAAjtdJ2_-1024x683.jp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PJI6c_XUAAjtdJ2_-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PJI6c_XUAAjtdJ2_-768x512.jp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EPJI6c_XUAAjtdJ2_.jpg 1440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xv1g-6tg8sd" class="wp-block-image size-large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1024" height="512"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1024x512.jpeg" alt="" class="wp-image-219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1024x512.jpeg 1024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300x150.jpe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768x384.jpeg 768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1536x768.jpeg 1536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whatsapp-image-2021-11-28-at-17.24.27-e1638180487986.jpeg 2017w" sizes="auto, (max-width: 1024px) 100vw, 1024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사한 극우 이데올로기를 공유한 마드리드의 &#8216;프렌테 아틀레티코(Frente Atlético)&#8217; 일부 구성원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이 정치적 변화는 내부 분열을 초래했고, 동시에 이들은 영국 훌리건 문화에 영향을 받아 점점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결국 경기장에서 소란을 일으키며 대규모 체포 사건들이 벌어졌다.</p>



<p class="wp-block-paragraph">이 조직의 문화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참고할 만한 자료로는, &#8216;키코 아맛(Kiko Amat)&#8217;의 소설 &#8216;아마도르의 비밀(Il segreto di Amador)&#8217;이 있다. 이 작품은 해당 현상에 대한 많은 세부 정보를 담고 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아맛은 이렇게 밝혔다.</p>



<p class="wp-block-paragraph">&#8220;1980년대 바르셀로나에서는 스킨헤드 운동에 속한 나치들이 일종의 신비로운 존재처럼 여겨졌어요. 어떤 이들은 거의 유명인사처럼 인식되기도 했죠. 이 문화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도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우리 세대에게 그들은 공포의 괴물 같은 존재였고,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전설처럼 세대를 거쳐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 중 많은 부분은 언론이나 구전을 통해 과장된 것이었고, 실제로 그들을 가까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들의 삶과 행동은 현실보다는 신화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8221;</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ykna-ap6s0l"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00" height="4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1887_24454261474180463_7981754431967375504_n.jpg" alt="" class="wp-image-2195"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1887_24454261474180463_7981754431967375504_n.jpg 6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1887_24454261474180463_7981754431967375504_n-300x200.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ure>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ys6v-kr4mh8"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00" height="4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64270_24454261194180491_2233225195662365062_n.jpg" alt="" class="wp-image-2196"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64270_24454261194180491_2233225195662365062_n.jpg 6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64270_24454261194180491_2233225195662365062_n-300x200.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보이쇼스 노이스는 같은 바르셀로나 팬 그룹인 &#8216;페냐 알모가버르스(Penya Almogàvers)&#8217;와도 갈등을 겪었다. 이들은 동일하게 카탈루냐 독립을 지지했지만, 반파시즘·비폭력 노선을 따랐으며 자유주의적·사회민주주의적 성향을 지녔다. 이념의 차이는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켰다.</p>



<p class="wp-block-paragraph">논란의 중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쇼스 노이스는 상당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구단은 이들에게 무료 입장권과 교통편, 경기장 내 현수막 설치 공간까지 제공하며 사실상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1985년, 헤이젤 참사 이후 이들은 &#8220;¡Gracias Liverpool!(리버풀 고마워!)&#8221;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펼쳤고, 카탈루냐 깃발 대신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내걸었다. 이에 분노한 구단 회장은 이들을 경기장 3층으로 쫓아냈다. 보이쇼스 노이스는 이에 대응해 경기장 내에서는 비폭력적 태도를 유지하는 한편, 경기장 밖에서는 여전히 도발적인 활동을 이어갔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zc4i-0txdbs"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773" height="515"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1026390_1022565816725872_2241548568287976940_n.jpg" alt="" class="wp-image-2197"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1026390_1022565816725872_2241548568287976940_n.jpg 773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1026390_1022565816725872_2241548568287976940_n-300x200.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1026390_1022565816725872_2241548568287976940_n-768x512.jpg 768w" sizes="auto, (max-width: 773px) 100vw, 773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1989년, &#8216;보이쇼스 노이스(Boixos Nois)&#8217;의 구성원 140명이 캄프 누 출입 금지 처분을 받았다. 이 시기, 내부의 극우화에 환멸을 느낀 일부 구성원들은 새로운 그룹 &#8216;상 쿨레(Sang Culé)&#8217;를 결성하며 조직에서 이탈했다. 1990년대 초, 보이쇼스 노이스는 여러 폭력 사건의 중심에 있었으며, 특히 1991년에는 에스파뇰 팬 한 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이는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에 대응해 스페인 정부는 &#8216;국가 체육 행사 폭력 대책 위원회(Comisión Nacional Contra la Violencia en Espectáculos Deportivos)&#8217;를 설립했지만, 실질적 효과는 미미했다.</p>



<p class="wp-block-paragraph">1990년대 중반이 되자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도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 세력 간의 갈등이 격화되어 경기장 내 충돌로 이어졌다. 보이쇼스 노이스 내부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캄프 누에서 파시스트들의 축출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폭력의 온상으로 비난받았고, 구단과의 관계도 악화일로를 걸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yzswm-h91vpj"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37" height="401"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03010.png" alt="" class="wp-image-2198"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03010.png 637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20250620_103010-300x189.png 300w" sizes="auto, (max-width: 637px) 100vw, 637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그러나 2000년, 누녜스 회장이 사임하고 후임으로 &#8216;호안 가스파르트(Joan Gaspart)&#8217;가 취임하면서 상황은 다시 요동쳤다. 가스파르트는 보이쇼스 노이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큰 논란을 낳았다. 특히 2002년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 도중, 보이쇼스 팬들이 &#8216;루이스 피구(Luís Figo)&#8217;에게 돼지 머리를 던진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쳤다.</p>



<p class="wp-block-paragraph">결국 2003년, 새 회장으로 취임한 &#8216;호안 라포르타(Joan Laporta)&#8217;는 보이쇼스 노이스의 경기장 출입을 전면 금지하고, 이들에게 주어졌던 모든 특혜를 박탈했다. 이에 격분한 보이쇼스 노이스는 라포르타의 집에 협박 낙서를 하고 기물 파손을 일삼았으며, 그를 직접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는 이 단체가 구단 운영진과 밀접한 유착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qg0aqw-5hpk0x" class="wp-block-image size-full"><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959" height="54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arca_ultras.jpg" alt="" class="wp-image-2574"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arca_ultras.jpg 959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arca_ultras-300x169.jpg 3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barca_ultras-768x432.jpg 768w" sizes="auto, (max-width: 959px) 100vw, 959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오늘날, 보이쇼스 노이스는 비록 &#8216;캄프 누(Camp Nou)&#8217;로의 출입이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여전히 경기장을 찾고 있으며, 현재에도 북쪽 골대 뒤편에 모여 응원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최근 FC 바르셀로나가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차지했을 때도 이들은 골대 뒤에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다양한 사회 계층으로 구성된 혼합적 성격의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p>



<p class="wp-block-paragraph">2010년에는 그룹 내에서도 가장 폭력적인 분파로, &#8216;극우 스페인 국수주의 집단&#8217;으로 알려진 &#8216;Casuals FCB&#8217;의 여러 구성원이 스페인 전역 7개 도시에서 체포되었다. 이들은 모로코 및 콜롬비아 마약 조직으로부터 마약을 탈취한 뒤 재판매하려 한 혐의를 받았다. 2014년에는 보이쇼스 노이스의 구성원들이 PSG 팬 두 명을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스페인에서 울트라스 문화 전면의 퇴출 논의가 같은 해 12월을 기점으로 해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p>



<figure data-spectra-id="spectra-mm4z0mu9-uo69q3" class="wp-block-image size-full is-resized"><img loading="lazy" decoding="async" width="600" height="400" src="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6722_24454235390849738_9088790417596293262_n.jpg" alt="" class="wp-image-2200" srcset="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6722_24454235390849738_9088790417596293262_n.jpg 600w, https://barrabrava365.com/wp-content/uploads/2026/02/504096722_24454235390849738_9088790417596293262_n-300x200.jpg 300w" sizes="auto, (max-width: 600px) 100vw, 600px" /></figure>



<p class="wp-block-paragraph">보이쇼스 노이스 내부의 주요 이념은 극우 성향의 스페인 및 카탈루나 국수주의로, 일반적인 극우 집단과 마찬가지로 카탈루나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카탈루나 독립을 지지하는 소수 구성원도 존재하며, 집단 내 이념의 일관성은 비교적 낮은 편이긴 한다. 이들의 역사는 정치적 격변, 폭력, 충성의 변화로 점철된 복잡한 이야기이며,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의 정치·사회적 맥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p>



<p class="wp-block-paragraph">※ 새로운 정보 파악 시, 본 콘텐츠에 계속 업데이트 됩니다.<br>※ 원문 출처 : https://blog.naver.com/barrabrava365/223905544923<br>※ 최초 작성일 : 2025. 06. 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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